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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34화 (529/1,794)

템빨 33권 - 10화

“그리드 님....!”

만약, 데스나이트 마드라가 삼십만대적검의 발현에 성공하였다면 그리드는 패배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스나이트의 육신은 약했고, 마드라는 삼십만대적검의 발현에 실패하고 말았다. 더불어서 그리드는 신장 패시브가 터지는 행운까지 얻었다.

정녕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수정구를 통해서 대결을 지켜본 스틱세이의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그리드 님...! 저는 당신께서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영웅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천문에도 약간의 소양이 있는 대현자 스틱세이가 봤을 때, 현재 그리드는 빛의 여신 레베카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그라면 필시 능력 이상의 위업을 세우리라 믿었고, 실제로 그리드는 성공했다.

단순한 운?

아니다.

그리드 스스로가 개척한 길이다.

사악한 교황과 교황 후보를 물리침으로써 레베카 교단을 구원하고, 레베카의 딸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올바른 교황을 세우는 등 그리드는 레베카의 애착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행적을 남겨왔다.

그리드는 하늘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렇기에 하늘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정녕 대단하신 분....”

하이 엘프인 스틱세이가 인간을 극찬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만면에 미소를 지은 그가 뜨겁게 달궈진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장장 100년 이상을 기다려왔던 번헨 열도의 정화다.

스틱세이는 당장 66번 섬으로 달려가서 그리드를 얼싸 안고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도중에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수정구 속 그리드가 깊은 여운에 잠겨있음을 발견한 까닭이다.

“.....”

떠나가는 마드라에게 존경을 표하고, 전대 전설들의 석상에 감탄하며, 그들과 자신의 석상이 나란히 서는 모습을 보고 전율하는 그리드.

스틱세이는 그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영웅인 그가 충분한 여운을 만끽하길 바랐다.

그래서 기다렸다.

안개 섬이 출몰하고 황금 마차가 출현할 때까지!

‘바로 지금이다!’

황금 마차 앞으로 다가가는 그리드의 모습을 확인한 스틱세이가 드디어 66번 섬에 입장했다.

분위기 한참 좋을 때 찾아가야 그리드가 더욱 더 반겨 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한데.

“XX....”

“....?”

성스러운 명예의 전당.

완전히 정화 된 66번 섬에 입장한 스틱세이가 처음으로 듣게 된 말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상스러운 욕이었다.

‘뭐, 뭐지?’

한창 여운에 잠긴 채 기뻐하고 계셔야할 분이 왜?

당황하는 스틱세이.

그를 발견한 그리드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소리친다.

“스틱세이! 설마 당신도 이 빌어먹을 마차랑 한 패는 아니겠지?!”

“.....”

아, 타이밍 잘못 잡았다.

그리드의 성격을 상기하며 한숨 쉬는 스틱세이였다.

***

“안개 섬과 황금 마차는 번헨 열도에 도전하는 이들을 성장시킬 수단으로 마련한 안배입니다. 하지만 이제 번헨 열도는 정화되었고 순기능을 찾았으니 도전자를 성장시킬 이유가 사라졌죠. 엘릭서나 전직서 등의 아이템이 상품 목록에서 사라진 건 그 때문일 겁니다.”

“하.... 아무리 그래도 대륙간 이동 스크롤밖에 없는 건 너무하잖아?”

“....보통 사람이었다면 스크롤을 귀하게 인식하고 기뻐했을 텐데요.”

스틱세이의 말이 맞다.

동대륙으로 손쉽게 이동시켜주는 이 포털 스크롤은 현재 무척 진귀한 가치를 지녔다. 하물며 그리드는 대량으로 확보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의 입장에서는 스크롤을 하찮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곁에 스틱세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틱세이가 대륙간 이동 포털 스크롤을 제작할 수 있었으므로 그걸 굳이 포인트 주고 사고 싶진 않았다.

“제가 스크롤을 마구잡이로 찍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작에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이미 말씀드린 바 있잖습니까? 기꺼운 마음으로 스크롤을 구매하시죠.”

“음....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그리드는 마드라의 일기장이 자꾸 눈에 밟혔다.

최초에는 고작 일기장이 상품으로 추가 된 것이냐며 실망하고 분노하였지만, 생각해보면 마드라가 직접 남긴 보답이다. 또한 가격은 무력 100만 포인트로 책정되었다.

평범한 일기장일리 만무한 것이다.

스틱세이가 인자한 미소를 그렸다.

