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91화 (486/1,794)

템빨 31권 - 12화

퓨레드 대교.

강보다 더 큰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벨토 왕국 교통의 핵심 중 하나답게 규모와 튼튼함이 훌륭하기로 정평 났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하여 ‘불멸의 다리’라고 불릴 정도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산개한 300기의 기마가 대교를 달리고 있다. 최대한 음지만을 골라서 이동하였으니,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 거대한 다리에서 고작 300의 기마대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철갑귀마대 4대대였다.

“속도를 높여라!”

4대대의 특기는 신속과 기습이다.

인원이 소수라는 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대교 끝에 있는 망루를 빠르게 점령한다!”

망루를 지키고 있는 적에게 이쪽이 노출되고 우리의 기습을 간파당하면 일이 귀찮아질 수 있다.

판단한 4대대장 보카드는 병사들을 재촉하였고, 기대에 부응한 병사들은 고급 기마술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대교를 순식간에 가로지른 후, 망루와의 거리를 3미터로 좁히자마자 귀마의 안장을 딛고 서더니 도약해버렸다.

달리고 있는 귀마에서부터 균형을 잃기는커녕 완벽한 점프를 뛴 것이다!

촤르르르륵!!

높이 도약한 철갑귀마대들이 집어 던진 쇠사슬이 망루의 기둥을 휘감았고,

“적...! 억!”

망루 위에서 뒤늦게 이상을 감지한 아레스 군단 병사들은 잿빛으로 산화했다.

적을 발견함과 거의 동시에 목숨을 잃었다고 표현함이 옳았다.

그만큼 철갑귀마대 4대대는 은밀하고 신속했다.

“적이다!”

방위대는 동료 절반이 사라지고 나서야 적의 침입을 자각했다.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쇠사슬을 타고 망루 위까지 올라온 철갑귀마대 병사들은 이미 마음껏 날뛰고 있었다.

“어서 봉화를 피워라! 적의 침입을 알려야한다!”

퓨레드 대교는 완전히 노출된 장소이기 때문에 감시가 쉽다.

그렇기에 자만했다.

철갑귀마대가 설마 이곳을 돌파하려고 시도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긴장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스스로의 안일함에 치를 떤 퓨레드 대교 방위대장이 봉화를 올리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가만히 놔둘 철갑귀마대가 아니었다.

봉화쪽으로 달려가는 방위대 병사들을 빠르게 제압하여 후환을 잠재웠다.

보카드를 발견한 방위대장이 꽈드득, 이를 갈았다.

“지금 네놈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 전부가 아레스 공작각하의 작품이다! 아레스 공작각하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너희들은 존재할 수 없었단 말이다!! 한데 네놈들이 감히 아레스 공작각하의 땅에 피를 뿌리느냐!!!”

“우리가 아레스 공작에게 훈련받은 이유는 오로지 왕실을 위함이었다. 아레스 공작은 필시 훌륭한 장군이며 스승이었으나 왕실을 배반한 이상 적일뿐이다.”

[퀘스트 실패!]

[4대대장 보카드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퓨레드 대교를 버리고 도망치십시오! 아레스 공작에게 적의 침입을 반드시 알려야합니다!]

‘제길!’

퓨레드 대교 방위대장 바프랑은 아레스 군단원, 즉 플레이어이다.

사실 그는 이번 전쟁에서 자신의 역할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적이 올 리 없는 다리를 지키고 있으라니, 완전히 변방으로 좌천당한 심정이었다. 공을 세울 기회조차 없었으니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자신이 맡은 역할은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이곳을 무력하게 돌파당하면 끝장이다.’

퓨레드 대교는 아레스 성까지 도달할 수 있는 최단 거리 루트다.

만약 여기서 허무하게 적에게 길을 열어준다면?

아레스는 제대로 방비할 틈도 없이 기습을 당하고 말 것이다.

‘위험해. 어떻게든 이놈들보다 먼저 아레스 님께 소식을 전달해야 한다!’

길드 채팅, 혹은 귓속말을 이용하면 적의 침입 사실쯤이야 쉽게 알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 퀘스트 진행 중이라는 점이었다.

철갑귀마대에게 기습을 당한 순간부터 바프랑은 모든 원거리 교신이 차단되는 페널티를 안고 있었다. 성까지 직접 달려가야 했다.

“핫!!”

기합을 내지른 바프랑이 망루에서 뛰어내렸다. 높이가 무려 6미터나 되는 망루에서 중갑옷을 무장한 사람이 뛰어내린다?

