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70화 (465/1,794)

한숨 쉰 스틱세이가 동대륙 이동 스크롤과 서대륙 귀환 스크롤을 1장씩 그리드에게 건네주었다.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지?”

“이곳 라인하르트는 제가 스크롤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질 않습니다. 스크롤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번헨 열도로 돌아가야 하며, 스크롤 한 장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기간은 정확히 28일이지요.”

“…..”

스틱세이가 한 달이나 자리를 비운다면?

현재 교육자가 부족한 템빨 아카데미의 교육 시스템은 정지하고 만다.

말인 즉.

‘이번 한 번의 기회로 뽕을 뽑아야한다 이거군.’

본래 그리드의 동대륙 이동 계획은 간단했다. 우선 요리사 이단을 데려와서 템빨단원들에게 식사를 통한 스탯 상승 기회를 제공하고, 한속봉과의 두터운 친분을 이용해서 수애를 비롯한 정예 병력을 지원받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그 정도론 안 될 것 같다.

‘당분간 동대륙은 언제든지 오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게 됐으니까… 이번에 가는 김에 최대한 많은 원군을 만들어 오도록 하자.’

***

[대륙 간 이동 스크롤을 사용하였습니다.]

[동대륙 시작의 도시 <판게아>에 도착하였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동대륙에 도착한 그리드.

스틱세이가 만든 스크롤의 위대함에 새삼 감탄하고 있던 그가 문득, 판게아의 분위기가 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성들의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둡지?’

과거, 그리드는 판게아에서 엄청난 대활약을 펼친 바 있다.

전쟁 통에 사라진 <주작궁>을 원본보다 뛰어나게 재현한 것으로 모자라서 <아루베>라는 도사와 철갑귀들까지 퇴치했다.

덕분에 평화를 되찾은 판게아는 전보다 더 활기가 넘쳐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거리의 백성들 모두가 죽을상을 지은 채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으니 이상할 노릇이다.

시장도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행인들이며 상인들 모두 땅만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리드는 가장 먼저 수애를 떠올렸다.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영주의 딸.

‘그 변태녀한테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제아무리 수애가 변태라고는 해도 그리드는 그녀에게 높은 호감을 품고 있었다.

아이린과 비견 될 정도로 아름다워서?

물론 그것도 한몫하겠지만 사람은 외견이 다가 아니다.

수애는 훌륭한 여성이었다.

영주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오만하지 않고 백성들의 안정과 평화를 바라며 철갑귀를 토벌하였던.

‘…결국 변태지만.’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그리드가 판게아 영주 성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때였다.

덥썩!

누군가가 갑자기 그리드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녀린 손의 주인, 이단의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얀페이였다.

“오오, 오래간만이네? 잘 지냈어?”

웨이브 진 단발머리 소녀 얀페이.

반갑게 인사해주는 그리드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홍조를 띄운다.

하지만 이내 번뜩 정신을 차리더니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리드를 골목길로 인도했다.

탁!

그리드를 기대어 세운 벽 위로 손을 얹는 얀페이의 얼굴이 그리드의 코앞까지 다가온다.

아직 채 성인도 안 된 미소녀에게 벽치기를 당하다니?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하면서도 두근거림을 느낀 그리드가 말까지 더듬으면서 물었다.

“사, 사람을 왜 이런 으슥한 곳으로 데려오는 거야? 서, 설마 너…”

너도 못 본 새 더 변태가 된 건 아니겠지?

‘동대륙 여자들 진짜 대단하다.’

생각하면서 두근두근, 기대하는 그리드에게 얀페이가 추궁하듯이 외쳤다.

“왜…! 왜 돌아오신 거죠!”

“응?”

얀페이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늘 무표정하던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안절부절 못하며 불안해하는 눈치를 보였다.

또 무슨 사건이 터졌구나.

깨달은 그리드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순간.

“흑….”

가녀린 어깨를 떠는가 싶던 얀페이가 눈물 한 줄기를 흘렸다.

그리드의 믿음직한 얼굴을 보자 그간 참아왔던 슬픔과 걱정이 폭발한 것이다.

“한속봉 영주님과 수애 아가씨께서 왕도로 끌려가셨어요…”

“왕도? 이곳 초국의 수도 말이야?”

“네… 소문에 의하면 국왕전하께서 그리드 님의 행방을 원하셨고, 한속봉 영주님께서 이를 거부하셨다가 죄인으로 낙인찍히셨다고 해요.”

“내 행방을 말이지?”

그리드는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원본보다 뛰어난 주작궁을 제작한 대장장이를 손에 넣고 싶어서 욕심이 생겼다는 전개겠지?’

하여튼 힘 좀 있다 싶은 놈들은 왜 죄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걸까?

치를 떠는 그리드.

얀페이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도망치세요. 여기에 계셨다가는 국왕전하의 병사들에게 붙잡히시고 말 거에요.”

사실 얀페이는 누구보다도 그리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매일 밤마다 그의 손길을 떠올렸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드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린 나이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한 탓에 즐거움이라는 감정 한 번 느껴보지 못하고 살아온 자신에게, 그리드는 유일한 쾌… 아니, 기쁨을 주었던 은인이다. 그가 안전하길 바랐다.

“걱정 마. 다 잘될 거야.”

등을 떠미는 얀페이의 손길이 떨리고 있음을 느낀 그리드가 그녀의 작은 몸을 살포시 안아주었다.

안심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얀페이에게는 자극이 너무 심했다. 얼굴과 목, 귀를 모조리 빨갛게 붉히면서 어쩔 줄 몰랐다.

한편 그리드는 지금의 이 상황이 퀘스트의 전조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동시였다.

[★히든 퀘스트★ <한속봉 부녀 구출>이 생성되었습니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그리드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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