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544화 (539/1,794)

템빨 33권 - 20화

<국왕 퀘스트>

그리드가 국왕이 된 이후 생성 된 퀘스트 대단위다.

이름 그대로 국왕 전용 퀘스트로써, 그리드는 이미 첫 번째 국왕 퀘스트 <국왕의 역할(1)>을 완수한 바 있다. 그때 얻은 보상이 바로 <국왕의 검> 제작법이었다.

‘한정 퀘스트답게 보상이 상당하지.’

그리드는 <국왕의 역할(2)>퀘스트는 아직 진행하지 못했었다. 퀘스트 레벨 제한이 350이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번헨 열도에서 레벨을 대폭 올리고 돌아온 지금의 그는 357레벨을 달성한 상태였다.

<국왕의 역할(2)>를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왕의 역할(2)>

백성들의 삶을 체험한 당신은 백성들이 겪고 있는 고충을 알게 됐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고충을 해소시켜주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5천 명의 백성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것.

퀘스트 클리어 보상:<정치력>스탯 개방. 다음 국왕 퀘스트 연계.

*다른 왕족이 백성에게 도움을 줘도 횟수가 카운트 됩니다.

“미친.”

백 명도, 천 명도 아니고 5천 명의 백성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라고?

어느 세월에?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그리드가 <국왕의 역할(1)>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백성들의 삶을 체험해봤다는 점이다.

그리드는 각 직업군에 놓인 백성들이 각자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기억하고 있었고,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려 5천 명을 도우라는 건 너무했다.

엄청난 시간을 소요할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아……. 욕할 수도 없고.”

그래, 욕은 나오지 않는다.

퀘스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왕의 역할(2)>는 템빨국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게끔 유도하고 있었다. 즉, 국가 부흥을 위한 가이드 그 자체인 것이다.

퀘스트를 착실히 수행해 나가다 보면 템빨국의 저변이 성장할 터였다.

결국 문제는 시간이다.

‘엄청 장기적으로 봐야하는 퀘스트네...’

하루에 10명 돕는다고 쳐도 500일이 걸리는 퀘스트다. 심지어 그리드는 나라를 떠나있을 때가 더 많았다.

“하.... 퀘스트 완료는 몇 년 후에나 가능하겠군....”

그리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때였다.

[왕족 루비가 이미 5천 명 이상의 백성에게 도움을 줬습니다. <국왕의 역할(2)>퀘스트 조건이 달성되었습니다.]

[<국왕의 역할(2)>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정치력> 스탯이 개방됩니다.]

[다음 국왕 퀘스트 <선택>은 370레벨에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

그리드의 이해력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

넋 나가있는 그의 머리 위로 뒤늦게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뭐지??”

이번 퀘스트랑 루비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의아해하던 그리드가 ‘다른 왕족이 백성에게 도움을 줘도 횟수가 카운트 됩니다.’라는 문구를 뒤늦게 확인했다.

“이럴 수가... 루비가 성녀로써 쌓아온 선행이 누적 카운트 된 거야?”

물론 모든 선행이 카운트된 건 아닐 터다.

그리드가 템빨국을 세우고 난 후, 그러니까 루비가 왕족이 된 후에 쌓은 선행만 카운트됐을 것이다.

한데 그게 벌써 5천 명을 채웠다니....

그리드는 전후의 피해를 복구함에 있어서 가장 큰 공적을 올린 인물이 바로 루비임을 떠올렸다.

“내 동생이지만 정말로 부지런하고 착하단 말이야. 이따가 로그아웃하면 뽀뽀라도... 아니, 그랬다가는 맞아 죽겠지.”

동생 참 잘 뒀다.

싱글벙글 웃는 그리드였다.

같은 시각, 발할라.

“이걸로 드디어 399명째...!”

그리드보다 레벨이 높았던 지라 <국왕의 역할(2)>퀘스트를 빠르게 시작했던 아레스.

그는 오늘도 역시 왕도 곳곳을 누비며 ‘선행 노가다’를 하느라 개고생이었다.

“푸하! 진짜 오지게 힘들 구만!”

중간에 때려 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건만, 이게 뭐하고 있는 짓인가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아레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에게 도움 받는 백성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얼마 전 350레벨을 돌파한 그리드 또한 지금쯤이면 자신과 같이 개고생 중일 거라고 생각하자 위안이 된 것이다.

‘그리드, 자네는 지금쯤 한 30명한테 봉사했겠지? 푸흐흣, 불쌍하구만.’

절로 웃음이 나온다.

“힘내시게, 그리드! 고생을 나누자고! 크하하핫!!”

