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58화 (453/1,794)

템빨 30권 - 2화

템빨국 백성과 마안족은 상호 존중하며 적대하지 않는다.

템빨국과 마안족은 상호 문물을 교류하며 동반 성장한다.

템빨국은 마안족에게 무구를 제공하고 마안족은 템빨국에게 무력을 제공한다.

템빨왕과 마안족 왕은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친분을 유지한다.

그리드가 마안족 도시에 머무는 동안 체결한 동맹 조약이다.

“덕분에 정녕 즐거웠다.”

지난 이틀.

마안족 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과 시선을 마주한 채 대화할 수 있었다.

남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었지만 마안족 왕에게는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안족 왕은 그리드를 각별하게 느꼈다. 최소한 그리드와 있는 동안은 장님 신세를 면할 수 있었으니까.

그를 불쌍하게 여긴 그리드가 약속해보였다.

“삼마안의 힘을 억누를 수 있는 아티팩트를 제작해보도록하마. 죽기 전에 가족 얼굴은 봐야지 않겠어?”

“말만으로도 고맙군. 하지만 그건 아마도 힘든 일일 테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마안족 왕은 그리드의 약속을 굳이 마음에 두지 않았다. 이뤄질 거라는 기대 따위 추호도 안 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반드시 약속을 이행할 각오였다.

물론 순수한 호의는 아니다.

마안족 왕과 대화하는 도중, 그리드는 마안족 왕에게 ‘마안을 심어주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안족 왕과의 호감도를 최대치로 높이고 마안을 획득하는 것이 그리드의 목표였다.

‘반드시, 꼭.’

우리 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보이겠다.

다짐한 그리드가 마안족 왕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지. 약속한 보호 망토는 매달 50벌씩 보내도록 하겠다.”

“알았다. 잘 가라.”

마안족은 타고난 마안의 힘으로 절대적인 강함을 뽐낸다. 존재 자체가 무기였다. 사실상 그들에게는 무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안족은 중2병이다.

그들은 늘 멋진 망토를 갖기를 원했다. 기왕지사 방어력까지 갖춘 망토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드는 그들을 위해서 <양산형 란스티어의 망토>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대량생산 가능한 무구의 종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언젠가는 템빨국 병사와 백성 전원이 그리드 세트와 란스티어의 망토를 무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언젠가란 아득히 먼 미래도, 허황된 목표도 아니다. 몇 년 내에 실제로 다가올 현실이다.

그리드의 인벤토리에 가득 찬 광룡철이 실현시켜줄 현실.

***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템빨국이 퀘스트 보상을 적극 개편한다고 하더라.”

“국가가 내리는 퀘스트는 기본적으로 짭짤하잖아? 우리나라 퀘스트도 나는 이미 만족하면서 수행 중인데.”

“일반적인 보상이랑은 차원이 달라. 180레벨 이상 플레이어가 고난이도 퀘스트를 수행할 경우 보상으로 그리드의 제작 아이템을 준대.”

“뭐? 그, 그리드가 만든 아이템을 준다고?”

“그래, 심지어 세트 아이템. 퀘스트를 3개 클리어할 때마다 1부위씩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

“헐, 그리드의 세트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고…?”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

20억 유저 대부분이 그가 제작한 아이템을 사용하길 꿈꾸고 있다. 하지만 공급량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그리드가 제작한 아이템은 돈 주고도 못 사는 희귀품이 된 실정이다.

한데 이때, 그리드의 아이템을 퀘스트 보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라우엘의 작전이었다.

라우엘은 최대한 많은 자금을 투자해서 인력을 고용하고 이들을 철저히 이용했다. 앞으로 개편될 템빨국의 퀘스트 정보를 대륙 각지에 고의적으로 퍼뜨렸다.

플레이어를 유혹하기 위한 홍보 작전이었다.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이렇게 된 이상 템빨국으로 안 갈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도 템빨국이 세금도 싸서 이주하고 싶던 차인데.”

“그리드의 세트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들이 결단을 내렸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템빨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각국은 비상이 걸렸다.

“국가란 충성의 대상이다! 너희들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옮겨 다니기에는 너무나도 숭고한 대상이란 말이다!”

“이주를 쉽게 허락할 수 없다! 정 이주하고 싶다면 국가를 위해서 공헌해라!”

15개 왕국이 이주를 꿈꾸는 플레이어들에게 과중한 퀘스트를 떠넘겼다. 레벨대 이상의 스펙을 갖췄거나 특출한 센스가 없는 이상 클리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난이도의 퀘스트였다.

