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0권 - 3화
‘하지만 놀랍군.’
그리드에게는 100단위의 대장장이 인재를 선별하고 육성해본 경험이 있다.
그 경험에 따르면, 자신과 칸이 혼신의 노력을 쏟아도 고급 대장장이는 쉽게 탄생하지 않았다.
한데 렉터는 그리드가 단지 몇 마디 조언(?)을 해준 것만을 토대로 기술을 발전 시켜서 스스로 고급 대장장이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그 재능, 어쩌면 그리드가 레이단을 샅샅이 뒤져서 선별하였던 대장장이 인재들의 재능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일 수도 있다.
‘설마…’
렉터는 칸처럼 장인급 대장장이로 성장할 수준의 재능을 갖춘 인물. 즉, 천재의 반열에 오른 인물일까?
기대감에 차오른 그리드가 <대영주의 검>을 꺼내서 장착했다. 국왕 전용 퀘스트를 진행하면 <왕의 검>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한 아이템.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지만 너무 바빠서 겨를이 없다.
‘캐릭터 관찰.’
이름:렉터
나이:28 성별:남
직업:대장장이
레벨:237
근력:250/600 체력:899/1,300
민첩:50/88 지력:420/420
스킬:[고급 대장장이 기술(Lv.2)]/[스펀지 같은 습득력(S+)]/[포기를 모르는 집념(S+)]/[주입식 교육(S+)]
롤링 태생의 대장장이입니다.
배움에 능숙하고 집념이 강하여 성장이 빠릅니다. 자신이 해온 공부를 타인에게 주입시키는 능력 또한 탁월합니다.
단, 이 모든 재능은 대장일에 국한됩니다.
“오.”
그리드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레이단으로 파견 보내는 것이 좋겠군.’
장인급 대장장이의 재능을 갖췄는가?
이에 대한 평가는 아직 확실히 내릴 수 없었지만, 렉터는 지금도 이미 충분히 템빨국에 보배 같은 존재였다.
레이단에서 육성 중인 수백 대장장이를 렉터에게 맡긴다면 템빨국은 대량의 고급 대장장이를 보다 빠르게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내 덕분에 고급 대장장이가 된 렉터라면.’
필시 내게 큰 호감을 품고 있을 터.
‘대장장이의 자애를 발동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대장장이의 자애>
호감도가 최대치인 NPC 대장장이의 스킬 레벨을 영구적으로 1~5 올려줄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받은 대장장이는 평생 당신에게 충성할 것이며 새로운 아이템 제작법을 습득할 때마다 당신에게 공유할 것입니다.
과거, 야탄교에게 습격당했던 바이란의 대장장이 스미스를 구출하고 획득했던 스킬이다.
이 스킬 덕분에 칸은 장인급 대장장이로 성장할 수 있었고 스미스 또한 고급 대장장이가 되었다.
“렉터, 짐이 좋나?”
“예…?”
렉터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리드 국왕전하께서 자신을 마치 핥는 듯한 시선으로 유심히 관찰하셨던 까닭이다.
그러던 차에 자신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았으니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
오만가지 상상이 피어올랐다.
‘서, 설마 남색을 밝히시는 건가?’
렉터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다른 대장장이들도 술렁였다.
그 때였다.
“저는 전하가 좋사옵나이다!!”
노년의 대장장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바이란의 대장장이 스미스였다.
그리드에게 야파 화살 제작법을 전수해주고 이후 그리드 덕분에 고급 대장장이 반열에 오른.
‘저 게이 영감이.’
어째서 분위기가 싸해지는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그리드가 스미스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자칫 게이로 오해받을 뻔했단 사실을 말이다.
애써 스미스를 무시한 그리드가 옥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찌해야할지 몰라 벌벌 떨고 있는 렉터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헉.”
렉터가 헛숨을 들이켰다.
성희롱이 시작되는 것인가 걱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대장장이들은 이제 오해를 풀었다.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렉터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 그리드의 모습으로부터 색욕이라고는 일말도 느낄 수 없었으니까.
오히려 지금 그리드의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창문을 타고 내려오는 햇살 아래 전설의 대장장이가 일개 대장장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주는 모습.
