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525화 (520/1,794)

이제 앞으로는 팬티 1장 만들 시간에 2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모든 종류의 천과 가죽을 자를 수 있는 칼, 가위와 꿰뚫을 수 있는 바늘....’

그리드가 여러 종류의 천을 동시에 재단할 수 없었던 이유는 천마다 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드가 기존에 사용하던 평범한 가위와 바늘로는 각기 다른 강도의 천을 동시다발적으로 재단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 바늘과 가위, 칼만 있다면, 그리드는 크루제처럼 여러 종류의 천과 가죽을 동시에 재단할 수 있었다.

‘앞으로 재단 기술을 쭉쭉 올리다보면 팬티뿐만 아니고 제법 쓸 만한 천 계열 갑옷도 만들 수 있겠는걸?’

기쁘다.

그리고 기쁨과 비례하여 슬프다.

재단 속도가 늘어난만큼 작업량도 늘려야했기 때문이다. 물론 안 늘려도 그만이다. 하지만 그리드의 성격상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안 하고 논다는 건 불가능했다.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가 게으름을 피울 리 만무한 것이다.

“하....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

그리드가 다음으로 보자기를 감정했다.

비단으로 만든 보자기였다.

<신묘한 보자기>

등급:레전드리

내구력:없음

‘폭발’ 유형의 데미지를 무력화시키는 4차원 보자기입니다.

폭발 지점에 보자기를 펼치면, 폭발 에너지가 모두 보자기 속으로 흡수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10분.

무게:1

“....?”

그리드는 아이템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폭발 유형의 데미지를 흡수한다?

‘무슨 말... 아, 설마?’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한 가지 가설을 세운 그가 갓 핸드들에게 보자기를 펼쳐놓고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보자기를 노리고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을 휘둘렀다.

결과는 놀라웠다.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의 옵션 효과로 <검은 불꽃>이 폭발합니다!]

쿠와아아아아아앙!!

반경 10미터에 스플래쉬 데미지를 발생시키는 칠흑의 불꽃 폭발!

굉음을 터뜨리며 휘몰아치는 그 불꽃이!

슈우우우우욱--

갓 핸드가 펼쳐놓고 있는 보자기에 맥없이 빨려 들어갔다.

일대에 단 1의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말이다!

“....미친.”

그리드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흥건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미 불꽃과 암흑에 대항하는 힘을 갖추었던 크루제.

‘...녀석은 거기에 더해서 이 보자기로 검은 불꽃까지 흡수할 생각이었던 거지?’

만약, 그리드가 감전과 경직으로 크루제를 무력화시키지 못했다면.

‘내 공격력 대부분이 차단당했겠네....’

특히 보자기의 재사용 대기 시간 10분은 크루제가 직접 사용할 경우 더 짧았을 가능성이 높다. NPC와 보스 몬스터는 보정 효과를 얻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족히 수십 분을 싸우다가 크루제가 또 다시 결계를 펼치고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서 대항했을 수도 있겠어.’

만약 그 단계까지 이르렀다면 그리드의 승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생각하며 몸서리치는 그리드.

주섬주섬 보자기를 챙기는 그에게 때마침 63번째 섬에 입장한 스틱세이가 다가왔다.

“이제 3개의 섬만 남았군요.”

“음.”

전설의 광부 기스, 전설의 궁수 포비아, 무패왕 마드라.

스틱세이의 추측에 따르면 남은 보스는 이 셋이다.

그리고 그리드는 마드라를 제외하면 모두 비교적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몸 약한 궁수쯤이야 종횡무진으로 화살세례를 가뿐히 돌파해 준 후 순삭하면 그만이고, 공격력 부족한 탱커쯤이야 지속력 싸움으로 가면 자신이 꿀릴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방심하진 않아.’

심호흡한 그리드가 64번째 섬으로 향하는 징검다리에 발을 올렸다.

“곧바로 간다.”

불사를 소모하지 않고 승리하겠다는 목표를 이뤘다.

굳이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드는 곧바로 64번째 섬에 입장했다.

그리고 광부 기스를 만났다.

딱!

딱딱딱!

64번째 섬의 배경은 동굴 내부였다.

곳곳에 광물이 자라고 있는, 그 자체로 거대한 채광장이었다.

천장의 야광석으로 인해서 은은한 푸른빛을 띄우는 그 동굴 중앙에 데스나이트 기스가 있었다.

기스는 골격이 무척 컸다. 아그너스가 거느린 오크 전사 데스나이트와 비견될 정도의 거구였다. 그 탓에 손에 쥐고 있는 곡괭이가 작아 보일 지경이었다.

“탱커라더니 과연 튼튼하겠구만.”

쿠와아아아아아앙!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찍어 누르겠다!

그리드는 지체하지 않았다. 곧바로 신속한 몸놀림과 대장장이의 분노를 전개한 후 기스에게 돌진했다.

그 순간.

따앙-!

데스나이트 기스가 채광을 시작했다.

적이 돌진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곡괭이질을 시작한 것이다!

“엥?”

그리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적을 외면하고 채광이나 시작하는 기스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공지능이 망가졌나?’

어쩌면 예상보다 더 쉽고 빠르게 64번째 섬을 돌파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미소 짓는 그리드였으나 좋은 예감은 언제나 빗겨나가는 법이었다.

쩌엉!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이 곡괭이질 중인 기스의 두개골을 후려쳤고.

[기스가 채광 중입니다. 채광 중의 기스는 무적입니다. 피해를 입히지 못했습니다.]

“....????”

그리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따앙! 따앙!

기스는 넋 나간 그리드에게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묵묵히 채광에만 열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이다.

참고로 동굴은 족히 200평 크기가 넘었고 모든 벽면에 광물이 자라고 있었다.

곡괭이질에 일가견이 있는 극검이 전력으로 채광에 힘써도, 이 동굴 안에 있는 광물을 모조리 캐내려면 족히 보름은 걸릴 것 같았다.

그리드가 최악의 가설을 세웠다.

‘64번째 섬은 설마 시간 끌기용...?’

기스가 채광을 끝내기 전까지는 결코 돌파할 수 없는. 막말로 몇날며칠 동안 발이 묶여있어야 하는 시련의 장이 아닐까?

“이런 염병!”

등골이 오싹해져서 저도 모르게 욕설을 지껄인 그리드가 조금 전 자신이 이용했던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게이트는 사라진 상태였다. 다른 섬들이 그러했듯, 64번째 섬 또한 도전에 실패하거나 돌파하기 전까진 탈출할 수 없는 것이다.

따앙!

기스는 여전히 거북이처럼 느린 동작으로 채광 중이었다.

“....아.”

식량도 4일치밖에 없음을 상기한 그리드가 좌절했다.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이후 최초로 아사(餓死)하게 생겼으니 좌절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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