플레이어들의 반발이 발생했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와 S.A고객센터에 불만 글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니, NPC가 플레이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말이 됩니까?

-높은 자유도를 첫 번째 장점으로 꼽는 Satisfy가 이래도 되는 건가요? 플레이어는 NPC들의 꼭두각시가 아니라고요.

플레이어들은 S.A그룹이 NPC의 폭주를 막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S.A그룹은 Satisfy의 NPC를 ‘또 다른 세계의 주민’으로 상정하고 인간처럼 존중하는 바.

그들에게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S.A그룹은 Satisfy의 모든 전개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벽창호처럼 구는 S.A그룹에게 분통이 터지는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소수의 플레이어들은 S.A그룹의 운영 방침이 Satisfy를 즐겁게 만드는 요소임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운영자가 일일이 개입하면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S.A그룹은 플레이어가 Satisfy를 게임 그 이상으로 인식해주길 바랐고, 실제로 플레이어들은 Satisfy를 게임이라기보다 또 다른 세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가능한 이유는 순전히 S.A그룹의 방관형 운영 방침 덕분이다.

만약 S.A그룹이 일일이 흐름에 개입했다면 유저들의 몰입도는 현격히 떨어졌을 것이다.

어찌됐든 결국.

S.A그룹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플레이어들이 선택했다.

과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면서까지 퀘스트를 완료하고 템빨국으로 이주할지, 아니면 그냥 현재 국가에 안주할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안주하는 선택을 내렸다.

그리드 세트가 탐난다지만 어쩌겠는가?

능력 이상의 노력을 강요하는 이주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는 것, 평범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며 이주 퀘스트를 외면했다.

그리고 이는 템빨국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템빨국 이주 퀘스트를 수행하는 플레이어는 다른 대다수의 플레이어보다 열정적이며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되었으니까.

그렇다.

백성이 떠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과도한 이주 퀘스트를 부가한 15개국의 태도가 도리어 템빨국에 인재를 걸러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퀘스트를 완료하고 템빨국으로 이주한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평균보다 뛰어났고 이는 템빨국 국력 상승과 직결됐다.

***

“대박.”

자리를 비운 보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라인하르트로 귀환해서 국가 정보를 확인한 그리드가 급등한 백성 수를 보고 감탄했다.

플레이어 백성 수가 무려 10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전보다 배나 늘어난 숫자다.

손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라우엘이 큭큭,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웃었다.

“변경 될 퀘스트 보상에 대한 정보를 고의적으로 유출하고 이를 템빨국 홍보 수단으로 삼은 결과랄까요. 후훗, 전하의 훌륭한 능력과 저의 천재적인 지략이 결합되어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이 과정… 세계를 전율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것이겠지요. 크크큭.”

“오, 정말 대단해. 역시 라우엘이야. 고생이 많았어.”

“…?”

라우엘이 짐짓 놀랐다.

평소의 그리드는 자신이 무슨 말만하면 당황하고 민망해하지 않았던가?

그런 오글거리는 말투 좀 자제하라고 부탁하면서 말이다.

한데, 보름 만에 만난 그리드는 그러지 않았다. 오글거리는 라우엘의 말투를 듣고도 당황하지도, 민망해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다.

라우엘이 오해했다.

‘전하께서 드디어 알아주셨는가.’

나의 말투는 오글거리는 것이 아니라 ‘멋진 것’이라는 사실을?

“후후훗….”

인정받았다고 생각하자 기쁘다.

절로 미소 짓는 라우엘에게 생소한 이들이 다가왔다.

3등신의 대두 캐릭터들이었다. 포동포동하게 오른 젖살과 사나운 눈매가 은근히 귀여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들이 바로 마안족인가?’

쉽게 유추해내는 라우엘에게 17명의 마안족들이 인사를 건넸다.

“크크큭… 그대였군. 바로 그대였어.”

“우리와 전생을 공유한 인간.”

“그대 홀로 인간으로 환생한 바람에 고독한 운명을 등반하고 있겠군. 그것은 참으로 고달픈 일일 테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 위대한 마안족 주민들이 그대의 동반자가 되어줄 테니까.”

“큭큭큭, 몇 번의 윤회를 반복한 끝에 다시금 재회했다라… 이게 바로 운명이라는 이름의 끌림인가. 그 위력, 실로 대단하군.”

“밤하늘에 가득한 별빛들이 오늘따라 더욱 더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의 재회를 축복해주는 듯한데 그 깊은 눈빛의 호수에 건배라도 나눌까?”

“…..이럴 수가.”

