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2권 - 4화
아그너스.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출생인 그는 재학 시절 학우들에게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했다. 괴롭힘의 강도가 무척 높아서 끔찍한 일화가 셀 수 없이 많을 정도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강도 높은 괴롭힘은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이어졌다.
“괴롭힘의 대상이 된 이유는요?”
서류를 읽어나가던 라우엘이 질문하자, 담배에 불을 붙인 탐정이 대답했다.
“말투가 어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더군.”
“네? 고작 그런 이유로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라우엘.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토한 탐정이 어깨를 으쓱였다.
“본래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데 특별한 계기는 필요 없소. 대상이 만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재미있고,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리고... 뭐, 굳이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주목해야할 점은, 아그너스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연인이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부분이오.”
“......”
내용은 소름끼칠 정도로 잔인했다.
아그너스를 수년 동안 괴롭혔던 사람들. 아니, 쓰레기들이 아그너스의 연인을 집단으로 강간한 것이다. 그것도 아그너스가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다.
“큰 충격을 받은 여성은 결국 자살을 택했고 이때부터 아그너스는 돌아버렸소. 그는 끔찍한 복수극을 벌였지. 그리고 법원에서 28년 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인권단체의 운동 덕분에 3년만 복역하고 출소할 수 있었소.”
“그때 마침 Satisfy가 출시됐고 말이죠....”
“아그너스의 정신과 상담의가 사회적응 훈련의 일환으로 Satisfy를 적극 추천했다더군. 이후 아그너스는 소위 말하는 게임중독자가 되었고, 주변 사람들은 도리어 안도했다고 하오. 시한폭탄 같은 존재를 게임 속에 가둬둘 수 있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 됐다 싶었던 거지.”
“.....”
하긴, 현실을 외면하기에 게임처럼 적합한 수단도 없을 것이다.
현실과 달리 즐겁고 재밌는 이야기가 즐비하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이 적용 된 세상.
톡톡.
테이블을 두드리며 생각해보던 라우엘이 서류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했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감사인사를 받을 것까지야. 다음에 또 필요한 일이 생기면 불러주시오. 시애틀은 언제 와도 좋군.”
“......”
탐정과 헤어지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라우엘은 깊은 상념에 잠겼다.
***
“노에, 밥 안 먹어?”
“먹고 싶지 않다냥.”
“왜?”
“하는 일도 없는 내가 밥을 먹어서 뭐하냐옹?”
“.....”
펫은 생물이다.
활동 없이 펫 인벤토리에만 머물고 있어도 식사를 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리고 노에는 늘 식사시간만 기다리는 돼지였다.
한데 식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빵빵하게 부풀었던 노에의 배가 늘씬해진 모습을 보고 걱정한 그리드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아그너스와 싸울 때 소환하지 않아서 삐친 거야?”
움찔.
노에의 세모 모양 귀가 씰룩였다. 급기야 꼬리를 세운 노에가 캬르릉 거렸다.
“맞다냥! 어째서냥! 어째서 싸울 때 이 몸을 불러주지 않은 거냐옹!!”
이래 뵈도 노에는 그리드를 부모로 인식하고 있었다.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가장 먼저 본 사람이 그리드였고 쭉 그리드에게 키워졌으니 그건 당연했다. 노에는 언제나 그리드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리드가 막강한 적을 상대로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을 때는 걱정 되서 그루밍도 못했을 정도였다.
“이 몸은 지옥 제일 마수다냥!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이므로 인간 너는 나를 의지해야하는 것이다! 냥!!”
도끼눈까지 뜨고 컁컁거리는 노에.
녀석의 마음을 헤아린 그리드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 앞으로는 너를 잊지 않을게. 그러니까 일단 밥부터 먹어.”
그리드는 과연 정말로 노에를 잊은 걸까?
그렇지 않다.
아그너스라는 강적을 상대하면서 최강의 펫인 노에의 존재를 망각할 리 없다.
사실, 아그너스와의 전투 중 그리드는 몇 번이나 노에를 소환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그너스는 무려 제1위 대악마 바알과 계약한 존재이며, 본래 멤피스는 대악마의 펫이다.
그렇다.
그리드는 두려웠던 것이다.
혹시라도 노에가 아그너스의 기운에 영향을 받아서 자신을 배반하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배신은 너무 극단적인 걱정일 수도 있지만, 노에가 아그너스에게 특별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아직 바알의 계약자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그리드였고 경계심이 높은 건 당연했다.
‘바알의 계약자는커녕 네크로맨서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
하필이면 템빨단에는 네크로맨서가 없다.
애초에 네크로맨서는 솔로 플레이에 특화 된 클래스이다보니 길드 가입률이 적은 편이었다.
‘일단 네크로맨서에 대해서 이해하는 게 좋겠어.’
특히 데스나이트의 구조가 궁금하다.
생각한 그리드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영혼을 노에에게 식사로 내준 뒤 로그아웃했다.
***
네크로맨서.
해골, 좀비, 구울, 해골 전사, 해골 궁수, 해골 마법사 등의 언데드를 소환하는 클래스이다.
지배력 스탯이 높을수록 더 많은 언데드를 소환할 수 있고, 언데드의 레벨은 소환사의 레벨에 영향을 받는다.
300레벨 네크로맨서의 평균 지배력 스탯은 1,500으로 추정되며, 이는 150마리의 해골 혹은 15마리의 해골 마법사를 동시에 소환할 수 있는 수치이다.
즉, 언데드마다 점유하는 지배력 스탯이 다르다는 뜻.
