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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48화 (443/1,794)

템빨 29권 - 14화

“뭐? 광물이 증식한다고?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아직 술이 덜 깼냐?”

사람이 비현실적인 말을 듣게 되면 일단 부정하고 보는 법이다.

그리드가 자신을 미친놈 취급하자 발끈한 마이너가 자루에서 광물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거 진짜로 증식한다니까요! 제가 이 광물을 자루에 담았을 당시의 개수는 분명 총 20개였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은 160개가 됐다고요! 질량도 몇 배나 늘었고요!”

“…헛소리를 너무 당당하게 지껄이니까 거짓말 같지가 않군.”

그리드가 진지해졌다.

마이너에게 거짓 보고를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술 냄새도 안 나고.’

뭐, 마이너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

[전설이 된 대장장이가 범인을 초월하는 뛰어난 안목으로 물품을 감정합니다. 대상 물품에 숨겨진 기능이 존재할 경우 숨겨진 기능을 발견합니다.]

[아이템의 숨겨진 기능을 발견하였습니다!]

[<광룡의 숨결이 깃든 광물> 정보가 <광룡철>로 갱신됩니다!]

<광룡철>

광룡 네바르탄의 둥지에 자생하는 광물 중 하나입니다.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네바르탄의 광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혼돈의 이능 <증식>을 손에 넣었습니다.

열흘에 한 번씩 두 배로 증식합니다.

이 부조리한 성질 탓에 제어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단단하기는 흑철과 비견되지만 제련 난이도는 흑철보다 몇 배나 높습니다.

무게:5

“헉.”

광물의 상세 정보를 확인하고 헛숨을 들이키는 그리드.

잠시 멍하니 있던 그가 이내 큰 감동에 휩싸였다.

‘두 배로 증식하는 광물이라니?’

그냥 창고에 쌓아만 둬도 제작 재료가 무한대로 늘어난다는 뜻이 아닌가! 그것도 귀한 흑철급 광물이 말이다!

“라우엘! 어쩌면 4년이 아니라 몇 달 후부터 당장 그리드 세트를 양산할 수 있을 지도 몰라!”

아이템 정보를 공유 받은 라우엘 또한 격한 반응을 보였다.

“크큭… 이것 참 절묘한 순간에 행운이 따라주었군요. 뿌린 대로 거둔다더니, 평소에 재수 없는 전하답게 꼭 중요한 순간마다 잭팟이 터지십니다?”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중요한 순간에도 재수 없을 때 많다.

자신의 악운을 상기하며 좌절하는 그리드와 히죽히죽, 연신 웃는 라우엘에게 마이너가 소리쳤다.

“두 분 자꾸만 행운 운운하시는데요. 이게 어딜 봐서 행운입니까? 다 저의 공로라고요!”

“당연하다. 너의 공로를 우리가 모를 리 있겠냐? 너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행운이야. 너는 템빨국의 보배라고.”

마이너를 바라보는 그리드의 눈빛에 깊은 애정이 깃들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쓸 만한 녀석이었어. 앞으로도 계속 나를 위해서 일해 줘라.’

평생토록 서대륙 구석구석을 탐험해서서 온갖 광물을 발견하고, 나중에는 동대륙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뒤져서 또 새로운 광물을 발견해주기를.

간절히 바란 그리드가 마이너의 두 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동경하는 인물이 자신에게 깊은 호감과 신뢰를 보여주자 마이너는 감격하면서도 기고만장해졌다.

‘이번 공로로 최소 후작위는 얻겠지?’

무한 증식 광물을 발견한 업적은 개국공신들의 업적과 비견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이너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지금 이 순간, 마이너는 템빨국에 무한한 부를 선사했다. 그 공로를 크게 치하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면서 기대하는 마이너에게 그리드가 포상 내용을 전달했다.

“템빨왕 그리드의 이름으로 <광물탐지부서>를 신설하고 마이너 너를 총책임자로 앉히도록 하마.”

“….?”

“이제 고작 열여덟 살… 아직 한창 젊은 나이에 수십 명의 부하를 거느린 대장이 되는 거다. 기쁘지?”

“기쁘… 기쁘기는 개뿔!!”

높은 작위를 받고 사교계에 진출한 이후, 착실히 인망을 쌓고 파벌을 만들어서 왕이 될 기반을 다질 예정이었는데?

계획이 속절없이 무산돼 버리자 분노한 마이너가 분개했다.

“작위 주기 싫으면 돈이라도 주던가!! 광물탐지부서? 제가 미쳤습니까!! 이름만 들어도 소름 돋는 빌어먹을 부서를 제가 왜 떠맡습니까!! 저보고 앞으로도 평생 광물만 찾아다니라고요?!”

