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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74화 (569/1,794)

템빨 35권 - 6화

‘뭐야? 뭐하는 거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완벽한 막타 찬스!

피아로, 아스모펠, 맥스옹과 연계한 그리드는 놀을 끝장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생명력 게이지가 바닥을 기는 놀을 보면서, 템빨단원들은 놀이 무슨 아이템을 드롭하게 될지 기대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리드는 놀에게 막타를 꽂아 넣지 않았다.

최후의, 최후의 순간에 공격을 멈췄다.

“정화!”

성녀 루비는 그리드가 상태 이상에 걸렸다고 판단했다. 황급히 정화를 사용해 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대상이 통상적인 상태입니다.]

이와 같은 알림 창이 뜨면서 정화가 먹히질 않았다.

“오빠...?”

설마 렉 걸려서 튕겼나?

열 받은 오빠가 인터넷 회사 안티 짓 하다가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되면 어쩌지?

그리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루비답게 현실적인 근심을 품는다.

바로 그때였다.

“...네 덕분에 부지할 수 있게 된 목숨이다. 남은 삶, 너를 위해 쓰겠다. 너의 곁에서, 네가 믿어 준 나의 가치를 증명하며, 너의 호의에 보답하겠다.”

멈춰있는 그리드에게 연신 뭐라고 떠들어 대던 놀이 급기야 그리드 앞에 고개를 숙였다.

순간, 루비를 비롯한 템빨단원 전원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았다.

‘직계를...’

‘테이밍했어?’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템빨단원들은 작금의 상황을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당연하다.

유명한 테이머들조차도 네임드급 보스는 테이밍할 수 없다는 것이 Satisfy의 지론이었으니까.

한데 테이머도 아닌 그리드가 네임드급 보스를 부하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상식에 완전히 위반되는 광경이었다.

모두가 넋이 나간 그때였다.

“역시 갓리드!!”

“과연 주군!!”

“큭큭큭...! 몬스터의 마음마저도 사로잡는 인덕이라 이겁니까?”

극검, 후로이, 라우엘.

유명한 그리드 빠돌이 3인방이 그리드를 극찬하기 시작했다.

“혈왕 후보 칭호와 직계의 상관관계를 염두에 두고, 직계에게 자비를 베풀어 줌으로써 직계를 테이밍해 버리다니? Satisfy 세계관과 설정을 완전히 꿰뚫고 있는 갓리드만이 실행할 수 있는 테이밍 방법이로군! 과연 갓리드야!! 대한민국의 자랑답다!!”

“주군께서는 이미 숱한 네임드 NPC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오신 분... 이제 와서 몬스터의 마음을 사로잡더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철저히 계산적으로 행동해서 직계를 테이밍한 것은 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위업입니다. 존경합니다, 주군!”

“큭큭큭.... 전하께서 이미 마안족들을 테이밍했을 때부터 저는 알아봤습니다. 전하의 저력,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나의 심안으로도 끝을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큭큭큭....!”

극검, 후로이, 라우엘은 그리드를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면서 작금의 상황을 멋대로 해석했다.

“아.... 음.”

그 즉시 부정하고 진실을 밝히려던 그리드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수만 명의 병사들이 자신에게 선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와서 진실을 밝혔다가는 저들을 실망시키는 꼴밖에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하하하! 뭐, 그렇지. 너희들의 해석이 옳다. 나는 어떻게 하면 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간파했고, 그걸 그대로 실행에 옮긴 거야. 놀의 협조 덕분에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게 되서 다행이군.”

“우오오오오!!”

“과연 그리드 전하!!”

“템빨왕 만세!! 템빨왕 만만세!!”

수만 명의 병사들이 그리드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보다 더욱더 그리드를 존경하게 됐다.

‘....진실은 나중에 동료들한테나 밝히자.’

병사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외면한 그리드가 군대를 정비했다.

***

‘차라리 잘됐어.’

놀을 레이드함으로써 경험치와 아이템, 그리고 새로운 룬의 힘을 얻는 것을 기대하였던 그리드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판덕공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획득 이후 단 한 번도 발동하지 않았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발동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던 빌어먹을 칭호.

