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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72화 (467/1,794)

템빨 30권 - 15화

유저는 포만감을 충족시키고 스태미나를 회복하기 위해서 음식을 섭취한다. 음식은 필수적인 에너지원이었다.

하지만 이단이 만든 요리는 도리어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한 음식을 먹은 것 같습니다.]

[식중독에 걸립니다.]

[저항하였습니다.]

[먹어선 안 될 것을 먹었습니다.]

[중독(大)에 걸립니다.]

[저항하였습니다.]

“…..”

“어때요? 맛있지요?”

초국의 왕도 카라스로 향하는 길.

이단과 얀페이를 대동한 그리드는 수시로 음식을 섭취 중이었고 그때마다 끔찍한 고통을 맛봤다. 고문 전문가에게 미각을 고문당하는 심정이었다.

‘맛은 고사하고 최소한 사람이 먹어도 되는 음식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무슨 열 번 요리를 만들면 그중 아홉 번은 음식물 쓰레기냐.’

현 상태의 이단이 만든 요리를 템빨단원들과 병사들에게 보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칫했다가 단체로 식중독에라도 걸릴 경우 국정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단에게 끊임없이 요리를 만들게 해서 이단의 요리 실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어.’

그리드는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여행길 내내 이단에게 요리를 만들게끔 하여 그것을 모조리 자신이 섭취했다. 보통 정신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드는 오로지 템빨국을 위해서 자신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었다.

주르륵.

“그리드 님, 이 차를 드세요.”

식중독 이펙트가 발생하면서 연신 게거품을 토해내는 그리드.

그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다가온 얀페이가 차를 건넸다.

“고, 고마워…”

[베레나스 차를 마셨습니다.]

[심신이 평온해집니다. 1분 동안 생명력 회복 속도가 10퍼센트 상승합니다.]

얀페이 덕분에 썩어 들어가던 미각이 치유된다.

기본적으로 지능이 높고 다재다능한 얀페이는 차의 달인이기도 했다. 여행길에 채집한 풀과 꽃, 나뭇가지 등으로 포션과 비슷한 효능을 지닌 차를 달이는 놀라운 재주를 선보였다.

“차 달이는 기술은 어디서 배운 거야?”

“이단 님의 식당에서 몇 년 동안 일하면서 자연히 습득한 기술이에요. 가끔 손님들이 식중독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빠지기에 그들을 구해야한다는 일념으로…”

“…..”

실로 황당한 대답.

하지만 그리드는 얀페이가 은근히 착한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흐뭇해졌다.

‘비록 호구 등쳐먹기가 특기라지만 사람 목숨이 귀한 건 아는 아이구나.’

생각하지만 오해다.

감동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자칫 손님이 죽었다가는 이단 님이 책임을 물어야하고, 그랬다가는 식당이 영업 정지를 당해서 저도 일자리를 잃게 되잖아요? 밀린 월급도 많은데.”

“…그런 거였냐.”

역시, 얀페이는 보면 볼수록 행정관 라빗과 궁합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얀페이를 라빗의 시녀로 붙여주면 라빗을 제대로 서포트해줄 테고 라빗의 업무 능률도 수직 상승하겠지?’

일단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얀페이를 로드에게 붙여놔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대단한 녀석, 외모와 나이는 관계없이 여자는 죄다 자기 애인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으니까.’

물론, 아직 어린 로드는 이성을 모른다. 녀석이 말하는 애인이란 친구에 가까웠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성의 시녀들 죄다 언젠가 자신이 왕자비가 될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풍문이… 가만?’

로드에 대해서 생각하던 그리드가 문득 상상해 보았다.

‘만약 12살이 된 로드가 제국에 볼모로 잡혀가면…’

제국의 여성들을 모조리 자신의 애인으로 만들지 않을까?

‘우리 로드는 짱이니까!’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 하고 굼벵이도 자기 새끼는 잘 구른다 한다.