***

<정치력>

각종 내정 활동의 효율을 높여줍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효과가 상승합니다.

“음.”

정치력은 정치가 계열 클래스 전직자와 왕족, 그리고 일부 상인이 보유한 스탯이다.

대표적으로 라빗이 높은 정치력 스탯을 갖고 있었다.

그를 각종 내정 시스템. 예를 들어서 <시장 발전>의 책임자로 임명할 경우 시장 발전 속도가 대폭 상승하고는 했다.

지력과 정치력은 완전히 별개인지라, 정치가에게 있어서 정치력 스탯은 필수 덕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걸 내가 얻다니.’

벌써 몇 년 째 템빨단과 템빨국의 내정을 관리해온 라우엘 조차도 <재상>의 지위를 획득한 후에야 정치력 스탯이 개방됐다. 새로운 스탯을 얻기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리드는 내정과 완전히 담 쌓고 지내온 자신에게 정치력 스탯이 개방될 일은 만무하다고 생각해왔다.

‘좋아.’

스탯의 효력은 절대적인 바.

향후, 그리드는 내정에 관한 지식이 전무할지언정 스탯빨로 내정 책임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드디어 국왕다운 면모가 생겼다는 사실에 헤벌쭉해진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대장간이었다.

양산형 란스티어의 망토를 설계하고 자신이 직접 쓸 왕관을 만들 것.

그리드의 다음 과제였다.

***

“이정도면 충분해.”

양산형 란스티어의 망토를 설계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기존에 창조한 란스티어의 망토의 도안을 고스란히 가져다가 쓰고, 필요한 재료를 더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대체하면 해결 될 문제였기 때문이다.

“칸, 이 도안을 대장장이들에게 나눠주세요. 고급 대장장이쯤 되면 도안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죠?”

“음, 그렇겠군요.”

그리드로부터 건네받은 도안의 내용을 확인한 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리드의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몇 달 만에 재회한 칸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늘어난 까닭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칸을 보면 딱 그랬다.

‘영생의 약 같은 건 없나?’

인간의 수명은 무한하지 않고, NPC의 수명은 더욱 더 짧다.

그리드는 칸과의 이별이 두려웠다. 첫 번째 벗인 그가 영원히 존재하길 바랐다.

그리드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확인한 칸이 텅텅,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세차게 때렸다.

“이 강철 같은 몸뚱이 보이시지요? 이 노인네는 아직 멀쩡합니다. 전하께서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

자기가 자기 때렸다고 생명력 게이지 줄어든 주제에.

그리드의 슬픔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칸이 괜히 신경 쓰다가 무리할까 염려한 것이다.

“건강을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만수무강할 것을 뻔히 알면서 뭘 굳이 걱정하겠어요? 다만 홀아비 냄새가 점점 심해지는 게 마음에 걸릴 뿐이죠.”

“호, 홀아비 냄새라고요?”

킁킁, 자신의 몸 냄새를 맡아보는 칸에게 그리드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재혼하실 생각 없으세요? 그래도 가족이 있는 편이 외로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일찍이 아내와 아들을 여읜 칸은 벌써 오래토록 혼자였다.

그리드는 칸이 이대로 혼자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눈 감진 않을까 걱정이었다.

독거노인들은 숨지고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지 않은가.

그리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로울 리 있겠습니까? 제게는 전하라는 가족이 있는걸요.”

“.....”

하하, 쾌활하게 웃으면서 그리드의 심금을 후벼 파는 칸이었다.

***

‘아이템에 의도적으로 스탯을 붙이는 방법이 뭘까?’

<최초의 왕>칭호 효과 중에는 아이템 슬롯을 하나 늘려주는 것이 있었다.

그리드는 투구와 왕관을 동시에 착용 가능했다.

새로운 왕관의 제작을 앞두고 모루 앞에 선 그가 체력 스탯을 갈망한다.

‘체력은 방어력과 생명력 수치를 높일 뿐만 아니라 생명력 회복 속도도 높이니까 소위 말하는 건강과 직결될 것 같은데.’

그렇다.

지금 그리드는 칸에게 체력이 붙은 아이템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칸의 체력을 높여주면 그가 더 장수할 거라는, 그런 막연한 믿음에서였다.

또한 그리드 본인도 체력 스탯이 필요했다.

이미 방어력은 더 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상태였으나, 레벨 차이가 큰 상대에게는 방어력 수치가 온전히 적용되지 않았을 뿐더러 네임드급 존재들은 대부분 방어무시 계열 스킬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드는 생명력 총량을 높여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스틱세이!”

대장간을 떠난 그리드가 템빨 아카데미로 달려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현자의 지식에 의지하는 그였다.

