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3권 - 4화
‘사과? 월리웜 텔이냐?’
앞서 당한 노에와 랜디를 보아, 사과 이팩트는 포비아에게 ‘록온’ 당했다는 의미 같았다.
<종횡무진>의 힘으로 포비아를 가볍게 해치우려했던 그리드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원거리에서 속사가 가능한 궁사가 타겟팅 능력까지 갖췄다고...? 칫! 완전히 밸런스 파괴잖아! 마력 탐지!!”
파앗-!
조금이라도 빨리 포비아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고 판단한 그리드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마력 탐지(강화)>를 발동했다. 평상시에도 의도적으로 꾸준히 사용해온 마력 탐지의 레벨은 어느덧 3을 달성하고 있었다.
브라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격 포인트에 자리 잡은 궁사의 은밀함은 어쌔신과 비견 되지. 하물며 전설의 궁사라면....
그리드 또한 지슈카를 곁에서 봐왔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역시나.
마력 탐지가 포비아의 마력 탐지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오, 이놈의 마법은 정작 필요할 때마다 쓸모가 없네.”
-네가 무능한 탓이다.
그리드의 마력 탐지 레벨이 최소 2라도 더 높았다면, 데스나이트로 전락한 포비아의 기척 따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었을 거라고 브라함은 확신했다.
-그러니까 평소에 늘 마법 연마에 힘쓰란 말이다. 쓸데없이 속옷이나 만들지 말고.
한동안 마법 수련보다 재단 기술 연마에 매진해온 그리드이다. 브라함이 그에 대한 서운함을 은근슬쩍 토로하는 이때, 하늘에서는 그리드의 급소 곳곳을 노린 화살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총 11개의 화살이었다.
한데 그리드의 대응이 의외로 침착했다.
“갓 핸드!”
우선 갓 핸드를 이용해서 오른쪽 측면으로 떨어지는 화살들을 모조리 막아 낸 후, 그 경로 그대로 몸을 날려서 이어지는 화살의 쇄도를 회피하고자 시도했다.
꽤 좋은 움직임이었다.
만약 포비아의 공격이 논타겟팅이었다면, 그리드는 지금 동작으로 상당수의 화살을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비아의 공격은 타겟팅이었고, 타겟팅 공격을 회피한다는 건 Satisfy시스템상 불가능했다.
쩡-!
푹! 푸푸푸푸푹!!
뒤쫓아 온 화살 중 단 한 발만을 방패로 막아 내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적중당한 그리드.
“큭....!”
총 6발의 화살을 얻어맞은 그가 손실한 생명력은 40,000을 훌쩍 초과했다.
‘데미지를 보면 방어력이 무시당하는 것 같은데?’
텅!
터터터텅!!
또 한차례 날아오는 다섯 발의 화살을 갓 핸드와 방패로 막아 낸 그리드가 화살을 살폈다. 야파 화살이었다.
“쯧, 어쩐지 아프더라니...”
혀를 찬 그리드가 생명력 포션을 마셨다. 레이단에서 제작한 극상의 물약이 그의 생명력 게이지를 순식간에 최대치로 채워줬다.
-의외로 차분하군?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숲.
무성한 수풀들이 시계를 방해하고, 시끄러운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청각을 방해한다.
그리드는 현재 꽤 좋지 못한 형국에 놓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의 일방적인 공격에 혼란을 느끼고 위기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데 그리드는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었으므로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느냐?
마치 시험해 보는 듯한 말투.
그리드는 확신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전설의 궁사라고 해도 늘 필중의 화살을 쏘는 건 불가능하겠지. 안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원거리에서 대량의 화살-그것도 위력적인-을 날릴 수 있는 궁사가 늘 타겟팅 공격을 퍼붓는다?
그건 명백한 오버 파워다.
존재할 수 없는 힘이다.
‘포비아의 록온 스킬에는 분명히 재사용 대기 시간이 존재할 거다.’
생전이라면 또 모를까, 데스나이트로 전락한 현재 상태로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길 가능성이 높다.
‘노에와 랜디에게 1발씩, 방금 내게 11발과 5발 모두 타겟팅 공격이었어. 이제 다음 공격은 논타겟팅일 거다.’
그리고 논타겟팅 공격은 타겟팅 공격보다 위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맞추기 어려운 공격일수록 강력한 것은 섭리였으니까.
‘여기서 회(回)를 써서 회(回)의 위력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그리드는 파그마의 검무, 회(回)의 특성을 되새겨 보았다.
