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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86화 (481/1,794)

템빨 31권 - 7화

그리드는 동대륙에서 자신이 보고 겪은 모든 일들을 템빨단원들에게 전달했다.

세력 발전을 위한 정보 공유다.

템빨단원들은 그리드에게 받은 정보를 토대로 보다 새롭고 유익한 사실을 알아내고자 노력했다.

라우엘을 필두로 삼은 참모진은 동대륙의 세력 구도와 정치, 사상, 문화, 경제, 비전 등을 파악하여 지식으로 발전시켰고 지슈카를 필두로 삼은 문관들은 동대륙의 무력 수준을 가늠했다.

지금도 양반 가람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참이다.

“그리드는 가람을 전대 전설급이라고 평가했어. 그리드가 직접 느낀 것이니 여기에 이견을 제시할 수는 없지. 하지만 말이야. 과연 가람이 대악마를 상대로도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그리드는 가람의 회피력과 방어력이 벨리알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말했다. 대신 생명력이 낮아서 다수전에서는 벨리알보다 무력하겠지만 1대1 대결에서는 벨리알을 압도할 거야. 그보다 상위서열의 대악마와도 최소 호각을 이룰 테고.”

“내 생각은 달라. 내가 볼 때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대악마가 양반보다 우위에 있을 거라고 본다. 벨리알이 소환했던 지옥 필드를 떠올려봐. 우리야 데빌 슬레이어 유라가 있으니까 지옥을 무력화시켰다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지옥 소환이 말 그대로 지옥일 거라고.”

“듣고 보니까 또 그러네. 지옥 필드에서 벨리알은 훨씬 더 강해졌었지… 제아무리 양반이 강해도 지옥을 소환한 대악마에게는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 같은데?”

“즉, 양반은 플레이어에 한해서는 전대 전설급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반면 대악마에게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건가?”

“그게 밸런스적으로도 맞지. 생각해 봐라. 양반은 환국이란 나라의 주민을 지칭하는 거라며? 결국 양반은 다수 존재한다는 뜻인데, 그들이 대악마보다 강하면 생태계가 엉망이 될 거 아니야?”

“맞네. 양반들이 지옥 쓸고 다니면서 난리 나겠네.”

“흐음….”

잠자코 토론을 듣고 있던 지슈카가 한속봉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속봉 님, 동대륙인들도 대악마의 존재를 알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우리 또한 대악마를 인류 최대의 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럼 환국의 양반들이 대악마를 토벌하고 다니나요?”

“아니요. 직접 토벌하지는 않습니다. 환국은 대악마가 지상에 강림하지 못하도록 청룡도를 동쪽 가야에, 백호창은 서쪽 파국에, 주작궁은 남쪽 초국에, 현무보옥은 북쪽 씽에 배치함으로써 지옥의 입구를 봉인하였습니다.”

“그리드가 말했던 사신기들인가…”

“거봐. 환국이 왜 굳이 지옥 입구를 봉했겠어? 대악마를 토벌할 힘이 없기 때문이야. 대악마보다 양반이 더 강할 거라고 추측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였다.

“아니요, 환국이 대악마를 토벌하지 않는 이유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환국의 가치 보존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관들이 토론하고 있는 회의실에 재상 라우엘이 등장했다.

“가치 보존?”

의미심장한 발언.

모두가 라우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속봉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라우엘이 질문했다.

“동대륙에는 ‘지상에 강림한 대악마를 환국이 막아 세계에 평화를 내렸다’라는 식의 신화가 있지 않습니까?”

“헉?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후후훗, 그쯤이야 유추하기 쉽죠.”

라우엘이 듣기로 환국은 태초부터 동대륙에 신처럼 군림했다고 한다.

즉, 동대륙인들은 동대륙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쭉 환국을 섬겨왔다는 뜻이다.

동대륙의 창세기에서 환국이 큰 활약을 펼쳤기에 가능한 현상이리라, 라우엘은 확신했고 그게 사실이었다.

“환국이 동대륙인들에게 대악마를 ‘두려운 존재’라고 인식시키는 이유는 본인들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대륙인들은 인류의 평화가 환국에 의해서 지켜지는 거라고 믿고 그들을 계속 신격화하는 것일 테고요.”

“환국이 대악마를 토벌하지 않는 이유가 그럼 약해서가 아니고 순전히 본인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함이라 이건가?”

“그렇다고 봅니다. 그리드 전하께서 전대 전설급으로 비유하신 그들이 대악마보다 약하다고 생각하긴 어려우니까요. 애초에 최종 콘텐츠가 지옥인 것은 너무 단순해요.”

대악마를 토벌하고 세계에 평화가 찾아온다?

가당치도 않다.

대악마를 토벌하는 순간 Satisfy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건 바로 플레이어간의 대규모 세력 다툼.

