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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98화 (493/1,794)

템빨 31권 - 19화

“벤타오의 조롱.”

“....!!”

아그너스가 정체불명의 스킬을 사용하자 그리드는 믿기지 않는 일을 겪었다.

키히히히히히힛!!

뚱뚱한 광대의 허상이 시야에 아른거리는가 싶더니,

[벤타오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듣기만 해도 침착할 수 없고 화가 끓어오릅니다.]

[냉정을 잃습니다. 전개 중인 모든 스킬이 취소됩니다.]

[광대왕 벤타오는 반신조차도 농락하였던 인물입니다. 저항에 실패하였습니다.]

[1분 동안 상태이상 ‘격분’에 걸립니다.]

[격분이 유지되는 동안 기본 공격력이 소폭 상승하지만 방어력은 소폭 하락합니다. 또한 모든 스킬의 캐스팅 속도와 자원 소모량이 대폭 상승합니다.]

[당신이 냉정을 잃고 있는 동안 벤타오가 마수를 뻗쳐왔습니다. 벤타오의 주인과 당신의 현재 생명력이 바뀝니다.]

[49,300의 생명력이 819가 되었습니다!]

‘뭐?’

생명력이 바뀌다니?

그리드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의 스킬이었다.

그리드는 당혹을 금할 길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난감한 부분은, 벤타오의 조롱은 그리드의 생명력을 ‘감소’시킨 게 아니라 ‘바꾼 것’이기 때문에 <티라멧의 허리띠>와 <최초의 왕>의 치유, 보호막 효과가 발동하지 않았단 점이었다.

푸욱-!

[1,93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체력이 최소치가 되어 5초 동안 모든 공격에 저항합니다.]

“...!!”

냉정을 잃은 그리드의 빈틈은 컸다.

아그너스가 휘두른 칼이 그리드의 허리를 정확히 베어버렸고, 그리드는 레전드리 클래스 최후의 보험인 ‘불사’를 허무하게 상실하고 말았다.

‘제길!’

무적 상태가 유지되는 5초 내에 승기를 잡아야한다.

초조해진 그리드가 아그너스에게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는 건 아니었다.

그리드는 수많은 전투 경험을 축적해온 바, 마음이 초조하고 냉정하지 못한 상태일지라도 그의 몸은 어떻게 싸워야할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그리드는 정상적인 패턴으로 아그너스를 공격하고 있었다. 평타와 스킬을 적절히 배합해서 아그너스를 교란시키는 한편 스킬의 명중률 상승에 신경 썼다.

하지만 문제는 격분이라는 상태이상에 있었다.

빠르면 1~2초 내에 전개 가능했던 파그마의 검무 단일기가 평소와 달리 빠르게 전개되지 않았고, 그 탓에 그리드의 공격은 위협적이지 못했다.

“하? 치트를 잃었다고 바로 병신 허접이 되는 거냐?”

평타 모션을 캔슬하고 스킬을 연계시키려다가 실패하자 당황하는 그리드.

어린아이가 아등바등 휘두르는 검처럼 허접한 그의 공격을 회피해나가는 아그너스의 얼굴에서 점차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드에게 흥미를 잃은 것이다.

당연했다.

상태이상 격분은 모든 행동을 불능으로 만드는 스턴, 스킬 사용을 완전히 금하는 침묵, 육체의 조작 난이도를 높이는 혼란 등과 달리 하위로 분류되는 상태이상이다.

아그너스가 여태껏 상대해왔던 강자 중에서 고작 격분에 걸렸다고 이토록 한심한 꼴을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 그리드는?

레전드리 클래스의 압도적인 고유 능력, ‘모든 상태이상 저항’에 벌써 수 년 째 의지해왔고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그는 다른 플레이어와 달리 상태이상에 대처하는 기술과 요령을 습득하지 못했다.

그 탓에 찰나 동안 드러내는 무력함, 아그너스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한심한 꼴이었다.

“고작 너 따위가 크라우젤을 이겼다고?”

퍼엉-!!

그리드의 공격을 회피한 아그너스가 손을 뻗자, 그의 손끝으로부터 ‘차징’의 기능이 담긴 폭발이 발생하여 그리드의 몸에 타격을 입혔다.

“큭!”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 이때 아그너스와의 거리가 벌어지자 그리드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그를 본 아그너스가 이제는 분노하기 시작했다.

“벤타오의 조롱의 격분 유발은 허접한 부수 효과에 불과해.”

맞다.

벤타오의 조롱이 무서운 이유는 생명력 바꿔치기 때문이다.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격분 효과는 자랑할 부분도 못됐다.

