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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33화 (528/1,794)

템빨 33권 - 9화

<새로운 영웅이 전대 영웅들의 망령에게 안식을 선사하고 번헨 열도 최후의 관문을 열었다>

월드 메시지.

종족과 인종, 소속과 레벨을 막론하고 Satisfy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떠오르는 알림창을 뜻한다.

굳이 모든 플레이어에게 내용이 공개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야 당연히 중요도가 높기 때문이다.

특정 상황이 월드 메시지로 떠올랐다는 것은 즉, 이 상황이 Satisfy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거라는 뜻이 됐다.

여태까지 월드 메시지가 떠오른 경우는 에트날 왕국에 골렘 대군이 침공하였을 때, 파그마의 후예가 출현하였을 때, 검성 크라우젤이 출현하였을 때, 대악마 벨리알이 출현하였을 때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하여, 세상 사람들은 이번 월드 메시지의 주인공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TV 채널 곳곳에서 이와 관련한 토론이 진행됐다.

『우선 영웅이라는 호칭에 주목해야합니다. 시스템이 영웅이라고 칭할 정도 수준의 강자라면 당연히 최상위권 랭커겠죠. 그것도 히든 클래스 전직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전설 클래스 전직자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야 전대 영웅들이라는 말이 해석 되거든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각 섬마다 고유의 시련이 안배되어있다는 번헨 열도. 여러 가지 정황상 그곳의 극후반 섬들은 전대 전설들이 지키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당대 전설 크라우젤과 그리드, 그리고 전설로 추정되는 아그너스와 아레스가 월드 메시지의 주인공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시스템이 영웅으로 인식할 정도의 존재라면, 기본적으로 전설 클래스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 또한 이에 공감했다. 그리고 역시, 100이면 100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라우젤이야말로 월드 메시지의 주인공일 거라고 생각했다.

노말 클래스일 때부터 이미 그리드와 싸워 승리하였던 그다. 전설 중 최강으로 추측되는 검성으로 전직한 지금의 그는 그리드, 아그너스, 아레스 등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리라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일부 전대 전설의 무력은 대악마와 비견되거나 그 이상일 정도입니다. 크라우젤이 아니면 그들을 꺾었다는 것이 설명이 안 되죠.』

『하지만 제아무리 크라우젤이라도 최후의 관문을 돌파하는 건 어렵겠군요. 대악마 이상의 전설이 마지막 관문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죠. 현재 시점의 크라우젤이 뮐러 등의 최상급 전대 전설과 싸워서 이긴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죠.』

막말로 쉴 새 없이 떠드는 전문가들이었다. 완벽한 정보도 없이,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예상을 근거로 제시하며 시청자들을 현혹시켰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

『......』

각국 방송사 페널이 동시다발적으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스탭이 전달해온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달 받은 소식의 내용은 아래와 같은 월드 메시지였다.

<위대한 영웅, 템빨왕 그리드가 전대의 영웅들에게 안식을 선사하고 번헨 열도의 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될 것입니다.>

『홀리 쓋...』

문득, 어떤 전문가가 욕설을 지껄였다.

기껏 열심히 머리 굴려서 추측하면 뭐하는가?

그리드!

그놈의 템빨왕만 개입되면 모든 추측이 물거품 돼버리는데!

정말이지, 그리드 때문에 약해진 공신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릴 정도였다.

한데 또다.

또 한 번 그리드가 우리들 각 분야 전문가에게 엿을 먹였다.

역시나.

-네, 다음 X문가들.

-매번 틀리는 분석만 하는 주제에 돈 받아먹고 TV 나오는 거 보면 놀라움ㅋㅋ 얼굴에 철판 한 대여섯 개 깔았냐?

-다음부턴 니들 말 안 믿음.

각국 인터넷 커뮤니티가 이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들 낯이 없었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캬하핫! 갓리드 만세!! 대한민국 만만세!!』

한 한국 방송국에 Satisfy전문가 페널로 참여한 극검이었다.

***

““...템빨왕이여, 새 시대의 전설이여. 짐의 최후를 즐겁게 장식해주어 고맙구나. 보답을 주마.””

“......”

무려 수백 년 동안 지켜온 무패의 칭호가 벗겨진 마드라이다. 일생일대의 수치라 생각하며 분노해도 이상하지 않다.

한데 마드라는 그리드를 원망하기는커녕 도리어 고맙다하는 것이다.

이에 짐짓 당황하던 그리드가 이내 깨달았다.

“당신... 정말로 괴로웠던 거구나.”

전대 전설들은 이미 생을 마감했다.

무덤으로부터 시신이 파헤쳐지고, 하찮은 언데드로 부활하여 욕보이는 것을 그들이 원했을 가능성은 없다.

