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2권 - 10화
“아이린!!”
“그리드 전하!!”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
공격력 1억조, 공격 시마다 무조건 메테오와 즉사 발동 등등.
꿈에 그리던 개사기 아이템은 아닐지라도, 그리드는 명실상부 최강의 지존 무기 제작에 성공하고 말았다.
Satisfy를 시작하고 현실 시간으로 3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야 이룬 업적.
그리드가 느끼는 기쁨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것이었다.
오래간만에 아이린과 재회한 그가 하하호호 거리면서 즐거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못 본 새 더욱 더 아름다워지셨구려.”
그윽한 미소를 그린 그리드가 아이린의 부드러운 은발을 어루만졌다.
그리드의 손길을 따라서 움직인 아이린의 앞 머리카락 사이로 예쁘게 솟은 작은 이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이마였기에, 그리드는 저도 모르게 그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말았다. 기사들과 하녀들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린의 우유처럼 흰 피부가 홍당무처럼 붉어지는 순간이었다.
“기뻐요. 전하의 상냥한 입맞춤이 늘 그리웠어요.”
사실, 최근의 아이린은 근심 걱정이 너무 많았다.
유라, 지슈카, 유페미나, 라엘라 등.
그렇지 않아도 그리드의 주변에는 절세의 미녀가 넘쳤건만, 최근에는 수애라는 경국지색까지 등장하였으니 그리드가 욕망을 참지 못하고 여러 명의 첩을 거느리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리드는 국왕으로써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마다했다. 아이린의 염려와 달리 첩을 두지 않았다.
물론 아이린은 알고 있다.
그리드가 첩을 두지 않는 이유, 오로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워낙에 바빠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언젠가는 전하께서도 첩을 두실 테지.’
아이린은 가슴이 아팠다. 그리드의 따스한 손길과 숨결을 다른 여성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슬펐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드를 독점할 생각이 없었다. 독점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릇 존귀한 존재라 하면 많은 자식을 두어야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리드는 많은 첩과 자식을 거느려야하는 위치였다.
‘더군다나.’
그리드는 신의 축복을 받은 자.
세월의 흐름조차 비껴나가는 존재이다.
그리드와 혼인 후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린은 어느덧 20대 중반을 넘어선 반면 그리드는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은 둘이 딱 어울리는 나이대로 보였으나 10년만 지나도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이다.
‘나는 전하와 어울리지 않아.’
그리드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유라와 지슈카다.
뼈아픈 현실을 상기하는 아이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린?”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웃던 아이린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그리드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뭔가 실수라도 하였는지 걱정했다.
당황하는 그의 가슴에 아이린이 깊숙이 안겨들었다.
“너무 기뻐서 그래요. 전하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요.”
“.....”
그리드는 눈치가 더럽게 없는 인물이다. 유라와 지슈카가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단 사실조차 아직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바보 천치는 아니다.
아이린은 마음을 공유하며 살을 맞댄 여인인 바,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드는 어렴풋이나마 눈치챘다.
‘아이린... 칸... 로드....’
목숨의 유한함은 자연의 섭리.
Satisfy의 시간 흐름이 현실과 다른 것 또한 섭리다.
지금은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소중한 사람들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거라고 생각하자, 그리드는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고 우울해졌다.
하지만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그는 아이린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행복만 주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 덕분에 행복할 수 있었던 자신이 그녀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아이린!”
“전하.... 읍, 으읍.”
“...헙.”
그리드와 아이린의 곁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과 시녀들이 귀까지 붉히면서 시선을 벽으로 돌렸다.
그리드의 입술이 아이린의 작은 입술을 집어삼킨 까닭이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에 자신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뜨거운 입맞춤을 나눴다.
[템빨왕 그리드와 왕비 아이린의 식지 않는 사랑이 백성들의 귀감이 됩니다.]
[템빨국의 혼인률과 출산률이 20퍼센트 상승합니다.]
[템빨국의 인구 증가율이 인구 대비 높아집니다.]
“응? 이게 웬 개이득?”
집무실에 돌아와 있던 라우엘이 쾌재를 부르는 반면.
“...쉬펄.”
대머리 반트너는 눈물 흘렸다.
모태 솔로의 비애를 알 리 없는 폰은 그를 비웃을 따름이었다.
