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52화 (447/1,794)

템빨 29권 - 18화

<최초의 왕>은 단 한 명의 플레이어만이 획득할 수 있는 칭호다.

플레이어 최초로 일국의 왕이 될 것.

이 터무니없는 획득 조건만 봐도 칭호의 유일성을 이해할 수 있다.

20억 유저 중에서 단 한 명만을 위해서 안배 된 칭호.

그 성능은 과연 어떨까?

단연코 최고일 것이다, 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었다.

그리드가 커다란 영토와 수십만 백성을 거느리게 된 것보다 최초의 왕 칭호를 획득한 것이 더 부럽다는 사람이 있을 지경이었다.

실제는?

<최초의 왕>

최초의 플레이어 국가를 건설한 위대한 대왕입니다. 살아있는 역사이자 신화인 것입니다.

*대왕은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둡니다. 최대 생명력의 70퍼센트에 해당하는 생명력을 손실할 경우, 최근 1분 내에 잃은 생명력만큼의 보호막이 생성됩니다. 이때 모든 지형 적응력이 100퍼센트 상승하고 이동속도와 방어력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대왕은 왕관이 친숙합니다. 투구와 왕관을 함께 착용할 수 있으며 2개의 아이템 능력치 전부를 적용받습니다. 노출되는 이미지는 투구와 왕관 중 하나만 택일해야합니다.

*대왕은 근엄하고 담대합니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여 상태이상 저항률이 50퍼센트 상승합니다.

상태이상에 저항할 시 상태이상 효과를 반사합니다. 단, 일정 수준 이상의 명성이나 지위, 혹은 레벨을 달성한 상대에게는 상태이상 반사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대왕은 존경받습니다. NPC와 몬스터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력, 위엄, 통솔력 등의 능력치가 더 큰 효력을 발휘합니다.

*대왕은 유능합니다. 습득하고 있는 모든 스킬의 숙련도가 더 빠르게 상승하고 레벨이 오를 시 획득하는 능력치 포인트가 2개 추가됩니다.

대단하다.

칭호 하나에 무려 다섯 개나 되는 효과가 귀속되어 있었고 이 다섯 개 모두가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생존력 보정, 착용가능 아이템 개수 하나 증가, 상태이상 저항&반사, 스탯과 스킬 숙련도 보정 등.

하나 같이 주옥같은 효과다.

최초의 왕은 이미 칭호의 수준을 넘어선, 하나의 클래스급 위력을 발휘한다고 표현함이 옳았다.

특히 레벨 업 시 획득하는 능력치 포인트 추가와 상태이상 반사가 사기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그리드는 최초의 왕 칭호가 다소 아쉬웠다.

상태이상 저항률 50프로 상승.

이 옵션이 그리드 자신에게는 하등 쓸모없었던 까닭이다.

‘상태이상 저항 옵션 말고 다른 게 붙어있었으면 진짜 완벽했을 텐데. 그래도 이거가지고 투덜거리면 양심도 없다고 욕먹겠지?’

그리드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특히 레벨 업 시 획득하는 능력치 포인트 두 개 추가를 좋게 봤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두 개의 능력치 포인트를 추가로 얻는 입장에서 또 두 개를 더 얻게 되었으니 그리드의 성장률은 독보적인 것이 되었다.

‘업할 때마다 스탯 포인트 14개 획득… 후훗훗.’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레벨을 올릴 시에 획득하는 스탯 포인트는 10개다.

하지만 그리드는 듀얼 클래스를 획득하면서 두 개가 추가됐고, 이번에 최초의 왕 칭호를 획득하면서 두 개가 더 추가 됐다.

막말로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드는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고 삶과 게임에 대한 몰입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이는 집중력 상승과 직결됐다.

따앙! 따앙!

마안족의 등장과 동시에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최초의 왕 칭호를 체감하며 기뻐하는 그리드.

마안족을 해치운 그가 다시금 채광에 열중하는 그때 새로운 마안족들이 출현했다.

“호오, 우리 마안족 주민들을 손쉽게 해치우다니, 인간치고는 상당히 훌륭하군. 부질없이 사라지는 하루살이들 사이에 피어난 한 떨기 기적이라는 것인가? 크크큭, 내게 처음으로 긴장이라는 감정을 선사한 네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군.”

“…..”

이번에 나타난 마안족의 숫자는 열여섯이었다.

SD캐릭터를 떠올리게 만드는 3등신 꼬마들.

하나 같이 크고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녀석들이 연신 뭐라고 떠들어대자 그리드의 정신이 사나워졌다.

‘라우엘이 16명 있는 기분…’

귀와 정신이 오염된다.

