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546화 (34권) (541/1,794)

템빨 3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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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34권 - 1화

표면적으로 템빨국은 중립국이다.

최근에는 제국에 공물 바치기를 중단했고, 심지어 2개의 속국까지 두었으니, 템빨국이 강대국 반열에 든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사면초가다.

템빨국의 실정을 표현하기에 이처럼 적합한 말도 없다.

사하란 제국은 숫사자였고, 템빨국은 암사자 무리에 갇힌 사슴이었다.

제국의 입장에서 템빨국은 언제든지 요리해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드는 이와 같은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자신과 동료들이 노력하고 고생해서 쌓아 올린 국가가 모래성처럼 덧없다는 사실이 지독히도 슬펐다.

하여.

‘안 봐줘.’

제국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이번 기회, 그리드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제국군 병사 한 명을 해치울 때마다 템빨국 백성 한 명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는 살육의 각오를 다졌다.

인정을 버렸다.

***

[대상에게 17,87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의 옵션 효과로 5천의 화염 데미지를 추가로 입힙니다.]

[대상에게 20,1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이 사망하였습니다.]

[악마력이 1 올랐습니다.]

3천을 돌파한 그리드의 근력과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이 결합해서 만들어 낸 결과이다.

제국군 병사들은 그리드의 평타 2회조차 견디지 못하고 잿빛으로 산화했다.

병사들의 레벨이 230을 넘고, 무장한 갑옷의 성능도 준수한 편이라고는 하나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에 귀속된 <물리 공격력 20퍼센트 추가>, <화염 속성 공격력 30퍼센트 추가>, <암흑 속성 공격력 30퍼센트 추가>, <뇌전 속성 공격력 15퍼센트 추가> 옵션 외에도, 그리드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패시브 능력이 워낙 출중했다.

번헨 열도에서 얻었던 <웨폰 마스터리>는 이미 진즉 중급 레벨 5가 되어서 공격력 17퍼센트를 추가해 줬고, 비활성화 시 공격력을 상승시켜 주는 <파그마의 검무> 레벨 4는 공격력을 34퍼센트 추가해 줬으며, <갓 핸드>에 귀속된 <도미니언의 축복>이 또 공격력을 15퍼센트 추가시켜 줬다.

버프에, 버프에, 버프를 중첩 받은 것이 파그마의 검무를 봉인한 ‘평상시’의 그리드인 것이다.

그뿐이랴?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의 옵션 효과로 <붉은 벼락>을 소환합니다!]

[대상에게 44,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이 1.2초 동안 감전됩니다!]

[대상이 사망하였습니다.]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의 옵션 효과로 <검은 불꽃>이 폭발합니다!]

[목표 대상의 반경 10미터 이내에 공격력의 300퍼센트에 해당하는 스플래쉬 데미지를 입힙니다!]

[대상이 사망하였습니다.]

[대상이 사망...]

[대상이 사망...]

[대상이....]

...

[악마력이 232 올랐습니다.]

그리드가 날리는 평타의 진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에 귀속된 각종 스킬에 있었다.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 신화급 스킬의 연속적인 발현.

가히 천하무적의 위용이다.

“크아아아아악!!”

아비규환!

어지간한 플레이어의 스킬 공격보다 강력한 그리드의 ‘평타’가 제국군의 진영을 삽시간에 무너뜨린다.

“적이다...! 뒤에도 적이 있다!!”

“폭발 1회에 수백 명이 궤멸...! 대마법사로 추정됩니다!!”

“발할라가 언제부터 대마법사를 섭외한 거지...! 치잇! 대단위 마법에 주의하라!!”

제국군은 서대륙 최강의 군대인 바.

리벨론 숲에 진입한 이후, 발할라의 복병에 당하고 이어서 그리드의 기습까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빠르게 혼란을 수습했다.

후방에서 새롭게 나타난 적의 정체가 무엇인지, 숫자는 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등.

제국군은 훌륭한 지휘 체계를 토대로 빠르게 판단했고 능수능란하게 움직였다.

연달아 내리치는 붉은 벼락과 검은 불꽃의 폭발을 마법의 힘으로 규정짓고 대마법 시스템을 구축했다.