서대륙 최고의 천재이자 최고의 미소년인 로드에게 그리드가 콩깍지 씌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드의 로드에 대한 신뢰는 태산보다 컸다.

‘제국에서 로드가 활약할 여지가 무척 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로드가 볼모로 잡혀갈 일이 발생해선 안 되지.’

잘그락.

로드에게 선물로 받은 목걸이를 어루만진 그리드가 경각심을 품었다.

‘로드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국에 대항할 힘을 갖춰야한다. 로드에게 뼈아픈 경험을 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단의 요리 같지도 않은 요리를 먹는 일 또한 그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다.

주르륵.

사냥한 몬스터의 내장을 요리한 이단이 새롭게 내놓은 음식을 먹고 게거품을 토하면서 마음을 다잡는 그리드였다.

***

“생각처럼 쉽지가 않네.”

한 달 거래량이 무려 1만 골드에 육박하는 중소 규모 상단을 운영 중인 뮤토.

상인 랭킹 3위인 그는 현재 동대륙을 개척 중이었다.

동대륙의 모든 국가를 탐방하고 거래처를 늘리겠다는 포부를 지녔다.

하지만 동대륙은 서대륙과 비교해서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NPC들 대부분이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고, 필드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마을과 마을을 오가기도 힘들었다.

‘서대륙에서 쌓은 명성이 이곳에서는 아예 적용이 안 되니까 완전히 새내기가 된 기분이군.’

서대륙과는 차별화되는 특산품이 즐비한 동대륙에서 거래처를 늘릴 경우 압도적인 경쟁력이 생긴다.

필시 거래량과 차익이 대폭 늘어나서 상인 랭킹 1위를 노려볼 수도 있었다.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의욕을 불태우던 뮤토였으나 이제 슬슬 초조해졌다. 벌써 열흘 동안 거래처 하나도 못 만들고 있었으니 열정이 꺾이기 시작했다.

‘내가 서대륙과 동대륙을 비교적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것을 동대륙인들이 믿어준다면 거래처도 쉽게 늘릴 수 있을 텐데.’

대륙 간 이동에 대해서 동대륙인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뮤토가 동대륙으로 흘러들어온 것도 그저 적해에서 조난당한 결과라고 여겼다.

“어휴, 답답해라.”

뮤토는 과거, 사하란 제국의 부틴 남작령과의 교류를 중점적으로 상단을 운영하던 인물이다. 부틴 남작령은 제국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았기 때문에 귀중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뮤토의 배를 불려줬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부틴 남작령은 변질되고 말았다. 레이단의 모래가 ‘명품 장수의 비약’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이 붙어서 판매되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부틴 남작령=명품 장수의 비약 구매처’라는 말도 안 되는 공식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 뮤토가 주력으로 판매하던 귀중품들에 대한 귀족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그때부터 뮤토의 벌이는 시원찮아졌다.

뮤토는 반드시 이곳 동대륙에서 재기해야 했다. 만약 여기서 거래처를 늘리지 못하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단의 거래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요즘 추세를 봐서는 랭킹이 7위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입지가 떨어지면 스폰서를 잃을 공산이 크다. 상인으로서 자존심도 박살이 나게 된다.

‘이번에 카라스에 도착하면 반드시 초왕을 알현해야 한다. 초왕에게 서대륙의 문물을 보여주면 큰 관심을 살 수도… 어?’

동대륙에 와서 고용한 용병들을 호위로 대동한 채 이동하던 뮤토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저 멀리, 산기슭 계곡 근처에서 해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게 바로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져오는 비기! 회 뜨기! 나의 기술로 한 점, 한 점 정성스럽게 회를 떠드릴 테니 오늘 점심은 폭식을 준비하시죠!”

“아, 아니, 잉어도 아니고 인어를 회 뜨는 건 좀…”

“얘네도 반은 생선인데 뭐 잘못됐습니까?”

