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500화 (495/1,794)

템빨 31권 - 21화

“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이 아니다.

그리드와 아그너스의 대결 방송을 시청 중인 여성들이 내지르는 환희의 함성이었다.

백발 그리드의 매혹적인 모습 탓이다.

마치 골격 자체가 바뀐 것처럼 전체적인 선이 얇아진 그리드는 아름다운 미청년이 되어있었다. 젊은 시절의 브라함을 연상시키는 날렵하고 오뚝한 콧날과 우수에 찬 눈빛이 여성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

이름:브라함 에슈발트(그리드)

직업:대마법사

칭호:지공(智公)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입니다. 아직 진리를 깨우치지는 못하여 아집이 있습니다. 탐구욕이 무척 강하고 자부심이 높아 이는 때때로 독으로 작용합니다.

*지력 35퍼센트 상승.

*낮은 확률로 폭주.

칭호:전설이 된 자

....

레벨:400(보정)

생명력:100,000/100,000(보정)

마나:200,000/200,000(보정)

근력:158 체력:1,400

민첩:601 지력:7,000+2,100

*인간의 육신으로는 브라함 에슈발트의 근원적인 힘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능력이 크게 봉인 된 상태입니다.

*브라함의 영혼이 충격을 받고 잠든 상태입니다. 육체의 제어권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능력이 더욱 크게 봉인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고의 트롤링 같은데.’

브라함은 제2회 국가대항전에서 큰 사고를 친 전력이 있다.

크라우젤과의 대결 당시, 방심하였다가 패배하고 만 것이다.

한데 또 이 지랄이다.

중요한 순간에 강제 퀘스트를 발동시켜놓고서 자신은 나 몰라라 잠에 빠지다니?

‘사람 엿 먹이려고 작정한 게 아닌 이상에야...’

절레절레.

연신 투덜거리던 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불만이나 토로하고 있을 여유가 없음을 상기한 것이다.

아그너스와의 거리를 벌리고 안전거리를 확보, 상태 창을 확인하는 그리드의 두뇌가 바쁘게 회전하고 있었다.

‘레벨 400, 지력 9천, 10만, 20만 대의 자원....’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거머쥘 수 있는 수준의 능력치가 아니다.

과거, 브라함과의 동화를 처음 경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퀘스트용 신체’라고 봄이 옳았다.

‘이정도면 아그너스고 나발이고 한 방에 조질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그리드의 뇌리를 찰나 스쳐지나갔으나.

‘아니, 그렇게 쉽게 해결 될 리가 없지.’

정신 바짝 차린 그리드가 현실을 직시했다.

아그너스에게는 리치 무무드가 있다. 그리고 이번 퀘스트의 주체 중 하나가 바로 무무드다.

그리드가 예상하건데, 무무드의 능력치 또한 퀘스트의 영향으로 보정 받았을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지금 내 스펙과 무무드의 스펙은 매우 높은 확률로 동률을 이루고 있을 거야.’

아그너스 또한 자신과 똑같은 내용의 퀘스트를 진행하게 되었을 터.

그래, 양쪽의 조건은 대등할 것이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아그너스는 무무드를 다뤄본 경험이 많을 거다. 반면 나는...’

그리드는 동화 상태의 자신을 컨트롤해본 경험이 없다.

동화 때마다 육체의 주도권이 브라함에게 넘어갔었기 때문이다.

그리드는 브라함과 동화한 자신을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동화 상태의 육체가 낯설었다.

‘그리고 애초에 난.’

대장장이이자 검사.

마법사가 아니다.

‘마법사 클래스를 과연 내가 잘 다룰 수 있을까?’

마법사는 어쌔신 클래스와 더불어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직업군으로 꼽힌다.

종류별로 캐스팅 속도가 다른 마법을 매번 적재적소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높은 순발력이 필요했다. 머리가 둔한 육체파 그리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군인 것이다.

“후.”

심호흡한 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긴장감과 불안감에 떨리는 몸을 억누르고자 노력했다.

갑자기 생성 된 퀘스트 때문에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다.

일단 침착해야한다.

그리드가 마음을 추스르고자 애쓰는 그때였다.