하필이면 놀에게 막타를 날리려 하는 시점에 발동해서 놀을 레이드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리드는 무척 화가 났었다. 기껏 기대하고 있던 경험치와 아이템, 새로운 룬의 힘을 눈앞에서 날려 버린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전개가 그리드를 역으로 기쁘게 만들었다.

놀이 자신을 따르겠노라 선언한 것이다.

무려 백작급 직계 뱀파이어가!

경험치, 아이템, 룬의 힘 따위는 이제 집착할 요소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리드가 직계를 사냥함으로써 가장 얻고 싶었던 힘은 무엇인가?

바로 직계 소환 아이템이다.

하지만 소환 아이템은 등급을 올리기가 무척 어려웠고, 설령 훗날 등급을 달성해서 직계를 소환할지라도 직계의 레벨은 초기화되어 있을 공산이 컸다. 또한 소환에 지속 시간도 존재할 것이었다. 일반적인 소환수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놀은 살아 있는 형태 그대로 그리드의 부하가 됐다.

아무런 페널티 없이, 직계로써의 위엄을 그리드 곁에서 늘 뽐낼 수 있는 존재인 셈이다.

특히 놀은 피아로, 아스모펠보다 더 강하면서도 서포터였다. 앞으로 그가 템빨국 군대를 얼마나 강력하게 만들어 줄지 그리드는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

“흐음.”

놀과 마주 보고 선 그리드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예의 익살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순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놀이 그리드는 무척 사랑스러웠다.

“놀, 나는 너희들 뱀파이어가 가축처럼 여기는 인간이다. 그런 나를 진정으로 섬길 수 있겠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리드가 진지하게 묻자, 놀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내가 너를 섬기기로 결정한 것은 너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너의 종족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어.”

그리드라는 사람 자체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놀은 자신에게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 준 그리드가 진심으로 감사했다.

“네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하거나 포식의 대상으로 보는 일은, 어머님의 이름을 걸고 없을 것이다. 단.”

“단?”

“다른 인간들은 모르겠군. 알다시피 내 주식이 인간의 피가 아니더냐.”

스륵.

놀이 저 멀리 밀집해 있는 그리드의 동료들과 병사들을 살핀다. 그 눈빛에 깃든 것은 강력한 욕망이었다.

식욕.

놀은 그리드를 제외한 인간을 여전히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

그것이 뱀파이어와 인간의 본질적인 관계였으니까.

‘음....’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된 그리드의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놀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그에게 인간을 꾸준히 식량으로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바.

‘일국의 왕이 뱀파이어를 곁에 두고 그에게 인간을 먹이로 준다는 소문이라도 퍼졌다가는....’

필시 명성이 하락할 것이다.

민심을 잃는 것은 물론이오, 타국의 선전 도구로 써먹히기에 좋은 입장으로 전락하고 말 터였다.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은 그리드가 <국왕의 검>을 꺼냈다.

‘캐릭터 관찰.’

띠링~

이름:놀

나이:219세 성별:남

종족:직계 뱀파이어

칭호:시조 베리아체의 네 번째 자식

*베리아체에게 자애의 특성을 물려받았습니다. 아군에게 이로운 효과를 주는 혈 마법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칭호:나태의 저주를 극복한 뱀파이어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합니다. 생명력이 1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겁쟁이가 됩니다. 목적을 상실하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견식을 넓히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으로 배울 것입니다.

칭호:포식자

*배가 부를 때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합니다. 현재 공복 수치는 5/10입니다.

레벨:433

근력:3,500(▼) 체력:2,449(▼)

민첩:1,980(▼) 지력:3,500(▼)

스킬:[직계의 위압(SS)]/[수혈(S)]/[헌혈(SS)]/[혈 마법(S+)]/[폭주(SSS)]

시조 베리아체가 특히나 아꼈던 자식입니다.

베리아체는 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자애의 특성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가 형제들에게 큰 힘을 주고, 형제들과 함께 시련을 극복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여느 직계들과 마찬가지로, 놀 또한 베리아체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나태의 저주 탓입니다.

놀은 그 사실이 지독히도 원망스럽습니다.

<폭주>

모든 마법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3초가 됩니다. 단, 마나 소모량은 2배로 늘어납니다.

“와.”