한데 그리드는 격분에 걸렸답시고 순식간에 무력해진 것이다. 크라우젤, 아레스와 한데 묶여선 안 되는 허접쓰레기였다.

“짝퉁 새끼.”

플레이어 최초의 왕?

순전히 레전드리 클래스를 얻었기 때문에 세울 수 있던 위업이다. 그리드 본인은 하찮다.

판단하고 실망한 아그너스가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그리드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그러자.

퍼엉-!!

바알이 보유한 무수한 칭호 중 하나인 ‘파괴왕’의 기술이 불완전하게나마 재현된다.

아그너스의 평타가 ‘차징 효과를 발휘하는 중단거리 폭발’로 전환된 것이다.

그 탓에 그리드는 아그너스에게 접근조차 못한 채 계속 얻어맞았고, 어느덧 불사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1초 직전이 되었다.

그리드는 바로 그 순간을 노렸다.

[<티라멧의 허리띠>를 착용하였습니다.]

불사에 돌입하자마자 빼놓았던 아이템을 특유의 아이템 스왑 능력으로 빠르게 재장착하고,

[1,4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티라멧의 힘> 효과가 발동합니다. 생명력이 30퍼센트 회복됩니다.]

[불사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지이잉-

바닥을 기었던 그리드의 생명력 게이지가 순식간에 3분의 1 가까이 차오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드는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이후 <평정>이라는 특수 스탯을 얻었고 아이템 제작과 칭호 획득을 통해서 꾸준히 성장시켜왔다.

그리고 평정은 상태이상의 회복 속도를 높여주는 스탯이다.

본래 평정 스탯은 상태이상을 완전히 저항하는 그리드에게 쓸모없는 것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평정심을 되찾습니다.]

[상태이상 격분을 극복하였습니다.]

“파그마의 검무! 초연(超聯)!!”

쿠르르르르르르릉!!

되도 않는 중단거리 폭발 평타로 까부는 아그너스에게 압도적인 위력의 중장거리 스킬로 역공을 가하는 그리드!

“?!”

날아오는 수십 발의 검기와 대면한 아그너스가 깜짝 놀랐다.

다른 최상위 랭커들 또한 상태이상을 극복하는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리드의 상태이상 극복 속도는 극단적이게도 빨랐던 까닭이다.

‘생산직 직업군의 강점인가?’

일반 전투 직업군은 단련하기 어려운 평정심 스탯을 그리드는 아이템 제작을 통해서 단련할 수 있었고 덕분에 작금의 결과가 발생한 것일 터.

“하지만 그래봤자!”

아그너스가 다시 웃는 일은 없었다.

그는 이미 그리드에게 실망한 상태다. 그리드 따위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아그너스의 리치가 쏘아낸 마법의 파도가 그리드의 검기 폭풍과 맞부딪치며 발생하는 기파가 전장의 일각을 소멸시켜버렸다.

***

“그리드...!!”

파티 창에 떠올라있는 그리드의 생명력 게이지가 다시금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하자 지슈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마음 같아서야 지금 당장 그리드에게 달려가 그를 돕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낭패다.

흑요 때문이었다.

“어디에다가 한눈을 파는 거야?”

파지직-!

흑요가 구현한 망상 마법사가 지슈카에게 전격 마법을 쏘았다. 방어능력이 취약한 궁사 지슈카에게는 독이었다.

“윽.”

잠시간 지속되는 감전 상태 탓에 빈틈을 드러내는 지슈카.

그녀에게 흑요의 또 다른 망상 전사가 날아와 검을 찔렀지만 공격이 수포로 돌아갔다.

폰의 방해 때문이었다.

“레인 스피어!”

촤르르르르륵!!

흑요의 망상 전사가 휘두른 검을 창으로 막아냄과 동시에 수십 자루 창기를 소환하는 폰.

백마 위에 올라탄 그의 차디찬 시선을 마주친 흑요가 치를 떨었다.

“쓰레기 같은 남자들...! 너희 수컷들은 그저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지!!”

콰아앙!!

임모탈에 가입한 이후, 네크로맨서들의 도움을 받고 사냥에 매진한 흑요는 많은 레벨을 올린 상태였다. 망상을 통한 본체 보호 능력까지 강화되었으므로 폰의 레인 스피어에 일격에 당하는 꼴불견은 보이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절규하듯 외치는 그녀에게 폰이 혀를 찼다.

“내가 여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외모가 아니다. 난 여자라면 다 좋아.”

“거짓말! 닥쳐!!”