띠링~

알림음과 함께 퀘스트 내용이 시야에 멋대로 떠올랐다.

<브라함&무무드>

★히든 퀘스트★

생전의 브라함은 무무드를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제자를 그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무무드를 등한시하였고, 무무드의 업적을 갈취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무무드를 죽여야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자신이 지상 최고의 존재로 군림해야한다는 아집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라함은 무무드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해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되고 수백 년.

브라함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정’이라는 감정을 깨우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치병을 앓게 된 무무드는 브라함의 곁을 영영 떠났습니다.

브라함이 그를 다시 찾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짧은 설명.

이어서 한 편의 영상이 출력됐다.

“당신이 나를 외면하였을 때도... 당신이 나의 공적을 가로채고 세상에서 나의 이름을 지워버렸을 때도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심해 도시 세이렌.

두 명의 남자가 우주처럼 어둡고 신비로운 바다를 배경으로 둔 채 마주보고 서있다.

살아생전의 브라함과 무무드였다.

뱀파이어 브라함은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반면 비쩍 마른 무무드는 마치 송장처럼 생기를 잃고 있었다.

쿨럭쿨럭.

한 마디, 한 마디를 뱉을 때마다 피를 토하면서도 무무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자를 두려워해야할 정도로 지독한 강박에 시달리는 당신이 안쓰러웠으니까... 그저 가엾을 뿐이고 원망할 수 없었어...”

“......”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지독히도 원망스럽습니다. 나를 리치로 만들겠다고요...? 죽어서도 당신을 위해서 봉사하라는 겁니까...? 내게 안식은 없는 겁니까!!”

피눈물을 흘리는 무무드였다.

증오로 가득 찬 그의 눈빛을 슬그머니 외면한 브라함이 애써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 아니냐? 허무하게 소멸하는 것보다야 리치가 돼서라도 내게 도움이 되는 편이 낫지.”

욱씬!

영상을 시청 중인 그리드의 심장이 따끔거렸다.

브라함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사실은 너를 살리고 싶었다.’

‘네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하늘이 내린 너의 재능, 죽어서라도 세상에 알리기를 바란다.’

그렇다.

무무드를 질투하고 그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에 대해서 브라함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신뢰하고 따랐던 수제자 무무드를 뒤늦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것인지, 채 서른도 되지 않는 나이에 죽음을 앞둔 무무드를 브라함은 이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무무드를 리치로 만들어서라도 곁에 두고 그의 명성을 세상에 드높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솔직하게 밝히기에는 브라함의 자존심이 너무 셌다. 자신에게는 무무드를 동정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무무드를 리치로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정상적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동족마저 살해하였고, 그 결과 뱀파이어의 세계로부터 추방당한 전력이 있는 브라함.

그는 뱀파이어에게도, 인간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비뚤어진 존재였던 것이다.

“당신은... 당신은 마지막까지 최악이군요... 만약 내게 한 줌의 마력이라도 남아있었다면 당신을 죽였을.... 쿨럭! 쿨럭쿨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리치가 되는 영광을 받아들여라. 파그마가 혼의 그릇을 완성하는 순간, 나는 불멸을 되찾을 것이며 그때 내 곁에는 네가 있을 것이다. 덧없이 사라지느니 죽어서라도 모두에게 찬사 받는 존재가 되어라.”

“닥치십시오...!”

“네게 거부권은 없어. 네가 죽고 무덤에 묻히는 날, 나는 너의 시신을 꺼내어 너를 불멸의 존재로 부활시킬 것이다.”

영상의 끝이었다.

후일담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현재 무무드는 리치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즉, 브라함이 본인의 결정을 강행했다는 증거다.

문제는.

‘무무드의 리치를 아그너스가 가로챘다는 거지.’

그것도 템빨단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리드가 엘핀스톤과 동귀어진한 직후, 뱀파이어의 도시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썩을.’

유페미나가 <무무드의 영혼 해방>퀘스트를 얻은 이후에야 아그너스와 브라함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됐던 그리드.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면서, 잠들어있는 브라함에게 질문해본다.