녀석들이 한 마디 뱉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지는 것은 기본에다가 닭살까지 돋았다.

어찌나 불쾌한지, 마치 상태이상에 걸린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랜디, 저 녀석들 입 좀 막아.”

“응!”

채광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이 거대한 던전의 모든 구역에서 광물을 캐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드는 곡괭이질을 멈추지 않았고, 그를 대신해서 랜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기로는 <검은 귀신>을 복제한 랜디였다.

“파그마의 검무.”

“헐.”

안 그래도 그리드의 모습을 똑같이 복제한 랜디가 그리드와 똑같은 검술까지 구사하자 마이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반적인 도플갱어는 복제한 대상의 스킬까지는 복제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봤을 때 랜디는 결코 평범한 도플갱어가 아니었다.

‘도대체 저건 무슨 도플갱어지?’

단순히 채광용 펫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만능형 펫이다.

마이너는 자신 또한 랜디 같은 도플갱어를 갖고 싶어졌다.

“파(派).”

스파앗-!

전투의 막이 올랐다.

날쌘 몸놀림으로 마안족에게 접근한 랜디가 광역기를 시전하여 녀석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그리드에게 어그로가 집중되어 있었던 마안족들은 그 기습을 피하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

30퍼센트 그리드 버전인 랜디의 광역기에도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마안족의 방어력과 생명력은 낮은 것이다.

하지만 마안족에게는 그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을 강점이 존재했다.

“수면안.”

“아… 음냐.”

풀썩!

슬쩍.

그래, 마안족은 단지 슬쩍 한 번 랜디를 쳐다봤을 뿐이다.

하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랜디는 그대로 잠들어버려서 전투 불능 상태가 됐다.

그리드가 내심 놀랐다.

‘랜디의 상태이상 저항률을 압도한다고?’

랜디는 네임드급 보스 출신의 몬스터답게 높은 상태이상 저항률을 갖췄다. 랜디가 상태이상에 걸리는 모습을 그리드는 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랜디를 마안족은 손쉽게 처리한 것이다. 마안의 능력이라는 것,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플레이어에게 절대적으로 작용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라는 반증이다.

‘이 눈깔 괴물들… 경험치도 고작 500만밖에 안 주는 잡몹 주제에 엄청나네.’

하급 뱀파이어가 주는 경험치가 500만 정도다. 마안족의 레벨 또한 300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리드가 마안족을 잡몹이라고 확신하는 근거였다.

‘200레벨대 몬스터가 이런 절대적인 상태이상기를 보유하다니.’

만약 고레벨 마안족이 존재한다면, 녀석은 상당히 강력한 보스가 아닐까?

그래봤자 그리드한테는 역상성 제대로 맞는 잡몹에 불과할 테지만.

“너희들의 눈깔이 왜 두 개인 지 알아?”

잠들어버린 랜디가 위험해질까 염려한 그리드가 채광을 멈추면서 질문했다.

그러자 다시금 그리드를 돌아 본 마안족들이 히죽 웃었다.

“어리석은 질문이군.”

“우리의 눈이 두 개인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 밤하늘에 달이 두 개인 것처럼 당연한 것이다.”

“아니, 틀렸다.”

마안족들의 대답을 들은 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마안족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반적인 몬스터와 달리 인간과의 대화에 성실히 응하는 모습이었고, 이는 마안족이 ‘펫’으로 길들이기에 적합한 종족이기도 하다는 뜻이 됐다.

그리드는 테이머가 아니기 때문에 그쪽 방면 상식은 전무했지만 말이다.

“뭐가 틀렸다는 거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마안족들.

어느 순간부터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그리드가 이죽거렸다.

“하나를 없애버려도 괜찮으라고 두 개인 거야.”

“무슨 말이냐?”

“너희들 눈깔 파버린다고.”

선언과 동시였다.

파파파팟!!

어느새 묠니르를 꺼내 무장한 갓 핸드들이 마안족 무리를 덮쳤다.

퍽!

퍼퍼퍼퍽!

“윽.”

마안족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황금 손들의 공격에 도무지 저항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황금 손들은 빠르고 강력할뿐더러 눈이 없어서 마안의 효과도 통하질 않았다. 와중에 가장 문제는 흑발의 인간이었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흑발 인간은 마안과 시선을 마주쳐도 그 어떤 저주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쳐다보는 우리가 저주에 빠져서 제약이 생겼다.

‘죽이기가 어째 좀 찝찝하네.’

그리드는 겁먹은 마안족들을 굳이 죽이지 않았다. 곡괭이로 이마를 몇 번 찌르는 정도의 자비(?)를 베풀고 목숨은 살려주었다.

