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2권 - 14화
퍼어어어엉-!!
“....!”
갑작스러운 폭발!
저격 총으로 그리드를 조준하고 있던 알렉스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리드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훗, 어때?”
굳이 자신의 분야가 아닐지라도.
그리드는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배우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취한다. 라우엘에게 일임한 국정조차도 틈틈이 공부할 정도이다.
자칫 해이해졌다가 패배자로 회귀하는 사태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심각한 강박으로부터 비롯된 습성이었다.
물론, 타고난 지적 능력이 낮은 편인지라 배움이 느리기는 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조금은 나아지게 마련이니까.
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열망!
그리드는 그 뜨거운 열망을 아그너스와의 전투 당시에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발전했다.
지잉-
퍼퍼퍼퍼펑!!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적과의 대결에서는 끊임없는 변수를 유도해야하며, 변수를 유발하기에 가장 적합한 스킬은 알람 마법이라는 사실을 아그너스와의 전투에서 정확히 깨달았다.
덕분에 그리드는 알렉스와 전투를 시작한 시점부터 이미 알람 마법을 의식하고 있었다.
연(聯)의 막강한 공격력을 경계한 알렉스가 다시금 거리를 벌릴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고, 예상되는 알렉스의 이동 경로에 매직 미사일을 귀속 시킨 알람 마법을 미리 배치했다.
물론 그리드는 영리하지 않기 때문에 이동 경로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고, 그 결과 광범위에 마법을 배치하느라 대량의 마나를 소모하긴 했으나.
‘궁극기 두 번 쓸 마나 정도만 남아있으면 충분.... 엥?’
랭커들이 으레 그렇듯, 그리드 또한 전투 중에는 의식의 흐름이 빨라진다. 적절한 아드레날린의 분출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여, 그리드의 판단은 빨랐다.
“파그마의 검무!!”
알람 마법의 발동과 동시에 쏘아진 매직 미사일의 폭격을 얻어맞고도 저격 자세가 풀리지 않다니!
쿠와아아아아아아앙-!!
알렉스가 그리드의 미간에 조준하였던 저격 총을 발사하였고,
“회(回)!!”
그리드는 ‘모든 형태의 공격을 반격’하는 최강의 반격 스킬을 즉각 전개하였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저격 총 모드의 마법 공학 총검은 조준에 큰 시간을 소요하는 대신 ‘쏘는 순간 반드시 명중’이라는 옵션이 귀속되었기 때문이다.
이건 현실에서의 총과 똑같은 개념이었다. 속도를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인간은 총이 발사되는 소리를 듣는 시점에서 이미 총탄에 몸이 꿰뚫린다.
그리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갓 핸드의 비호도 기대할 수 없었다.
퍼엉-!!
“....!”
옥빛 잔광을 레이저처럼 남기는 저격 총의 탄환이 그리드의 미간을 꿰뚫으면서 수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머리가 터져나가는 감각.
그리드가 심리적으로 느끼는 공포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즉사 당합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체력이 최소치가 되어 5초 동안 모든 공격에 저항합니다.]
“아....!”
그리드의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결코 과장이 아니라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가는 감각을 느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리드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만져보는 것이었다. 혹시 자신이 머리 잃은 시체 꼴을 하고 있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리드의 머리는 멀쩡했다. 미간에 뚫렸던 구멍도 어느새 수복되었다.
몬스터나 NPC의 머리가 떨어져나가는 연출은 간혹 있었지만, 플레이어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는 연출을 하는 것은 제아무리 S.A그룹이라도 기피했던 것이다.
“허억... 헉....”
끔찍한 경험과 동시에 솟아오른 공포에 잠식당한 그리드의 호흡이 가쁘다.
평소 같았으면 불사가 유지되는 5초 동안 뽕을 뽑겠다고 전력으로 행동했을 그가 넋 나간 채 2초를 허비했다.
이틈을 놓칠 알렉스가 아니었다.
타탕! 타타타타타탕!!
침입자-그리드-가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고 확신한 알렉스는 보다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재사용 대기 시간에 걸린 저격 총을 다시 권총으로 변환시킨 다음 그리드에게 쉬지 않고 총탄을 발사했다.
“.....”
침입자는 악마다.
악마로부터 번헨 열도를 수호하고 나아가 인류를 구원하라.
라는, 소환자 파그마의 명령이 데스나이트 알렉스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알렉스는 그리드가 잿빛으로 산화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결과.
타타타타타타타탕!!
불사 지속 시간이 단 2초 남은 시점에서 그리드의 몸은 이미 벌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알렉스는 사정없이 속사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그리드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불사를 소모하게 만들다니.”
염병할, 덕분에 다음 섬에 곧바로 도전할 수 없게 됐다.
“덕분에 하루 동안 또 노가다나 하게 됐구나...! 흑화!!”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앙!!
회오리치는 마기가 방출되며 그리드의 몸을 뒤덮는다.
그리드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었고 피부가 창백하게 질렸다.
토해내는 숨마저도 검다.
[암흑 마력을 증폭시킵니다.]
[암흑 마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악마력으로 대체합니다.]
[흑화가 유지되는 동안 종족이 반마(半魔)로 변경됩니다.]
[반마 상태에서는 생명력 최대치가 50퍼센트 하락합니다. 공격력, 마력, 민첩성이 각각 30퍼센트씩 상승합니다.]
[모든 종류의 공격이 암흑 속성으로 전환됩니다.]
이미 불사 상태에 돌입한 몸!
그리드는 데빌 슬레이어 알렉스에게 추가 데미지를 입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 흑화로 스탯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후, 이 전투를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 관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불사의 지속 시간이 1초 남았습니다.]
