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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51화 (446/1,794)

템빨 29권 - 17화

‘빌어먹을!’

던전 제작자는 테이머가 아니다. 몬스터를 지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허면, 던전 제작자는 무슨 수로 던전에 몬스터를 배치하는 걸까?

첫째는 계약이다.

던전 제작자 다크는 몬스터가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대신 그들을 던전의 경비병으로 고용했다. 상호 협력하는 구도인 것이다.

물론, 이는 몬스터의 지능이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할 경우에만 허용되는 이야기다. 낮은 지능의 몬스터와는 말도 안 통했기 때문에 계약을 맺을 수가 없었다.

다양한 특성의 몬스터를 배치함으로써 적의 침입을 전략적으로 막아야하는 다크의 입장에선 무척 난처한 일이었지만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크는 지능이 낮은 대신 본능에 충실한 몬스터들은 ‘유혹’했다.

예를 들어, 던전 특정 구역에 그리폰을 배치하고 싶으면 그리폰이 좋아하는 오크 고기를 양껏 구해다가 던전에 뿌려놓는 식이다.

오크 고기의 냄새를 맡고 들어온 그리폰들은 이후 던전에 갇혀버리고 자연히 던전 소속의 몬스터로 변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배치하는 몬스터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침입자뿐만이 아니고 다크조차도 적대한다는 점이다.

다크가 아직까지도 3구역 이동을 완료하지 못하고 5구역에 맴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침입자가 발생하는 순간 ‘전시 모드’를 발동한 개 조심 던전.

던전 내 모든 몬스터가 잠에서 깨어나버리자 다크의 운신에도 큰 제약이 생겼다.

각 구역의 몬스터들을 피해서 은밀하게 움직이다보니 필연적으로 이동속도가 느려졌다.

결과, 다크는 최악의 전개를 맞이하고 말았다.

[<개 조심>던전의 3구역이 완전히 파괴당했습니다!!]

“아, 안 돼!!”

1구역부터 3구역까지 모조리 파괴당해버리다니!

치명상이다.

던전 복구까지 최소 한 달은 걸릴 것이었다. 막대한 자금이 드는 것은 덤이다.

“대, 대체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너무 화가 나니까 눈물이 다 쏟아지려한다. 다크의 두 눈이 붉게 충혈 됐다.

부들부들!

격노하며 몸을 떠는 다크의 시야로 새로운 알림 창이 떠올랐다.

[<개 조심>던전의 침입자가 4구역에 입장했습니다.]

순간.

“…큭, 지옥을 맛보겠구만.”

다크의 분노가 급속도로 누그러졌다. 다크는 심지어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3구역까지 아무런 장애도 없이 돌파하다보니 감을 잃고 그 다음 구역에까지 발을 들였군. 기고만장한 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안족에게 철저히 짓밟히고 자신의 죄를 후회해라.”

마안족.

인계에 서식하는 마족 중 하나인 그들의 선천적인 강함은 불합리한 수준이다.

태어나면서 타고난 ‘마안’의 힘으로 절대자의 운명을 타고난 최상위 포식자였다.

‘마안의 종류는 무려 수십 가지.’

각기 다른 개성을 발휘했기 때문에 다수의 마안족을 상대로 싸워서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중에서도 수초 내의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안의 위력이 압권이다.

그토록 강력한 마안족을 개 조심 던전에 배치할 수 있었던 이유?

다크도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행운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다크가 개 조심 던전을 건설해서 수호하고 있는 ‘그것’의 부화가 바로 마안족의 염원이었던 것이다.

목표가 같은 이상 다크와 마안족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하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

“어마어마한 속도로군요!”

갓 핸드와 랜디의 곡괭이질이 빠르게 능숙해졌고 이에 따라서 작업효율이 극대화 되었다.

마이너는 순식간에 벽을 허물고 광물을 캐내는 갓 핸드와 랜디의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보다는 못하지만 말이죠. 후훗!”

‘잘난 척할만하지. 녀석, 대단하긴 정말 대단해.’

그리드가 인정할 정도로 마이너의 채광 속도는 압도적이었다.

갓 핸드 네 개가 힘을 합쳐도 마이너보다 채광 속도가 느린 수준이었다.

마이너가 타고난 광부로서의 재능은 과연 최고인 것이다.

그리드는 인정하면서도 마이너를 광부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안 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났어도 너는 광물 탐지기여야 한다.’

뛰어난 광부는 세상에 많지만 광물탐지 역할은 오직 마이너만이 수행할 수 있는 것.

마이너는 광물 탐지기이여야 비로소 유니크한 존재였다.