백부장들은 마법 방어에 특화된 대마법사단 방패병들을 선두에 세웠고, 바드들은 한쪽에 집결하여 마법의 캐스팅 속도를 늦추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병신 짓인 것이다.

“뭐야? 왜 제 무덤을 파?”

적군이라는 이름의 바다를 가로지르면서 검을 휘두르던 그리드.

종전보다 방어력이 낮은 부대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자 전투가 보다 수월해졌음을 느낀다. 제국군에 자신을 돕는 첩자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을 느낄 지경이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나야 땡큐지!”

푹-!

푸푸푹!!

초당 4회!

<알렉스의 장갑>을 무장한 그리드의 공격속도는 섬광 그 자체였다. 그리드의 공격 대상으로 선정된 병사는 1초 내에 확정적인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 병사의 주변 10미터에 존재하는 이들 수십, 수백 명은 확률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펑-!

퍼퍼퍼퍼퍼퍼펑!!

지형이 험난한 숲속.

필연적으로 가까이 집결해 있을 수밖에 없는 제국군의 입장에서 검은 불꽃의 폭발은 재앙 그 자체였다. 검은 불꽃이 한 번 폭발할 때마다 최소 수십에서 수백 명이 잿빛으로 산화했다.

5만의 군세가 전멸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제국군 천부장 베이트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뭐냐...! 저 괴물은 뭐란 말이냐!!”

적의 기습을 허용하고 5분쯤 지났을까.

베이트는 군대의 후방을 돌파하며 접근해 오는 적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상대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손에 검을 쥐고 있었으며, 단 한 명이었다.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커윽!”

선혈이 낭자하였고,

콰지지직!!

퍼엉-!!

붉은 벼락이 내리치거나 검은 불꽃이 폭발했다.

견고한 요새처럼 구축된 제국군의 진영?

저 괴물 앞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발휘하지 못한다.

“저만한 실력자가 발할라에 존재했다니...!!”

눈으로 쫓기 힘든 빠르기로 휘두르는 검술 실력은 둘째다.

도대체 얼마나 무한한 마나를 지니고 있기에 계속해서 화염과 뇌전, 그리고 마기를 분출할 수 있는가.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쓴 정체불명의 괴한, 베이트가 보기에 솔로 넘버 나이트급의 실력자였다.

그것도 최소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한...!

“로렉스 님을...! 로렉스 님에게 지원을 요청하라!!”

괴한과의 거리가 차츰 좁혀지고 있다.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아군이 수백 명씩 학살당하는 중이다.

베이트는 큰 위기를 느꼈다. 이대로는 후방의 군대가 모조리 궤멸할 거라고 보았다. 적기사단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여 다급히 소리쳐 봤지만.

“적기사단이 적의 함정에 빠졌다고 합니다!”

“로렉스 님께서는 적의 수뇌부들로부터 맹공을 당하고 계시다는...!”

절망적인 보고만이 연달아 들려온다.

“이런...! 모두 물러서라!! 내가 막겠다!!”

결국, 이를 악문 베이트가 직접 나섰다.

이래 뵈도 제국의 천부장.

적기사단과 비할 바는 못 될지언정, 실력에 자신감은 있었다. 저 미쳐 날뛰는 괴물을 자신이 잠시나마 묶어 둘 수 있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리제, 미안하오. 무사히 돌아가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 같구려.’

괴물에게 맞서기 전, 베이트는 목에 건 펜던트에 입을 맞췄다.

사랑하는 부인에게 고하는 작별의 인사였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우와아아아아아!!”

결사의 각오를 다진 천부장 베이트가 전장의 분위기를 바꾼다.

괴물을 상대로 위축되지 않고 돌격하는 그의 모습, 제국군 병사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병사들의 사기는 증폭....

푹-!

푸푸푸푸푹!!

“....커윽!”

....되려다가 말았다.

멋지게 말을 달려서 출동한 베이트.

그 또한 밀짚모자를 눌러쓴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순살 당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처럼 단 이격에 살해당한 건 아니었고, 8번의 검격에 찔리고서야 죽기는 했으나 그래 봤자 1초, 2초의 차이였다.

“처, 천부장이 저리 쉽게 당하다니....”

“히익...! 도망! 도망쳐!!”

베이트가 평소 병사들에게 선망 받는 인물이었다는 점이 독으로 작용했다.

