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3권 - 21화
[사하란 제국이 발할라 왕국에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발할라 왕국과 사하란 제국과의 관계가 ‘적대’가 됩니다!!]
[양국 국민의 교류와 활동 범위에 각종 제약이 생깁니다!!]
발할라 소속 플레이어 전부에게 떠오른 알림 창이다.
하지만 당황하고 겁먹는 사람은 적었다.
아레스 군단이 무패왕의 후예를 구출했을 때부터, 아니 제국에게 공물을 바치기를 거부했던 시점부터 발할라 국민들은 작금의 사태를 각오하고 있었다.
“바라 마지않던 전쟁이다!”
쩌렁쩌렁!
수도 광장에 아레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골이 장대한 아레스의 외견이 백성들 마음속 깊숙이 경외와 신뢰를 심었다.
“앞으로 우리는 제국과의 무한 전쟁에 돌입한다! 둘 중 한곳이 멸망하기 전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레스는 군신. 전장만이 그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그는 전쟁을 반복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군대를, 더 나아가서는 발할라를 성장시킬 계획이었다.
무패왕의 후예 후보 오아시스는 의문이었다.
‘무슨 자신감이지?’
발할라에 귀화한 이후, 오아시스는 발할라의 전력을 나름 소상하게 파악하였다.
벨토 왕국을 고스란히 흡수한 발할라의 인구수는 현재 약 70만.
병력은 고작 5만이다.
천만 대군을 거느렸다고 알려진 제국과의 국력 차이는 논할 거리도 안 되는 것이다. 발할라가 제국과 전쟁해서 살아남을 리 만무했다. 빠르면 수일 내에 멸망할 수도 있었다.
의문을 품은 오아시스가 걱정하는 사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아레스가 설명했다.
“내가 직접 통솔하는 군대는 전쟁 시 경험치를 200퍼센트 더 획득한다네. 또한 내게는 약탈 스킬이 있어. 적군이나 적국 영토의 식량과 재산, 그리고 병력을 빼앗을 수 있지. 이를 잘 이용한다면 전쟁이 지속되는 내내 우리 발할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테야.”
전쟁에 특화된 존재, 그게 바로 아레스였다. 그의 군대는 단지 강하기만 할 뿐만 아니고 비상식적인 지속력을 자랑했다.
“제국과 적대할 수 있는 근거지. 뭐, 기왕이면 제국보다 만만한 소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편이 더 이상적이었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서대륙 대부분의 국가가 이미 제국의 속국이었으니까. 어차피 제국의 속국을 건드려도 제국과 적대하게 됐다.
그래서 최초에 노려보려고 했던 곳이 바로 템빨국이었지만, 그리드와는 적이 되기보다 동반자가 되기를 선택한 아레스였다.
오아시스가 질문했다.
“당신의 능력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제국입니다. 대번에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당신의 군대를 일거에 몰살시킨다면 당신의 능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레스가 하하하! 호쾌하게 웃었다.
“나라고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게 아니야. 내가 제국과의 전쟁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국의 정세가 불안했기 때문일세. 현재 파벌이 여러 개로 나뉜 제국은 한곳에 힘을 집중시킬 여력이 없어.”
“하지만 적기사단만 출동해도…….”
오아시스는 적기사단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솔로 넘버 나이트. 그중에서도 다섯 번째 기사부터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아레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적기사단은 두려워할 게 아닐세.”
아레스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첫 번째 기사와 두 번째 기사가 근신 처분을 받았다는 첩보가 들어왔거든. 네 번째 기사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고, 세 번째 기사와 다섯 번째 기사만으로는 우리 군단을 저지할 수 없을 게야.”
아레스가 자신만만한 근거는 이외에 또 있다.
사하란 제국에서 발할라로 진입하려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리벨론 숲.
다수의 도플갱어가 출몰하며, 지형의 기복이 커서 이동하기 힘들고 헤매기 쉬운 그곳을 아레스는 철저히 이용할 계획이었다.