“전하, 저기가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는 문 같은데요. 이동할까요?”

“당연하지.”

그리드의 목표는 이곳에 자생하는 모든 광물을 채집하는 것이다. 모든 구역을 다 돌아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1~3구역에는 광룡철밖에 없었던 게 아쉽군. 뭐, 위험한 것도 없으니 초조해하지 말고 느긋하게 돌아볼까.’

광룡 네바르탄이 머물고 있었다면 또 모를까, 현재 이곳은 평범한 광산에 불과하다.

그리드는 큰 위기의식 없이 4구역에 입장했다.

그리고 이곳이 평범한 광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개 조심>던전의 4구역에 입장하였습니다.]

[함정이 발동합니다!]

쿠르르르르릉!!

“…!!”

4구역에 발을 들임과 동시에 그리드와 마이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직선 좁은 통로 끝에서부터 거대한 바위가 굴러오고 있었다.

‘피할 곳은?’

없다.

통로가 너무 좁다. 왔던 길은 어느 새 막혀있었다.

“주, 죽을 거야…”

주변을 살펴보고 절망한 마이너가 사색이 되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저 거대한 돌덩어리에 압사당하는 자신의 끔찍한 모습을 상상하며 말이다.

그의 귓가로 그리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눈 뜨고 고개 들어. 너는 당당한 게 매력이니까.”

“전하…?”

예기치 못한 함정에 빠져서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이고도 침착하시다니?

마이너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고,

“파그마의 검무.”

란스티어의 망토 사이로부터 푸른 대검을 뽑아 든 그리드는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족히 수십 톤은 넘어 보이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서 검을 찔러 넣었다.

“살(殺).”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정!!

“허억…!!”

본래 질량의 위력은 압도적인 법이다.

하지만 Satisfy는 게임이다.

광속으로 굴러오는 수십 톤의 바위?

전설의 대장장이가 푸른 오리하르콘으로 제작한 대검 앞에서는 한낱 두부에 지나지 않았다.

“저, 전하 대박!”

그리드가 내지른 대검에 중앙이 꿰뚫리고 반으로 쩌저적, 갈라지더니 산산조각 나버리는 바위 덩어리.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 바위의 파편에 얻어맞고 개피가 된 마이너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반면 바위의 파편을 모조리 갓 핸드와 란스티어의 망토로 막아낸 그리드는 멀끔했다.

“대박이라는 말은 또 언제 배웠어?”

“전하가 자주 사용하시기에…”

나 또한 그리드 전하처럼 되고 싶다.

이와 같은 열망을 품었기 때문일까, 마이너는 그리드의 작은 습관이나 말버릇조차도 주시하고 영향을 받고 있었다.

녀석에게 피식 웃어준 그리드가 생각에 잠겼다.

‘보통 광산은 아니라는 건가.’

그래, 이곳이 드래곤 레어였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그 끝에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잠자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고 도리어 즐거웠다.

‘이래야 재밌지.’

광물 캐는 김에 레벨도 올리고 전리품까지 획득하면 일석삼조 아닌가!

또한.

‘함정이 배치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킬 게 있다는 뜻.’

그건 보물일 가능성이 무척 높다.

드래곤조차도 아끼는 보물!

들뜬 그리드가 걸음을 재촉했다. 도중에 몇 개의 함정이 더 나타났지만 그를 위협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낱 창칼이나 불길 따위로는 템빨로 똘똘 무장한 그리드에게 별다른 해를 입힐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마이너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때마다 노에와 랜디가 도와주었다. 레이단 연금술 시설에서 지원 받은 물약의 도움도 컸다.

“이쯤이 좋겠군.”

좁은 통로를 지나서 공동에 도착한 그리드가 다시 곡괭이를 꺼내 무장했다.

1~3구역보다 몇 배는 거대한 4구역.

복잡한 미로 같은 이곳의 규모에 마이너는 압도당하고 있었지만 그리드는 그저 더 큰 광산쯤으로 인식할 뿐이었다.

터엉! 터엉!!

그리드와 마이너, 그리고 갓 핸드와 노에, 랜디가 내리찍는 곡괭이가 벽을 허물기 시작하는 그때였다.

“불쾌한 소음이로구나.”

일행의 뒤쪽에서부터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몬스터가 서식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사람이라니?

깜작 놀란 그리드가 고개를 돌려보았다가 더 깜짝 놀랐다.

“…애?”

그래, 목소리의 주인은 작은 소년이었다.

