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3권 - 3화
‘이게 말이 돼?’
64번째 섬의 공략법으로 채광을 선택한 그리드!
‘이건 사기잖아!!’
최초의 그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레어 등급 곡괭이를 무장하고 <초급 채광 기술> Lv.5를 습득한 템빨골들, 에픽 등급 곡괭이를 무장하고 <초급 채광 기술> 마스터를 습득한 갓 핸드들, 유니크 등급 곡괭이를 무장하고 <중급 채광 기술> Lv.1을 습득한 노에와 랜디.
이들과 함께 쉬지 않고 채광에 집중한다면, 식량이 떨어지기 전까지 64번 섬의 모든 광물을 캐낼 수 있으리라고 그리드는 생각했다.
또한, 설령 기간 내 채광에 실패하더라도 후에 재도전하면 된다고 보았다.
몇 달치 식량을 챙겨 와서 굶어 죽기 전에 채광을 완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
64번 섬, 식량만 넉넉히 준비하면 손쉽게 클리어할 수 있는 관문이라고 그리드는 해석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드의 생각과 달리 녹녹치 않았다.
이곳은 번헨 열도였고, 특히 60번대 섬들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바이다.
64번 섬의 광물들...
캐내는 족족 실시간으로 재생성됐다.
그리드 일행이 전력으로 광물을 캐봤자 그 자리에 또 새로운 광물이 즉시 자라났다.
즉, 64번 섬의 모든 광물을 캐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와, 진짜 환장하겠네.”
어느덧 3시간.
포기하지 않고 채광에 집중하던 그리드가 결국 곡괭이를 던져 버렸다. 노에와 랜디도 의욕을 잃은 지 오래다. 기껏 고생해서 광물을 캐봤자 다시 또 자라났으니 의욕이 생길 리 만무했다.
“동굴 자체를 파괴해 버릴 수만 있었어도.”
일일이 이딴 고생을 하지 않아도 좋았을 터다.
하지만 여느 게임이 그렇듯, Satisfy 또한 파괴할 수 있는 지형지물과 파괴할 수 없는 지형지물이 따로 분류됐다.
그리고 64번 섬은 파괴가 불가능했다.
퍼엉!
쿠콰콰콰쾅!!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으로 때리고, 또 때려 검은 불꽃을 폭발시켜보아도 동굴 내부는 꼼짝도 안 했다. 폭발에 휩쓸린 광물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켰다.
부셔지지도 않을뿐더러 채광해 봤자 다시 자라나는 광물이라니, 답도 없다.
‘제작자 돌았나? 이곳을 대체 무슨 수로 클리어하라는 거지?’
기스의 무적을 해제할 방법을 도무지 생각해내기 어렵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64번 섬은 클리어하라고 만든 곳 같지가 않았다. 제작자가 플레이어를 괴롭히기 위해 만든 그림의 떡 그 자체로 느껴졌다.
“빌어먹을.... 어찌 된 게 쉽게 풀리는 경우가 하나도 없냐?”
퍽!
이를 간 그리드가 방금 막 캐낸 철광석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
그 순간.
움찔!
그리드가 64번 섬에 입장한 후로 잠시도 채광을 멈추지 않고 있던 데스나이트 기스가 석상처럼 굳었다.
“....냥?”
고양이 주제에 강아지처럼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던 노에가 커다란 두 눈을 껌뻑인다.
기스가 행동을 멈춘 것을 똑똑히 목격한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기스 쪽을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암 걸릴 정도로 얄미운 자식에게 굳이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었다.
따앙! 따앙!
그 틈에 기스가 다시 채광을 시작했고.
“주인! 또 던져 보라옹!”
노에가 다급히 소리쳤다.
“뭘?”
그리드는 노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순전히 화가 나서 철광석을 던진 행동, 무의식적으로 행한 것인지라 자신이 방금 뭔 짓을 저질렀는지도 몰랐다.
“철광석을 던지라고 말하는 것이다옹!”
“엥?”
왜?
라는 의문이 그리드의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리드는 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기에 앞서서 우선 노에의 요구 사항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드가 노에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퍽!
그리드가 철광석을 집어 던지자!
움찔!
기스가 채광을 멈췄고,
“.....!”
그리드가 그 모습을 목격했다.
팔짱을 낀 노에가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웃었다.
“냥핫핫! 이 몸의 통찰력이 어떠냥! 지옥 제일 마수님답게 짱이지 않느냐옹!! 냥핫핫!!”
“좋아...! 잘했어! 최고야!!”
64번 섬의 공략법을 알게 된 그리드!