‘어떤 형태의 공격이라도 반격’해 버리는 특성. 이는 즉, ‘공격을 대상에게 돌려준다.’라는 뜻이 됐다.
그리드는 이 부분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고 추측했다.
‘회(回)로 튕겨낸 공격을 뒤쫓아 가면.... 그 지점에 포비아가 있을 거야.’
대상에게 공격을 돌려준다는 특성이 적의 위치를 찾아내는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점, 그리드는 지금 실시간으로 생각해낸 것이다.
자연스럽게 길러진 센스다.
자랑스러워할 법도 하건만, 그리드는 들뜨지 않았다.
‘크라우젤이었다면 회(回)를 얻은 순간부터 이 활용법을 생각해냈겠지.’
한 단계 성장할 때마다 크라우젤의 대단함을 보다 절실히 느끼게 된다.
아이러니하다.
한 보 쫓았다 싶으면 열 보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너의 대단함을 알게 된다는 건 그만큼 나도 대단해지고 있단 뜻이겠지?’
철컥!
또 어디선가 위험천만한 모험을 즐기고 있을 크라우젤.
그를 떠올리며 미소 지은 그리드가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을 착용하는 그때였다.
쿠와아아아아아앙-!!
이번에는 하늘에서 마치 운석처럼 무시무시한 기세의 화살이 떨어져 내렸다.
단 한 발이었으나 임팩트는 엄청났다.
혹 공격을 허용하기라도 했다가는 그대로 골로 갈 것... 아니, 치명상에 빠질 듯한 위력이 내포된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긴장하지 않았다. 이미 최강의 반격 검무를 완성한 그는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회(回)!”
쿠와아아아아앙--!!!
숲이 기운다.
그리드의 코앞까지 떨어져 내렸던 유성 화살이 원형의 검무에 휩쓸리는 순간 발생한 기파는 그리드의 피부를 일그러지게 만들 정도였다.
이에 잠시 주춤하는 그리드였으나.
“플라이!”
정신을 차리고 미리 스왑해 두었던 부츠의 힘을 빌려 마법을 전개, 회(回)에 맞고 왔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유성 화살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린다.
‘알람. 매직 미사일 귀속. 3초 후 정면으로 전개.’
지이잉-
억눌린 나무들을 헤치고 날아오른 그리드의 측면으로 빛의 구체가 맴돌기 시작했고.
“거기냐!!”
그리드가 다시금 지상에 하강했을 때, 그의 시야에는 절벽 사이에 몸을 숨긴 데스나이트 포비아가 포착되고 있었다.
퍼어어엉-!!
우선 유성 화살이 포비아를 덮치고, 동시에 발동된 매직 미사일이 그 뒤를 따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그마의 검무!”
그리드는 유성 화살과 매직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서 측면으로 이동하는 포비아를 정확히 포착, 그녀의 이동 지점을 겨냥하여 연(聯)을 날렸다.
핏-!
피피피피피피피피피피핏!!
수십 회 이어지는 검격.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이 붉은 벼락을 소환하고 검은 불꽃을 폭발시킨다.
콰르르르르르릉!
쿠콰콰콰콰콰쾅!!
““....!””
천재지변을 맞이한 심정이리라.
포비아는 연속되는 폭발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절벽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과연 전설의 궁사답게 높은 민첩성을 기반으로 허공에서 자세를 고치고 화살을 날려보지만.
“신속한 몸놀림! 대장장이의 분노! 종횡무진!”
번헨 열도의 끝을 앞둔 그리드의 집중력은 극에 달해있었다.
아니, 집중력을 떠나서 그는 그냥 강했다.
전투 외적인 공략을 요구했던 크루제와 기스를 상대할 때는 그 힘이 억눌려졌을 뿐이다.
쩌정-!
쩌저저저저정!!
화살 세례를 돌파하고 나아가 포비아에게 도달, 쉬지 않고 평타를 날리는 그리드.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이 그에 호응하여 포효한다.
[대상에게 18,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20,73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22,500의 피해를....]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의 옵션 효과로 <검은 불꽃>이 폭발....]
쿠와아아아아아아앙!!
압도...!
평타 사이사이에 파그마의 검무를 전개, 여기서 발생하는 신장(神將) 효과까지 등에 업은 그리드는 역사 속에 표현되는 용장이며, 비장이었고, 신장이었다.
무패왕의 철벽마저 깨뜨려 버릴 위세다.
-이 정도였다고?
그리드의 몸속에 깃든 브라함과.
“대단...!”
수정구로 그리드의 전투를 지켜보는 스틱세이 모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펑-!