“…?”

희귀한 광경이다.

‘당연히’ 300레벨에 육박할 계곡의 인어 몬스터들이 구석에 내몰린 채 벌벌 떨었고, 식칼을 든 중년인이 벌벌 떠는 인어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압권인 것은, 인어를 회 뜨겠다는 중년인을 부여잡고 뜯어말리는 흑발 사내의 정체였다.

‘그리드…?’

최초의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이며 플레이어 최초의 국왕.

무수한 위업을 세운, 현재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내.

‘저자가 왜 이곳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어리둥절 하는 뮤토의 입가로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이건 인연일 수도 있겠군.’

사실 뮤토는 그리드를 싫어하는 사람에 속했다.

레이단에서 장수의 비약을 팔아먹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그리드였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져서 뮤토의 벌이가 시원찮아진 것은 그리드 탓이었다. 솔직히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뮤토의 그리드에 대한 악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자꾸만 그리드와 엮이는 것을 보아, 자신과 그리드는 필시 운명의 끈으로 묶인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저 계곡에서 쉴 예정이었는데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군.”

“비키라 할까?”

용병들이 물어온다.

뮤토는 고개를 저었다.

“저분에게 그렇게 말했다간 당신들 모조리 목이 떨어져 나갈 게요.”

“…?”

용병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들은 젠투아 최강의 전사들이다. 뮤토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거금을 주고 고용한 것이다.

한데 고작 저 흑발 사내 한 명에게 우리가 모조리 당할 거라고?

“인정할 수 없군.”

젠투아.

수개월 전,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파괴당한 여왕 쥐 군락 인근에 존재하는 마을.

쥐로부터 생존하기 위해서 젠투아의 주민들은 끊임없이 단련해왔고 이제 전사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실력만큼이나 자존심도 대단한 것이다.

“저자가 정말로 우리보다 강한지 확인해 볼까?”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용병들이 투지를 불태우는 순간이었다.

“아오, 인어는 안 먹는다니까. 그거 완전히 인육 같잖아.”

퍼엉!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

계곡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흑발 사내가 검술과 마법으로 인어들을 도륙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저, 저럴 수가.”

용병들이 할 말을 잃었다.

잼 계곡의 인어는 자신들조차도 1대1로 간신히 격퇴하는 수준. 군락의 쥐들과 비견 될 정도로 강하다.

한데 저 흑발 사내는 혼자서 인어 십여 마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다.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어떻습니까? 격이 다르죠? 젠투아의 전사들은 강한 사람을 숭상한다고 들었는데 저분 정도쯤 되면 숭상할 만하지 않습니까?”

“꿀꺽…”

용병들은 뮤토에게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마른침만 삼킬 뿐이다. 그들의 등 뒤로는 소름이 돋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저자에게 멋모르고 덤볐으면…’

‘지금쯤 우리가 저 인어들처럼 곤죽이 되어있었겠군…’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응?’

몸서리치던 용병들이 일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어들을 해치운 흑발 사내가 갑자기 바늘과 실을 꺼내더니 바느질을 시작한 까닭이다.

“뭐, 뭐지?”

황당해 하는 용병들.

그들보다 더욱 더 놀라는 뮤토였다.

‘천을 꿰맨다고? 대장장이인 그리드 님이 어떻게 천을 다루는 거지?’

정말이지, 괜히 유명인이 아니다.

우연히 잠깐 본 것만으로도 사람을 몇 번이나 놀라게 만들고 계속해서 흥미를 유발시킨다.

뮤토는 확신했다.

‘저분이 내 동아줄이다.’

오늘날의 우연한 만남을 인생 역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좋아… 가보죠. 우선 인사라도 나눕시다.”

흥분과 긴장감을 떨쳐내기 위해서 심호흡한 뮤토가 용병들과 함께 그리드 일행에게 다가갔다.

어째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딱히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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