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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54화 (449/1,794)

템빨 29권 - 20화

블러드 카니발의 거두.

그는 늘 장막 뒤에 존재해왔다. 결코 표면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겼다.

그게 바로 다크다.

그가 정체를 숨겨온 이유는 간단했다.

블러드 카니발이라는 악질 단체와 자신의 연관성을 사람들이 모르길 바라서였다.

훗날의 지존을 꿈꾸는 다크에게 있어서 블러드 카니발이란 단순히 자금줄일 뿐, 꽁꽁 숨겨야 할 과오였던 것이다.

“너, 정체가 뭐냐? 생김새부터가 엄청 수상한데?”

다크는 복면 착용이 일상화돼있다.

블러드 카니발과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정체가 발각되지 않게끔 늘 신경 쓰는 것이다.

“왜 이렇게 조용해? 벙어리야?”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복면으로 얼굴과 아이디를 완전히 숨긴 의문의 플레이어.

퀘스트 내용을 기반으로 추측해보면 그가 바로 이 던전의 주인이다.

그는 어떻게 던전의 주인이 된 걸까?

플레이어가 던전의 소유권을 갖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던가?

해소하고 싶은 의문이 많아서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상대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굴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누구냐니까?”

재촉하는 그리드.

그에게 다크가 조소했다.

“듣던 대로 성격이 개차반이군. 타인의 영역에 멋대로 침범해서 모든 것을 파괴한 악당 주제에 어찌 그리도 당당할 수 있는 거지? 양심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미안한 기색이 있어야하는 게 정상 아닌가?”

“몰랐으니까. 던전이 누군가의 소유물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

“모르고 저지른 악행은 죄가 아니다?”

“아니, 그건 아니지.”

다크의 말대로 그리드는 성격이 개차반이다.

더없이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망설이지 않고 쟁취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시정잡배는 아니었다.

죄 없는 타인에게 큰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리드가 <광룡의 알> 퀘스트를 얻기 전에 다크를 만났다면 다크에게 큰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퀘스트를 수행 중이거든. 게임을 플레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콘텐츠가 바로 퀘스트 수행 아니냐? 너한테 미안하기는 하다만 퀘스트 수행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광룡의 알이라는 걸 넘겨라.”

그래, 합리화다.

그리드는 퀘스트를 명목으로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다크의 눈에는 그리드가 지독한 악당으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비난하지는 않았다.

자신 또한 목표를 이루기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이는 지존을 꿈꾸는 자들의 숙명이다.

“광룡의 알을 노리고 왔단 말이지…”

다크가 치를 떨었다.

1년 전 우연히 발견한 광룡의 알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왔던가?

드래곤을 펫으로 길들이는 유일한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 다크는 부단히도 노력해왔다. 블러드 카니발을 운영하면서 챙긴 부당 이익을 모조리 개 조심 던전 제작에 투자했을 정도다.

한데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날강도 같은 놈이 광룡의 알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받아들일 리 없다.

“괘씸한 놈.”

꽈드득!

이를 간 다크가 살기를 피어 올렸다.

“너는 나를 너무 우습게봤다.”

던전 제작자는 등급 성장형 히든 클래스이며 현재 유니크 등급을 달성하고 있었다.

던전 제작에 특화되었다고는 하나 파그마의 후예가 그렇듯 제법 준수한 전투력을 갖췄다.

특히 자신이 제작한 던전 내에서는 모든 능력치와 스킬의 위력이 상승하는 등, 직업 혜택이 발동해서 더욱 더 강력한 능력을 발휘했다.

“하늘을 부순 게 대수냐? 바로 내가 새로운 하늘이거늘!!”

콰르르르르릉!!

다크가 소리치자 개 조심 던전이 격동하기 시작했다.

8구역.

<광룡의 알>을 보호하고 있는 이 거대한 공동의 모든 벽면과 지면으로부터 함정이 발동하면서 그리드를 덮쳤다.

‘뭐?’

그리드가 깜짝 놀랐다.

여태껏 Satisfy를 플레이하면서 경험했던 그 어떤 함정보다 이곳의 함정 규모가 크고 위협적이었던 까닭이다.

“갓 핸드!”