***
“엄청나군....”
대 연병장의 전투 흔적을 살펴본 피아로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데미안에게 밭일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그였기에 충격이 더 컸다.
“기간제 농부 2... 아니, 교황 성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정도로 템빨왕 전하께서 강해지셨다고?”
피아로의 질문에 아스모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앞으로 2~3년 후에는 나보다 더 강해지실 테지.”
“허허....”
아스모펠은 과장을 모르는 인물이다. 그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피아로는 그리드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해보았다.
일신의 능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였던 둔재.
“하지만 이제는 천재조차 압도하는가.”
이게 바로 노력의 힘이며 세월의 흐름인가 싶다.
어느덧 주름이 지기 시작한 피아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드와 크라우젤.
다음 세대가 써내려갈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에 그는 뿌듯하고 든든했다.
지금 당장 템빨국을 압박하고 있는 사하란 제국조차도 영원하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문제는.’
바알의 계약자라는 녀석이다.
그 초월적이면서도 불길한 인물 또한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존재였다. 녀석이 그리드 전하의 앞길을 방해할 것은 불 보듯 뻔했고 피아로는 불안했다.
‘...놈을 처단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 되겠군.’
피아로가 결의를 다지게 만들 정도로 아그너스의 존재감은 컸다.
***
발할라.
군신 아레스가 세운 국가였고 이에 대한 관심은 무척 뜨거웠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발할라로 이주하여 아레스의 군대에 입대하기를 희망했다.
템빨을 얻으려면 템빨국으로, 군대라는 체계적인 조직 안에서 꾸준한 성장의 기회를 얻으려면 발할라로.
플레이어들이 국가를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그만큼 사하란 제국의 인구 유입률은 줄었다.
당장에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제국은 확실한 손해였다.
제국 황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쾌한 현상이었다.
“템빨국의 자멸은 아직인가?”
사하란 제국 황도 타이탄에 제국의 수뇌부가 모였다.
그들 대부분은 기존의 세력구도를 무너뜨린 신생국가 템빨국과 발할라를 당장에 징벌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민족 말살 정책을 펼쳐온 제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다.
병사들과 백성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갖춘 템빨국과 발할라를 침공할 여력이 지금의 제국에는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우선 템빨국의 자멸이었다.
템빨국에게 과도한 공물을 바치라고 요구하고 그들이 자연히 패망의 길을 걷도록 의도했다.
한데, 템빨국은 의외로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참으로 요상한 일이야. 돈이 없을 터인데도 어찌 계속 무구를 생산하고 백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거지?”
“우리에게 세수입을 속이고 자금을 빼돌릴 가능성은?”
“없습니다. 저희가 철저히 감시하고 있으므로 불가능합니다.”
“그럼 지금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놈들이 무한히 증식하는 광물과 식량이라도 확보하지 않은 이상 놈들이 건재한 지금 상황은 설명이 되질 않는데?”
“무한히 증식하는 광물과 식량이라.... 그것 참 재미있는 망상이군.”
“아무래도 타국에서 템빨국을 돕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템빨국의 외교 자체를 차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슨 명분으로? 차라리 전쟁을 일으키는 게 더 편하겠군.”
“발할라가 문제야. 발할라가 건국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템빨왕의 도움 덕분. 템빨국과 발할라가 더 없는 맹우관계일 것이 기정사실인 이때 템빨국을 쳤다가는 고립될 여지가 커.”
“템빨국과 발할라를 동시에 침공하면 간단하지 않나?”
“그럴만한 군사적 여유가 어디에 있는가? 빌어먹을 이민족 잔당들이 호시탐탐 제국을 노리고 있는 이때 대규모의 군사를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해.”
“계속된 전쟁으로 속국들이 기근을 겪고 있습니다. 속국으로부터 전쟁 자금을 원조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여 자국민의 고혈을 짜내야할 텐데 그랬다가는 내부적으로 문제가 심해질 겁니다. 향후 수 년 간은 전쟁을 일으킬 수 없어요.”
“대사하란 제국이 빈곤을 논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이게 다 이민족 놈들의 끈질김 때문이다.”
“역시 가장 먼저 말살해야할 대상은 이민족 놈들이야. 템빨국과 발할라는 그 다음이라고.”