비록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니 사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애초에 전혀 위협도 안 되는 녀석들이었고 죽여 봤자 잡템 하나 안 떨어뜨렸기 때문에 굳이 죽일 필요성도 못 느꼈다.

“인간… 어째서 우리의 목숨을 거두지 않는 거지?”

“너의 마음속에 잠들어있는 제2의 자아가 우리를 해치지 말라고 속삭인 것이냐?”

“전생에 우리와 같은 마안족 주민이었던 건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진 상태로도 헛소리를 지껄이는 마안족이었다. 하지만 살의는 많이 줄었다. 그리드를 바라보는 녀석들의 눈빛에서 투쟁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큭큭큭… 인간치고는 제법 날뛰는구나. 하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너는 이미 죽어있다.”

새로운 마안족이 등장했다.

일반적인 마안족들은 아이처럼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3등신 캐릭터인 반면, 새로 등장한 마안족은 앳된 얼굴에 콧수염을 칠해놓은 3등신 캐릭터였다.

나이가 좀 있는 컨셉 같았다.

“예지안.”

파앗-!!

안대를 해제한 마안족이 마안으로 그리드를 관찰했다.

순간.

‘예지안?’

그리드의 시야에 ‘저항하였습니다’라는 문구가 떠오르질 않았다.

예지안은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계열의 마안이 아니라는 뜻.

‘보슨가?’

그리드가 내심 긴장하였고,

“…….”

예지안을 발동한 마안족은 갑자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

어째서 공격하지 않지?

그리드가 경계하는 그때.

“큭… 큭큭, 이것 참 어쩔 수 없군.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

혼자서 중얼거린 예지안의 마안족이 털썩, 바닥에 드러누웠다.

“자, 나를 죽여라.”

“……”

신종 자살수법인가?

마치 보스처럼 절묘한 순간에 등장했던 녀석이 갑자기 죽이라고 소리치며 배를 내밀자 그리드는 황당했다.

“무슨 꿍꿍이야?”

방심은 금물!

그리드는 배를 내민 채 바닥에 大자로 뻗어있는 마안족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경계했다.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외치는 몬스터,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죽이면 폭발하는 유형의 몬스턴가?’

별 해괴한 생각을 다 하며 경계하는 그리드에게 예지안의 마안족이 피식 웃어보였다.

“나의 위대한 예지안이 알려주었거든. 너의 곡괭이에 이마가 꿰뚫려서 처참하게 죽게 되는 나의 수 초 뒤 미래를 말이다. 큭큭… 그것이 하늘이 내게 내린 운명이라면 나는 겸허히 받아들일 뿐이다.”

“…..아니, 별 괴상한 몬스터가 다 있네. 애초에 그러니까 왜 잡몹들이 설쳐가지고.”

시체처럼 누워있는 17마리의 마안족.

언제든지 죽이라는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녀석들을 어찌 처리해야하나, 고민하는 그리드에게 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떻게 혼자서 그 많은 마안족을 해치운 거죠?”

꼼냥이었다.

던전 입구에서 만났던, 태국계 여성.

그리드가 머리를 긁적였다.

“해치웠다고 말하기에는 좀 애매한데. 그것보다 당신 뭐야? 무슨 의도로 날 쫓아온 거지?”

“다, 당신이 걱정돼서…”

“뭐?”

오늘 처음 본 사람을 걱정해서 뒤쫓아 왔다?

그리드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나가.”

광물을 노리는 거라면 조금도 양보할 생각 없다.

그리드가 꼼냥을 바라보는 시선에 경계와 살기가 담겼다. 명백한 적대의사였다.

이를 본 꼼냥이 멋대로 오해했다.

‘내가 블러드 카니발과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건가?’

오늘 처음 만난 나 따위, 멋대로 이용해먹고 버려도 좋을 텐데.

‘이토록 마음씨가 고운 사람은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아. 괜히 템빨단의 수장이 아니야.’

그 위대한 하이 랭커들을 복속시킨 거물 중의 거물답다.

‘베풀어주는 선의를 몇 번이고 거절한다는 건 예의가 아닐 테지.’

그리드의 커다란 그릇에 반한 꼼냥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음번에 인사드리러 찾아갈게요.”

“왜?”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그리드가 뭐라고 질문을 던질 새도 없이 꼼냥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저 강력한 마안족 무리를 홀로 궤멸시키고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어. 내가 걱정할만한 인물이 아니야.’

과연 하늘을 부순 지존답다.

어쩌면 오늘, 블러드 카니발은 궤멸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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