‘하긴, 당연히 괴로웠겠지. 강제적으로 해골바가지로 부활한 것으로 모자라서 100년 넘게 이 황량한 섬에 갇혀있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특히 인간 수준의 이성과 지혜를 지녔던 마드라는 미치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이다. 해골의 육신으로 부활한 것만으로도 충격일진데, 아무 것도 없는 외딴 섬에서 홀로 100년을 넘게 지내다니...

“지금부터라도 푹 쉬시길.”

잿빛으로 산화한 후 흩어지는 마드라.

다시금 저승으로 회귀하는 그에게 그리드가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존경심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이었다.

마드라의 견고한 정신력과 강인한 무력을 그리드는 선망하게 되었다.

쏴아아아아아-

66번 섬이 정화되기 시작한다.

다소 탁하던 공기가 맑아지고 푸른 숲과 호수가 생겨났다.

이어서.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지진이 발생했다.

거대한 호수를 중심으로,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9개의 기둥. 아니, 석상이 솟아올랐다.

이내 완연히 모습을 드러낸 9개의 석상은 각자 크기가 10미터에 육박했고 무척 정교하게 조각되어 그리드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엥? 브라함? 파그마?”

갑자기 솟아난 석상을 보고 어리둥절하던 그리드가 깜짝 놀랐다.

9개의 석상 중 2개가 브라함과 파그마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본 것이다.

그리드가 본래의 번헨 열도를 상기했다.

“명예의 전당...! 이거 설마, 전대 전설들의 석상이야?”

-맞다. 후대의 사람들이 우리의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지.

“오호!”

브라함이 긍정하자 그리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각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급기야 전설로 추앙 받은 인물들.

그들의 생전 모습은 어땠을까?

호기심에 가득 찬 그리드가 석상들을 차례대로 살폈다.

우선 첫 번째는 파그마였다.

“진짜 잘 만들었네.”

그리드는 이미 랜디를 통해서 파그마의 실물을 봤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 석상, 조각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상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음을. 석상으로 조각 된 파그마는 생전 모습 그대로 아름다웠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싸운 대장장이...”

함께 새로운 광물을 창조하였을 정도로 막역했던 브라함을 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하고, 수명을 빼앗은 것으로 모자라서 본인은 제1위 대악마 바알과 계약한 파그마.

그는 전대 전설들의 시신을 무덤에서 파헤치고 데스나이트로 만드는 짓까지 벌였다. 솔직히 말해서 인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냉혹한 인물로 느껴졌다. 하지만 세계를 위해서 싸운 그의 위업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

거대한 파그마의 석상을 한동안 올려보던 그리드가 이내 깊이 고개를 숙인다.

“고마워.”

진심어린 인사였다.

파그마가 남겨준 기술 덕분에 과거의 한심한 자신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던 그리드이다.

파그마가 어떤 인물이든, 솔직히 그는 상관없었다. 무한한 감사를 느낄 뿐이다.

-조각가가 내게 억하심정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한편, 자신의 석상을 본 브라함은 분노하고 있었다.

석상으로 조각 된 자신의 외모가 실물에 훨씬 못 미쳤던 까닭이다.

그리드가 피식 웃었다.

“나는 조각가의 입장을 이해할 것 같다. 브라함 너의 미모를 온전히 조각한다는 건 제아무리 뛰어난 조각가라도 불가능했던 거겠지.”

입 발린 소리가 아니다.

뱀파이어 출신인 브라함의 미모는 초월적이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외모로 손꼽을 수 있을 만큼 대단했다.

-흐, 흥. 뭐, 당연한 게지.

머쓱해하는 브라함.

조각가가 표현한 그는 손에 지팡이를 쥔 채 로브를 걸치고 있었고 표정이 더없이 인자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오만한 브라함 같지 않았다.

제자 무무드의 공적을 빼앗은 결과다.

세간에서 브라함은, 인류를 위해 마법학을 발전시킨 훌륭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마드라....”

그리드가 세 번째로 주목한 석상은 <무패왕 마드라>의 이름이 떠올라있는 석상이었다.

석상으로 조각 된 마드라의 모습은 그리드의 상상과 닮았다.

호탕한 웃음을 짓고 있는 중년인이었다.

털썩, 주저앉은 그리드가 좌절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왜 죄다 아재인 거지...?”

여느 플레이어와 마찬가지로, 그리드 또한 엘프족과의 만남을 꿈꾸고 있었다. 아리따운 엘프 여성과의 로맨틱한 인연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엘프 아저씨들에게나 사랑 받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드는 벌써부터 두려웠다.

“하....”

깊은 한숨을 내쉰 그리드가 이어서 검성 뮐러와 궁성 포비아, 데빌슬레이어 알렉스와 재단사 크루제, 광부 기스의 석상을 확인했다.