그리드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놀의 능력치가 생각보다 훨씬 더 높았던 까닭이다.

‘만복 상태일 때는 얼마나 강해지는 거지?’

물론, 제아무리 만복 상태가 되더라도 보스 모드의 놀과 비교할 때는 약할 것이다. 보스일 때의 놀은 수천 만의 생명력을 자랑했던 바, 체력 수치만 해도 지금보다 수십, 수백 배 더 높았을 테니까.

하지만 보스일 때의 놀과 NPC일 때의 놀은 능력치가 다른 게 당연한 것이다.

‘적일 때는 오지게 세던 놈도 아군이 되면 약해진다.’

모든 게임에는 이와 같은 규칙이 철저히 적용됐으니까!

‘그 규칙을 감안해 봤을 때 놀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해.’

그래서 더욱더 아쉽다. 놀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이 말이다.

연신 한숨 쉬는 그리드에게 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네가 인간의 피 말고 다른 음식을 먹을 순 없을지 궁금해. 이제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인간의 왕이다. 함부로 인간을 식량으로 바칠 수는 없어.”

“왜지?”

“도의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도의....? 아직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군. 어찌됐든 인간의 피 대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있긴 하다.”

“그게 뭔데?”

역시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그리드에게 놀이 설명했다.

“엘릭서. 인간의 피가 없을 때 대신 먹는 것이 바로 엘릭서다.”

“아, 그래서 너희들이 가끔씩 엘릭서를 드롭했던 거구나?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니다가 죽으면서 떨어뜨리는 개념이었군....은 개뿔.”

화색이 돌았던 그리드의 얼굴에 다시금 그림자가 드리웠다.

엘릭서를 식량으로 조달할 수 있을 리 만무했던 까닭이다.

깊이 한숨 쉬는 그리드에게 놀이 계속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 식량은 네가 일일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식량이야 알아서 조달할 수 있어. 인간을 사냥하면 그만이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야.”

그리드가 굳이 놀에게 ‘식량을 조달해 줘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는 이유는 놀의 폭주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라인하르트에서 놀이 제멋대로 인간을 사냥하고 다니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이었다.

“인간의 피.... 배부를 때까지 먹으려면 얼마나 먹어야 되는 거지?”

결국, 그리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놀이 솔직히 대답했다.

“그저 잠만 잔다면 몇십 년이고 굶어도 된다. 하지만 제대로 활동하려면 하루에 최소 3명 분량의 피를 확보하는 편이 좋아. 만복 상태가 되려면 100인분의 피를 먹어야하고.”

“너한테 피 빨린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데?”

“죽거나 뱀파이어가 되지.”

“...피를 따로 뽑아서 잔에다가 따라 주면 안 될까?”

“그건 신선도가 떨어져서 식량으로써의 의미가 없다.”

“아따.”

천군만마는 맞는데, 제약이 많은 천군만마다.

그리드가 난처해하고 있을 때 피아로가 다가왔다.

“뱀파이어의 식량이라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전하.”

“피아로...? 무슨 해결책이라도 있는 거야?”

그리드가 기대하는 반면 놀은 콧방귀를 뀌었다. 굳이 농부인 척이나 하는 미친놈이 자신의 식량난을 해결해 줄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비웃는 것이었다.

피아로가 싱글벙글 웃었다.

“이 도시의 토양을 이용하면 피를 잔뜩 머금은 식물을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이 뱀파이어에게는 그것을 먹이면 될 것이옵니다.”

“뭐....!”

놀이 질색했다.

식물이라니?

“뱀파이어...! 그것도 직계인 이 몸께 채식을 시키겠다는 것이냐!”

황당한 개소리에 흥분한 놀이 언성을 높이자 피아로가 허허 웃었다.

“그렇다고 인간의 피를 빨아 대는 모습을 볼 수는 없잖은가?”

“차라리 엘릭서를....!”

“아니, 채식이 좋다.”

“야!”

“그럼 바로 밭일을 시작해 볼까?”

“이 미친 자식이...!”

“....시끄러운 녀석이 하나 더 늘었어.”

심지어 나이만 놓고 보면 또 할아버지다. 이러다가 몸에 홀아비 냄새 배는 건 아닐까, 그리드는 진심으로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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