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0권 - 10화
<그리드 랭킹 하루만에 7계단 껑충…!>
<건국 이후 정체되어 있던 그리드의 레벨이 하룻밤 사이 4개나 올랐다!>
<템빨왕 그리드, SSS난이도의 퀘스트를 클리어한 것으로 추정>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할 SSS난이도의 퀘스트… 그리드가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것은 과연 4개의 레벨뿐일까?>
그리드가 또 한 번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전직 퀘스트를 연속으로 클리어한 보상으로 4개나 오른 레벨이 세상을 발칵 뒤집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 본인은 기뻐하지 않고 분노했다.
‘아무래도 전직 퀘스트를 완료해야 클래스가 진짜 힘을 개방하는 구조인 것 같은데.’
전직 퀘스트의 끝이 어디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리드가 수행 중인 전직 퀘스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즉, 고급 재단 기술을 마스터하는 일 또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재단 기술 마스터하는 것만 해도 한 세월 걸릴 텐데 도대체 전직 퀘스트는 언제 끝낼 수 있는 거지?’
이런 빌어먹을!
대장장이 전직 퀘스트에 왜 재단 기술 연마가 있는 걸까?
‘장기적으로 보면 다양한 기술을 연마하는 편이 좋다는 건 물론 나도 알아.’
하지만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하고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아직도 전직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해서 클래스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리드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에휴, 뭐… 템빨단원들이랑 병사들한테 속옷 만들어 주다 보면 언젠간 재단 기술 레벨도 오르겠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모든 백성을 템빨로 무장시키겠다’는 템빨국의 컨셉을 극대화시키는 편도 좋을 것이다, 라고 그리드는 마음을 다스렸다.
“고생했어, 오빠.”
Satisfy에서 로그아웃한 그리드.
신영우로 되돌아온 그가 혜성 그룹의 다이아몬드 캡슐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마주한 사람은 여동생 세희였다.
템빨왕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그에게 세희가 수고했다는 의미로 물을 건네주었다.
“땡큐.”
역시 동생이 최고다.
세희의 예쁜 얼굴과 상냥한 마음씨 덕분에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영우가 싱글벙글 웃었다.
“꿀꺽꿀꺽… 푸우웃!!!”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던 영우가 입과 코로부터 물을 뿜어 버렸다.
생수인 줄 알았더니 탄산수였던 까닭이다.
“켁켁…! 이거 맛 없다니까!”
탄산수를 코로 뿜는 고통에 눈물까지 쏟는 신영우.
욱해서 버럭 소리치는 그에게 세희가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또 탄산음료 마실 생각이었잖아? 몸에 나쁜 콜라 같은 거 마시느니 탄산수를 마시라구.”
“이, 이런 제길…”
다섯 살짜리 아이도 탄산수를 즐기는 시대다. 인류는 탄산수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영우는 시대를 역행하는 존재! 일명 아싸(아웃사이더) 출신답게 마이 페이스로 살아갔다. 여전히 탄산수에 익숙해지질 않았다.
가르르르!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하고 가글하는 그에게 세희가 알려주었다.
“1층 카페에서 하오 씨가 기다리고 있어.”
“응, 접속 제한에 걸리는 시간에 맞춰서 약속 잡아 놓은 거야. 나한테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 하오 씨와는 큰 친분이 없잖아? 근데도 현실에서 쉽게 만나 줘도 되는 거야?”
연약한 오빠가 아무나 함부로 만나고 다니다가 혹 해코지라도 당하진 않을까, 세희는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 세희를 영우가 도리어 걱정했다.
“누가 보면 네가 내 엄만 줄 알겠다. 탄산수도 그렇고 별거 아닌 일로 걱정하는 것도 그렇고, 완전히 애엄마네, 애엄마야.”
“….”
“넌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잔소리 심한 여자를 싫어하는 법이야. 시집가고 싶으면 오빠 걱정 좀 그만해라.”
“연애 한 번 못해 본 사람이 뭘 안 다고…”
“나 유부남이거든!”
“그건 게임 속에서의 이야기고! 현실에서는 여자 손 한 번도 못 잡아봤잖아!!”
“아니야! 나 예전에 유라랑 지슈카 취해서 꽐라됐을 때 업어 본 적도 있어! 여자와의 스킨십에 아주 익숙하다고!!”
“뭐, 뭐라고? 이런 파렴치한!!”
투닥투닥!
자신보다 9살이나 어린 여동생 세희와 진심전력으로 다투는 영우였다.
결국 나중에 세희가 봐줘서 살았다.
***
“아우… 뭔 여자애가 저렇게 손이 맵냐? 나중에 남편 될 사람이 불쌍하네.”
신영우 가족 전용 엘리베이터.
1층으로 향하는 영우가 따끔따끔거리는 등짝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동시에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약한 것보다야 센 게 낫지. 세희는 나랑 달라서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일은 없을 거야. 그치? 내 동생 진짜 든든하지 않냐?”
“그, 그래….”
야수 인간 툰.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이자 템빨단 최상위급 전력의 하이 랭커.
