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69화 (464/1,794)

템빨 30권 - 13화

<황금 호두>

자연이 내린 축복이라고도 부릅니다.

동대륙 모든 나라의 귀족과 왕족들이 즐겨먹는 간식이자 비약입니다.

동대륙 어딘가에는 이 호두를 주식으로 삼는 영물이 존재할 것도 같습니다.

복용 시 모든 능력치가 1시간 동안 10퍼센트 상승합니다.

또한, 매우 낮은 확률로 능력치 하나가 영구적으로 5 상승합니다. 호두 껍질을 잘 깔수록 능력치가 오르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무게:0.1

“최강의 버프 물약이자 열화판 엘릭서로군요…”

그리드로부터 건네받은 황금 호두의 상세 정보를 확인한 라우엘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특히 놀라는 부분은 동대륙 모든 나라의 왕족과 귀족들이 이 호두를 즐겨 먹는다는 점에 있었다.

“동대륙의 왕족과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스펙이 뛰어나겠네요. 오랜 세월 동안 먹어온 호두이니만큼 온전히 까는 방법도 충분히 터득했을 테고.”

“아마도 그렇겠지. 나처럼 완벽하게 호두를 깔 수 있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뭐, 어찌됐든 동대륙 왕족과 귀족은 무조건 강하다는 공식이 성립될 수준은 될 거야. 그 공식이 템빨단에도 적용될 수 있게끔, 황금 호두의 재배에 반드시 성공해야한다고 피아로에게 전해줘.”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라우엘의 표정이 어둡다.

그 이유를 그리드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사기적인 열매를 재배에 성공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겠지.’

밸런스에 유별나게 신경 쓰는 S.A그룹이 황금 호두의 재배가 가능하게끔 설정해놨을 리 없었다.

‘하지만.’

피아로는 전설이며, 전설은 상식에 위반되는 존재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S.A그룹은 전설에게 관대한 면이 있었다.

‘내가 아이템을 창조하고 크라우젤은 검술을 창조하듯이 피아로는 새로운 재배 기술을 창조할 수도 있어.’

너무 긍정적인 해석이려나.

피식, 쓴웃음을 흘린 그리드가 라우엘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 잘될 거야. 나도 동대륙에 가는 김에 더 많은 황금 호두를 구해올 생각이고.”

“…전하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전하 또한 저를 믿으시고 국정은 염려치 마십쇼. 신 라우엘, 전생의 친구들을 만남으로써 보다 견고해진 마음과 영혼을 토대로 삼아 템빨국의 안녕을… 응? 전하? 그새 어디 가셨지?”

저벅저벅.

잠재적인 적이었던 제국이 당면한 적이 된 상황이다. 발등 위에 떨어진 불과 같다. 제국이라는 시련을 당장 넘어서지 못하면 템빨국은 4개월 내로 망한다. 수백 억 투자 자금을 땡전 한 푼 건지지 못하고 말이다.

‘서두르자.’

라우엘이 떠들어대는 사이, 그리드는 스틱세이를 만나기 위해서 템빨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리드의 구보는 체력 좋기로 유명한 템빨국 병사들이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를 냈다. 근력과 1대1 비율로 맞추기 위해서 꾸준히 성장시켜온 민첩성 스탯이 2,700을 돌파하면서 발생한 효과다. 근력과 1대1 비율까지 약 500의 민첩성이 남았다.

***

템빨 아카데미.

템빨국 수도 라인하르트에 세워진 종합 교육 학교다.

8세 이상 템빨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학생으로 자원할 수 있는 이곳은 검과 마법부터 시작해서 모든 분야의 학문을 가르친다.

단, 학교 규모에 아직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 템빨 아카데미가 수용할 수 있는 총 학생 숫자는 3천 명에 불과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을 스틱세이가 직접 교육시켰고 말이다.

템빨국 모든 분야의 인재들이 부족한 일손 탓에 혹사당하는 실정이었고, 스틱세이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엘프족 모두에게 존경 받는 하이 엘프이자 대현자로 명망 높은 스틱세이.

사하란 제국의 황제조차도 버선발로 환영할만한 거물인 그가 변방의 소국에서 평민 아이들이나 가르치다니?

이 사실이 알려졌다가는 대륙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정작 템빨국 백성들은 스틱세이가 그처럼 대단한 인물인지 몰랐다.

그저 스틱세이 학교장님의 수업을 들으면 배움이 보다 쉬워지고 빨라지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수준에 불과하달까.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과 자연의 보존을 갈망하는 정령은 공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매우 희박한 확률로 인간과 정령이 계약을 맺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특수한 경우로 여러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만…”

“스틱세이!”

“…?”

재능이 있고 의욕이 넘치는 학생들만을 선별하여 교육시키는 고등반.

정령학 수업에 열중하고 있던 스틱세이가 갑자기 난입한 그리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우와아아아!!”

“그리드 국왕전하시다!!”

“국왕전하 사랑해요!!”

신분의 고하 없이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준 그리드에 대한 학생들의 사랑은 무척 깊었다. 특히 학구열이 높은 학생들일수록 사랑의 깊이가 달라졌다.

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이 특히 더 그리드를 좋아한단 뜻이다.

“이번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아돈이라고 합니다! 교육을 수료하고 졸업하면 꼭 그리드 전하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는 다음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할 예정인 샤넌이라고 해요. 그리드 전하께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꼭 기억해주세요.”

한 마디, 한 마디가 흐뭇하고 감사하다.

눈을 반짝이며 소리치는 학생들을 보자 제국에 대한 공포심을 잠시나마 지울 수 있게 된 그리드가 다짐해보였다.

“짐은 그날이 올 때까지 템빨국을 지켜 보이마.”

본래 그리드가 되고 싶었던 왕이란, 백성들에게 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는 부자 왕이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살 수 있는 재력을 갈망했다.

물론, 그 바람은 지금도 같다.

하지만 그리드의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백성들이 풍족해질 것.

그들이 풍족해져야만 자신이 걷을 수 있는 세금도 많아졌으니까.

그렇다.

그리드는 욕심쟁이지만 제국 황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핍박하면서까지 그들의 것을 빼앗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연하다.

평생을 빼앗기는 입장이었던 그리드.

빼앗기는 입장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제국 황제와 똑같이 행동할 리 없다.

그리드의 이기심은 죄 없는 약자를 탐함으로써 충족시키는 형태의 것이 아니다.

“제국에서 사신이 찾아왔다고 들었습니다만…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군요.”

굳이 아카데미까지 달려온 그리드를 보고 유추하는 스틱세이.

그에게 그리드가 부탁했다.

“나를 동대륙으로 보내줘. 아, 이번에는 서대륙 귀환 스크롤 챙겨주는 거 잊지 말고.”

“…..”

기억은 왜곡되는 법!

그리드는 과거 자신이 서대륙 귀환 스크롤을 챙기지 못했던 이유가 스틱세이에게 있다고 제멋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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