“그럼 일기장을 구매하시죠. 스스로의 선택을 믿으세요.”

당신은 거룩한 여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아닙니까, 라는 말은 삼키는 스틱세이였다.

자칫 그리드가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으음.... 마드라의 성격을 돌이켜보면 함정일 가능성도 적어보이고.”

그리드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대량의 동대륙 이동 포털 스크롤, 잘만 사용하면 템빨국 국력 발전에 어마어마한 보탬이 되리란 사실을 그는 이제 알고 있었으나.

‘무패왕의 유산이 그보다 못할 것 같진 않다.’

판단을 내린 이상 결정은 빠르다.

“마드라의 일기장을 구매하겠다!”

결정과 동시였다.

[100만 도전자 포인트를 소비하여 데스나이트 마드라의 일기장을 구매하였습니다.]

그리드의 인벤토리로 마드라의 일기장이 들어왔다.

과연 일기장의 정체는?!

당장 일기장을 펼쳐보려는 그리드!

그에게 스틱세이가 깊이 고개 숙였다.

“그리드 님, 전대와 당대의 전설을 잇는 계승의 장이며, 전대 전설의 위업을 기리는 명예의 전당이었던 이곳 번헨 열도를 정화해주신 당신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번헨 열도의 정화를 염원하였던 대현자 스틱세이가 당신께 감사를 표합니다!]

[대현자 스틱세이가 당신에게 새로운 칭호를 하사합니다!]

“당신은 고통 받는 전대 영웅(전설)들에게 안식을 내린 존재, 영웅 중의 영웅이라 칭하기에 손색이 없으니 앞으로 저는 당신을 영웅왕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새로운 칭호 <영웅왕>을 획득하였습니다!]

<영웅왕>

영웅들의 영웅입니다. 살아있는 신화인 것입니다.

*영웅왕은 영웅들 사이에서 빛나는 법입니다. 유니크 등급 이상 클래스 전직자에게 10퍼센트의 추가 데미지를 입힙니다.

*영웅왕은 세계의 평화를 논할 위치에 있습니다. 대악마, 대천사, 드래곤, 신족에게 15퍼센트의 추가 데미지를 입히고 15퍼센트의 피해를 덜 입습니다.

*영웅왕은 오만해도 좋습니다. 스스로 최고라고 자각하며 늘 투기(鬪氣)를 두릅니다.

<투기>

영웅왕만의 특별한 자원입니다.

평소에는 10으로 유지되며, 전투 시 100까지 상승합니다.

투기가 오를수록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단, 투기가 10미만으로 떨어질 경우에는 페널티가 발생하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스르르르르륵-

영웅왕의 칭호를 획득한 그리드의 상태창에 생명력과 마나의 뒤를 잇는 새로운 자원, <투기>가 추가됨과 동시였다.

그리드의 전신으로부터 자색의 반투명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실체화 된 투기의 모습이었다.

“오오....!”

스틱세이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근엄하면서도 맹렬한 기운을 발산하는 그리드의 모습이 전과 비할 바 없이 멋졌기 때문이다.

한편, 20억 유저 중에서 유일한 효과를 얻게 된 그리드는 의외로 들뜨지 않았다. 도리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야루그트에 귀속 된 옵션 <멋짐>이 떠오른 까닭이다.

돈 먹는 하마 같은 그놈의 연금술 시설은 당최 언제쯤 쓸모 있어질는지, 문득 떠올라 불쾌해지는 그였다.

하지만 잠시다.

씰룩씰룩!

그리드의 입 끝이 연신 올라가고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당장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기쁜 그리드였다.

자색 기운에 휩싸인 자신의 모습, 20억 유저 중에서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20억 명이랑 나란히 서있어도 나 혼자만 눈에 띄겠네?’

정녕 독보적인 이팩트다.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다만 문제는.

‘눈에 띄면 뭐해? 얼굴이 못 생겼는데.’

여전히 외모에 자존감 없는 그리드였다.

기뻐하던 마음도 잠시, 고개를 푹 숙이며 좌절한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스틱세이의 마음이 영 불안해졌다.

‘전대 전설들의 망령에게 저주를 받아 미치기라도 한 건가?’

혼자서 불쾌해하다가, 기뻐하다가, 좌절하기를 반복하는 그리드였으니 미친놈 보듯이 봐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월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전대의 영웅들에게 안식을 선사한 템빨왕 그리드가, 당대 최고의 명사에게 영웅 중의 영웅이라 인정받았습니다. 역사를 넘어 신화로 이어질 영웅왕 그리드의 탄생입니다.>

한편.