아직 생명력 게이지가 3분의 2나 남은 알렉스를 단 1초 내에 제압할 수 있을까?
“대장장이의 분노!!”
타탕!
타타타타타탕!!
버프를 연계시키며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그리드.
총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서 회피 동작을 생략하자 알렉스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는데 성공한다.
흑화가 상승시켜준 민첩성 덕분이기도 했다.
“아이템 변신! 리파엘의 창!”
쿠오오오오오오오오!!
그리드의 곁을 따르던 갓 핸드들이 허공에서 금색의 창으로 변신한 뒤 알렉스를 동시다발적으로 꿰뚫어버렸고,
[불사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리드의 목숨은 유한해졌다.
철컥!
코앞까지 다가온 그리드에게 권총을 겨누는 알렉스의 해골이 웃고 있는 듯하다.
생명력이 50퍼센트가량 남아 있는 상태에서 즉사를 당하는 바람에 <티라멧의 허리띠>와 <최초의 왕>칭호 효과를 누리지 못했던 그리드.
단 1밖에 남지 않은 생명력을 유지한 채 알렉스의 권총과 마주한 그는.....
‘침착하다고?’
60번째 섬.
수정구를 통해서 그리드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스틱세이가 깜짝 놀랐다.
죽음의 문턱을 이미 반쯤 넘은 상태로 알렉스를 마주 보고 있는 그리드.
검무를 펼치며, 자신에게 조준되어지는 권총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스틱세이는 그리드의 침착성이 비정상적이라고 보았다.
‘제아무리 신의 축복을 받은 존재라 한들.’
사람은 죽음 앞에 작아지는 법이다.
여태껏 번헨 열도에 발을 들였던 무수한 도전자들, 모두가 죽음을 눈앞에 뒀을 때 좌절하고 절망했다.
한데 그리드는 조금도 그런 기색이 없었으니 기이할 정도였다.
타아아앙-!
수정구 속.
그리드의 코앞에서 알렉스가 권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소름 돋는 총소리가 스틱세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꼬마 요정 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두 사람 모두 당연히 그리드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
‘나한테 최악이 아니었을 때가 얼마나 된다고!’
그리드는 이미 너무 익숙했다.
타아아아앙-!
알렉스가 권총을 발사하는 순간.
“종횡무진!”
칭호 <은밀한 영웅>에 귀속된 스킬.
200미터 범위 내의 ‘원하는 대상’에게 접근할 때까지 타켓팅 스킬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회피하는 최상위 돌진기를 전개하는 그리드였고.
“....!!”
알렉스의 보랏빛 안광이 흔들렸다.
바로 코앞에서 발사한 4발의 탄환을 그리드가 고개만 저어서 피해버렸으니 당황한 것이다.
“헉....!!”
수정구를 통해서 그리드를 지켜보던 스틱세이와 빈도 경악했다.
특히 스틱세이는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병이 재발하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드는.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칼날>의 옵션 효과로 <열망의 무아경>이 발동합니다.]
[20초 동안 공격력이 3배 상승하고 회피력이 99퍼센트가 됩니다.]
[방어력이 0이 됩니다.]
터엉-!!
아슬아슬하게 전개에 성공한 종횡무진 덕분에 탄환을 모조리 회피한 그리드.
어깨로 알렉스를 크게 밀친 뒤, 뒤로 물러나는 알렉스를 그대로 따라서 이동하며 그대로 춤사위를 펼친다.
“파그마의 검무...!”
최강의 스킬 극살(極殺)?
부족하다.
열망의 무아지경의 검에 귀속 된 옵션을 200퍼센트 활용하려면 연타 계열 스킬을 사용하는 편이 데미지 기댓값이 훨씬 더 높다.
하지만 파그마의 검무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길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 바, 연(聯)은 여전히 재사용 대기 시간에 걸려있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그리드에게는 연(聯)의 상위 스킬인 초연(超聯)이 남아 있었으니까!
“초연(超聯)!!”
“.....!”
콰쾅!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초근접 거리에서 휘몰아치는 검기의 폭풍!!
알렉스의 몸이 난도질당하기 시작했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칠흑의 화마가 몇 번이고 그 흉포한 모습을 드러내며 일대를 집어삼켰다.
62번째 섬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흔들렸다. 그대로 폭삭 주저앉을 기세로 말이다.
한편, 데스나이트 알렉스는 암흑 속성 공격을 가끔 힐로 적용받기도 했으나...
“키야아아아아아아아악!!”
모든 버프 스킬을 켜고 열망의 무아경까지 발동한 그리드의 공격력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일정량의 회복 효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62번째 섬, 정화되었다.
[데스나이트 알렉스를 해치웠습니다!]
[62번째 섬의 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파그마가 제작한)알렉스의 마법 공학 총검>을 획득하였습니다!]
[<(파그마가 제작한)알렉스의 신속 장갑>을 획득하였습니다!]
[정화 보상으로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빛이 내린다.
메마른 62번째 섬이 풀과 꽃으로 가득해졌다.
“후아.....”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쟁취한 그리드.
안도하고 기뻐하며 벌러덩 드러눕는 그의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사실, 게임을 플레이함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 부여는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은 게임 그 자체로 재밌고 즐거웠으니까.
“그리드 님!! 그리드 님 무사하십니까!!”
저 멀리, 스틱세이가 호들갑을 떨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꼬마 요정 빈도 열심히 날갯짓하며 그의 곁을 따랐다.
그들은 점차 정화되어가는 번헨 열도를 보면서 잊고 있던 꿈과 희망을 품어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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