제국군 병사들의 사기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고 급기야 통제가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건 보통 놈이 아니야...! 단지 실력이 출중할 뿐만 아니고 우리 내부 사정을 훤히 꿰고 있다!”

베이트의 죽음을 목도한 다른 천부장들은 경악을 남발했다.

그들은 정체불명의 괴한이 베이트를 고의적으로 저격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베이트 한 명만 잡으면 이 일대의 군대가 오합지졸로 전락하리란 사실을 알고 철저히 계획을 짜서 행동한 것으로 보았다.

“굉장한 놈....! 제길! 군대를 수습할 틈은 없다! 적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일단 퇴각해라!!”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는 숫자만으로 제압할 수 없다.

그 냉혹한 현실, 솔로 넘버 나이트들을 곁에서 지켜본 제국군 천부장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괴한과의 싸움에 집착하지 않고 빠르게 후퇴를 결심했다.

덕분에 괴한 그리드는 활동이 보다 수월해졌다.

전의를 상실하고 등까지 보이며 퇴각하는 적군을 거침없이 베면서 전진, 제국군 선두까지 도달했다.

굳이 적기사단이 모여 있는 선두까지 이동한 이유?

그야 당연히 적기사단을 조지기 위해서였다.

“평타왕 등장.”

아레스 군단과 적기사단이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의 전위.

그곳에 도착한 그리드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면서 선언한다.

“적기사단은 제국의 원죄다. 너희가 존재하기 때문에 제국이 그토록 설칠 수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나는 너희들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겠다.”

“.....”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적기사단과 제국군은 그리드의 존재감에 압도당하여 위축된 것이고, 아레스 군단원들은.....

“그리드...?”

“.....”

최악의 작명 센스에 이은 중2병 대사!

세상에 저런 사람이 그리드 말고 또 있을까?

템빨왕 그리드가 십만대군 학살검을 외치는 영상을 이미 시청한 바 있는 아레스 군단원들은 괴물의 정체를 그리드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리드는 부정했다.

“그리드는 템빨왕이고 나는 평타왕.”

“....그, 그런가.”

아레스가 넙죽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여기서 그리드의 정체가 발각되었다가는 좋을 게 없었던 까닭이다. 그리드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그리고 동시에 전율했다.

‘못 본 새 자네는 대체 얼마나 강해진 겐가?’

아레스가 실력적으로 자신보다 우위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은근히 많다.

크라우젤, 그리드, 아그너스는 물론이고 럭과 스캇 또한 무력만으로는 자신보다 한 수 위임을 알았고 그렇기에 존경하며 존중했다.

하지만 역시, 무의식중에는 크라우젤이야 말로 독보적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하늘까지 도달했던 자....’

아레스의 뇌리로 제2회 국가대항전의 영상이 스쳐 지나간다.

천외천 크라우젤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그리드.

지금의 그는....

‘하늘을 부수는 힘을 품게 된 건가?’

화르륵!

꿀꺽, 아레스가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그리드의 손에 쥐어진 묵색 검이 붉게 달아올랐다가 꺼진다.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

그리드가 제작한 첫 번째 신검(神劍)이 세 번째 기사 로렉스를 겨냥했다.

“싸워 보자.”

“바라던 바다!!”

로렉스가 포효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아군 병사들을 학살한 괴물 놈을 용서할 생각이 그는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병사만으로는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의 상대가 아니었으므로, 자신이 직접 나서야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대륙을 호령하는 우리들 적기사단의 무력 앞에서 네놈은 한낱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그 모자에 가려져 있을 기고만장한 얼굴을 절망으로 물들여 주마!!”

쿠르르르릉!!

로렉스가 몸에 검기를 두르자 그가 무장하고 있는 적색 갑주가 더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주인의 검기에 반응하여 능력치를 증폭시키는 기능을 지닌 것이 바로 적색 갑주의 진정한 힘이었다.

로렉스가 그리드를 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때.

[강력한 기운을 감지하였습니다. 당신의 투기가 반응하여 들끓기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10초당 1의 투기가 자연 상승합니다.]

씨익!

투기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 그리드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가늠해 보자.”

대륙을 대표하는 기사와 영웅 중의 영웅.

과연 누가 더 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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