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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47화 (542/1,794)

템빨 34권 - 2화

‘저놈이 위축되지 않는다고?’

로렉스가 깜짝 놀랐다. 괴한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확인한 까닭이다.

‘실성한 것인가?’

자신이 누군가?

무려 세 번째 기사다.

제국은 물론이요, 서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였고, 누구라도 자신을 경외하기 마련이었다.

한데 눈앞의 괴한은 여유만만인 것이다. 미쳤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를 보면 겁먹고 오금 지리는 놈들은 많이 봤다만....”

놀라움이 분노로 변한다.

질끈 이를 무는 로렉스의 이마로 핏줄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멀쩡히 서서 웃는 놈은 네가 처음이구나!!”

퍼엉-!

로렉스는 굳이 길게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눈앞의 괴한 놈, 고작 병사들을 학살한 것으로 기세가 올라서 까부는 꼴이 괘씸하다. 어서 내 눈앞에서, 이 세계에서 지워 버리고 싶다.

“5만 군세를 돌파하는 일? 나 또한 손쉽게 할 수 있다!! 우물 밖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려 주마!!”

츠카칵-!

포효하며 몸을 날린 로렉스의 대형 도끼가 남기는 잔광이 대기를 물결치게 만든다. 막강한 물리력을 기반으로 생성된 충격파였다. 돌조차도 그 안에선 잿더미가 된다.

이를 본 아레스가 다급히 소리쳤다.

“정면에서 받아 내지 말게! 놈의 근력은 최소 5천이 넘어!! 무조건 피해야 돼!!”

그리드에게 나름의 조언을 해 주는 것이었으나,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아레스는 알고 있었다.

로렉스는 단지 힘만 센 바보가 아니었고, 민첩함과 영리함이 맹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놈의 공격이 강한 힘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 봤자 피할 수가 없다. 너무 빠르고 궤도가 완벽해서 방어하기도 벅찼다. 그리고 방어와 동시에 큰 충격을 받고 파멸의 길에 들어설 뿐이다.

세 번째 기사에 대한 아레스의 평가는, ‘전성기 시절의 크라우젤이라도 압도할’ 수준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현실이다!’

아직 플레이어들의 레벨은 400에 도달하지 못했다. 최소 4차 전직하기 전까지는 항거할 수 없는 존재, 그게 바로 솔로 넘버 나이트 최상위급 실력자인 것이다.

아레스는 생각했지만.

“이걸 어떻게 피해?”

그리드의 취미는 상식 파괴다.

퍼어어억-!!

로렉스의 대형 도끼에 가슴을 고스란히 얻어맞는 그리드.

[14,3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삼겹갑 등의 방어구들이 물리 데미지를 대폭 경감시켜줌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에 휩쓸린다.

하지만 굳건히 버티고 선 채.

푹-!

푸푸푹!!

초당 4회의 평타를 날린다.

로렉스의 허를 찌르는 반격이었다.

[대상에게 6,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7,63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8,4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9,39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깨달음을 주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의 옵션 효과로 화염을 방출합니다. 5천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맞아 주고, 템빨로 버틴 후, 템빨로 더 세게 때린다.

그것이 본디 템빨러 고유의 전투 방식인 바!

“큭....?!”

일격을 날렸다가 4격을 얻어맞고 더 큰 피해를 입은 로렉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옆구리에 누적된 데미지로부터 묘한 불안을 느꼈다.

‘내 공격을 버텨 낸 것만으로도 놀라울 지경인데, 이놈의 공격은 누적될 때마다 위력이 증가되는 듯한...?’

콰자자작!!

로렉스는 현존 최강의 실력자 중 하나다.

예측 범위에 없던 반격에 당황하면서도 몸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드의 공격을 허용하는 와중에 회수한 도끼를 재차 휘둘러서 그리드의 어깨를 찍어 버렸다.

[크리티컬!]

제대로 명중했다.

로렉스는 그리드의 몸이 당연히 양단 날 거라고 믿었다. 그리드의 어깨에 꽂힌 도끼를 그대로 힘껏 찍어 눌러서 갑옷 째 찢어발기고자 시도했다.

한데.

‘꿈쩍도 안 해?’

여러 겹의 미늘이 겹쳐 있는 묵색 갑옷.

유려한 외관과 어울리지 않게 어찌나 튼튼한지, 로렉스의 도끼에 찍히고도 균열 하나 발생하지 않는다.

뭐, 여기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뛰어난 갑옷이야 세상에 많았으니까.

로렉스의 도끼가 강철조차 종이처럼 찢어 버리기로 유명하다고 하나, 늘 모든 갑옷을 베어 버렸던 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묵색 갑옷의 미늘들이 로렉스의 도끼날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끼릭!

