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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65화 (560/1,794)

템빨 34권 - 19화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강화에 실패하였...]

[강화에 실패...]

실패, 실패, 실패의 연속!

강화석을 무기에 바르는 족족 날려 버리는 그리드였다.

개당 시세가 1,200골드를 호가하는 축복받은 강화석을 말이다.

템빨단원들이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쟤 패시브 스킬 중에 강화 확률 상승 있다고 하지 않았냐?”

“맞아요. 그래서 저는 여태까지 아이템을 강화할 때마다 그리드 형한테 대신 강화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반트너에게 대답하는 이벨린.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템빨단원 대부분이 강화할 일이 생길 때면 그리드에게 달려가곤 했었다.

“근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까....”

“....내가 직접 강화하는 거나 그리드가 강화해 주는 거나 확률이 비슷했던 것 같기도....”

“.....”

공교롭게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강화 확률 상승>패시브 덕분에 플레이어 최초로 <궁극 강화>를 성공시켰던 그리드였으나, 그의 강화 경험 총량을 따져 봤을 때 그의 강화 능력은 크게 뛰어난 편이 아니다. 강화에 성공하는 확률이 보통 플레이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유?

그리드는 강화 확률 상승 패시브의 성능 자체가 구린 거라고 믿었다. 그게 아니면 강화가 더럽게 안 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템빨단원들은 이제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드가 강화를 잘 못하는 진짜 이유를 말이다.

‘...똥손.’

피슈수수숙.....

템빨단원들의 해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이, 또 하나의 축복받은 무기 강화석이 의미 없이 소멸한다.

부들부들!

급기야 몸을 떨기 시작하는 그리드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이다.

거액의 돈이 허공에서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카츠처럼 돈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그리드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이었다.

“그, 그리드, 조금 쉬웠다가 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토반의 말대로 해라. 지금은 아무래도 때가 아닌 것 같아.”

강화에 대한 미신은 셀 수 없이 많다.

특정 시간이나 장소가 강화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보통 사람들은 강화가 안 될 때는 과감히 포기하고 다음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리드처럼 감정적인 사람들은 그게 잘 안 된다.

여태까지 계속 실패했으니까 다음에는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을 품고서 강화를 도중에 멈추지 못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으아아아아아아!! 누가 이기나 어디 끝까지 해보자!!”

전 재산을 탕진할 기세로 울부짖은 그리드가 열망의 무아검에 계속, 계속 강화석을 갖다 발랐고.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반전은 없었다. 확률은 늘 그랬듯이 그리드의 뒤통수를 때렸다.

10번의 강화를 연속적으로 실패하는 그리드를 지켜보는 템빨단원들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았다.

‘저건 그리드가 운이 없고 자시고를 떠나서.’

‘신화급 아이템의 강화 확률이 예상보다 더 낮은 것 같은데?’

일반 아이템은 +6까지 확정적인 강화가 가능한 반면, 신화급 아이템은 +0부터 강화 실패 확률이 존재한다. 또한 +1부터 강화에 실패할 때마다 강화 수치가 하락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그리드와 템빨단원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강화 성공 확률이 몇 퍼센트인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그저 막연하게, 일반 아이템을 +7 강화할 때랑 비슷한 확률일 거라고 추측해 왔다.

하지만 이제 보니 +7은 개뿔.

최소 +8 강화와 비견되는 확률 같다.

“지슈카, 너는 이미 주작궁 강화를 시도해 보지 않았어?”

그리드가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보자 초조해진 극검이 지슈카에게 질문한다. 신화급 아이템 강화에 대한 정보를 그리드에게 사전에 좀 전달해 주지 그랬느냐는, 다소 원망 섞인 눈빛을 보내면서 말이다.

지슈카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애초에 강화 시도를 몇 번 못했어.”

“왜?”

무려 신화급 아이템이다.

1강만 해도 위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여지가 있었다. 강화석이 모이는 족족 강화를 시도해 봤어도 부족할 판국에 그녀는 왜 강화 시도를 안 했단 말인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극검에게, 지슈카가 우울한 표정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드한테 빚 갚기도 바쁜데 내 아이템 강화할 여유가 어디 있겠어?”