그리드가 소리치자 호응한 갓 핸드가 날아오는 화살과 창칼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갓 핸드가 빠르게 움직여봤자 단 네 개에 불과하다. 수천 단위의 무기를 모조리 막아낸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파(派).”

콰르르르르르릉!!

갓 핸드의 방위선을 돌파하고 날아오는 무기들을 광역기로 쓸어버리는 그리드.

과정에서 몇 개의 공격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삼겹갑과 란스티어의 망토 덕분에 큰 타격은 입지 않았다.

문제는 지면에 설치 된 함정들이었다.

쩌저적, 갈라진 지면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끓어오르는 용암이 그리드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급히 브라함의 부츠로 스왑한 그리드가 날아올랐다.

이게 실수였다.

쿠구궁!!

천장이 내려앉았다.

지독한 무게로 그리드를 짓눌렀다.

힘으로 버티려다가 실패한 그리드가 <종횡무진>을 전개, 함정을 모조리 돌파하고 다크에게 도달했다.

“살(殺)!”

그리드의 찌르기가 쇄도해오는 순간.

“벽 쌓기!”

쿠콰콰콰콰콰쾅!!

거대한 해머를 꺼낸 다크가 지면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마법사의 장벽 생성 마법보다 더욱 견고한 돌의 벽이 순식간에 튀어나오더니 그리드의 찌르기를 막아냈다.

‘+9실패작으로 전개한 살(殺)의 피해량을 완전히 흡수해?’

산산조각나면서 사방으로 비산하는 벽의 잔해.

날카로운 돌덩어리들을 무시하고 그리드는 그대로 돌진하여 다크에게 재차 공격을 날렸다.

한데 다크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새로 꺼낸 삽으로 연(聯)을 모조리 막아내더니 그리드에게 시멘트를 쏟아버렸다.

[상태이상 ‘석화’에 걸립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최초의 왕> 칭호 효과로 인해서 <대왕의 위엄>이 발동합니다.]

[상태이상 반격에 실패하였습니다.]

‘놈!’

그리드와 다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경계심이 짙어졌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확실히 인지한 것이다.

삽으로 이마를 찍어오는 다크의 공격을 회(回)로 반격한 그리드가 곧바로 흑화를 전개했다.

반격기에 얻어맞고 자세가 무너진 다크는 <벽돌 던지기>를 전개, 그리드의 진로를 방해했다.

그 탓에 완벽한 공격 타이밍을 놓친 그리드가 다크의 정체를 확신했다.

‘노가다 현장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스킬 구성과 던전의 함정을 완전히 통제하는 점을 보면…’

이 녀석, 설마 이 던전의 제작자인가?

플레이어에게 던전을 제작하는 능력이 있다고?

“히든 클래스 전직자냐!”

“이제 알았냐! 나 또한 전설이 될 자다!”

콰쾅!!

콰콰콰쾅!!!

흑화에 이어서 대장장이의 분노까지 전개한 그리드의 맹공이 다크를 덮쳤지만 다크는 노련하게 대처했다. 아직 비장의 수단으로 남겨두었던 함정들을 절묘한 순간마다 전개하여 그리드와 갓 핸드의 연계를 방해하고 시간을 벌었다.

‘여태까지 봤던 그리드의 전투 영상을 복기해보면 흑화라는 버프 스킬의 최고 단점은 짧은 지속 시간이다.’

흑화가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게 최우선.

반격은 그 후다.

판단한 다크는 승기를 엿보고 있었다.

근력과 민첩성은 몰라도 체력만큼은 자신이 그리드를 압도한다는 확신을 기반으로 품는 자신감이었다.

‘던전 제작자로 전직하고 3년 내내 노가다만 해온 몸이다!’

자신이 단련해온 체력이라면 그리드의 흉포한 공격에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 다크는 그리드가 지칠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틸 요량이었다.

그래, 그리드가 지치기를 기다렸다.

한데…

‘헉헉, 이 자식 뭐지?’

전투 개시 후 15분.

진즉에 흑화가 해제 된 그리드는 여전히 다크에게 맹공을 쏟아붓고 있었다.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이 계속, 계속.

반면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던 다크의 호흡이 가빠졌다.

