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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82화 (477/1,794)

템빨 31권 - 3화

‘왜 안 쫓아오는 거지?’

가람에게 두 번째 연살파극(聯殺派植)을 사용하는 순간, 그리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람이 연살(聯殺)의 3격까지만 허용하고 4격부터는 회피한 까닭에 파(派)와 극(極)이 연계되지 않은 것이다.

‘그 불의의 공격을 얻어맞고도 바로 몸을 가눠서 공격을 피하다니…'

그냥 괴물이다.

1대1로 싸우라고 만든 존재가 아닌 듯했다.

그리드는 치명상을 면한 가람이 자신을 바로 뒤쫓아 오리라 보았다.

모든 전력을 쏟아 부어서 그를 막고, 자신이 죽을지언정 한속봉 부녀라도 도망칠 수 있게끔 시간을 벌 각오를 다졌다.

한데 무슨 연유에선지 가람은 뒤쫓아 오지 않았다. 연살의 4~7회 째 타격을 회피하며 무너진 자세 그대로 앉아 고개 숙이고 있을 뿐이다.

‘시스템상의 스토리가 나를 쫓지 못하게끔 강제하는 건가?’

일리 있는 가설이다.

양반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지금 시점의 플레이어는 양반과 엮여서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좋아.’

무사히 도망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가람이 가만히 있는 이때를 놓쳐선 안 된다.

"뒤돌아볼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네...!”

"알겠습니다!”

그리드와 한속봉 부녀가 도망치는 속도를 높였다.

***

툭.

투투툭.

붉은 피가 흙을 적신다.

가뭄에 내리는 비보다 더 귀한 양반의 피가, 고작 우민들이 밟는 땅에 헛되이 쓰이는 것이다.

“…….”

그리드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얻어맞고 쓰러진 가람.

당장에 포효하며 일어나리라 보았던 그가 한동안 가만히 있자 삼다수는 의아했다.

“가, 가람 님...?”

사색이 되어서는 눈치만 살피던 삼다수가 조심스럽게 가람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가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자신이 흘리는 피를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상처가 너무 심해서 몸을 가누기 어려우신 건가?’

천하의 양반께서?

‘평범한 인간이 양반에게 치명상을 입히다니... 템빨왕... 서대륙의 왕들은 모두 그자처럼 강한 것인가?’

조만간 다가오게 될 서대륙과의 교류가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삼다수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가람을 부축해줄 요량이었다.

그가 가람의 곁으로 다가온 순간.

“큭……!”

아무 말 않고 있던 가람의 어깨가 들썩였다.

“히, 히익!!”

설마 내게 화풀이를?

기겁한 삼다수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엉덩방아 찧었고.

“크하하하하하하하!!”

가람은 대소를 터뜨렸다.

찢어진 도포 사이로 엿보이던 가슴의 상처는 이미 아문지 오래다.

양반이 품고 있는 사신의 숨결 중 <주작의 숨결>이 비정상적인 회복력을 발휘해주는 까닭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렸지 뭐야? 큭큭. 넋 잃고 있다가 쥐새끼를 놓치고 말았군.”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가람이 찢어진 도포를 추슬렀다. 연검(軟劍)을 허리띠처럼 두르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정돈했다. 그러자 도포의 찢어진 부분들이 서서히 수복되기 시작했다. 청룡의 비늘로 만든 도포가 가람이 품고 있는 <청룡의 숨결>에 호응하면서 발생하는 복원 능력이었다.

“흐으음.”

도포가 깨끗해진 것을 확인하고 만족한 가람이 힐끗, 삼다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시선이었다.

그를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삼다수의 바지가 오중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어갔다.

“오늘 있었던 일은 함구하도록 해라.”

“예... 예?!”

가람의 말은 뜻밖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삼다수는 가람이 초국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그리드를 쫓으라고 명할 줄 알았다.

한데 함구하라니?

어안이 벙벙해지는 삼다수에게 가람이 쯧쯧, 혀를 찼다.

"우화등선한 놈도 아니고 단순한 우민 따위에게 양반인 내가 상처를 입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알려졌다가는 망신만 당할 게 뻔하니까 비밀로 하는 편이 낫지. 초국 입장에서도 그게 좋을 텐데?”

“핫...! 옛! 맞습니다! 가람 님의 깊으신 생각에 감탄할 뿐이옵니다!!”

가람의 자존심 덕분에 초국이 위기를 모면하게 생겼다!

기쁨에 흥분한 삼다수가 몇 번이고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를 바라보는 가람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칫.’

사실, 가람의 솔직한 심정 같아서야 당장에라도 삼다수를 죽이고 싶었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목격한 놈을 살려두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삼다수를 죽일 경우 다른 양반들이 상황을 의심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번 일은 최대한 조용히 무마시키는 편이 옳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파그마의 후예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가는 비웃을 놈들이 한둘이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당했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만약. 가람이 그리드와 끝까지 싸웠다면 당연히 쉽게 승리했을 테니까.

막말로 가람이 스킬만 썼어도. 아니, 사신의 숨결 중 하나라도 개방했어도 그리드는 손도 못 쓰고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람은 방심했고, 그 틈에 그리드는 도망쳐서 작금의 결과가 나왔다.

‘다음에 만날 때는 처음부터 전력으로 쳐 죽여주마.’

현재 상황에 대한 가람의 분노는 명백히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즐거웠다.

치우의 시험을 통과한 이후 쭉 무료하였던 삶에 그리드가 활력을 불어 넣어준 느낌이랄까.

‘3백 년 정도 검을 놓았던가... 흐음, 다시 수련을 시작해 봐도 좋을 듯 하군.’