무한한 인과관계가 새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성할 것이고, 바로 이 시점에서 환국이 변수로 작용할 거라고 라우엘은 추측했다.

‘S.A그룹은 짓궂은 구석이 있으니까.’

뭐, 어찌됐든.

“환국이 대악마를 토벌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입니다. 대악마는 모조리 우리 템빨국의 먹잇감이 되어야만 하니까요. 큭큭큭!”

“…..”

라우엘은 웃을 때마다 꼭 한쪽 손으로 얼굴의 절반을 덮는 버릇이 있었다. 최대한 멋지게 보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한속봉은 그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분은 왜 웃을 때마다 얼굴을 가리고 허리를 뒤로 젖히시는 거지요?”

“…이유는 그냥 모르는 편이 좋으실 거예요.”

질문하는 한속봉에게 지슈카가 어색하게 웃어주었고, 한속봉은 왠지 그녀의 말을 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의문을 접었다.

회의실에 라우엘의 웃음소리가 맴도는 가운데 스틱세이가 찾아왔다.

라우엘의 부름에 응한 것이다.

라우엘이 질문을 던졌다.

“서대륙 귀환 스크롤 말입니다만. 또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제작해서 판게아의 주민들을 차례대로 데려올 수는 없겠습니까?”

“공교롭게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리드 님께 드린 대단위 스크롤은 제가 번헨 열도에 머물 당시 수십 년을 공들여서 제작한 것이거든요.”

“수십 년…. 혹시 허용 인원의 단위를 조금 낮춘다면 제작 기간이 짧아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굳이 대륙 간 이동이 가능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대륙 내에서 전략 병기로 활용할 순 없겠습니까?”

“정확히는 매스 텔레포트 스크롤을 원하시는 거군요. 매스 텔레포트 스크롤을 한 장 제작하는데 최소 15년 걸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것도 제가 온전히 그 작업에만 매진해야한다는 전제가 붙어야하죠.”

“….그냥 접죠.”

대현자 스틱세이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매스 텔레포트 스크롤 하나 제작하라고 15년 동안 묵혀두기엔 너무 아까웠다.

“환국과 양반에 대한 걱정일랑 일단 접어두도록 하죠. 어차피 서대륙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아야 동대륙도 넘볼 수 있는 것이고, 우리의 당면한 적은 제국이 아니겠습니까.”

사하란 제국에 공물을 바치기 시작하고 딱 두 달 째가 되었다.

두 달 동안 템빨국이 입은 재정적 타격은 심대하여 모든 사업 분야에 투자를 중단했을 지경이다.

템빨국의 이번 달 정책은 농업에 집중하여 병사들과 백성들을 굶주리지 않게끔 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지슈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상태로는 미래가 없어. 이렇게 된 이상 제국과 전면전을 각오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이대로 공물을 냈다가는 반 년 내에 나라가 망할 것이었다.

순순히 노예처럼 굴다가 허무하게 자멸하느니 속 시원하게 치고받고 싸우는 편이 좋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라우엘 또한 동의했다.

“그럼요. 싸워야죠. 하지만 우리의 피를 흘릴 생각은 없습니다.”

씨익.

라우엘의 입가로 음침한 미소가 번졌다.

과거의 그리드가 자주 보여주던 기분 나쁜 미소였다.

물론, 같은 편의 입장에서 보면 든든하기가 그지없다.

또 무슨 꿍꿍이를 짠 것일까?

템빨단원들이 기대의 눈초리를 보냈고, 라우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아레스 군단에게 그리드 전하를 포함한 소수 정예의 원군을 파견합니다.”

“뭐?”

“아레스라고?”

군신 아레스.

아그너스와 쌍벽을 이루는 비공식 랭커 최강자다.

본인이 태양급 강자이기도 하면서 자신보다 더 강한 부하를 여럿 거느린 것으로 추정됐다.

이것도 얼마 전 크라우젤에게 들어 알게 된 이야기다.

크라우젤이 말하기를, 본인이 랭킹 1위였던 시절에 아레스의 측근 중 하나가 자신과 비등하게 싸웠다고 한다.

“잠깐…. 아레스 군단은 도리어 견제해야 하는 세력 아니야? 그들을 돕겠다고?”

“적의 적은 친구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본데, 아레스 군단은 두 달 전에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대량의 병력을 손실했잖아? 놈들과 손을 잡을 가치가 있을까?”

“잃었던 병력 대부분은 이미 수복했을 겁니다. 크라우젤 님이 주신 정보에 따르면 아레스의 최고 스킬 중 하나가 징병이라고 하니까요.”

“징병… 흠,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아레스를 왕으로 만들고 동맹 관계를 구축하여 제국의 견제 패로 삼습니다. 현재 아레스가 머물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벨토 왕국은 템빨국과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제국을 앞뒤에서 압박할 수 있죠.”