마이너는 본인의 재능과 공로를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원했다.

그리드라고 해서 마이너의 심정을 모를 리 없었다.

‘만약 마이너가 나쁜 마음을 품고 이 광물을 빼돌렸다면 반드시 재벌이 됐을 거다. 제국으로 달려갔어도 높은 작위를 얻었을 테지. 하지만 녀석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어.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이란 냉혹한 법이다.

“마이너, 정말로 미안한데 지금 당장은 남는 작위가 없어.”

현재 템빨국의 국가 등급은 F다.

국가 등급은 나라의 영토 규모와 백성의 숫자, 그리고 안정성 등을 종합해서 책정되는 것인데 F등급은 막말로 최하위 등급이었다.

비록 템빨국이 속국까지 두었다고는 하나 백성수가 워낙 적고 국고는 텅텅 비었기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했다. F등급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현재 템빨국이 보유한 작위는 공작위 세 개, 후작위 세 개, 백작위 여섯 개, 남작위 30개에 불과했다. 그 모든 작위를 이미 그리드의 측근들이 나눠가진 상태였고 말이다.

“자작위라도 주던가!!”

흥분한 마이너가 눈깔까지 까뒤집고 대들었다.

이를 괘씸하다고 여긴 라우엘이 한소리 하려는 순간이었다.

라우엘을 제지한 그리드가 마이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너처럼 소중한 아이에게 고작 자작위를 내릴 수는 없잖느냐? 자작위는 백작조차도 임명할 수 있는 준귀족에 불과하다. 너 같은 인재가 고작 그런 작은 작위로 만족할 수 있겠냐?”

“….저, 전하.”

마이너가 감동했다.

그리드는 이제 막 18세에 불과한 그 어린 소년을 품에 꼭 끌어안아주었다.

위엄 스탯을 높여주는 <대영주의 검>과 <성스러운 빛의 왕관>을 쥐도 새도 모르게 꺼내 착용하면서 말이다.

“마이너, 짐은 네게 큰 기대를 품고 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짐은 너의 재능을 높이 본다. 너의 귀족 데뷔는 절대적으로 화려해야하며, 그날까지 짐은 네가 더 큰 공로를 쌓아주길 바라고 있다.”

“저, 전하…!!”

마이너는 영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태생적 한계에 집착했다.

자신이 평민 출신이라는 사실을 늘 원망하였으며, 언젠가 이 하찮은 신분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한데 지금 이 순간.

그리드가 자신에게 찬란한 미래를 약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륙역사 최초의 평민 출신 왕답게 태생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을 온전히 평가해준다.

마이너는 오로지 그리드이기 때문에 자신이 인정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크게 감격하였고 그리드에게 더 큰 충성심을 품게 됐다.

그리고 이 작은 사건은 그리드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가신 <마이너>가 한계를 돌파하였습니다. 마이너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어?’

강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쥬드와 이야루그트가 강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마다 한계를 돌파하고 한층 더 성장하듯이, 인정받고 출세하기를 원하는 마이너는 자신의 바람을 이룰 때마다 한계를 돌파하고 한층 더 성장하는 것이 증명됐다.

말인 즉.

‘NPC를 한계 돌파 시키기 위해서는 NPC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이를 잘 이용해야하는 거구나.’

막말로 NPC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그리드는 더 많은 NPC인재를 효율적으로 육성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충만감에 휩싸이는 그리드의 시야로 마이너의 갱신 된 정보가 떠올랐다.

이름:마이너

나이:18세 성별:남

직업:광물 마스터

레벨:235

근력:355/450 체력:408/608

민첩:200/200 지력:420/1,120

스킬:환상적인 곡괭이질(S). 광물 마스터(S+). 낭중지추(SS).

광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5살 때부터 곡괭이를 쥐었던 인물입니다.

그리드를 섬기게 된 이후에는 곡괭이를 멀리하고 광물 공부와 탐지에 열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십 년 경력의 광부들보다 더 능숙하게 광물을 채집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인재입니다. 그 재능을 만개할 수만 있다면 특정 분야에서 일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공적을 세우고 존경하는 이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정신적인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체력과 지력의 최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하였습니다.(1/20)

*일정 조건을 만족할 때마다 한계 돌파 횟수가 축적됩니다.

‘대박…’

네임드급 NPC와 준네임드급 NPC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네임드 NPC는 성장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있으며 전반적인 능력치가 준수한 반면, 준네임드 NPC는 성장에 한계가 있었고 또한 능력치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쥬드가 그렇다.

전투 관련 능력치가 높은 대신 지력은 없… 아니, 낮다.

