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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50화 (545/1,794)

템빨 34권 - 5화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사실, 이와 같은 의문은 무의미하다.

아그너스 또한 플레이어인 바, 어떤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떠한 형태로 등장하더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그리드는 그와의 만남을 늘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이 순간 그리드가 의구심을 품어야할 부분은 따로 있었다.

‘왜 나를 도운 거지?’

카일 이라는 정체불명의 강자에게 붙잡힌 그리드는 누가 봐도 위기였다. 아레스 군단이 그를 도우려고 했으나, 제국군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진군을 방해하였으므로 사실상 어려웠다.

이때 나타난 아그너스가 그리드를 도운 것이다.

명백한 호의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리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개인적인 감정은 차지하더라도, 세력 구도적으로도, 퀘스트 전개 상황으로도 자신은 아그너스의 적이 아니던가?

‘아그너스의 입장에서는 내가 죽고 손해를 입는 것을 쌍수 들고 환영해야할 텐데?’

왜?

‘왜 나를 도왔지?’

그리드의 혼란이 가속화되는 그때.

[시체 일으키기 대상의 레벨이 너무 높습니다.]

[지배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습니다.]

카일의 배후를 공격했던 로렉스의 데스나이트가 잿빛으로 산화하고 있었다. 등장 후 불과 3초만이었다.

아그너스의 입가로 히죽, 커다란 미소가 번졌다.

“3천의 지배력을 소모했는데 고작 3초 유지라고? 킥킥! 그리드, 네가 이런 괴물을 쓰러뜨렸단 말이지?”

“.....”

“영웅왕...! 영웅왕!! 못 본 새 얼마나 강해진 건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키햐하하학!!”

“....!!”

그리드가 황급히 자리를 이탈했다.

갑자기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한 아그너스가 자신을 공격해온 까닭이었다.

도와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또 죽이려드는 것이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야!!”

공격을 회피한 그리드가 황망히 외친다.

그의 뒤를 쫓아서 몸을 날린 아그너스는 재차 칼을 찌르고 있었다.

“킥! 키키킥!! 발악해!! 발악하라고!! 나를 즐겁게 만들어라!! 키햐하하핫!!”

“이 미친 새끼가...!”

그리드는 깨달았다.

아그너스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 아그너스는 그냥 미쳤을 뿐이다. 목숨을 빚진 것을 은혜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나를 구한 것도 단순한 변덕이었을 테지....!’

판단하는 그리드.

그의 뺨을 아그너스의 검이 스쳐지나간다. 무엇인가의 뼈로 제작 된 검이었다.

[저주에 걸립니다.]

[저항하였습니다.]

‘디버프를 유발하는 무기...! 못 본 새 템빨까지 갖췄다고?’

“킥킥킥...! 멍하니 뭐하는 거냐! 도망만 다니지 말고 때려!! 너도 나를 때리라고!! 캬하하하핫!!”

아그너스의 광소가 더욱 더 커지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과 그리드를 둘러싸고 있는 적기사단과 카일은 거들떠도 안 보는 눈치였다.

다섯 번째 기사 디아가 꽈드득, 이를 갈았다.

“저놈들이 우리를 병풍 취급하다니...!”

디아는 대인 전에 특화 된 인물이었다. 전체적인 능력치는 세 번째 기사 로렉스와 비할 바 없이 뒤떨어졌으나, 그래도 1대1 승부나 소수 전에서 만큼은 로렉스에 근접하는 실력을 발휘했다.

분노한 그가 그리드와 아그너스에게 몸을 날리려하는 순간이었다.

“멈추세요.”

카일이 디아를 제지했다.

“경께서도 보셨다시피 무패왕의 후예는 강합니다. 뒤늦게 나타난 저 정체불명의 사내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이대로 둘이 싸우다가 지치게끔 유도하는 편이 현명해 보입니다.”

“크음....!”

디아는 카일이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로렉스와 적기사단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무패왕의 후예가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지쳤을 때야 등장한 그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빨리 나섰다면 로렉스는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이자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디아 본인 또한 로렉스를 구하지 못했다. 카일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입장인 것이다.