“기고만장한 제국 놈들을 내 군대의 먹잇감으로 써 주지. 푸후훗!!”
***
“앞에 보이는 저곳이 리벨론 숲입니다.”
5만 대군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압권인 부분은, 대군의 선두에 선 적색 갑주의 기사단이었다.
적기사단.
제국의 무력을 상징하는 서대륙 최강의 기사단이 5만 대군 선두에 집결해 있는 것이다.
“흐으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군요?”
세 번째 기사 <로렉스>의 설명을 듣고 숲의 외관을 살피는 백발 사내.
이제 갓 마흔을 넘긴 듯 한 그가 바로 다섯 기둥 중 하나인 <카일>이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희었다. 머리카락, 눈썹, 피부, 심지어 입술과 눈동자까지.
말끔하기보다는 기괴한 인상이었다.
“복병을 배치하고 함정을 파 놓기에 좋은 숲 같은데요…….”
카일이 리벨론 숲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수풀이 울창할 뿐더러 짐승 소리 한 번 울리지 않았으니 경계하는 건 상식이었다.
로렉스가 피식, 실소하고 말았다. 상관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리벨론 숲은 일반적인 숲과 다릅니다. 험지가 많고 도플갱어의 출몰이 잦아 복병을 배치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죠.”
“하지만 적군의 입장에서 리벨론 숲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닌가요? 지형을 소상히 파악해 놓았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아니요. 곧 체험하시게 될 테지만, 리벨론 숲의 가장 무서운 점은 높은 기온과 습도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저곳에서 노동을 하거나 대기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하물며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라면 더욱 더.”
로렉스가 숲을 앞두고 행군을 중단한 이유다.
보통 속도로 리벨론 숲을 돌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시간 30분.
로렉스는 병사들이 숲을 행군함에 앞서서 우선 체력을 비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짝짝짝!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인 카일이 힘껏 박수 쳤다. 그리고 함박웃음을 짓더니 로렉스를 칭찬했다.
“과연 로렉스 경입니다. 내 평소에 세 번째 기사의 무용담을 많이 들어 왔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사전에 적진을 잘 파악하고 신중하기까지 하니 백전불패일 수밖에요. 존경스럽습니다.”
“허……. 이것 참.”
내내 냉소를 짓고 있던 로렉스가 머쓱해하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카일이 누군가.
아무런 공적도 쌓지 못했으면서 단지 황제의 총애를 얻은 덕분에 위명을 떨치는 <다섯 기둥> 중 한 명이다.
전쟁을 전전하며 쉴 날 없이 싸우는 적기사단보다 놀고먹는 다섯 기둥의 평판이 도리어 더 높았으니, 로렉스 입장에서는 그들이 무척 얄밉고 싫었다. 황제라는 뒷배를 두고 기고만장한 놈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번에 카일이 메르세데스를 대신해서 적기사단을 통솔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어떤가.
카일은 겸손할 뿐더러 적기사단을 존중할 줄도 알았다. 자신이 이번 전쟁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면서도 모든 권한을 로렉스에게 위임하였고, 적기사단 모두에게 예의를 갖췄다.
‘하긴, 따지고 보면 다섯 기둥이 직접 설친 적은 없지. 매번 황제 폐하께서 그들을 높이 추켜세웠을 뿐이고.’
메르세데스의 자리를 대신한 것 또한 황제의 의지일 뿐, 카일 또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황제의 명령을 수행할 뿐인 입장이 아닌가.
‘리미트 님께서 이자를 경계하라고 하셨으니 경계를 풀지는 않겠으나, 굳이 미워할 이유도 없는 것이로군.’
험험, 헛기침을 한 로렉스가 전군에 명령했다.
“휴식은 끝이다! 숲으로 진입하겠다!”
***
“온다.”
리벨론 숲.
이곳이 벨토 왕국령이었을 당시에는 완전히 버려진 땅이었다.