또 다시 새로운 철광석을 집어던지고 기스의 채광을 멈춘 그가 파그마의 검무를 전개했다.
“연(聯)!”
퍼엉-!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깊은 동굴.
그리드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발생하는 폭음이 메아리쳤고 데스나이트 기스의 비명이 그 뒤를 따라 울려 퍼졌다.
““키야아아아아!!””
무적을 상실하고 생명력을 손실하는 기스!
수정구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스틱세이가 감탄과 전율에 휩싸였다.
‘64번째 섬의 공략법을 단 몇 시간 만에 파악해내시다니....!’
64번 섬을 공략하기 위한 기본 조건은 ‘채광 기술’이다.
그리드는 이를 아이템 제작 능력으로 충족시켰다.
그리고 채광한 광물을 버려버림으로써 ‘광물을 사랑하는’ 본성을 지닌 기스를 동요시켰다.
발생한 결과는 무적의 파훼.
이제 더 이상 기스는 무적이 아니다.
‘물론.’
기스는 탱커다.
전설 중에서 가장 높은 방어력을 자랑했다. 비록 무적을 상실했다고는 하나, 그리드가 기스에게 쉽게 피해를 입힐 리는 만무했....
“극살(極殺)!!”
“......쉬우신가 보구나.”
***
[대상에게 42,35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노에의 도움을 받아서 기스의 무적을 해제시킨 그리드!
즉각적으로 연(聯)을 사용해보지만 기스의 방어력은 과연 굉장했다. 다른 데스나이트보다 족히 3배 이상은 단단하게 느껴졌고 데미지가 제대로 박히질 않았다.
하지만 그리드에게는 방어력 관통 계열 스킬이 있었다.
바로 극(極)과 극살(極殺)이다.
특히 극살(極殺)은 대상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했다.
츠카카카카카칵!!
베이고, 찔리며 대량의 생명력을 손실하는 기스!
즉시 반격하여 그리드를 위협해보지만.
[2,7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고작 탱커의 공격력으로는 그리드에게 뚜렷한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기스의 곡괭이는 그리드의 삼겹갑을 뚫지 못했다.
무적을 잃은 기스는 그리드의 좋은 먹잇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히든 패시브 스킬 <신장(神將)>의 효과로 <극살(極殺)>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3초 내에 재사용할 경우 자원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극살(極殺)!!”
쩌어어어어어엉-!!
그리드에게 자칫 좌절을 안겨줄 뻔 했던 64번 섬의 수호자, 기스.
그리드가 퍼붓는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잿빛으로 산화한다.
[예순 네 번째 섬의 수호자 데스나이트 기스를 해치웠습니다!]
[예순 네 번째 섬이 정화됩니다!]
[정화 보상으로 레벨이 하나 오릅니다!]
[기스의 곡괭이를 획득하였습니다!]
“응?”
그리드가 체감하기로 64번째 섬의 난이도는 무척 높았다. 비록 기스 그 자체는 약했지만, 공략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므로 여태껏 정화해온 그 어떤 섬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애초에 우연이 아니었다면 클리어 자체가 불가능한 장소였으니 그리 느끼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기대했다.
난이도에 비례하여 보상 또한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근데....”
근데 보상이라는 게 고작 곡괭이 하나라니??
“하.....”
깊이 한숨을 쉰 그리드가 별 기대 없이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스킬을 사용했다.
띠링~
<기스의 곡괭이>
등급:레전드리
내구력:300/366 공격력:190
*고급 광물 획득 확률 20퍼센트 상승.
*최고급 광물 획득 확률 8퍼센트 상승.
*착용자의 채광 기술 레벨 3 상승.
*채광 속도 +150퍼센트.
*채광 시 방어력 40퍼센트 상승.
*채광 시 낮은 확률로 <무적> 상태.
전설의 광부 기스가 생전에 애용하던 곡괭이입니다.
기스는 자신의 무덤에 이 곡괭이를 함께 묻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이 곡괭이를 아꼈습니다.
사용 조건:채광 기술을 습득한 자라면 누구나.
무게:111
“와.....”
파그마 그 인간, 기스의 시신을 무덤에서 파헤치는 과정에서 기스가 생전에 그토록 아꼈던 곡괭이까지 도굴한 것인가?
‘브라함 뒤통수 후려친 사건만 봐도 그렇고, 알면 알수록 인성이 영....’
뭐, 현재 시점에서 파그마의 인성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리드는 그저 기스의 곡괭이에 감탄했다.