수개월 내에 자연히 멸망할 줄 알았던 템빨국이 건재하자 빚어진 혼선이다.
어째서 템빨국은 기근에 시달리지 않는가?
제국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
“이번 분기도 역시 풍작이로군요. 축하드립니다, 전하.”
“이게 다 피아로 덕분이지.”
템빨국의 농업은 경이적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계절마다 풍작을 거뒀다.
전설의 농부 피아로가 ‘패시브’로 보유한 풍작 스킬 덕분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사기인 피아로였다.
“제국에 대부분의 재물을 빼앗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백성들과 병사들이 굶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야.”
안도하는 그리드에게 라빗이 고개를 저었다.
“겉으로 보기에만 평화로울 뿐, 템빨국의 상태는 사실 무척 위태롭습니다. 돈이 없어서 각 분야에 투자를 할 수가 없고 상업이 발달하질 못합니다. 이대로는 결국 도태 될 뿐입니다.”
“결국 제국의 속국으로부터 벗어나야 된다는 거지?”
“그럼요.”
라빗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발할라의 존재가 제국의 침략을 막아주게 되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템빨국이 대놓고 제국의 속국에서 해방되겠노라고 선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눈 뒤집힌 제국이 앞뒤 분간 않고 쳐들어오면 막을 여력이 없었다.
“흐으음....”
그리드가 깊은 수심에 잠긴 그때였다.
-템빨왕 님 뭐하시는가?
발할라 국왕 아레스로부터 귓속말이 날아왔다.
-무슨 일입니까?
언젠가는 적이 될 수 있다지만, 지금의 아레스는 그리드가 가장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반갑게 응답하는 그리드에게 아레스가 설명했다.
-제국에서 사신을 보내왔네. 제국에 충성의 증표로 공물을 바치라고 하더군.
-역시 발할라에도....
그리드는 아레스가 당연히 제국의 요구를 수락했으리라 보았다. 하지만 아레스는 라우엘의 바람대로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내가 그래서 꺼지라고 했지.
-엥?
-아그너스를 보내서 우리를 방해했던 주제에 뭘 이제 와서 충성을 맹세하라는 거야? 염병할 새끼들 팝콘처럼 튀겨서 콜라에 말아먹어 버릴라.
-.....제국에게 침략의 빌미를 제공해준 거 아닙니까?
-당장 쳐들어오진 않겠지. 템빨국이 두려울 테니까. 뭐, 하지만 이민족들을 어느 정도 처리하고 나면 발할라로 먼저 진격해올 게 기정사실화되긴 했어.
-어쩌려고요?
-뭘 어째. 템빨왕 자네한테 신세 좀 져야지.
-원군을 보내달라는 겁니까?
-아니, 아이템만 보내주면 충분해.
-....?
-나의 병사들에게 자네의 템빨을 무장시키고 싶네. 물론 정당한 가격을 주고 구매할 계획이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거야.
최강의 군대에게 최강의 아이템을 무장시킨다면 제국의 침략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 아레스의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리드 입장에서는 아레스를 거기까지 신뢰하기 어려웠다.
템빨로 무장한 아레스 군단이 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아레스가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난 자네가 좋아. 굳이 자네와 적이 되고 싶지는 않네.
-....그러고 보니 당신도 아재였지.
-응?
-아니, 아닙니다. 일단 라우엘과 상의해보죠.
어째서 나는 아저씨들에게만 사랑 받는 걸까!
심각하게 고민해보면서, 그리드가 아레스에게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라우엘에게 찾아가 의논했다.
라우엘이 솔직히 말했다.
“만약, 아레스가 이 제안을 어제 해왔다면 저는 당연히 거절하라고 진언했을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아레스의 요구를 수락하고 아이템을 판매해서 돈 버십쇼.”
“왜?”
“아레스가 뒤통수를 때리더라도 전하께서 응징하시면 그만 아닙니까? 그 타오르는 칼날에 봉인 된 어둠의 불꽃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큭...! 큭큭큭!!”
“.....”
그리드의 무력은 이제 국가급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단언하는 라우엘이었다.
“발할라와의 무역은 제게 맡기시고 이제 그만 떠나시죠. 번헨 열도를 정복하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