퍼퍼퍼퍼퍼퍼펑!!
포비아의 저항은 거셌다. 그리드의 맹공 속에서도 분투하며 계속 반격을 날렸다. 지근거리에서 쉬지 않고 쏘는 속사는 무척 위협적이었고 높은 공격력이 그리드에게 몇 번의 위기를 선사했다.
“이야루그트!!”
스파아아아앗-
<도란의 반지>를 이용해서 첫 번째 위기를 넘기는데 성공하고, 생명력 회복 물약과 <티라멧의 허리띠>효과로 두 번째 위기까지 극복한 그리드.
<최초의 왕>칭호 효과가 발동하기 직전, 갓 핸드에게 혈빛 마검을 쥐어 주고 검귀를 소환한다.
분투 중인 포비아의 측면에 음침하게 등장한 노년의 마족이 전세에 쐐기를 박았다.
“지고의 검.”
츠카카카카카카카칵!!
““키야아아아악!!””
강하다.
브라함과 스틱세이가 그리드를 보고 뱉는 감상은 이토록 간단명료했다.
이제 막 하나의 신검(神劍)을 제작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 그리드를 브라함은 더 이상 애송이로 취급할 수 없었다.
-기대대로다....! 그 힘, 머잖아 전대에 닿고 나아가 대악마를 위협할 테지!
“영웅왕이 된 후에는 7악성에게까지 도달할 텐가....!”
[예순 다섯 번째 섬의 수호자 데스나이트 포비아를 해치웠습니다!]
[예순 다섯 번째 섬이 정화됩니다!]
[정화 보상으로 레벨이 하나 오릅니다!]
[<(파그마가 제작한)엘프족 활골무>를 획득하였습니다.]
[<세계수의 목걸이>를 획득하였습니다.]
솨아아아아아-
어둡던 숲에 광명이 내린다.
빛의 중심에 선 그리드는 흐르는 땀과 피가 무색하게도 상쾌한 얼굴이었다.
“허억.... 허억.... 이제 하나 남았다.”
템빨단원들은 물론이고 크라우젤과 아그너스, 그리고 데미안과 지발 등의 이름난 강자들에게 고배를 안겼던 번헨 열도.
템빨왕 그리드의 손에 공략당하기 직전이다.
***
<(파그마가 제작한)엘프족 활골무>
등급:레전드리
내구도:100/111
*활 착용 시 공격 속도 +20퍼센트.(엘프족은 효과를 2배로 받음)
*일반 공격, 혹은 스킬 공격을 ‘타겟팅 모드’로 전환 가능.(재사용 대기 시간 3분. 엘프족은 재사용 대기 시간 절반만 적용)
바알과 계약한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가 데스나이트 포비아를 위해서 제작한 활골무입니다.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포비아의 신체 구조에 적합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무게:15
<세계수의 목걸이>
등급:레전드리
내구도:20/22
*엘프족 영토에서 근력과 민첩성이 20퍼센트 상승.
*엘프족 영토에서 마나 회복 속도 150퍼센트 상승.
*엘프족 영토에서 이동 속도 1.2배 상승.
아직 전설이 되기 전 포비아는 인간에게도, 엘프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외톨이였습니다.
이 목걸이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던 세계수가 그녀에게 준 선물입니다.
무게:50
‘뭐라고 할 말이 없네.’
60번대 섬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그리드가 얻은 아이템들은 하나 같이 기가 막혔다. 모든 아이템의 가치가 어마어마했다.
번헨 열도는 보물 창고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드는 이곳을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선점하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싱글벙글.
들떠있는 그리드에게 스틱세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패왕 마드라는 이지를 갖췄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이지를 가졌다고?”
정화 된 65번째 섬.
66번째 섬에 입장하기 전, 스틱세이의 경고를 들은 그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스나이트가 이지를 가질 수도 있나?”
“네, 강한 원념이 깃든 시신은 데스나이트나 리치가 돼서도 생전의 기억 일부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억이 이지의 원동력이 되죠.”
“강한 원념.... 살아생전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다던 무패왕이 죽어서까지 원념을 품을 이유는 또 뭐지? 행복하게 죽었을 것 같은데?”
-그는 불행하게 죽었다. 친아들에게 살해당했거든.
“....헐.”
-큭큭, 마드라와 비교하면 친구에게 배신당한 나는 그나마 양반이랄까?
“.....”
누가 한국 게임 아니랄까봐 스토리가 아침 드라마급이라고 생각하는 그리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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