다크는 납득할 수 없었다.

‘노가다의 제왕인 나보다 체력이 높다고?’

심지어 던전 버프까지 얻고 있는 지금의 나보다!

‘이게 바로 템빨…!’

치사한 그리드 놈, 스태미나 소모량을 줄여주는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크는 생각했지만 현실은 어떤가?

다크가 노가다의 제왕이라면 그리드는 노가다의 신이다.

남들은 <제작>버튼 하나만 눌러서 뚝딱뚝딱 찍어내는 아이템을 그는 오로지 수작업으로, 몇날 며칠씩 고생해가면서 제작해왔다.

노동을 토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계열의 스탯이라면 다크보다 그리드가 더 높았다.

‘드디어 지친 건가?’

다크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할 때마다 함정과 노가다 스킬의 방해를 받아서 실패하고 있던 그리드.

다크의 저력에 몇 번이고 감탄하면서 전투에 집중하던 그가 다크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함정과 스킬의 전개 반응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의 왕이 될 수도?”

딱!

따다다다닥!!

안 그래도 그리드와 갓 핸드를 신경 쓰느라 정신 사납던 다크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드의 좌측에 소환 된 해골이 은빛의 실을 던져온 까닭이다.

‘네크로맨서의 힘까지?’

하지만 고작 실을 던지는 해골이다. 크게 위협적이진 않다.

다크는 해골을 무시하고 그리드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에 힘썼다.

그게 큰 실수였다.

촤르르르륵!!

은사가 다크의 몸을 구속하는데 성공했고, 드디어 그리드는 승기를 잡았다.

“연살파극(聯殺派極).”

퍼엉-!

퍼퍼퍼퍼퍼펑!!

적의 몸을 연달아 찌르는 연살(聯殺)의 묘리가 다크가 쌓은 벽을 순차적으로 부숴나갔고,

콰르르르르르륵!!

연살(聯殺)이 전개되는 과정에 생성 된 파(派)의 검기가 방어벽을 잃고 노출 된 다크의 주변으로 휘몰아쳤다.

“크아아아아악!!”

승천하는 검기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비명을 내지르는 다크.

점멸하는 시야 속에서도 저항을 시도하는 그에게 승천하였던 검기가 벼락처럼 꽂혀버렸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던전에서 당신은 쉽게 죽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로 고정되어 2초 동안 모든 피해에 저항합니다. 던전 탈출 스킬 <비상구>가 활성화됩니다.]

“살아?”

내 최강의 기술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다니?

다크를 바라보는 그리드의 시선에 탐욕이 서렸고, 그리드를 노려보는 다크의 시선에는 지독한 살기가 머물렀다.

“놈…! 언젠가 반드시 이 원한을 갚아주겠다!!”

넝마가 되어버린 다크.

소리치는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이 산산조각 나면서 벗겨진다.

그리고 여태껏 숨겨왔던 아이디가 공개됐다.

<포식이불족발>

“…..”

“…..”

치열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으면서 적막이 흘렀다.

어색한 표정을 지은 다크. 아니, 포식이불족발이 던전 탈출 스킬 <비상구>를 전개했다.

그러자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어딘가로 향하는 문이 생성됐다.

“개, 개자식! 아이디 변경권 나오면 두고 보자!!”

파앗!

수치심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친 포식이불족발이 비상구로 몸을 날렸고,

“….한국인이었어?”

안 그래도 포식이불족발의 던전 제작 능력과 전투 기술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던 그리드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따가 포식이불족발 검색해봐야지.’

만약 그게 업체명이라면, 포식이불족발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터다.

그렇다.

그리드는 포식이불족발을 템빨단에 섭외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욕심이 나는 게 당연했다.

포식이불족발의 던전 제작 능력은 독보적인 것이고 전투 능력은 템빨단의 어지간한 상위 랭커보다 더 뛰어났으니까.

‘다만 내가 입힌 피해를 적절히 보상해주는 게 관건일 텐데.’

광룡의 알이 발생시킬 결과부터 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터.

그리드가 던전 중앙에 놓여있는 재단으로 다가갔다.

재단에는 그리드보다 족히 배는 큰 타원형 알이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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