추락 효과 탓에 부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바프랑은 3차 전직자였고 컨트롤 솜씨가 뛰어났다.

지상에 두 발이 닫기 직전 돌진기를 사용, 몸의 궤도를 비틀어버리고 중력에 역행했다.

하지만 도망칠 순 없었다.

망루 위의 보카드가 바프랑의 착지 지점을 예측하고 창을 투척한 까닭이다.

푸욱-!

“커윽!!”

보카드는 창술의 달인.

그가 던진 창은 바프랑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고 치명상을 선사했다.

바프랑의 생명력 게이지가 3분의 1 한 번에 손실되고 말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치지직!!

보카드의 창에는 뇌전이 깃들어 있었다. 바프랑은 전격 데미지를 추가로 입고 상태이상 감전까지 걸려 마비되고 말았다.

‘빌어먹을 새끼!’

제자리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 바프랑.

감전 탓에 물약도 꺼내 마시지 못하고 주저앉는 그에게 철갑귀마대가 돌진해왔다.

‘끝이야!’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자 바프랑은 질끈 두 눈을 감았다. 그가 느끼는 좌절감은 무척 컸다.

자신이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릴 경우, 죄를 면하지 못하고 군단에서 추방당할 가능성이 높았던 까닭이다. 아레스 군단원에게 보장되어 있는 찬란한 미래가 물 건너가는 것이다.

‘XX!! 방심만 안 했어도!!’

적을 더 빨리 발견하고 봉화를 피울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까지 자책하며 후회하는 바프랑.

어느덧 지척까지 다가온 귀마들의 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죽음을 각오했다. 찬란한 미래도 포기했다.

그야말로 지옥 같은 찰나였다.

한데 바로 그 때.

쿠르르릉!!

애꿎을 정도로 맑은 하늘에서부터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4대대장 보카드가 소환한 뇌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대하고, 강렬하며, 파괴적인 벼락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

“...!?”

지근거리에 떨어진 벼락 때문에 철갑귀마대들은 화들짝 놀랐다.

바프랑을 노리고 찌르던 창을 움찔하면서 멈추고 사방으로 산개했다. 본능적인 생존욕구가 그들의 행동을 강제하고 있었다.

꿀꺽!

잠시간 침묵이 찾아왔다.

철갑귀마대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철갑귀마대는 두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지상에 뇌광이 맺혀있는 까닭이다.

그렇다.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벼락은 소멸하지 않았다. 여전히 강렬하게 그 존재감을 뽐내며 지상에 존재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파직!

파지지지직!!

잠자코 있던 뇌광이 이동을 개시했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벼락이 소멸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스스로 움직인다고?

철갑귀마대는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아수라.

수백, 수천만 무도가 중에서 단 1명만이 전직에 성공한 최강 노말 클래스의 힘을!

“레가스...!”

바프랑의 탄성이 터지는 그 순간.

“뇌룡승천!!”

스팟-!

뇌광에 휩싸인 채 이동속도와 민첩성을 극대화시킨 레가스의 신형이 산개해있는 철갑귀마대의 측면으로,

퍼엉-!!

후위로,

콰작!!

상단으로.

쿠콰콰쾅!!

매번 순간적으로 등장하면서 맹공을 퍼부었다.

결코 눈으로 쫓을 수 없는, 그야말로 광속의 공격이었다. 철갑귀마대는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레가스의 공격을 한 번씩 허용하고 말았다.

‘반응할 수가...!’

‘...없다!!’

콰자자작!!

철갑귀마대를 강타하는 레가스의 주먹과 발끝에는 뇌룡이 머물러 있었다.

놈의 아가리가 철갑귀마대를 덮칠 때마다 쩌렁쩌렁 울리는 천둥소리가 퓨레드 대교 곳곳에 메아리쳤고, 철갑귀마대는 감전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사람은 바로 폰이었다.

“좀 있다 나서자니까.”

아레스 군단은 훗날의 적.

폰은 바프랑이라는 놈이 죽은 후에 등장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레가스는 어려서부터 태권도 정신을 공경해온 인물이다.

그는 동맹원의 위기를 좌시할 수 없었고 결국 폰의 의지와 달리 먼저 나서서 바프랑을 구해버렸다.

“그러니까 호구 소리 듣고 다니지. 뭐, 너의 그런 점이 좋은 거다만.”

쯧쯧, 혀를 차다가도 웃은 폰이 칠흑의 창을 힘껏 집어던졌다.