영우의 건물에서 신세지고 있는 그가 영우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있었다.
영우의 안전을 위해서다.
너무 아무나 함부로 만나는 거 아니냐, 라고 걱정하였던 세희와 마찬가지로 툰 또한 영우를 걱정하고 있었다.
영우가 현실에서도 무술의 달인으로 유명한 하오와 독대하였다가 혹 어떤 봉변이라도 당하진 않을까 싶어서 영우와 동행하는 중이었다.
“바이란엔 별일 없지?”
템빨국 자작 툰은 바이란의 영주직을 맡고 있었다.
게임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까닭에, 영우는 이처럼 현실에서 툰에게 정황을 보고 받곤 했다.
“바이란을 대표하던 대장장이 스미스가 라인하르트로 떠난 이후 세수가 좀 줄기는 했지만, 이건 일시적인 현상일 테고 그 외에는 딱히 문제가 없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이미 다 복구되었고. 아무래도 숲의 수호자 덕분에 유저 유입률이 높아.”
“병사들의 훈련 진척도는?”
바이란에 배치된 병사 중에는 레이단 출신이 단 한 명도 없다. 전원 바이란 내에서 징병하고 훈련시킨 병사들이다.
바이란은 외세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는 영토였던 까닭에 굳이 정예병을 배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 평균 레벨이 100을 넘었어.”
“벌써? 엄청 빠르네?”
“그리드 세트 획득 퀘스트 경로 중에 바이란이 포함되어 있는 덕분이지. 연계 퀘스트를 진행 중인 유저들이 바이란에 들러서 병사들과 함께 퀘스트를 수행하다보니까 병사들의 레벨이 쭉쭉 오르더군.”
“음, 여태까지 보상으로 나간 그리드 세트가 총 몇 개랬지?”
“무기 23자루, 건틀릿 5자루라고 들었다.”
그리드 세트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템빨국 연계 퀘스트.
퀘스트 3단계 보상이 무기이고 6단계 보상이 건틀릿이다.
말인 즉, 여태까지 템빨국 연계 퀘스트를 6단계까지 완료한 사람은 총 다섯 명에 불과하단 뜻이다.
“엄청 적네. 난이도를 너무 높게 책정했나?”
“아니, 적절해. 그리드 세트를 너무 쉽게 풀어서야 안 되지. 오히려 유저들은 그리드 세트를 전부 모으기 위해서 더욱 열정적으로 성장에 매진하고 있어. 이번에 너와 라우엘이 만든 연계 퀘스트는 템빨국과 템빨국에 소속된 유저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흐음….”
어느덧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기 전, 하오가 영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너는 모두의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으니까 혹시라도 불안해 하지 마라.”
“…내가 팬티 만들고 다니는 것도 잘하는 일일까?”
“…???”
갑자기 뭔 헛소리지?
이해하지 못한 툰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때 영우는 카페에 입장하고 있었다.
***
“와, 뭐야? 고구마 라떼 매니아야?”
종업원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면서 카페에 입장한 영우와 툰.
하오가 앉아있는 창가 자리에 앉은 그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오의 앞에 고구마 라떼가 무려 3잔이나 놓여있는 까닭이다. 그중 2잔은 바닥을 거의 다 드러낸 상태였다.
“당신 미식가구나?”
공통점은 사람 관계에서 친근감을 형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고구마 라떼 마니아인 영우가 하오에게 호감을 느꼈다.
반면 하오는 영우를 귀신 보듯이 하고 있었다.
‘이렇게 단 음료를 어떻게 매일 마실 수 있는 거지?’
사천 출신인 하오는 맵고 짜거나 맵고 단 음식을 좋아한다. 달기만 한 음식은 솔직히 입맛에 안 맞았다.
영우를 닮고 싶다는 의욕이 앞서서 고구마 라떼를 무려 3잔이나 마신 탓에 그는 무척 괴로웠다.
두 번 다시는 고구마 라떼를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 다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고구마 라떼 2잔 나왔습니다.”
“…..”
영우와 툰 앞에 놓이는 음료.
하오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드뿐만 아니라 야수 인간 툰까지 고구마 라떼를 섭취한다고…? 역시 고구마 라떼는 중요한가 보군. 괴롭지만 어쩔 수 없지. 역시 나도 매일 고구마 라떼를 먹어야겠다.’
마음을 다잡은 하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남은 고구마 라떼 한 잔을 꿀꺽꿀꺽 원샷했다.
당분 과다 섭취 때문에 머리가 핑, 하고 아찔하게 돌았지만 이 고구마 라떼가 매일 영우가 먹는 음료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 고통은 참을 수 있었다.
그에게 영우가 자신의 고구마 라떼를 건네주었다.
“당신 이거 엄청 좋아하는구나…? 이것도 먹어. 나야 새로 한 잔 더 시키면 되니까.”
“….아니, 정중히 사양하는 거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하오.
보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는 어중간한 언어능력으론 안 된다고 판단한 그가 통역기를 착용했다.