광물 획득 확률 상승은 기본이고, 착용자의 채광 기술 레벨을 올려 줄뿐더러 채광 속도까지 대폭 상승시켜줬으니 효용성이 어마어마했다.
특히 채광 시 방어력 상승과 무적 버프가 대박이었다.
‘이거 잘만 활용하면 어그로 끌기용으로 최고겠는데?’
문득 극검이 생각나는 그리드였다.
‘적들을 만날 때마다 극검한테 나가서 광물 캐라고 시키면.....’
그것 참 편리한 탱커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다.
극검의 클래스는 극강의 딜러로 구분되는 발도술사였지만, 그리드는 그 사실을 잊은 지 오래였다. 헬가오 레이드 당시 극검이 펼친 광부로써의 활약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
[예순 다섯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이제 단 두 곳만 남았다.
65번째 섬과 66번째 섬.
그리드는 앞으로 이 2개의 섬만 공략하면 번헨 열도 정화에 성공하게 된다.
긴 세월 동안 제기능을 상실하였던 번헨 열도를 구원하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번헨 열도의 원래 기능 중 하나가 명예의 전당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리드의 이름 석자가 명예의 전당 상단에 각인 될 가능성이 높다. 엄청난 상징성을 지닐 터였다.
“좋아...”
그리드의 의욕이 끓어 넘쳤다.
독보 지존 크라우젤의 명성을 조금씩이나마 따라잡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스윽.
그리드가 이동을 개시했다.
65번 섬의 배경은 숲이었다.
벌레와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소란스럽게 맴도는 거대한 숲.
그리드는 무성한 수풀 탓에 햇볕 하나 들지 않는 이 어두운 숲의 수호자가 전설의 궁수 포비아일 거라고 예측했다.
저격 포인트로 삼기에 좋은 장소가 워낙 많았던 까닭이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슈욱-!
“....!”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워낙 시끄러운 것이 문제였다.
그리드는 화살이 날아오는 파공성을 너무 늦게 포착하고 말았고, 그리드가 대처할 틈도 없이 날아온 화살이 그리드의 가슴에 정확히 꽂혔다.
[6,993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큭...! 역시 궁사라 이건가?’
삼겹갑을 비롯해서 물리 내성을 극단적으로 상승시켜주는 방어구를 무장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데미지다.
물리 딜러 중에서 가장 높은 공격력을 발휘하는 직업군이 바로 궁사라는 사실을 상기한 그리드가 <성스러운 빛의 방패>를 꺼냈다.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서 데미지를 조금이라도 덜 받으려는 의도였다.
‘우선 위치를 파악해야 돼.’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토대로 포비아가 숨어있는 장소를 포착한 후, 즉각 거리를 좁혀서 제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그리드는 판단했다.
궁사는 체력이 약하기 때문에 거리만 좁히면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포비아는 전설의 궁수다.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는 이상, 스스로 위치를 노출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쐐액-!
푸푸푸푸푸푸푹!!
포비아가 쏘는 화살은 비처럼 하늘에서 떨어졌고, 그 탓에 그리드는 포비아의 위치를 특정 짓기 어려웠다.
“칫... 레인 애로우라니.”
다량의 화살을 하늘 위로 쏜 후, 표적에게 비처럼 떨어뜨리는 스킬 레인 애로우.
이 스킬의 강점은 넓은 공격 범위와 예측하기 어려운 궤도에 있었지만, 시전자가 자신의 위치를 숨기기 용이하다는 이점도 있었다.
그리드는 포비아가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화살을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는지 찾아내기 어려웠다.
주변의 나무들이 너무 높이 솟아 있어서 시야가 크게 방해받았다.
“노에! 랜디!”
자력으로는 힘들다고 판단한 그리드가 펫을 소환, 그들을 숲의 상공으로 날려 보냈다.
“화살이 쏘아지는 지점을 발견하면 즉시 내게 보고해!”
그리드의 명령이 노에와 랜디에게 하달됨과 동시였다.
지잉-
노에와 랜디의 심장 위로 붉은 사과 이모티콘이 떠오르더니.
푹-!
푹푹!!
섬광 같은 화살이 날아와 사과를 꿰뚫어 버렸다.
노에와 랜디의 심장이 꿰뚫렸단 소리다.
“냐앙!”
“꺅!”
“뭐....!”
그대로 지상에 곤두박질치는 노에와 랜디를 보고 당황하는 그리드.
그의 얼굴, 명치, 심장, 폐, 팔꿈치, 손목, 거기 등 곳곳의 급소에 사과 이모티콘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종횡무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타켓팅’ 공격의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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