끼끼긱-!

“....!!”

흠칫 놀란 로렉스가 도끼를 회수하고자 팔에 힘을 잔뜩 주었지만 이미 늦었다.

파삭!

미늘의 틈새로부터 간신히 빠져나온 로렉스의 도끼날에는 이미 미세한 균열이 발생해 있었다.

삼겹갑에 귀속된 <소드 브레이커>의 효과였다.

“때리고 싶은 만큼 때려. 내가 먼저 죽을지, 네 도끼가 먼저 못 쓰게 될지 어디 한 번 시험해 보자.”

벌컥벌컥.

생명력 회복 물약을 마신 그리드가 로렉스에게 속삭였다. 그는 로렉스의 옆구리를 쉬지 않고 칼로 찌르고 있었다. 같은 대상에게 공격을 누적시킬 때마다 공격력이 상승하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 효과가 극대화 됐단 뜻이다.

[대상에게 14,3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흐읍!”

그리드에게 10회 째 타격을 얻어맞는 순간, 로렉스의 옆구리가 살짝 꺾였다. 종전과 비할 바 없이 커진 고통이 그의 육체를 위축시키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노오오오옴!!”

부웅-! 쾅!!

부우웅-!! 콰작!!!

흥분하여 눈을 까뒤집은 로렉스가 연달아 도끼를 휘둘렀고, 그리드는 그 공격을 피하지 못하여 계속 얻어맞았다. 하지만 이때마다 반격을 날렸으니 두 사람 모두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었다.

“......”

“......”

두 사람의 대결이 심화될수록 전장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넋 나간 표정을 지은 아레스가 조용히 감상을 읊었다.

“저거 완전히 개싸움이잖아...?”

고수와 고수 간의 대결에서 엿볼 수 있는 고난이도 기술의 합은 쥐뿔도 없다.

마치 어린 애들이 뒤엉켜 싸우는 듯한 모습이다.

끄덕끄덕!

모두가 아레스의 감상에 공감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고 아군이고 가릴 것 없이 말이다.

‘뭐, 이런 농담이나 하고 있을 때는 아닌가.’

아레스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그리드와 로렉스.

두 사람에게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그건 바로 플레이어와 NPC라는 점이다.

플레이어의 생명력 수치는 순전히 스탯과 칭호, 아이템 상황 등으로 결정되는 것이지만, NPC의 생명력 수치는 별도의 보정을 받는다. 특히 네임드급 NPC의 생명력 수치는 보스 몬스터처럼 높아서 플레이어보다 수십, 수백 배 높은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그리드는 로렉스의 공격을 허용할 때마다 생명력 게이지가 7분의 1, 6분의 1씩 떨어지고 있는 반면, 로렉스의 생명력 게이지는 여전히 건재한 상태였다.

‘이 상태로는 그리드에게 승산이 없어. 어서 다섯 번째 기사를 해치우고 기회를 봐서 도와야...’

아레스가 생각하는 그때였다.

“엇...!”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온도와 습도가 높아 수증기가 자욱한 리벨론 숲.

시계를 방해할 정도로 짙은 수증기에 가려져 있던 그리드의 몸으로부터 적색과 자색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투기였다.

사실, 그리드는 최초 등장부터 이 투기를 몸에 두르고 있었으나, 낭자하는 선혈과 수증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색이 짙어지자 이제는 수증기 너머로도 명확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투기가 50을 돌파하였습니다.]

쩡-!

쩌저저정!!

“크읍....!”

그리드의 공격을 재차 허용한 로렉스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괴한 놈의 공격이 더욱 더 강해졌으니 믿기지 않았다.

“그렇군...! 네놈, 광전사였구나!!”

광전사 치고 방어력이 너무 높은 것 같아 의아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소리치는 로렉스에게 그리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광전사? 아니.”

“????”

“평타왕.”

“익...! 이 미친놈이 자꾸 무슨 헛소리를!!”

어딘지 분통 터지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놈이다.

그리드의 쓸데없는 대답에 더욱더 분노한 로렉스가 크아아!! 짐승처럼 포효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

[14,6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투기가 60을 돌파하였습니다.]

[대상에게 15,66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5,71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엘핀스톤의 반지>효과로 1,885의 생명력을 흡수하였습니다.]

[<엘핀스톤의 반지> 경험치가 0.3퍼센트 올랐습니다.]

‘이 자식, 지속력이 괴물이야.’

로렉스와 전투를 개시하고 고작 2분이 지났다.

하지만 그리드가 체감하기로는 30분, 1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초당 1회의 타격을 허용하는 한편 4회의 반격을 날려야하는 초 단위 전투.