아직 젖살이 잔뜩 붙어있는 동글동글한 얼굴과 커다란 도끼눈이 묘하게 매력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쪽 눈을 검정 안대로 가린 모습을 보면 라우엘과인가 싶기도 하지만.

“너 같은 꼬맹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

질문하던 그리드가 이내 자신의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었나를 깨달았다.

소년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이름, <마안족>으로 붉게 표기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몬스터였군.’

인간형 몬스터.

고레벨 몬스터일 확률이 높다.

겉모습이 어리고 귀엽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긴장한 그리드가 마이너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크크큭… 한낱 인간 따위가 우리 마안족의 영역에 침범하다니, 전생과 이생을 통틀어 봐도 오늘처럼 황당무계한 사건은 드물었다.”

“…….”

중2병 대사를 읊은 마안족 소년이 한쪽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살짝 들어올렸다.

영롱한 빛을 띄우는 푸른 홍채와 세 개의 검은색 동공.

괴상하기보다 신비로운 눈이 안대에 가려졌던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리드를 마주한다.

“나, 마안족의 평범한 주민이 미개한 인간에게 명하노라. 나의 ‘빙결안’을 바라보고 얼음이 되어 영원의 속박을 맛봐라.”

쩌적.

쩌저저저저저저적.

그리드가 밟고 있는 지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강렬한 냉기가 발생하더니 그리드의 두 발과 다리, 허리와 심장에 이르기까지를 얼려버리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위대한 마안과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상태이상 ‘빙결’에 빠집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최초의 왕> 칭호 효과로 인해서 <대왕의 위엄>이 발동합니다.]

[상태이상을 반격합니다.]

쩌적!

쩌저저저저저적!

“뭐, 뭣이…! 한낱 인간 따위가 마안의 주인인 나를 위협하다니…!”

마안족 소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의 마안이 발동시킨 빙결의 저주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왔으니 공포 그 자체였다.

두 발이 얼어붙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녀석의 이마를 그리드가 곡괭이로 찍었다.

마안족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닌 것에 비해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 잡몹, 마법사 계열 같았기 때문에 곡괭이로도 충분히 해치울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리드는 고작 잡몹을 잡는답시고 무기를 스왑해가면서 채광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괜히 긴장했네.”

마안족 소년을 곡괭이로 해치워버린 후 그대로 곧장 다시 채광을 시작하는 그리드.

“…..”

마이너는 그저 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릴 뿐이었다.

마안족.

대륙 각지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접한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엄청나게 강력한 마족이다.

보통 인간이 마안족을 만나면 저항조차 못하고 목숨을 잃는다 들었다.

한데 그리드 전하는 그런 강력한 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곡괭이로 해치우시는 게 아닌가?

심지어 아무런 감흥도 없는 표정으로 곧바로 다시 채광을 시작하셨다!

“음… 잡몹이라서 그런가 아이템도 안 주고 말이지.”

실망이 역력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면서 곡괭이를 휘두르는 그리드에게 마이너가 소리쳤다.

“마, 마안족은 잡몹 따위가 아닙니다!”

마안족은 죽을 때 아주 희박한 확률로 마안을 떨군다. 이를 얻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마안족은 워낙에 강력했고 또한 개체수도 적었다. 마안족을 사냥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였다.

마안족은 엄청난 거물인 것이다.

라고, 마이너가 뭐라고 설명을 해주기도 전이었다.

“호오, 이것 참 경천동지할 일이로구나. 한낱 인간 따위가 마안족 주민을 살해하다니? 훌륭한 근성으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한 케이스의 인간인가?”

“후후훗, 인간들은 늘 영웅을 배출해왔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종족이야. 결국 우리 마안족 앞에서는 하찮지만 말이지.”

새로운 마안족들이 나타났다.

검은 안대를 쓴, 3등신의 귀여운 대두 소년들.

동족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동요하기는커녕 즐거워하는, 어딘지 핀트 나간 녀석들이다.

그리드를 사냥감으로 인식한 놈들이 안대를 올리고 마안을 개안했다.

“점화안.”

“실명안.”

“침묵안.”

[저항하였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최초의 왕> 칭호 효과로 인해서 <대왕의 위엄>이 발동합니다.]

[상태이상을 반격합니다.]

“크, 크윽…? 나의 몸이 뜨겁게 불타는 이유는 나의 심장이 그만큼 뜨겁다는 증거인가?”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나의 화려한 존재감이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어둡게 물들였기 때문일 테지.”

“웁웁.”

“어휴, 진짜 오지게 시끄러워.”

잡몹을 사냥하랴, 광물을 캐랴.

그리드의 곡괭이가 더욱 더 바빠졌고 마이너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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