“체력을 올려주는 무구를 제작하는 방법으로 뭐가 있을까?”

“연금술을 이용하셔야지요.”

“연금술...”

그리드의 눈살이 확 찌푸려졌다.

이야루그트에 <멋짐>옵션을 귀속시킨 연금술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그였다.

“당신께서 연금술을 불신한단 사실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금술은 실패확률이 높은 대신 성공 시 얻는 효과가 큰 분야입니다. 무조건 불신하시기보다 가끔은 의존해보시지요. 물론 많은 돈이 투자되겠지만요.”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것이 연금술이다.

운 나쁜 그리드와 상성이 최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레이단을 제2의 탈리마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연금술 시설에 큰돈을 투자하지 않았던가.

‘언제까지고 피할 순 없어. 써먹어야지.’

결심한 그리드가 아카데미를 나서자마자 라우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레이단의 연금술 시설 레벨이 몇이지?

-중급 8입니다.

-아직도? 몇 달 전에도 중급 8이라지 않았어?

현재 레이단의 연금술 시설에서는 <극상의 회복 물약>을 소량이나마 꾸준히 생산하고 있었다.

그리드는 당연히 연금술 시설 레벨이 꽤 올랐을 거라고 보았다.

한데 아니라니 당황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라우엘이 설명했다.

-연금술 시설의 레벨을 효과적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생산보다 개발에 집중해야합니다. 하지만 개발에는 큰돈이 들어가죠. 그리고 최근 우리는 제국에 공물을 바쳤던지라 연금술 시설에 자금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어요.

-빌어먹을 제국 새끼들.... 스틱세이의 말에 따르면 연금술 시설 레벨이 최소 중급 9는 돼야 스탯 부여 확률이 높다는데.

사사건건 발목을 붙잡는 제국이었다.

제국에 대한 그리드의 원한이 차츰 깊어졌다.

-제국 놈들한테 엿 먹이는 방법 없을까?

-제대로 먹일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라우엘이다.

별 생각 없이, 감정적으로 던진 질문에도 즉각 호응해준다.

-그 방법이 뭔데?

-발할라로 가시죠. 무패왕의 후예를 빼돌린 아레스를 제국이 용서할 리 없습니다. 필시 발할라에 군대를 파견할 겁니다.

-가서 도우라고? 하지만 그러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 아니야?

벨토 왕국 전쟁에 참전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에 발할라에 원군으로 참전할 경우, 이는 대놓고 제국을 적대하는 것이 됐다. 어떤 후환이 기다릴지 몰랐다.

-혼자 가세요. 정체를 숨기고.

-....?

-전하께서 염려하시는 대로, 템빨국이 발할라를 공식적으로 돕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입니다. 발할라 다음 타깃이 템빨국이 되겠죠. 그러니까 은밀히 도우시라 이겁니다. 전하께서 다녀오시는 동안 저는 뱀파이어의 도시 공략 계획을 세우고 있겠습니다.

-큭큭.... 그거 재밌겠군.

그리드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재수 없는 제국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엿 먹여주마.’

잔뜩 신난 그리드!

그에게 라우엘이 노파심에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제국에 정체가 발각되지 않으려면 단지 얼굴만 가릴 게 아니라 파그마의 검무도 쓰면 안 되는 거 아시죠?

-.....? 다, 당연하지. 애초에 난 평타만 써도 세다고?

-....모르셨군요. 적당히 놀다가 빠진다는 생각으로 참전하세요. 제국이 돌아가는 정황을 추측해보면, 어차피 발할라는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같은 시각, 황도 타이탄.

<은밀한 임무>

난이도:SSS

검공 리미트로부터 비밀리에 임무가 하달되었습니다.

카일이 공을 세우지 못하도록, 발할라에 원군으로 참전하여 카일을 저지하십시오.

황실은 로즈 나이트의 멤버를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정체가 발각 될 우려는 없을 것입니다.

단, 적기사단을 살생하는 일은 최대한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카일의 사망, 혹은 패주.

퀘스트 클리어 보상:<데쓰루알의 지팡이>. 검공 리미트와의 호감도 50 상승.

“킥킥킥, 이게 무슨 개 같은 퀘스트야? 아레스 놈을 돕는 것으로 모자라서 다섯 기둥과 싸우라고?”

“거절하시죠. 카일이 다섯 기둥 중에서 최약체라고는 하나 현재로써는 승산이...”

“싫은데에~? 이런 재밌는 퀘스트를 어떻게 거절해? 킥킥킥! 키하하하하핫!!”

“....”

정체불명의 인물 또한 발할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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