카일에 대한 분노를 간신히 억누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무패왕의 후예는 강했고, 뒤늦게 나타난 녹발의 사내 또한 만만치는 않아 보였다.

디아는 카일의 말대로 두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의 전개는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그너스 님! 진정하십시오!!”

뒤늦게 전장에 도착한 베라딘이 아그너스의 이성을 붙잡은 것이다.

“그자와는 언제든지 다시 싸우실 수 있는 반면 카일은 아닙니다! 오늘 카일을 놓치면 적으로 만날 기회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카일과 아그너스의 파벌이 다르다고는 하나 결국 같은 제국 소속이었다. 본래는 대놓고 적대할 수도 없었다. 스토리 전개에 따라서,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아군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키히.”

웃으면서 그리드를 쫓아다니던 아그너스가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제자리에 섰다.

카일은 현존 최강의 NPC로 분류해도 좋은 존재.

도망만 다니는 그리드를 상대하는 것보다야, 카일과 싸우는 편이 훨씬 더 즐거울 거란 사실을 아그너스는 상기했다.

“뭐... 지칠 대로 지친 겁쟁이보다야 팔팔한 놈이랑 노는 편이 좋겠지... 킥.”

“허억... 허억....”

아그너스가 더 이상 자신을 쫓아오지 않자 그리드는 안도했다.

‘죽을 뻔했네.’

단지 지쳤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드는 템빨왕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입장인 바, 현재 전력으로는 아그너스와 싸워도 승산이 없었다.

아그너스가 무무드의 리치를 소환해서 그리드를 강제 동화시키는 전개가 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하지만 아그너스 저놈이 바보가 아닌 이상 무무드를 소환하진 않겠지.’

무무드를 소환하면 <브라함VS무무드> 퀘스트가 개시되고 그리드는 400레벨 보정을 받게 된다. 또한 동화 상태의 그리드와 리치 무무드는 강제 전투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이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을 아그너스가 리치 무무드를 소환할 리 없다고 그리드는 확신했다.

역시나.

쿠구구구구구구-!

아그너스는 무무드를 제외한 데스나이트와 리치를 소환했다. 그리고 카일을 총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베라딘이 소환한 데스나이트 또한 카일을 덮쳤다.

‘저건 위험하지.’

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자, 브라함의 부츠를 착용하고 하늘 위로 날아오른 그리드는 카일의 위기를 예상했다.

아그너스의 데스나이트와 리치가 얼마나 강한지 그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카일이라는 놈이 최소 로렉스와 동급의 강자라고 해도.’

전력을 다하는 아그너스와 베라딘의 협공에 견딜 리 만무하다.

저 둘은 자신과 아레스 군단조차도 막아냈던 괴물들이 아닌가.

그리드는 판단했고, 카일은 그 판단을 비웃었다.

파직-!

콰르르르르르르릉!!

콧방귀 뀐 카일이 자신을 중심으로 뇌전의 폭풍을 소환했다.

강력한 위력의 마법이었다.

휘몰아치는 천둥번개에 휩쓸린 데스나이트들이 일거에 사방팔방으로 나가떨어졌을 지경이다.

‘아슈르의 마법을 초월한다고?’

대마법사 이상!

카일의 실력이 상상 이상임을 깨달은 그리드가 흠칫 놀랐다.

솔로 넘버 나이트 이상이라는 제국 최대의 강자들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설마, 다섯 기둥...!”

그리드가 카일의 정체를 눈치 채는 그때.

“누가 보낸 자객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리석군요. 고작 그런 실력으로 저를 해할 수 있을 것 같나요?”

파지직!

뇌광에 휩싸인 카일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재등장했다.

그는 전장의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그너스의 후방을 점령하고 있었고, 손에는 단검을 쥐고 있었다.

단순한 마법사가 아니라 전격과 전투 그 자체에 특화 된 인물 같았다.

푹-!

푹푹푹!

카일의 단검이 아그너스의 옆구리를 찌르고, 또 찌른다.

초당 6회.

카일은 버프 상태의 그리드와 마찬가지로 최고 공속에 도달해 있었다.

“아그너스...!”

상공의 그리드가 움찔했다.

