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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81화 (476/1,794)

템빨 31권 - 2화

양반의 기본 소양은 세상 모든 우민들을 압도할 수준의 지력과 무력을 갖추는 것이다.

양반은 우민들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서 군림해야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파그마의 무력적 재능은 양반이라고 믿기지 않게끔 볼품없었다.

그가 창안한 검무에는 맹점이 너무 많았다.

우선 준비 동작이 너무 크고 길었다.

검을 휘두르기에 앞서서 춤사위를 펼쳤으니 겉으로는 화려할지 몰라도 실전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물론 그건 검무를 창안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파그마는 셀 수 없이 많은 고배를 마시고 좌절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검무를 계속해서 보완해나갔고, 종국에는 검무의 동작을 회피와 방어의 수단으로 응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다른 양반들의 재능이 파그마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났던 바.

파그마가 검무의 동작을 회피나 방어로 연계시켜봤자 양반들은 순식간에 간파하고 빈틈을 찔렀다.

파그마가 같은 양반을 상대로 검무를 완성시키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심지어 검무를 무사히 완성시켜봤자 별 의미도 없었다.

검술보다 대장일에 집중했던 파그마는 다른 양반들보다 육체 능력자체가 떨어졌고. 그 탓에 검무를 양반에게 적중시키더라도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던 것이다.

명확한 실력 차이.

결코 좁혀지지 않는 차이였다.

결국, 파그마는 양반 최초로 치우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이변을 발생시켰다.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고도 남음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

오존(五尊) 중 하나인 한울만큼은 파그마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만약 파그마가 검무 여러 개를 하나의 동작으로 연결시킬 정도로 성장한다면 다른 양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거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파그마는 해내지 못했다!’

재능 없는 파그마는 두 개의 검무조차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어느 날 환국에서 사라졌다. 재능 없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부끄러워하며 도망친 것이 뻔했다.

한데 지금 이 순간.

"연살파극(聯殺派極)!!”

‘네 개의 검무를 하나로 연결한다고?’

아무리 병신이라도 명색이 양반이었던 파그마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른 우민이 등장했다.

‘우민 따위가...! 괘씸한!!’

가람이 파그마를 무시하고 혐오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파그마도 양반이다. 우민 따위가 파그마를 넘어선 것을 가람은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퍼엉-!

퍼평!

퍼퍼퍼펑!!

맹렬한 찌르기가 가람의 급소만을 노리고 연속적으로 꽂힌다.

가람의 동체시력과 기민함으로 충분히 회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가람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감히 내게 살수를 쓰다니!”

정녕 괘씸한 놈이다.

우민답지 않은 재능을 보유한 것으로 모자라서, 감히 양반을 해치려 하다니?

“역천의 자질을 타고난 놈이로구나! 나는 너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다!!”

격노를 금치 못한 가람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소리치며 곰방대를 휘둘렀다. 그는 곰방대로 그리드의 찌르기를 무력화시킬 심산이었다.

하지만.

콰자작!!

‘뭣이?!’

그리드의 찌르기가 품은 위력이 가람의 예측을 초월했다.

백린목으로 만들어진 곰방대가 그리드의 검과 맞물리는 순간 부셔져버렸고, 가람은 그대로 가슴을 관통당하고 말았다.

푸욱-!

푹! 푹푹!!

총 4회의 찌르기가 가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나머지 3회의 찌르기는 자존심을 버리고 방어를 포기한 가람이 회피해버렸다.

‘그걸 피해?’

강력한 충격을 연달아 입고도 기민하게 움직여서 공격을 회피하는 가람의 모습, 그리드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위축되지 않았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고 연살파극(聯殺波極)의 검무를 완성시켜나갔다.

<연살파극(聯殺派植)>

네 종류의 검무를 연계합니다.

대상에게 공격력의 1,500퍼센트 피해를 주는 연살(聯殺)을 7회 꽂습니다.

대상에게 연살(聯殺)을 4회 이상 적중시킬 경우. 연살(聯殺)익 회당 데미지가 200퍼센트씩 상승 적용되며 파(派)의 검기가 소환됩니다.

파(派)의 검기는 대상의 반경 5미터에 광역 피해를 입힙니다. 데미지는 공격력의 500퍼센트이며, 적중당한 대상은 30초 동안 모든 속도가 60퍼센트 하락합니다. 또한, 이후 연계되는 극(植)의 검기에 확정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극(植)의 검기는 대상의 방어력을 80퍼센트 무시하고 물리공격력의 1,800퍼센트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힙니다.

*이 스킬은 연(聯), 살(殺). 파(派), 극(極), 연살(聯殺)과 재사용 대기 시간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스킬 자원 소모 : 최대 마나의 절반.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 : 3시간.

콰르르르르륵!!

가람이 방심했기에 허용해버린 4회의 찌르기가 변수를 만든다.

가람을 찔렀던 검기의 잔재들이 휘몰아치면서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연살(聯殺)에 이어지는 파(派)의 묘리였다.

연살(聯殺)은 피할 수 있던 가람이지만 이것만큼은 피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광역 스킬인 파(派)의 넓은 공격 범위가 오로지 한 사람을 노리고 전개되었으니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크윽!”

가람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야. 양반께서...!”

"상처를 입으시다니...!”

삼다수는 물론이고 한속봉 부녀까지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존귀한 양반이 피를 홀리는 모습, 그들은 감히 상상조차 못해왔으니까.

그들에게 그리드라는 인물이 더욱 특별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저게 바로 서대륙의 왕...!’

‘템빨...왕!’

한편, 가람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는 그리드의 표정은 차츰 굳어갔다.

[대상에게 5,2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5,95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크리티컬!]

[대상이 크리티컬을 저항합니다.]