하지만 벨토 왕국을 점령했던 시점부터 제국과의 전쟁을 염두에 뒀던 아레스는 리벨론 숲을 중요한 거점으로 판단했다.
발할라의 모든 병사들에게 <기온 적응 능력> 특성을 장착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이곳 리벨론 숲 때문이었다.
그렇다.
아레스의 병사들은 리벨론 숲의 기온에 적응하고 있었다. 또한, 평소의 훈련을 통해서 숲의 지형까지 소상히 파악했다.
“적기사단의 기척 감지 능력은 최상급이다. 숲 안쪽 깊숙한 곳까지 진입하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시야에 보이는 순간 바로 기습해라.”
아레스가 병사들에게 명령하자 병사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병으로 리벨론 숲 곳곳에 배치된 그들이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서 적에게 위치를 발각되기를 자처할 리 없다.
“지금!”
“우와아아아아아아!!”
리벨론 숲 후방.
5만 제국군은 벌써 3시간 이상 숲을 가로지르느라 한껏 지친 상태였다.
이때 아레스를 필두로 삼은 발할라의 5만 대군이 수풀 속에서 나타나 화살을 날리고 창칼을 찌르자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저… 적이다!! 크아아악!!”
“복병이라니……!”
추풍낙엽!
더위 속에서 기복이 큰 지형을 이동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제국군.
복병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동하던 그들은 발할라 군대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망한 제국군들이 잿빛으로 산화하는 반면 발할라 병사들은 황금빛 기둥에 휩싸였다.
레벨 업의 신호였고, 이전보다 더한 맹공의 서막이었다.
“기세를 몰아붙여라!”
아레스가 군대를 호령할 때마다 발할라 군대의 사기와 능력치가 상승했다.
실시간으로 강해지는 발할라 군대 탓에 제국군의 혼란은 더욱 거세졌다.
“히, 히익……!!”
“크아아아악!!”
예상치 못한 복병은 둘째 치고,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군대라니?
쓰러지는 동료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제국군의 가슴속 깊이 두려움이 솟아났다.
이때.
“아레스으으!!!”
세 번째 기사 로렉스가 눈에 불을 켜고 아레스에게 달려들었다.
과거에 아레스와 싸워 본 경험이 있는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이전처럼 5합내에 아레스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이번에는 기필코 네놈의 목을 따 주마!”
감히 내게 이런 과오를 남기다니!
병사의 손실이 크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로렉스가 도약, 아레스에게 순식간에 도달하더니 대형 도끼로 반월을 그렸다.
과거, 1만의 군대를 통솔하던 아레스는 이 도끼를 방어했다가 방어에 실패하고 중상을 입었던 바가 있다.
하지만 현재의 아레스는 5만의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 이로 인한 능력치 상승치는 무려 25퍼센트! 거기에 별도로 공격력과 방어력도 소폭 상승한 상태이다.
“전과는 다르다!”
쩌어어어엉-!!
“뭣이……!”
이놈이 나의 도끼를 막다니?
로렉스가 깜짝 놀랐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자신의 도끼 한 방에 나가떨어졌던 놈이 저력을 발휘하였으니 믿기지 않았다.
꽈드득, 이를 간 로렉스가 연달아 도끼를 휘둘렀다.
“어디, 막을 수 있을 때까지 막아 봐라!”
“어이쿠, 이 이상은 싫은데?”
단 일격을 방어한 것만으로 오른손이 마비된 아레스였다. 이격 이상을 방어할 자신은 없었다.
체통도 잊고 황급히 몸을 굴려서 도끼를 피한 아레스가 뒷일은 스캇과 럭에게 맡겼다.
“그 괴물 놈의 발을 잘 묶어 놓으라고!”
“맡겨 두라 이겁니다!”
퍼엉-!
힘차게 대답하는 럭!
그의 소형 방패가 아레스에게 어그로가 끌린 로렉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어서 꽂히는 것은 스캇의 검이었다.