‘브라함 당신은 이제 와서 무무드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 거지?’

뭐, 굳이 대답은 필요 없다.

그리드는 이미 브라함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뻔하지...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또라이였는지 뒤늦게 깨닫고 무무드에게 사죄하고 싶은 거겠지. 맞지?’

물론, 이제 와서 사과한다고 해봤자 의미는 없을 것이다.

이미 무무드는 너무 큰 고통을 맛보았고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브라함이 백날 사죄해봤자 무무드는 브라함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용서한다고 해서 무무드가 맛본 고통은 지워지지 않는다.

‘브라함 당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고.’

그리드는 동화의 사전적 의미를 돌이켜봤다.

서로 다른 것이 닮아서 같게 됨.

그래, 그리드와 브라함은 달랐다.

하지만 동화를 반복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왔고 조금씩 변해왔다.

그리드 덕분에 브라함은 이제 인간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다.

무무드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브라함은 무무드에게 반드시 사죄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일 터다. 그게 죄를 저지른 자의 책임임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 그게 남자지.”

학창 시절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이준호 녀석을 그리드는 오래간만에 떠올려보았다.

만약, 녀석이 내게 찾아와 지난날의 과오를 사죄하였다면?

과거의 고통이 없던 일이 되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억울함은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을 것이다. 마음의 어둠이 눈곱만큼이라도 걷혔을 것이다.

“...해보자.”

딱히 브라함을 위하는 게 아니다.

그리드는 본인의 퀘스트를 위해서, 피해자인 무무드의 마음을 위해서.

‘이겨야 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목록을 확인했다.

한편 아그너스는.

“큭큭큭... 그래, 무무드 너 또한 병신이었나.”

무무드의 입장에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아그너스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평소의 광소와는 다른 느낌이다.

아그너스의 미소에는 지독한 분노가 서려있었다.

“등신 머저리 새끼.”

병신이니까 당하는 거다.

피해자가 병신이다.

아그너스는 약자를, 피해자를 혐오한다.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으니까.

덥썩!

비쩍 마른 손으로 무무드의 두개골을 거머쥔 아그너스가 금안을 번들거리며 속삭였다.

“피해자의 선택지는 단 두 개뿐이야. 그냥 나가 뒤지거나, 아니면 복수하거나.”

다 잊고 그냥 살아간다?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니다. 과거를 외면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마음 잃은 송장이나 다름없다.

“죽여, 무무드. 과거를 청산하고 병신에서 탈피해. 그리고 이번에는 네가... 우리가 짓밟는 거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무무드의 리치가 무지갯빛 마력을 폭사시켰다.

7개 속성을 내포하고 있는 신개념의 마력이었다.

아그너스는 무무드가 400레벨이 되면서 개방된 최상급 무무드식 마법을 처음부터 연발, 확고부동한 승리를 쟁취할 각오였다.

반면 그리드는.

“파이어 볼. 다크 커터.”

“...?”

최하급 마법들만 사용한다?

그리드의 비상식적인 대응에 아그너스가 어리둥절해지는 그때.

퍼어어어어어어어어엉!!

아직 마법을 완성시키기 전이던 무무드가 불꽃과 어둠 칼날에 적중당하더니 반파 당했다.

고작 파이어 볼과 다크 커터 따위에 리치의 마나 실드가 꿰뚫린 것이다!

“무슨...!”

어울리지 않게 당황하는 아그너스.

돌아가는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에게, 그리드가 <벨리알의 지팡이>를 위시해보였다.

“신화급 템빨이다, 새끼야.”

지력 30퍼센트 상승.

마법 캐스팅 속도 30퍼센트 상승.

3가지 종류의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 가능. 단, 숙련이 요구됨.

화염 마법과 암흑 마법 동시 캐스팅 성공 시, 각 마법의 위력이 200퍼센트 증가.

마법 치명타 확률 20퍼센트 상승. 마법 치명타 데미지 150퍼센트 상승 등등.

벨리알의 지팡이의 스펙이었다.

약화 된 대악마만 사냥해본 아그너스 입장에서는 미지의 영역에 존재하는 신화급 아이템의 위력,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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