네크로맨서가 3차 전직하고 사역할 수 있는 데스나이트의 경우 지배력 스탯을 최소 1천 이상 점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스나이트.
생전에 명성을 쌓은 전사의 시신을 재료로 제작하는 죽음의 기사.
어떤 시신을 재료로 사용하였느냐에 따라서 스탯과 스킬의 수준이 달라지므로, 생전에 보다 강했던 존재의 시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제작한 데스나이트는 영구히 사용할 수 있고, 펫과 마찬가지로 사냥을 통해서 레벨을 올릴 수 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획득하는 스탯, 스킬 포인트를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따라서 데스나이트의 성향이 갈린다.
3차 전직 네크로맨서가 사용 가능한 <데스나이트 제작>스킬 횟수는 총 1회에 불과하지만 4차 전직할 경우 횟수가 늘어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중.
“아그너스 그 녀석은 대체 얼마나 사기인 거야?”
각종 커뮤니티에서 네크로맨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신영우가 혀를 내둘렀다.
네크로맨서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아그너스의 사기성을 절감할 수 있게 된 까닭이다.
“요즘 사람들이 아그너스, 아그너스 타령하는 이유가 있었구만....”
이틀 전의 전투 이후.
세상 사람들은 아그너스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가 파그마의 후예, 그리고 검성에 이어서 새로운 레전드리 클래스의 주인이 된 거라고 추측하며 흥분했다.
“이제 성장형 히든 클래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까. 흐음...”
네크로맨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아그너스의 전투력을 복기해본 영우가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식사한 후 다시 캡슐에 누웠다.
“우선 번헨 열도다.”
61번째 섬을 지키고 있는 란스티어의 데스나이트.
녀석과의 전투를 통해서 대언데드용 아이템 창조에 영감을 받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번헨 열도를 완벽히 정복, 파그마의 유산을 거머쥐는 것.
신영우는 이것을 당면한 목표로 잡았다.
당장 강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했다.
“로그인.”
***
Satisfy에 접속한 그리드는 단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접속하자마자 라인하르트 외곽의 필드로 이동, 4개의 갓 핸드와 노에, 랜디, 그리고 2마리 템빨골을 소환했다.
그리고 녀석들에게 사냥을 시킴으로써 경험치를 확보하는 한편 자신은 제자리에 앉아서 천 기술 제작을 연마했다.
거의 매크로급... 아니, 네크로맨서급 자동 사냥이었다.
“아이템 정보.”
쉴 새 없이 바느질을 하면서, 그리드는 <티라멧의 허리띠>정보를 불러왔다.
<티라멧의 허리띠>
등급:유니크(성장형)
경험치:58.9%
*받는 피해를 10퍼센트 줄여줍니다.
*체력+250
자작급 진혈족 티라멧의 고유 마력이 깃든 허리띠입니다. 레전드리 등급으로 성장할 경우 뱀파이어 자작 <티라멧>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무게:13
“58.9%....”
티라멧의 허리띠를 획득하고 게임 시간으로 벌써 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티라멧의 허리띠는 여전히 유니크 등급에 정체되어 있었다. 레전드리 등급까지 성장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일단 티라멧을 소환할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전투력이 급상승할 가능성이 높은데.”
티라멧의 탱킹능력은 뱀파이어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티라멧을 소환할 수 있게 되면 그리드는 훨씬 더 안정적인 전투가 가능해졌다.
‘갓 핸드에게 방어 명령을 내릴 필요 없이 티라멧한테 몸빵을 시키면 되니까 안정성과 공격력이 동시에 극대화 될 거야.’
그리드의 의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61번째 섬을 지키고 있는 란스티어의 강함을 고려해 봤을 때, 녀석에게 맞을 때마다 티라멧의 허리띠의 경험치가 쑥쑥 오를 여지가 컸기 때문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리드가 바느질을 멈추지 않고 이동을 개시했다. 대현자 스틱세이에게 찾아가 번헨 열도로 이동시켜달라고 부탁할 심산이었다.
‘가만.’
조금 걷던 그리드가 제자리에 섰다.
자신이 과거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고는 하나, 란스티어와의 승부에서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웠던 까닭이다.
‘란스티어에 대비한 방어구 제작은 이미 예전에 끝내놨으니까... 새로운 무기를 제작해서 가는 편이 좋겠는데.’
실패작을 벌써 몇 년째 쓰고 있는지 모른다.
가장 최근에 검은 귀신을 만든 후에도 실패작을 써야했을 정도로, 그리드는 실패작 이후 이렇다 할 명검을 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흠.’
그리드에게는 벨리알을 레이드한 후 확보한 제작재료가 남아있다. 또한 개국공신들에게 아이템을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벨리알의 부속품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드는 이를 토대로 꿈꿔왔던 마검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벨리알의 부속품들은 마기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대언데용 무기로 제작하기엔 무리가 큰데....’
애초에 대악마의 제작재료를 이용해서 한 가지 특성에만 특화 된 무기를 만든다는 건 아깝기도 하다.
‘일반 몬스터에게도 강하고, 사람한테도 강하고, 대형 몬스터에게도 강하고, 언데드에게까지 강한 무기야말로 진정한 지존 무기라고 할 수 있잖아?’
하지만 그런 무기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당장 신화급 무기인 주작궁과 리파엘의 창만 봐도 각각 불과 신성력에 특화되어 있다.
완벽한 전천후 무기가 존재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니, 잠깐.”
고민하던 그리드의 뇌리로 번개가 쳤다.
색다른 발상이 떠오른 것이다.
히든 스킬 <아이템 합체>가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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