영우와 툰은 이미 통역기를 착용한 상태다.
혜성 그룹에서 제작한 다이아몬드 클래스의 통역기.
이것도 협찬으로 받았는데 성능이 기가 막히다.
“우선 나의 집을 방문한 것을 환영한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군.”
영우가 뒤늦은 인사를 건네자 하오가 예의 바르게 대응했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서 나의 방문을 허락해준 것을 감사한다.”
“한국 음식은 먹어 봤어?”
“아직이다.”
“중국집 가서 짬뽕 먹을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난데 엄청 맛있어.”
“…?”
한국 음식을 먹어 봤냐고 물어보더니 중국 음식점에 가자고?
어째서 대화가 이렇게 이어지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하오가 통역기의 고장을 의심했다.
한편 툰은 영우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리드, 대화가 초반부터 너무 산으로 가는 것 같으니까 집중하는 편이 좋겠다.”
“아, 내가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그만 실례하고 말았군.”
“…..”
“그래서 하오, 당신이 찾아온 용건이 뭐라고?”
뒤늦게 통역기의 고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하오가 황당해 하면서 이유를 밝혔다.
“크라우젤 님을 잘 설득해서 미국 이민을 막아주었으면 한다.”
“…뭐? 크라우젤이 미국으로 이민 간대?”
“그렇다.”
깜짝 놀라는가 싶던 영우가 이내 납득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긴, 병든 어머니를 인질로 잡을 정도로 악독한 러시아에 계속 남아있으면 이상한 거지. 나라도 이민 가겠다.”
“하지만 하필이면 미국으로 가겠다는 건 문제잖나? 꼭 이민을 해야겠으면 한국이나 중국으로 오는 편이 옳은 거 아닌가?”
하오가 열변을 토했지만 영우는 딱히 공감하지 못했다.
“왜?”
두 눈을 껌뻑이면서 반문하는 영우에게 하오가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크라우젤 님은 고려인이니까. 굳이 서양으로 가느니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이나 조국인 한국으로 오는 편이 정상적인 거 아닌가?”
“글쎄? 나는 잘 모르겠네. 이민 갈 국가를 결정하는데 꼭 인종이 우선되어야 하는 건가? 보다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게 맞지 않아?”
“…..”
하오의 말문이 닫혔다. 그리드의 반응이 자신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민족주의가 강한 중국인 하오의 입장에서는 그리드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멍해진 그에게 툰이 설명했다.
“그리드는 딱히 국가라는 개념에 얽매이지 않아.”
영우는 자신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무조건 한국이 옳다, 라는 그런 게 없다. 극검과 완전히 반대다. 물론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긴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꺼이 군대도 다녀왔던 거고. 하지만 평생 대한민국과 관련 없이 살아온 크라우젤에게까지 굳이 애국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하오, 이건 크라우젤이 알아서 할 문제야. 우리가 백날 떠들어봤자 의미가 없다고.”
하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생각해 봐라! 크라우젤 님이 미국으로 이민가게 될 경우, 앞으로 열릴 국가 대항전 1위국은 무조건 미국이 될 거라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
미국은 지난 수백 년 동안 그 타이틀을 놓친 적이 없다. 중국에게는 커다란 장벽이었고 애국심 강한 하오의 입장에선 미국에게 적대심마저 느꼈다.
한데 이제는 Satisfy마저 미국이 정복하려한다. 하오는 그게 너무 싫었다.
“크라우젤이 한국이나 중국으로 와서 한국이나 중국이 1위 독식하는 건 괜찮고?”
“중국은 나의 조국이고 한국은 내가 인정하는 네가 있는 나라니까 괜… 아니, 어찌됐든 미국이 독식하는 것보다야는 낫다. 크라우젤 님이 조국을 놔두고 굳이 미국으로 이민 가려 하는 것을 나는 납득할 수가 없…”
하오가 문득 말을 멈췄다.
크라우젤이 ‘보다 행복한 곳을 찾아’가는 편이 옳지 않느냐, 라던 영우의 말이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이기심 때문에 크라우젤 님의 행복을 방해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군.’
비뚤어진 애국은 독이다.
깨달은 하오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기껏 한국까지 찾아 올 필요도 없었군.”
쓴 웃음을 피어올리며 중얼거리는 하오.
그 앞에 앉은 채 빨대로 고구마 라떼를 쪽쪽 빨아먹던 영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 나는 네가 찾아와 줘서 기쁜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생각보다 더 반갑고.”
“……”
“그런 의미에서 중국집 가자.”
“…아니, 왜 내가 한국까지 와서 중국 음식을 먹어야하는 거지? 원래 난 삼겹살과 김치찌개를 먹을 계획이었다.”
“그런 유명한 음식들은 중국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잖아? 중국집 가자고.”
“…..”
세상에 뭐 이딴 인간이 다 있지?
하오는 황당했다. 근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한편, 툰은 극검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하오는 그리드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듯하다. 하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삼겹살과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저녁은 네가 대접해 줘라.
답장은 빠르게 왔다.
-두 유 노우 킴취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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