“아니, 애초에 우린 적이고 지슈카는 동료... 윽?”

흑요의 망상이 전투의 무대를 바꿨다.

시체가 즐비하였던 왕궁의 핏빛 대지가 가파른 협곡으로 변해버렸다.

폰의 기마술을 봉쇄해버리는 지형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말에서 내리는 폰의 전투력은 급감하였고, 흑요는 물 만난 고기가 되어서 지슈카와 폰의 발을 혼자서 묶었다.

한편 유페미나와 레가스의 사정도 썩 좋지 못했다.

“어리고 예쁜 년들은 다 죽어야지!!”

“꺄악!!”

아수라 레가스를 상회하는 무투가, 백요!

자유자재로 신체 사이즈와 몸무게를 변화시켜가며 무술을 구사하는 그녀의 전투력은 과연 태양급 강자다웠다.

유페미나와 레가스 둘을 동시에 상대하고도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이 미친 여자가 나한테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지?’

레가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백요의 공격을 회피한 유페미나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유난히 큰 살기를 보내는 백요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가? 한데 어찌 저리도 철천지원수 보듯이 한단 말인가?

백요는 끝까지 유페미나를 노렸다.

“그 새하얀 살결과 찰랑찰랑한 머릿결이 재수 없다고!!”

“꺄악!!”

유페미나는 도망 다니기에 급급했다.

자신이 백요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

아니다.

쉽사리 승리를 장담해선 안 되는 거겠지만, 진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유페미나가 신경 쓰는 것은 무무드의 리치였다.

전직 퀘스트 <무무드의 영혼 해방>을 위해서 그녀는 아그너스가 무무드의 리치를 소환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그너스는 무무드가 아닌 다른 리치 2마리만 소환하고 사용할 뿐, 무무드는 끝까지 소환하지 않고 있었다.

유페미나의 입장에선 초조하고 답답할 따름이었다.

‘여기서 아그너스를 만난 건 전직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전투 도중 계속해서 그리드와 아그너스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유페미나.

백요가 콧방귀 뀌었다.

“하여튼 예쁜 년들은 죄다 여우라니까? 이 와중에도 그리드가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눈치를 살피는 거야? 남자에게 기대는 것밖에 못하는 무능한 년 같으니라고.”

“뭐라고요?”

유페미나의 동그란 눈매가 가늘게 변모했다.

과거, 단신으로 페이커 일행을 전멸시켰을 때의 그 눈빛이다.

“유, 유페미나 양?”

레가스가 화들짝 놀랐다.

유페미나로부터 지슈카의 향기를 느낀 탓이다.

레가스는 모른다.

그리드가 유페미나를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이유, 유페미나도 한 성깔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퀘스트고 나발이고 이 백돼지 같은 여자부터 먼저 죽여버릴까?”

“배, 백돼지라고?!”

“그만 꿀꿀거려요. 짜증나니까.”

“....!!”

***

“그리드를 도와!”

그리드는 이미 하나의 상징이다.

아그너스가 데뷔 전부터 그리드를 때려 부셨다가는 아그너스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었다.

아레스는 아그너스가 더 이상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그 누구도 아레스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

임모탈 소속 네크로맨서 랭커 수백 명이 동시에 소환하고 제어하는 해골 군단의 위력이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특히 베라딘이 눈엣가시였다.

베라딘의 데스나이트는 아그너스의 데스나이트처럼 파괴적이지 못했지만 보다 섬세한 움직임을 자랑했다.

아그너스는 총 4기의 데스나이트와 리치를 동시에 제어하는 반면 베라딘은 1기의 데스나이트에게만 정신을 집중하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이게 도리어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베라디이인!!”

병력의 손실이 점차 커지는 것을 보고 간과할 수 없던 스캇이 전황을 변화시키고자 시도했다.

전력을 다해서 베라딘 퇴치에 집중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몸을 날려 오는 그를 백안으로 힐끗 살핀 베라딘이 미간을 좁혔다.

“당신의 그 저급한 아이디는 볼 때마다 불쾌하군요.”

“아이디 변경권 나오면 바꿀 거라고!”

채앵!

채채챙!!

베라딘의 데스나이트와 스캇의 검이 허공에서 몇 차례나 얽혔다.

둘 모두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에게 맹공을 퍼부었고 이는 결국 스캇에게 손해로 이어졌다.

데스나이트는 베라딘의 마력을 기반으로 꾸준히 회복되는 반면 스캇은 플레이어 특성상 스태미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템빨왕과 군신의 위기다.

아그너스 세력의 강함이 압도적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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