“아....”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 참 드물다.

그 변치 않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 극검이었다.

***

*팔찌의 등급이 레전드리까지 성장할 경우 뱀파이어 백작 크레이를 소환할 수 있게 됩니다.

*대검의 등급이 레전드리까지 성장할 경우 뱀파이어 백작 에티마를 소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드가 고배를 마시고 있는 그때, 유페미나와 크리스는 각자 획득한 팔찌와 대검의 정보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무려 백작급 직계 뱀파이어를 소환하는 아이템!

그 성능을 논하기에 앞서서, 크레이의 팔찌와 에티마의 대검은 소환 도구만으로써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셈이었다.

그렇기에 유페미나와 크리스 두 사람은 그리드가 자신들에게 아이템을 양도해 줬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감사했다.

함께 싸웠고, 그렇기에 레이드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 자신들에게도 아이템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왜 굳이 그리드에게 감사해 하는 걸까?

이유야 간단하다.

그리드는 겸손하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이번 레이드 1등 공신은 당연히 그리드였기 때문이다.

그리드야말로 아이템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가 가장 강했다. 만약 그가 아이템 소유권을 주장했다면 유페미나와 크리스는 아이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끝까지 아이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드롭 된 아이템들을 보다 적합한 동료가 사용해 주길 원했다.

그 아이템이 비록 직계 소환 도구일지라도 말이다.

‘역시 국왕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야.’

자이언트 길드를 이끌던 시절, 크리스는 영지 내 성 던전에서 확보할 수 있었던 소량의 엘릭서를 자신이 독식했었던 바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조직들이 높은 사람일수록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바, 크리스는 자신이 리더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달랐다. 그는 도리어 리더이기 때문에 양보하는 부분이 무척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써 그는 평소 자신의 시간을 쪼개 가면서까지 동료들의 아이템을 제작해 주고, 강화해 주고, 수리해 주었다.

‘존경한다.’

‘고마워요.’

그리드를 바라보는 유페미나와 크리스의 눈빛에 더욱더 강한 호감과 신뢰가 깃든다.

그들 또한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그리드에게 <혈왕의 자격>(지금은 혈왕 후보로 승격했지만) 칭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직계의 왕이 될 가능성 말이다.

그리드의 입장에서는 직계 소환 아이템을 최대한 많이 소유하고 싶을 공산이 컸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을 위해서 그 욕구를 억눌렀단 사실이 유페미나와 크리스는 존경스러웠다. 그들은 다짐했다.

‘아이템 등급을 레전드리까지 성장시켜서.’

‘그때 당신에게 되돌려 주겠어요.’

오로지 그리드를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아이템은 수시로 교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질수록 지금보다 더 뛰어난 아이템을 얻는 것이 순리였으니까.

팔찌와 대검의 등급이 레전드리로 성장할 무렵에는 유페미나와 크리스 또한 보다 뛰어난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었다.

‘설령 아니더라도, 그리드 네가 더 좋은 아이템을 제작해서 보답해 주겠지. 안 그래?’

상대가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이기에 품을 수 있는 믿음이다.

이럴 때마다 템빨단에 가입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페미나와 크리스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

“잠시 멈추시는 게 좋겠습니다.”

강화에 열중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라우엘이 다가와 말했다.

그리드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남자가 무를 꺼냈으면 뭐라도 썰어야지. 강화석 다 쓸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아닙니까?”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잘 아는 라우엘!

거침없이 태클을 건 그가 그리드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었다.

“아무래도 남은 2명의 직계가 불안해요.”

“아.”

그리드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에티마와 함께 사라졌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2명의 직계.

만약, 그들 중 하나라도 나타났다가는 파티는 그대로 전멸이었다. 현재 파티의 여력으로는 백작급 직계를 상대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도시 출입구가 열렸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너무 해이해져 있었어.’