“제국의 시선을 분산시켜서 제국이 우리에게 신경을 덜 쓰게끔 유도하자 이건가?”

“맞습니다. 제국의 감시가 약해지는 틈을 노려서 국정 회복을 시도할 계획입니다.”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괴물을 피하려고 또 새로운 괴물을 만드는 셈이잖아?”

“당장 눈앞에 있는 괴물에게 잡아먹히게 생겼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애초에 아레스 군단은 이대로 가만히 놔둬도 자연히 괴물이 될 겁니다.”

물론 한참 뒤에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설령 그 시기를 앞당기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위기를 넘길 수단으로 이용함이 옳습니다. 최소한 제국의 힘이 유지되는 동안은 동맹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테니까 든든한 아군이 될 겁니다. 또한.”

라우엘의 음흉한 미소가 짙어졌다.

“미래의 적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용하기도 할 테고 말이죠.”

“…..”

“이번에 원군으로 파견갈 분들께 미리 알립니다. 아레스 군단 앞에서는 절대로 본 실력을 드러내지 마세요. 힘의 3할은 숨기고 아레스 군단 소속원들의 능력을 염탐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아, 그리드 전하께서는 힘의 6할쯤은 숨기셔야…”

그리드를 포함해서 원군으로 파견 될 인원들, 더 큰 식견을 쌓고 보다 더 성장하리라고 라우엘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아레스 군단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믿으세요. 이번 작전은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선사할 겁니다.”

***

<패왕>

등급:SSS

신장(神將), 비장(勇將)과 더불어서 최강의 무력 관련 패시브 스킬입니다.

물리 공격력이 영구적으로 20퍼센트 상승하고 모든 스킬과 마법의 위력이 영구적으로 10퍼센트 상승합니다.

기본 공격 시, 30퍼센트의 확률로 데미지가 2배로 적용됩니다.

각 직업군 랭킹 1위 20명을 사냥할 것.

최강 패시브 스킬 <패왕>의 습득 조건은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난이도를 자랑했다.

물론 아그너스에게는 손쉬운 일이었지만.

“죽음의 룬을 얻고 난 후부터는 칼밥도 꽤 먹었으니… 여러모로 유용하군.”

흡족한 표정으로 패왕의 성능을 확인하는 아그너스.

또 다시 저항을 시도하는 무무드의 리치를 칼로 후려친 뒤 회수하는 그에게 귓속말이 날아왔다.

베라딘의 귓속말이었다.

-지금쯤이면 패왕을 얻으셨겠지요? 축하드립니다.

-킥킥, 정말로 귀신 같은 놈이라니까.

베라딘.

10인의 루키 시절부터 쭉 라우엘과 비교되어왔던 천재.

그가 자신을 따르고 싶다고 찾아왔을 당시, 아그너스는 솔직히 놀라웠다.

자신 같은 성격파탄자를 섬기겠다는 놈이 세상에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처음에는 빵 부스러기나 얻어먹으려는 놈인 줄 알았는데.’

과거를 회상하며 피식 웃은 아그너스가 답변을 보냈다.

-그래, 드디어 확보했다. 엄청 오래 걸렸지. 네놈이 템빨단은 사냥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애원하는 바람에 사냥감 찾느라 애먹었다고.

-아직 템빨단에게 당신의 전력을 알려선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앵무새 같은 새끼가 늘 똑같은 소리만 지껄이는군. 도대체 언제까지? 이 몸께서 왜 그딴 놈들을 피해 다녀야하지?

-끝입니다.

-킥?

-이제는 템빨단에게 존재를 알리실 때가 왔습니다. 마음껏, 당신의 모든 기량을 뽐내십시오. 오늘 날을 위해서 그동안의 수모를 참아 오신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킥킥,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냐?

-제가 단언하건데, 템빨단은 조만간 아레스 군단과 접촉을 시도할 것입니다. 양측 다 제국이라는 장벽에 떠밀려서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 제국을 공통의 적으로 두고 동맹을 체결하겠죠.

언론에 노출되는 템빨단의 행보를 주시하며 라우엘의 행동을 예측해온 베라딘.

그의 예측이 늘 적중해왔음을 아그너스는 알고 있다.

-제국의 편에 서시죠. 훗날의 난적들을 동시에 밟아버릴 절호의 찬스입니다.

“…킥! 킥킥킥!!”

아그너스의 커다란 입이 양쪽 귀 끝에 걸렸다. 급기야 어깨까지 들썩이며 광소를 터뜨린 그가 곧 정색하면서 중얼거렸다.

“크라우젤 놈과 놀아났을 때만큼 즐거우려나…”

부디 즐거워서 나의 지독한 삶에 망각을 선사해주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바라는 아그너스의 금색 눈동자가 기괴하게 번들거렸다.

바알의 계약자.

그리드와 영원히 대립하게 될 미친개의 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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