‘도와줘야하는 게 아닐까?’

딱히 아그너스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리드는 아그너스와 명백한 적이었고, 아그너스의 죽음을 바라야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아그너스보다 카일이 훨씬 더 위협적인 적이라는 사실이 그는 마음에 걸렸다.

‘다섯 기둥이 존재하는 한 제국은 건재할 거고 우리 템빨국은 영원히 압박받을 거야.’

어쩌면 지금이 기회 아닐까?

다섯 기둥의 일각을 때려 부수고 제국을 약화시킬 절호의 기회 말이다!

‘...애초에 저 미친놈한테 빚진 기분을 느끼는 것도 싫고.’

생명력과 마나, 스태미나 등의 자원은 적정량 회복 된 상태이다.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 그리드가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을 꺼내 쥐었다.

한편, 드디어 제국군의 방위선을 돌파한 아레스 군단 또한 아그너스에게 합류하고 있었다.

아레스 군단도 그리드와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아그너스! 네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하지만 좋아! 이용당해주마! 다섯 기둥을 없앨 수만 있다면 상대가 미친개든, 똥개든 얼마든지 어울려주겠어!!”

쩌어엉-!!

뇌전의 폭풍에 휩쓸려서 사방으로 흩어졌던 아그너스의 데스나이트들.

놈들을 각개격파하고 있던 적기사단의 후위를 아레스 군 단원들이 덮친다.

덕분에 아이너스의 데스나이트들이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카일의 맹공을 버티고 있던 아그너스가 키햐하! 전장이 떠나가라 웃었다.

“좋아! 좋다고!! 푸르푸의 권능!!”

대악마가 거론 되는 순간.

쏴아아아아아--

석양에 물들고 있던 하늘이 백광에 휩싸였다.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는 서리가 만들어내는 풍경이었다.

키야아아아아!!

크오오오오오!!

푸르푸는 조련의 악마!

아그너스의 데스나이트들이 더욱 더 강력해졌고, 이에 고립 된 카일은 쯧, 혀를 찼다.

‘귀찮군.’

사실, 로렉스가 죽은 시점부터 카일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었다.

‘세 번째 기사가 멋대로 군대를 통솔한 결과, 제국군은 전투에서 대패했고 세 번째 기사와 다수의 적기사단이 사망하고 말았다. 이는 당대 적기사단의 무능함을 엿볼 수 있는 단편적인 예다. 적기사단의 필요성은 없다.’

이와 같은 내용의 보고서만 적어 황제에게 올리면 황제가 어련히 기뻐해줄 터.

그렇다.

이번에 카일이 맡은 진짜 임무는 적기사단의 붕괴.

결과적으로 황비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에 있었다.

‘여기에 추가로 무패왕의 후예까지 처리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 두 명의 네크로맨서가 여간 까다롭다. 특히 녹발의 네크로맨서는 상식선에서 벗어나는 실력자였다.

‘대악마의 힘까지 쓰다니... 그나마 생존한 적기사들이 방패역할을 해주고 있을 때 떠나는 편이 좋겠어.’

이곳 발할라는 제국 입장에서 오지 중의 오지다.

카일은 자신의 공식적인 데뷔전을 이런 촌구석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 만천하에 자신의 위엄을 알릴만한 무대로는 이곳이 너무 작다고 느꼈고, 그렇기에 퇴장을 결정했다.

“청룡의 춤.”

파직!

파지지지직!!

동대륙에서 얻은 신수의 힘이 카일의 육체능력을 극대화시킨다.

그는 집요하게 자신을 따라붙는 데스나이트들을 일거에 해치운 뒤 그대로 떠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면서 그의 계획은 어긋나고 만다.

“리치 소환! 무무드!!”

“야, 이 미친놈아!!”

“?!”

카일과 마주보고 서있던 아그너스가 리치 무무드를 소환하자, 카일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던 그리드의 흑발이 백발로 물들었고.

“파이어 볼!”

“키야아아아아!!”

쿠와아아아아아아앙!!

브라함과 무무드가 동시에 서로에게 마법을 쏘았다.

그들의 중간에 낀 카일이 폭발에 휩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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