***

“참말이십니까?”

카라스 광장에 마련 된 처형장.

본래라면 한속봉 처형이 거행되었어야할 그곳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처형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한속봉이 나타나지 않는가 싶더니 양반 가람이 등장한 까닭이다.

귀를 의심하는 초왕에게 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다. 한속봉 부녀는 내가 놓아주었다. 단지 주작궁 제작자의 행방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처형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보았거든.”

"아아...! 가람 님의 마음씨가 하해와 같구나!!”

"양반은 역시 존경해야 마땅한 분들이야!!”

한속봉은 초국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귀족이었다.

안 그래도 한속봉 처형에 불만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한데 가람이 한속봉을 살려주었다고 밝히자 백성들은 뛸 듯이 기뻐했고 가람에게 큰 존경심을 품게 됐다.

초왕이 만백성을 대표하여 가람에게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정녕 감사합니다!! 가람 님께서 내려주신 자비를 평생잊 지 않고 충성하겠나이다!!”

“가람 님 만세!!”

"환국 만세!!”

“양반 만세!!”

“우와아아아아아!!!”

자신들의 왕이 양반에게 절을 올리는 모습을 목도하고도 의문을 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모든 백성이 그저 가람과 환국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열광하는 그들을 쭉 둘러보는 가람의 표정은 그리드를 대면했을 때와 달리 무감정했다. 세상만사 재미없다는 듯 한 허무를 담은 얼굴이었다.

“...어리석은 돔들.”

중얼거리면서 콧방귀 뀐 가람이 자리를 떠났고…….

“마차를 준비해라! 당장 판게아로 가겠다!!”

가람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초왕은 명령했다.

그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와 한시라도 빨리 재회하고 싶었다.

그대가 힘들 때 도와주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사죄하고 싶었고. 그대의 중한 목숨을 보존하게 되었음을 축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초왕의 바람은 이뤄질 수 없었다.

초왕과 한속봉의 재회는 먼 훗날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

“추격은 없는 것 같아요.”

수애는 한속봉의 유일한 후계자답게 온갖 수양을 쌓아왔다.

기본적으로 재능이 넘쳤기에, 젊은 여성의 몸임에도 판게아 최고의 무사가 되었고 학문과 서예 등 모든 분야에 능통했다.

이름:한수애

나이:25

성별:여

레벨:277

근력:930

체력:722

민첩성:1,511

지력:885

*판게아 영주의 딸

판게아에서 모든 능력치 10퍼센트 상승.

*주작단 단장

주작단 통솔 시, 주작단원들의 능력치 10퍼센트 상승.

*판게아 최강 무사

전투 스킬 숙련도 상승 보너스.

*초국 제일 미녀

이성을 높은 확률로 매혹.

한속봉의 딸입니다.

타고난 재능과 지위, 미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단련해온 그녀는 판게아 주민 모두에게 존경받습니다.

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를 닮아 달필입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나,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좋은 배필을 만나지 못할 경우 타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킬:[그림 (A)]/[노래 (A)]/[색적(A)]/[중급 웨폰 마스터리 (Lv.9)]/ [한씨 가문 검술(A)]/[근성(S+)]/[어두운 곳에서 서예(SS-)]/[경국지색(SS)]/[억제할 수 없는 욕망(SS+)]

그리드가 <대영주의 검>으로 관찰한 수애의 정보다.

수애는 그리드의 예상대로 네임드 NPC였고 뛰어난 능력치를 자랑했지만 의외로 습득하고 있는 전투스 킬이 적었다.

바로 그 점이 그리드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고작 A급 검술 하나 익힌 거로 판게아 최고의 무사가 됐을 정도의 재능…’

수애는 물건이다.

대현자 스틱세이나 피아로, 아스모펠 등에게 그녀의 교육을 부탁할 경우 [근성]과 재능의 시너지 효과로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엄청나게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라니??

좋은 배필을 만나지 못할 경우 타락한다니??

‘역시 변태녀답군...’

수애의 욕망을 갑당하거나 자중시켜줄 수 있는 사내와 짝을 지어주지 않는 이상 변태 마왕이라도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다.

“여기서 잠시 쉬고 가는 게 어떨까요?”

카라스 외곽의 갈대밭.

그리드 일행은 반나절을 쉬지 않고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초왕의 영역에 있었다.

사실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수애의 색적 능력은 무척 뛰어났고, 그녀가 봤을 때 추격은 없었으므로 잠시 쉬어도 될 것 같았다.

한속봉은 지쳤고, 마침 빈 방앗간이 있었다. 지금이 정말 딱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리드의 생각도 같았다.

“그럼 두 분은 쉬고 계세요. 저는 카라스에 숨어있는 제 일행들을 데려오겠습니다.”

한속봉이 깜짝 놀랐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카라스에 다녀오시겠다고요? 가람 님과 전투 직후 반나절을 쉬지 않고 달리셨잖습니까? 한데 이 이상 움직이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좀 튼튼해서.”

그리드는 딜탱이다. 그가 탱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 단지 템빨뿐만이 아니라 기본 체력 스랫이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장일로 단련된 그리드는 본인의 체력에 자신이 넘쳤고, 그런 그리드를 바라보는 수애의 눈빛은 촉촉이 젖어 들어갔다.

“튼튼하시군요…”

“...?”

왠지 오싹하다...

수애와 눈을 마주친 순간 깜짝 놀란 그리드가 황급히 방앗간을 나섰다.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하아...”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리드의 뒷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수애.

부드러운 두 땀에 홍조를 띄운 그녀가 거친 숨결을 토해내는 이유는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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