둘 모두 최상급 스킬을 전개하고 있었으나,
“이 같잖은 것들이!”
로렉스의 생명력 게이지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세 번째 기사.
첫 번째, 두 번째 기사와 비교하면 나약하다고 하지만 아직 플레이어가 상대할 수준이 아닌 것이다.
콰작!
쿠콰콰콰쾅!!
로렉스가 반격으로 휘두른 도끼가 스캇과 럭의 몸을 동시에 날려 버렸다.
하지만 아레스 군단은 위축되지 않았다. 로렉스의 무용은 예측 범위에 있었던 까닭이다.
“모두 같이 막아!!”
아레스 군단의 최상위 랭커들이 스캇과 럭을 돕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3차 전직자가 동시에 덤비자 제아무리 로렉스라도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이! 로렉스 님을 도와라!”
군대를 수습하느라 바쁘던 다섯 번째 기사와 적기사들이 뒤늦게 로렉스를 돕고자 나섰다.
그 광경을 본 아레스가 소리쳤다.
“이때다! 함정을 발동해라!”
“……!!”
한곳에 집결하여 이동하던 적기사단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땅이 꺼지더니 커다란 구덩이가 자신들을 집어삼킨 까닭이다.
말 위의 아레스가 배를 잡고 웃었다.
“푸하하핫!! 멍청이들~! 내가 너희 같은 괴물들을 상대로 아무런 준비도 없었겠… 허걱!!”
기고만장해서 소리치던 아레스가 질색했다.
병사들을 혹사시켜서 20미터 깊이로 파 놓은 구덩이.
장장 보름 이상을 소요해서 완성시킨 그 초대형 함정으로부터 다섯 번째 기사가 순식간에 도약해 오른 까닭이다.
말도 안 되는 육체 능력이었다.
“야, 이건 사기 아니냐!!”
엿 됐다.
적기사단의 발을 묶어 두는 동안 최대한 많은 적군을 베어야 했던 아레스의 입장에선 다섯 번째 기사의 육체 능력이 예측 범위를 초월한 것이 절망적이었다.
아레스가 위험을 감지하는 그때였다.
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제국군 후위에서 큰 폭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적기사단과 아레스는 물론이고 전장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저게 뭐야……?”
하늘에서부터 내리치는 붉은 벼락. 제국군 병사들의 몸을 갑옷째 꿰뚫으며 제국군 진영을 양단했고.
“마왕이라도 출현했나……!”
용솟음치는 검은 불꽃, 양분된 제국군 진영을 숲과 함께 통째로 집어삼킨다.
광범위한 스플래쉬 데미지가 끊임없이 연계되면서 제국군을 수백, 수천 단위로 소멸시켰다.
믿기지 않는 공격력이다.
“뭐, 뭐냐! 마나통도 없는 괴물인가?”
어떤 미친 존재가 저런 굉장한 스킬을 무한히 사용하면서 대군을 학살한단 말인가?
아레스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설마 이 리벨론 숲에 저만치 대단한 보스 몬스터가 잠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다.
“아레스 님! 이대로는 우리 군대까지 휘말릴 수 있습니다! 퇴각하시죠!”
소란 통에 로렉스로부터 도망친 스캇이 소리쳐 왔다.
그는 제국군의 후위를 궤멸시키면서 거리를 좁혀 오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머잖아 이곳까지 도달하리라 보았다.
아레스도 마찬가지였다.
물결을 이루고 있는 군대에 시야가 가려진 까닭에 저 괴물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으나 상상만으로도 보통 놈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전군 퇴각! 일단 퇴각해라!”
로렉스를 비롯한 적기사단은 군대를 수습하느라 바빴다. 지금이야말로 퇴각의 적기였다.
망설임 없이 명령을 내린 아레스가 말머리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평타왕 등장.”
제국군 진영을 ‘일자’로 꿰뚫고 돌파한 정체불명의 괴물이 나타나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33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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