그리드의 체력은 이를 아슬아슬하게나마 감당하고 있었으나, 공교롭게도 정신력은 그렇지 못했다.

일합을 겨룰 때마다 1초 내에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 보통 집중력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

그리드는 정신적으로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콰작-!!

‘패시브로 흡혈 능력을 장착한 것 같아.’

날아오는 도끼에 가슴을 찍히면서, 피를 토한 그리드가 로렉스의 생명력 게이지를 주시했다. 조금 차오르는 게 보였다.

‘지긋지긋한 놈.... 그나마 액티브 스킬을 남발하지 않는 건 패시브 쪽에 특화된 계열이라서 그런가. 심지어 평타도 강하고.’

그리드는 로렉스를 마드라보다 강한 상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평타의 위력부터가 마드라의 평타보다 더 강했고, 엘핀스톤의 반지, 티라멧의 허리띠, 갓 핸드 등의 아이템 경험치가 마드라와 싸울 때보다 더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하여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의식의 흐름을 잠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대로는 내게 승산이 없다.’

생명력이 천만 단위를 넘어 보이는 로렉스를 평타만으로 제압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파그마의 검무를 쓸 수만 있었어도.’

괴물 같은 피통과 지속력?

파그마의 검무의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무력화시키고 승기를 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그리드는 템빨왕을 상징하는 기술을 쓸 수 없었다. 정체가 발각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대로는 승산이 없으니까 도망칠 거냐고?

‘아니.’

양반 가람과 첫 번째 기사 메르세데스를 만났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로렉스의 존재감은 그들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졌다.

또한 그리드는 본인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자만이 아니다.

영웅 중의 영웅이라는 말, 아무나 쉽게 들을 수 있을까? 그리드는 본인의 실력을 신뢰해도 좋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생각하자, 영우야. 어떻게 하면 이놈을 이길 수 있을지.’

“크하하하하!! 지쳤나 보구나!!”

‘이런!’

생각이 너무 깊었다.

그리드의 1초에 공백이 생겼다.

반격을 날리지 못했고, 그 틈에 로렉스는 스킬을 전개했다.

푸른 검기에 휩싸인 로렉스의 도끼가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강맹한 기운을 품고 그리드에게 쇄도했다.

도끼 끝에 일렁이는 기운의 파장을 보아 폭발할 기세다. 검은 불꽃처럼 일대를 날려버리는 스플래쉬 데미지 형태의 공격일 가능성이 높았다.

‘평타조차 막지 못하는 마당에 저걸 막을 수 있을 리도 없고. 제길, 신속한 몸놀림을 고작 회피용으로 소모해야 하다니....!’

하지만 불사를 날리는 것보다야 낫다.

혀를 차면서 판단한 그리드가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하려다가 멈칫했다.

‘가만? 폭발?’

뇌리를 스치는 물건이 있다.

날아오는 로렉스의 도끼와 직면한 그리드,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천을 꺼냈다.

망토?

아니, 보자기였다.

“그리드....! 엥?”

로렉스가 스킬을 날리자 그리드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아레스.

그리드를 돕기 위해서 뛰쳐나가던 그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전투 중에 갑자기 보자기를 꺼내는 그리드를 보자 뭔가 몰입감이 확 떨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로렉스의 도끼가 그리드를 강타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리드를 강타하기 직전에 그리드가 집어 던진 보따리부터 베었다.

로렉스가 콧방귀 뀌었다.

‘이놈이 역시 미친놈이 맞구나!’

일대를 소멸시켜 버리는 이 몸의 볼케이노 엑스를 상대로 보자기나 집어 던지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 맞다.

뭐, 이해는 간다.

볼케이노 엑스는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는 최강의 기술 중 하나다. 어떻게 저항해도 의미 없음을 깨닫는 순간 미쳐서 해괴한 짓을 벌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어?”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은 채, 폭발하는 검기에 휩쓸려 죽을 괴한의 모습을 상상하던 로렉스.

그의 머릿속이 잠시 새하얘졌다.

강력한 검기를 방출하여 일대를 초토화시켜야 할 자신의 도끼가 보자기에 휩싸인 순간 잠잠해진 까닭이다.

‘뭐지?’

귀신에 홀린 심정!

이해하지 못하고 일단 물러서려는 로렉스의 시야를 보따리가 잠시 가렸다.

허우적거리는 그의 옆구리로 그리드의 검이 꽂혀 든다.

종전과 다를 바 없는 평타?

맞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타와 평타 사이에 즉발 스킬이 연계되었다.

“꺾을 수 없는 정의!”

퍼어어어어엉-!!

“....!!”

로렉스의 눈이 하얗게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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