-저 가증스러운 엘프 놈....

브라함이 스틱세이에게 적의를 품었다. 본래 마족과 엘프족의 사이가 좋지 않아 늘 서로를 미워해온 둘이라지만, 이번 적의는 종전과 비할 바 없이 컸다.

이유야 있었다.

영웅왕의 칭호, 전대 검성 뮐러의 것이었으니까.

-그리드에게 뮐러의 책임을 계승시킬 작정이라면... 내가 지옥에서 부활하는 한이 있더라도 막아 보이겠다.

***

<...역사를 넘어 신화로 이어질 영웅왕 그리드의 탄생입니다.>

“뭐라고?”

번헨 열도 입구.

마치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모여 있던 각국 방송사의 기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월드 메시지가 또 한 번 떠올랐고, 이번 메시지의 주인공 또한 그리드였으니 천지가 개벽하는 충격이었다.

“트, 특종이다!”

영웅 중의 영웅이라니?

신화가 거론 되다니?

이슈를 만들기에 혈안이 된 기자들의 피를 들끓게 만드는 자극적인 문장이다.

“로그아웃!”

“나도 로그아웃!!”

그리드가 언제쯤 번헨 열도에서 나올까, 하염없이 기다리던 기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로그아웃한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기사의 제목은 하나 같이 자극적이었다.

<영웅 중의 영웅! 영웅왕 그리드 탄생! 신화급 클래스의 등장을 암시하는가?>

<크라우젤은 더 이상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다.>

<(칼럼)영웅 중의 영웅, 하늘 위의 하늘까지 도달할 것.>

등등.

그리드와 관련한 기사가 전 세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쏟아져나갔다.

각국 방송사들이 그리드를 주제로 실시간 토론회를 방영할 정도였다.

“킥... 킥킥, 놈이라면 인정해줄 수밖에 없나.”

월드 메시지의 주인공이 크라우젤이 아니라 그리드였다니?

처음에는 꽤 큰 충격을 받았던 아그너스가 이내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신이 직접 만나 상대하였던 그리드, 강했으니까. 굳이 부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크라우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놈... 설마 도태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아그너스 본인도 알고 있다.

괜한 기우라는 것을 말이다.

하늘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

“아이고, 그 댁 아들이 이번에는 영웅왕인진가 뭐시긴가가 됐담 서요?”

“처음에는 최초의 왕이라더니, 다음에는 템빨왕이고, 이제는 영웅왕이여? 참말로 대단하구마잉.”

“아따, 이 사람들아. 영우왕이라니께. 영우가 이름부터 영우니까 영우왕인 것이여.”

“.....”

여전히 채소가게를 운영 중인 신영우(그리드)의 부모님.

새벽 일찍 밭일을 나온 두 사람은 논밭 인근에 사는 주민들로부터 끊임없는 축하공세를 받았다.

친척들에게는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삼촌! 영우 형한테 제 말 좀 꼭 전해줘요! 저 학교 자퇴할 테니까 제발 템빨단에 가입 좀 시켜달라고!! 렙업 열심히 할게요! 네?!

-아이고, 영모야. 내가 예전부터 네 아들이 잘 될 거라고 누누이 말했던 거 기억하지? 우리 딸내미가 이번에 스튜어디스가 됐는데 말이야. 영우한테 잘 말해서 템빨단 아무하고나 맞선 좀 시켜주라. 응? 인종이 무슨 상관이야? 기왕이면 좀 높은 사람하고 연결해줘! 내 딸 예쁘니까!!

“.....”

사람은 성공해야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예전에는 우리 아들 영우를 흉보던 사람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을 보면 말이다.

부모인 우리가 봐도 이토록 뿌듯할 진데, 당사자인 영우는 어떨까?

영우의 부모님은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여보! 우리가 게임... 아니, 국정 돌보느라 바쁜 우리 영우를 대신해서 봉사활동도 많이 다니고 합시다!”

“그래요, 이번에 배추 농사가 아주 잘 되었는데 이것도 기부하도록 해요.”

“응, 기부는 항상 영우 이름으로 해야지 조금이라도 영우에게 보탬이 될 게야.”

자식 잘 둔 덕분에 늘 화기애애할 수 있는 영우의 부모님이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 부모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최고가 된 아들이 너무 대견하고 감사했다. 세상 모든 자식들이 영우처럼 잘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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