교황이 신도에게 성수를 뿌려주는 모습과 닮아있었다. 본능적으로 전설의 대장장이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대장장이들의 입장에서 지금의 광경은 신성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렉터.”
“예… 예, 전하.”
성스러운 빛의 왕관과 대영주의 검, 그리고 높은 위엄 스탯이 결합되어 그리드의 눈빛 하나마저도 좌중을 압도하는 포스를 풍기기 시작한다.
심상찮은 분위기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그때.
“짐이 네게 자애를 베푼다.”
파아아앗-!!
렉터의 머리 위에 얹어진 그리드의 커다란 손으로부터 금색의 휘광이 뿜어졌다.
태양보다 찬란하고 따스한 빛이었다.
“아아…”
빛에 휘감긴 렉터가 전율했다.
정확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자신이 커다란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지켜보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든 대장장이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대장장이의 자애>의 위력이었다.
자리의 모든 대장장이들이 지금 이 순간 그리드가 렉터에게 큰 축복을 내렸음을 눈치 챘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고,
[대장장이의 자애 효과로 렉터의 대장장이 기술 레벨이 5개 상승합니다!]
떠오르는 알림 창을 확인한 그리드는 환희에 찼다.
그리드가 대장장이들에게 신격화 된 날의 사건이었다.
그리드의 축복을 받으면 대장장이 기술이 크게 상승한다.
이 사실이 템빨국은 물론이고 서대륙 전역에 일파만파로 퍼지기 시작했다. 대륙의 모든 대장장이들이 그리드를 더욱 더 존경하였으며 그리드와의 만남을 꿈꾸게 됐다.
이제 사람들은 전설의 대장장이라 하면 파그마보다 그리드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게 됐을 정도다.
***
<광룡철>
광룡 네바르탄의 둥지에 자생하는 광물중 하나입니다.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네바르탄의 광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혼돈의 이능 <증식>을 손에 넣었습니다.
열흘에 한 번씩 2배로 증식합니다.
이 부조리한 성질 탓에 제어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단단하기는 흑철과 비견되지만 제련 난이도는 흑철보다 몇 배나 높습니다.
무게:5
<광룡석>
광룡 네바르탄의 둥지에 자생하는 광물중 하나입니다.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네바르탄의 광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혼돈의 이능 <억압>을 손에 넣었습니다.
경도가 무척 낮지만, 다른 광물과 섞어서 제련할 경우 그 광물 고유의 특성을 삭제하는 기능을 발휘합니다.
무게:1
<광룡구>
광룡 네바르탄의 둥지에 자생하는 광물 중 하나입니다.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네바르탄의 광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혼돈의 이능 <폭주>를 손에 넣었습니다.
다른 광물과 섞어서 제련할 경우 그 광물 고유의 특성을 배가시키는 기능을 발휘합니다.
인간이 이 광물을 만질 경우 이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아무나 제련할 수 없습니다. 취급에 엄격한 주의를 요합니다.
무게:300
라인하르트 궁전 내부에 그리드 전용의 대장간이 있다. 왕이기에 앞서서 대장장이인 그리드를 위해서 대장간이 건설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곳으로 고급 대장장이들을 데려온 그리드가 광룡의 둥지에서 캐온 광물 3종류를 꺼내 보였다.
우선 광룡구.
옥빛의 원형 광물이다.
밀도가 높은 이 광물은 크기부터가 축구공만하다. 무게가 상당했다.
“칸, 이 광물을 한 번 만져보시겠어요?”
광룡구는 상태이상 ‘폭주’를 유발하는 위험한 광물이다. 그리드야 상태이상에 저항하기 때문에 만져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고급 대장장이들이 광룡구를 만졌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다.
단, 칸은 장인급 대장장이인 바.
그리드는 기대를 걸어보았다.
장인급 대장장이쯤 되면 광물의 저주 따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과는.
“음, 상당히 무겁군. 제련하려면 상당한 기술과 시간이 필요하겠어.”
그리드의 예상대로 칸은 광룡구의 저주를 받지 않았다. 멀쩡한 그를 보고 그리드가 미소 지었다.