이제 6개밖에 남지 않은 강화석을 인벤토리에 돌려 넣은 그리드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선 도시를 떠나자.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남은 원정은 내일부터 이어서....”

그리드의 말이 채 끝까지 이어지기 전이었다.

퍼엉-!

혈빛의 마력이 그리드의 안면에 날아와 꽂혔다.

“그리드!!”

깜짝 놀랐던 동료들이 이내 안도했다. 어느새 날아온 갓 핸드들이 그리드를 지켜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마력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란히 하늘 위에 올라있는 백작 루쏜과 놀이 보였다.

“칫, 늦었나.”

앞서 크레이 레이드 당시 직계들이 자리를 떠났던 이유는 순전히 수면을 위해서였다.

직계들의 대사를 놓치지 않고 들은 라우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여, 직계들이 재등장할 가능성을 무척 낮게 보았다. 직계들이 한 번 잠들면 깨어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레이 레이드 직후 에티마가 등장했고, 에티마 레이드 직후 또 직계들이 등장했다.

‘에티마는 도시의 주인이므로 특수하게 수면욕을 이겨낸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라우엘이지만,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듯하다.

“크레이에 이어서 에티마까지 죽었다고?”

“방심할 수 없는 놈들이군. 우리도 혼자 나섰다가는 당할 수도 있으니 반씩 나눠서 사냥하는 게 어떨까?”

“좋은 생각이다.”

“....!”

하늘 위 직계들이 협동을 논하자 템빨단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들이 최소 에티마급의 강자라고 가정할 경우, 템빨단이 온전한 상태일지라도 2명을 동시에 레이드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안 그래도 지친 상태에서 둘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니 그건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시간을 버는 동안 도망가.”

저벅.

그리드가 동료들의 앞으로 나섰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동료들에게 퇴로를 열어 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굳이 이루지 않아도 되는 계획이었다.

“아니요. 그냥 퇴각하시면 됩니다. 퇴로는 이미 만들어 놓았으니까.”

직계들이 재등장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 그리드가 동료들 앞에서 강화 쇼를 벌이는 동안 퇴로를 확보해 놓은 라우엘이다.

그 탓에 비장한 표정을 지었던 그리드만 민망해졌다.

“그.... 그래?”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그리드에게 든든한 표정을 지은 라우엘이 말한다.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자, 가시죠.”

“이놈들! 놓칠 것 같으냐!!”

라우엘을 필두로 템빨단원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직계들이 그 뒤를 따랐다.

비교적 지형지물에 구애받지 않는 비행 능력을 철저히 활용, 템빨단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시도했다. 본래라면 진즉에 템빨단을 따라잡았을 그들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뭐지?’

‘왜 따라잡기 어려운 거지?’

직계들은 템빨단을 금세 추격하지 못했다.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비행하는 경로마다 종유석이 가득해서 속도를 내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라우엘의 수작이었다. 도시에 입장한 이후 지형을 잘 관찰해 두었던 그는 직계의 비행 능력을 봉쇄하는 경로로 템빨단의 퇴로를 짰다.

덕분에 템빨단은 아무런 희생도 없이 도시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좋아! 잘했다, 라우엘!”

“덕분에 살았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

도시 입구로 탈출한 템빨단원들이 라우엘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태양을 등지고 선 라우엘이 얼굴의 절반을 한쪽 손으로 가린 채 어깨를 들썩였다.

“큭... 큭큭큭, 밤의 주민들 따위, 어둠의 주인이었던 이 몸 앞에서는 무력할 따름이지요. 피라미라 이겁니다. 훗.”

“.....”

오래간만에 한 건 했답시고 기고만장해진 라우엘이다.

“흠흠, 내일 이 시간에 여기에 집결하는 거로 하고 이만 헤어지자.”

오글거리는 분위기를 수습한 그리드가 로그아웃했다. 다른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라?”

연신 킥킥 웃던 라우엘은 한참 후에서야 자신이 혼자 남겨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데미안과 마안족들이 그리워지는 그였다.

국가대항전까지 2달이 채 안 남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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