마안족들의 대사를 듣고 두 눈을 크게 뜬 라우엘이 심장 위로 손을 얹었다.

두근두근!

심장 고동 소리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빠른 느낌이다.

‘내 전생은 역시 사실이었어.’

사실 가끔씩 걱정하긴 했었다.

내가 괜한 망상에 빠진 미친놈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이제 보니 헛된 망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전생을 증명해주는 존재들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

때로는 영웅이었고, 때로는 신이었으며, 때로는 악인이었던 나의 모든 전생들이 사실이었다.

“운명의…”

“…데스티니.”

서로를 바라보는 라우엘과 마안족의 눈빛에 강한 신뢰와 호감이 피어오른다.

***

“고급 이상의 대장 기술을 습득한 대장장이 전부를 라인하르트로 소집하라.”

템빨왕 그리드가 내린 왕명이 템빨국 전체에 전파됐다.

왕명을 받든 각지의 영주들이 즉각 대장장이 수색에 나섰다.

결과, 그리드와 칸이 레이단에서 직접 육성한 12명의 고급 대장장이뿐만 아니라 재야에 묻혀있던 고급 대장장이가 추가로 8명이나 더 라인하르트에 도착하게 됐다.

그리드는 깜짝 놀랐다.

‘자연 발생한 고급 대장장이가 이렇게 많았다고?’

고급 대장장이만 되도 국가가 원하는 최고의 인재다.

그만큼 기술이 뛰어났고 또한 귀했다.

레이단에서 대량의 고급 대장장이가 육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그리드와 칸의 재량이었고, 자연적으로 고급 대장장이가 발생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제국을 제외한 일반적인 왕국은 고급 대장장이 숫자가 총 10명 ‘미만’에 불과할 정도.

한데 템빨국은 기존 라인하르트에 있던 고급 대장장이 5명에 추가로 8명의 고급 대장장이가 더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레이단 출신 고급 대장장이 12명까지 합하면 무려 25명이다.

“꿀꺽.”

궁전에 모인 대장장이들이 그리드 앞에 고개를 조아린 채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들의 왕이자 전설의 대장장이인 그리드.

존경해 마지않는 그분과 대면하게 되었으니 가문의 영광일 따름이다.

‘나와 칸이 키운 애들 말고도 13명의 고급 대장장이가 있었다니… 기존의 에트날 왕국이 대장장이 육성에 특화 된 국가였나?’

그리드는 기쁘면서도 의문이었다.

의아해하고 있는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대장장이 중 하나가 조용히 거수했다.

렉터라는 이름의 젊은 대장장이였다.

“말하라.”

“국왕전하, 감히 여쭈건데 혹시 롤링이라는 마을을 기억하십니까?”

“롤링?”

여태까지 그리드가 방문한 마을이 어디 한두 개던가?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마을이라거나 대도시가 아닌 이상 쉽게 떠오를 리 없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리드에게 렉터가 설명했다.

“교황청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아, 그렇군.”

이제야 떠오른다.

사방에 레베카 여신상이 가득했던 작은 산골 마을.

그곳에서 만난 사기꾼 동파오를 힐 셔틀로 써먹어서 꿀 빨았던 기억이 있다. 마리로즈를 만난 계기가 되었던.

“저는 그곳 롤링 출신의 대장장이입니다. 제가 고급 대장장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국왕전하 덕분이지요.”

“짐의 덕분이라고?”

“네, 당시 하급 대장장이었던 저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뒤를 이어서 작은 대장간을 운영하는 중이었는데… 당시 평범한 모험가셨던 국왕전하께서 저의 대장간에 들르셔서 제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엥?”

내가 언제?

“저는 국왕전하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고 가르침을 충실히 수행한 끝에 고급 대장장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늘 국왕전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었는데 이번에 그 기회가 와서 참으로 기쁠 따름입니다. 정녕 감사드립니다. 오로지 국왕전하 덕분에 저도 한 사람의 어엿한 대장장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

“옆에 이 3명은 제 제자입니다. 이들 모두 그리드 님의 가르침을 수행해왔고 모두 고급 대장장이가 될 수 있었죠.”

“……”

뭐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기억을 되짚어보던 그리드가 잊고 있던 작은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까 롤링의 대장간에 들러서 아이템을 수리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 그 대장간 주인이 전설의 대장장이도 못 알아보는 저급한 놈이기에 열 받아서 설교 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녀석이 고급 대장장이가 됐다고?’

템빨국. 그러니까 전 에트날 왕국에 고급 대장장이 숫자가 많았던 이유, 나 때문이었나.

그리드는 헛웃음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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