[크리티컬 데미지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상의 모든 속도가 감소됩니다.]

[대상이 저항하였습니다.]

‘피물 새끼!’

연살파극(聯殺派植)의 위력은 신조차도 경계할 정도이다.

파(派)의 기본 공격력이 무척 약하다고는 하지만, 연살파극(聯殺派極)에 녹아든 파(派)의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여 대악마 벨리알에게도 회당 3만대의 피해를 입혔었다.

한데 가람은 그 6분의 1밖에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다.

벨리알을 레이드할 당시 사용했던 무기는 <실패작+그리드>의 대검이었고 지금 사용하는 무기는 <검은 귀신>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람의 물리 내성이 벨리알보다 높아보였다.

심지어 상태이상도 걸리지 않고 크리티컬마저 무효화시킨다.

‘양반은 역시 전설급…! 그것도 전대 전설급이다!’

도무지 승산이 안 보인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할 필요는 없다고 그리드는 판단하고 있었다.

가람의 몸을 베며 승천한 검기들, 이내 곧 하나가 되어서 극(植)으로 연계될 테니까.

이 순간 발휘되는 위력이야말로 연살파극(聯殺派極)의 진짜 힘이다.

쿠르르르르르르릉!!

검기 속에 갇혀 있는 가람의 귓가로 아찔한 천둥소리가 울려왔고.

‘이건…!’

가람은 경각심을 품었다.

하늘을 올려 본 그가 벼락처럼 내리 꽂히는 날카롭고 거대한 검기를 확인하고 오싹해졌다.

‘이건 막아야 된다!’

극(極)은 필중의 묘리가 담긴 검무다.

피할 수 없음을 바로 간파한 가람이 부셔진 곰방대를 버리고 허리띠를 풀었다.

정확히 말하면, 허리띠처럼 보이는 은빛의 연검(軟劍)을 푼 것이다.

허리에 두를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게 휘는, 매우 얇고 탄성이 높은 검이었다.

휘리리리릭!!

가람이 휘두른 연검이 불시에 수 십 가닥의 검로를 만들었고 그 모든 검로가 극(極)을 쫓았다.

가람은 자신이 그리드의 극(極)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 보았다.

하지만 Satisfy 시스템은 플레이어와 NPC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됐다.

극(植)은 ‘반드시 명중’하는 확정스킬이었고 가람은 극(植)을 막아낼 수 없었다.

서걱-!

가람의 옷섶이 풀렸다.

베인 것이다.

“쿨력...!”

피를 토한 가람이 휘청거렸고,

츠카카카카카칵!!

갈라진 도포 사이로 노출된 가람의 매끄러운 가슴에서부터 피분수가 분출됐다.

"어서!”

연살파극의 전개가 끝나자마자 한속봉 부녀에게 몸을 날린 그리드가 손을 뻗는다.

부녀를 바라보는 그리드의 눈빛은 다급하고 간절했다.

“이 틈에 어서 도망칩시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두 분 모두 죽는다고!!”

“으, 으음...!”

한속봉이 망설였다.

초국이 양반의 노여움을 사지 않게끔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였지만 이제는 소용없어졌기 때문이다.

양반이 상처를 입은 지금, 자신의 하찮은 목숨 하나 바친다고 해서 과연 양반이 노여움을 풀까?

남아서 죽어봤자 의미 없는 개죽음이다.

‘죄송합니다, 전하!!’

형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초왕에게 골백번 사죄한 한속봉이 결국 그리드의 손을 맞잡았다. 수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도망치려는 그들에게 삼다수가 증오 담긴 외침을 날렸다.

“너희들이...! 너희 부녀가 초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

한속봉은 나라를 좀먹는 부패한 귀족 삼다수를 혐오한다. 그의 모든 것을 부정해왔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초국이 위기에 빠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기에.

아무 답도 못하고 질끈 눈을 감는 한속봉의 귓가로 그리드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의 나라에서 함께 힘을 키웁시다. 환국과 대등한 힘을 갖추고 초국을 보호합시다.”

"그것만이... 그것만이 조국에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겠지요.”

그리드의 말의 의도를 파악한 한속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큰 피해를 입은 가람이 잠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최대한 거리를 벌려놓아야 무사히 도망칠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가람은 양반이다.

양반은 초월적인 존재다.

"우민 따위가...! 병신 파그마의 후예 따위가아!! 노오오오오옴!!!!’’

초네임드급 NPC 라고는 하지만 결국 인간형.

대악마 벨리알과 비교해서 가람의 생명력 수치는 무척 낮았다.

그리드의 연살파극을 한 번 허용한 것으로 생명력의 7분의 1가량을 손실한 상태였다.

가람의 레벨이 그리드를 압도할 것이라는 가정을 붙였을 때, 연살파극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다.

퍼엉-!

허공을 박찬 가람이 그리드 일행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순보.

양반 모두가 익히고 있는 절정의 보법이었다.

"네놈의 몸을 수백 조각으로 나눠서 개의 먹이로 주겠다!!”

무시무시한 선언을 하면서, 그리드의 뒤를 노리고 연검을 뻗는 가람.

그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리드가 비상식적으로 강력한 기술을 설마 연속으로 사용할 줄은!

“연살파극!!”

“뭐, 뭐라고!!”

가람이 추격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살파극을 전개하는 그리드.

앞서 연살파극을 사용했을 때 운좋게 터진 신장(神장) 효과를 극적인 타이밍에 활용함으로서 가람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크아아아아악!!"

아무런 대비 없이 연살파극에 적중당한 가람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고, 그 틈에 이상적인 단검으로 스왑한 그리드는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 한속봉 부녀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

얼떨결에 가람과 단둘이 된 삼다수는 눈 둘 곳을 모르며 벌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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