‘역시 든든하단 말이야.’
그리드가 태어나 처음으로 얻은 친구 칸은 그리드에게 없어서 안 될 버팀목이었다. 그리드는 늘 그에게 의지를 하게 됐다.
칸에게 새삼 다시 큰 호감을 품은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인 후 대장장이들에게 설명했다.
“여기 이 3개의 광물은 모두 광룡 네바르탄의 둥지에서 캐온 것이다.”
“……!”
대장장이들이 술렁였다.
드래곤 레어. 그것도 광룡의 레어에서 광물을 캐왔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무시한 그리드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광룡철은 무한히 증식한다. 광물로써 온전히 존재할 때에도, 도구의 재료로 사용된 뒤에도 쭉.”
“예…?”
대장장이들이 깜짝 놀랐다.
무한히 증식하는 광물이라니?
자원 난에 시달릴 필요가 없어지게끔 만들어주는 꿈의 광물이란 뜻이 아닌가?
그리드가 씨익 웃었다.
“짐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해두지. 어찌됐든 이 증식의 특징은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광룡철로 제작한 도구는 부피가 증식하기 때문에 써먹을 수가 없거든.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광룡석이다.”
그리드의 설명은 계속됐다.
자리에 모인 대장장이들에게 광물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준 뒤, 그들에게 앞으로 이 광물을 이용해서 그리드 세트를 제작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그리드 세트 제작법을 익힐 때까지 그대들은 특훈을 해야 한다 이거야. 몇 날 며칠이 걸릴 지도 몰라.”
“열심히 따를 따름입니다!”
“존경하는 국왕전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처럼 큰 영광이 없습니다! 며칠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전하 아래서 배움을 받겠나이다!”
“좋아.”
이날부터 라인하르트 대장간에서 망치질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리드 아래 결집한 대장장이들은 그리드 세트의 제작법을 완전히 마스터할 때까지 의욕을 잃지 않고 배움에 정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장장이들은 그리드에게 큰 호감을 쌓아갔다. 국왕전하께서 친히 자신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으니 호감이 쌓이지 않을 리 없다.
보름 후.
“대장장이의 자애.”
이미 자애를 받았던 칸, 스미스, 렉터를 제외한 고급 대장장이 22명이 모두 그리드에게 축복을 받았다.
크게 성장한 그들은 이미 그리드 세트의 제작법을 마스터한 상태였다.
“너희들이 곧 템빨국의 힘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명심하며 스스로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왕명을 받듭니다!”
대장장이가 세운 나라답게 템빨국의 대장 기술은 서대륙 최고가 되어가고 있었다.
온 백성이 템빨러가 되는 그날까지, 템빨왕 그리드와 대장장이들은 대장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도태되는 일도 없어야겠지.’
<최초의 왕>칭호를 획득한 이후 그리드의 생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여기에 갓 핸드와 묠니르의 무한 경직 능력까지 결합되면 그리드는 완벽한 탱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딜러로서의 능력은 약해진 느낌이다.
그리드는 본인의 공격력을 높여야한다고 판단했다.
‘신장이 잘만 터져주면 공격력도 부족할 게 없다지만…’
신장에만 의지하면서 운빨X망겜을 외치는 것도 이제 피곤하다.
‘나를 위한 무기를 만들도록 하자.’
결심한 그리드가 벨리알의 뼈와 가죽을 꺼냈다.
개국공신들에게 하사할 아이템을 제작하고 남은 재료였다.
“여기에 추가로.”
회심의 미소를 그린 그리드가 광룡의 둥지에서도 총 7개밖에 획득하지 못한 <광룡구> 중 하나를 꺼냈다.
‘광물의 고유 특성을 배가시켜준다 이거지?’
벨리알의 뼈와 피부에 깃든 열기와 마기가 2배 더 강해진다면?
“크크큭… 이번에 만들 무기의 컨셉은 마검이다.”
새로운 무기의 콘셉트에 맞춰서 왕관 또한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새로운 것으로 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제 그리드는 투구와 왕관 2개를 모두 착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왕관의 성능도 중요했다.
‘대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포스를 보여주지.’
그 누구도 템빨왕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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