그러자.

퍼어어어어어어엉-!!

레가스의 공격을 맞고 마비되어 있는 철갑귀마대원들의 몸이 동시다발적으로 꿰뚫렸다.

개국공신의 자격으로 하사받은 <벨리알의 창>으로 발현된 <마하 스피어>의 위력이었다.

바프랑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폰과 레가스가 이렇게 강했었다고?’

저들이 템빨단 탑 클래스의 실력자라는 사실쯤 바프랑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 유라, 지슈카, 카츠보다는 몇 수 아래로 보았다.

한데 착각이었다.

‘레가스의 신속과 폰의 공격력... 템빨단 내에서 탑 클래스 수준이 아니다.’

월드 클래스다.

오싹!

평가하는 바프랑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는다.

경계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온 레가스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

어쩜 이리도 해맑게 웃을까.

레가스의 투명한 시선을 마주한 바프랑은 부끄러워졌다.

‘나는 언젠가 적이 될 너희를 불쾌하게 여기며 경계해왔건만, 너희는 나를 진정한 동료처럼 대해주는 건가?’

바프랑은 확신했다.

자신이 위기에 빠졌을 때 레가스가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레가스는 자신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템빨단 너희들의 도량은 도대체 얼마나 넓은 것이냐...?’

반면 나는?

아레스 님의 부하라고 자처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편협하다.

당장만 봐도, 퓨레드 대교의 방위대장으로 임명된 것에 불만을 품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지 못했다.

동료들을 보살필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늘 자신의 공을 세우기에만 급급했다.

“부끄...럽군.”

템빨단 너희들을 본받겠다.

다짐하며 레가스의 손을 맞잡고 일어선 바프랑.

그가 레가스를 바라보는 시선에 깃든 것은 분명한 호감과 옅은 존경이었다.

“너희들처럼 훌륭한 사람들을 부하로 둔 그리드는 도대체 얼마나 위대한 위인인지... 나 같은 범인은 가늠조차 안 되는군.”

“...?”

레가스는 어리둥절해졌고, 얼굴을 감싸 쥔 폰은 웃음을 참느라고 고생했다.

***

@폰, 레가스와 협력하여 4대대를 궤멸시켰다.

“...?”

바프랑의 보고를 접한 아레스 군단원들이 술렁였다.

철갑귀마대 4대대는 소규모 정예 부대다. 게릴라전에 능숙한 그들의 대인전은 위협적인 것이다.

한데 그리드나 지슈카도 아니고 고작 폰과 레가스가 그들을 궤멸시켰다고?

“바프랑이 퓨레드 대교의 방위대를 효율적으로 잘 운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테지.”

누군가가 추측하자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스캇과 럭은 부정했다.

“아니, 템빨단의 전력이 우리가 가늠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난 결과다.”

“대악마를 레이드하고 획득한 아이템이 예상보다 훨씬 더 대단한가봐. 벨리알 레이드에서 보여줬던 모습보다 다들 엄청 강해졌어.”

“벨리알 레이드 당시보다 강해졌다고? 그럼 지슈카는 대체 얼마나 괴물이 됐다는 거지?”

“최소한 전쟁에서만큼은 여전히 그리드를 압도하겠지. 2만... 아니, 3만 병력을 운용할 때의 아레스 님과 비견되는 수준으로 강하다고 보는 게 옳을 거다.”

“......”

“하지만 그게 문제야. 그리드는 지슈카를 엄청 신뢰하고 있을 테고, 당연히 그녀에게 1대대를 처리하라고 명령했겠지.”

“지슈카는 임무에 실패하고 죽고 말거다.”

철갑귀마대 1대대는 다른 대대와 달리 병종이 여러 개 섞여있고 특히 방어력이 우수하다. 철갑귀마방패대의 방어력은 지슈카의 주작으로도 뚫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예 무력하진 않을 거야. 적의 체력을 소진시켜주는 역할은 충분히 수행할 거라고.”

“그래, 나도 기대 중이다. 지슈카를 상대하고 지쳐있을 1대대를 우리가 급습하면 비교적 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

1대대가 드롭할 대량의 경험치는 우리의 것이다.

단언하는 아레스 군단원들의 시야로 길드 채팅이 떠올랐다.

@1대대와 템빨단원이 조우했다. 근데...

@근데 뭐?

@지슈카가 아니라 유페미나라는 여자애가 나타났는데...?

@유페미나?

@그게 누군데?

“.....?”

전개가 자꾸 요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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