검성 뮐러는 마치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젊었다. 패기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궁성 포비아는 하프엘프답게 아름다웠으며 알렉스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인물처럼 고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루제와 기스는 얼굴에서부터 장인의 기백이 느껴졌다.

“음음...”

전대 전설들의 모습을 살펴나가는 그리드의 얼굴이 차차 밝아진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플레이어 최초로 전대 전설들의 얼굴을 확인한 것이 아닌가.

그리드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평생을 뒤쳐져왔던 자신이 이제는 누구보다 빠르게 앞서가고 있단 사실이 꿈만 같았다.

그를 치하하듯, 드디어 번헨 열도 보상 이벤트가 발생했다.

파르르르르르르----

9개의 석상이 둘러싸고 있는 호수.

갑자기 파장을 일으키면서 그리드의 시선을 사로잡더니.

푸화하하하하하학-!!

호수 중심부로 무엇인가가 솟구쳐 올랐다.

새로운 석상이었다.

4개의 황금 손을 주위에 두른 청년의 모습을 조각한 석상.

한 눈에 봐도 견고한 미늘 갑옷을 무장한 채 한 손에는 망치를, 한 손에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을 무장한 사내.

다름 아닌 그리드였다.

번헨 열도 명예의 전당에 그리드의 석상이 세워진 것이다.

그것도 9명의 전대 전설들이 지켜보고 있는 호수 중앙에 말이다!

“헐...”

명예의 전당에 등록 된다는 것, 단순히 어떤 목록에 이름이 새겨지는 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석상이 세워진단 뜻이었나?

예상보다 훨씬 더 화려한 효과에 감탄한 그리드가 전율에 휩싸인다.

‘내가 전대 전설들과 나란히 서다니...’

감격에 사로잡혀서 파르르, 경련하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번헨 열도의 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대악마의 침공이 끝난 이후, 긴 세월 동안 방치되었던 번헨 열도를 정화하고 전대 전설들에게 안식을 준 당신은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당신의 위업, 영원히 길이 남을 것입니다.]

[번헨 열도 명예의 전당에 당신의 석상이 세워졌습니다. 석상 전용 버프가 생성됩니다.]

[번헨 열도 정화 보상으로 레벨이 다섯 개 올랐습니다.]

[번헨 열도 정화 보상으로 도전자 포인트가 최대치(100만)로 충전됩니다.]

[지금부터 안개 섬 상점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예순여섯 번째 섬의 수호자, 데스나이트 마드라의 호의로 안개 섬에 특별 상품이 추가됩니다!]

“안개 섬....!!”

전혀 예상치 못한 등장이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그리드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엘릭서 하나의 가격이 250포인트였지?’

근데 무려 100만 포인트를 획득하다니!

400... 아니, 4,000개의 엘릭서를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거기에다가 마드라의 호의로 특별 상품까지 추가 됐다고?’

정말이지 엄청난 보상이다.

60번대 섬에서 얻을 수 있었던 아이템들과 레벨만으로도 대단하다 여겼건만, 완전 정화 보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컸다.

“좋았어!! 아자!! 예쓰!! 꺄오!!”

너무 신나서 방방 뛰는 그리드!

체통도 잊고 쾌재를 부르는 그의 시야를 안개가 가득 뒤덮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황금 마차가 출현했다.

그리드는 지체하지 않았다. 곧장 마차로 달려가서 상품 목록을 살펴봤다.

그의 계획은, 무려 100만이나 되는 도전자 포인트로 마드라의 특별 상품을 구입한 후 나머지는 전부 엘릭서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템빨보다 스탯빨이 되겠는데? 스탯왕으로 이름을 바꿔야하나? 하하하!”

너무 들뜬 나머지, 미친놈처럼 끊임없이 혼잣말을 지껄이는 그리드였다.

하지만 그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안개 섬 상품 목록-

<마드라의 일기장>

데스나이트 마드라가 직접 작성한 일기입니다.

가격:도전자 포인트 100만 개.

<동대륙 이동 포탈 스크롤>

동대륙 시작의 마을 <판게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무게0.1

가격:도전자 포인트 50개.

“...????”

일기장...?

특별 상품이라는 게 고작 일기장이었다고?

심지어 가격은 도전자 포인트 100만?

“그리고 엘릭서는 어딨냐?”

일기장 외 상품이라고는 필요도 없는 포탈 스크롤이 전부라니?

“XX....”

명예의 전당.

전대 전설들의 위업을 그리기 위해 세워진 그 성스러운 장소에 저급한 욕설이 메아리친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도 오래 전 일인지라 그리드는 잊고 있었다.

번헨 열도를 정화해달라고 부탁했던 인물, 다름 아닌 스틱세이임을.

그렇다.

번헨 열도 정화 보상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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