마이너 또한 쥬드와 경우가 비슷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나 같이 높고 유니크한 반면 전반적인 능력치가 낮다는 단점을 지녔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마이너는 한계를 돌파함으로써 자신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준네임드 NPC라도 꾸준히 잘 성장하면 네임드 NPC와 비견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내용이었다.

마이너에 대한 그리드의 호감도가 더욱 커졌다.

단지 성장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나를 존경했다고?’

마이너가 보유한 패시브 스킬 <낭중지추>는 양날의 검이다.

강렬한 천재성을 발휘하는 대신, 재능이 워낙 눈에 띄어서 외부로부터 많은 유혹을 받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이 스킬의 설명이었다.

마이너는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녀석이다.

그리드는 이를 늘 염두에 뒀고 마이너에게 큰 정을 주지 않았었다. 철저히 이용하려고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까 나를 존경했단 말이지? 이게 나를 배신하지 않은 이유고?’

그리드는 놀랍고 기뻤다. 누군가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을 리 만무하다.

싱글벙글 미소 지은 그리드가 통 크게 쐈다.

“라우엘, 앞으로 마이너 봉급 많이 챙겨주도록 해.”

“봉급은 라빗 집정관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련히 잘 챙겨줄 겁니다.”

“음.”

참고로 말하자면, 라빗은 피아로라는 최강의 전력을 고작 73실버의 녹봉으로 혹사시켰던 인물이다.

수전노 라빗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템빨국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드와 마이너는 망각한 채 서로에게 신뢰의 눈길을 보냈다.

***

라우엘, 마이너와 작별한 후.

광룡철을 챙긴 그리드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장간을 찾았다.

‘실험이 필요하다.’

그리드는 증식의 개념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싶었다.

열흘마다 두 배로 증식하는 광룡철의 특성.

이는 아이템으로 제작 된 후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따앙! 따앙!!

그리드가 광룡철을 재료로 <양산형 그리드의 대검>을 제작했다.

열흘 후, 이 대검이 과연 두 개로 증식하게 될지 확인해볼 요령이었다.

그리고 열흘 후.

광룡철로 제작한 양산형 그리드의 대검이 변화를 일으켰다.

[<양산형 그리드의 대검>이 폭주합니다. 재료로 사용 된 <광룡철>의 영향으로 부피와 무게가 2배 상승합니다.]

“…아, 또 골치 아파지네.”

그리드는 깨달았다.

광룡철의 제련 난이도가 ‘높음’으로 명시되어 있는 이유 말이다.

‘온전한 광물로 존재할 때만 분열 증식을 하고, 아이템으로 제작 된 후에는 부피 증식을 한다 이거지?’

광룡철을 아이템 제작 재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증식의 특성을 제대로 제어할 줄 알아야한다.

이 상태로 그리드 세트를 제작했다가는 망한다. 열흘마다 부피와 무게가 두 배씩 늘어나는 아이템을 그 누가 사용하려 하겠는가?

판단한 그리드가 해결책을 모색해보다가 떠올렸다.

광룡철의 설명.

광룡 네바르탄의 둥지에 자생하는 ‘광물 중 하나’입니다.

이는 즉, 네바르탄의 둥지에는 광룡철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광물이 자생하고 있다는 뜻이며…

‘그중에 광룡철의 성질을 억누르는 효과를 지닌 광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결국.

‘네바르탄의 둥지로 가서 광물 캐야 되는 거냐…?’

그리드는 헬가오를 레이드할 당시 불안감을 느꼈던 바 있다.

어쩌면. 정말로 아주 어쩌면 언젠가는 광물 캐러 드래곤 레어까지 찾아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허황된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이 현실이 되게 생겼다.

왜?

네바르탄의 둥지에 자생하는 광물들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연구하려면 본인이 직접 찾아가는 것이 효율적이었던 까닭이다.

“하.”

깊은 한숨을 내쉰 그리드가 마이너를 호출하자 즉시 마이너가 달려왔다.

그리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바르탄의 둥지에 네바르탄 있냐?”

“아니요. 만약 그곳에 네바르탄이 있었다면 애초에 제가 거기까지 가질 않았죠. 미쳤다고 제 발로 통구이 되겠습니까?”

“솔직해서 좋단 말이야… 그럼 다른 몬스터는?”

“없었어요. 그곳은 그야말로 텅텅 빈 던전이었거든요.”

“오호.”

이거 완전 개꿀 아닌가?

‘괜히 쫄았네.’

회심의 미소를 그린 그리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건국식 이후 처음으로 왕성을 떠날 채비를 했다.

“후딱 다녀오자, 마이너.”

“네, 도시락 준비해올게요. 헤헷, 전하가 드실 도시락에는 당연히 산해진미가 가득 들어있겠죠? 덩달아 호식할 생각하니까 기대되는군요.”

“…돈 없으니까 육포나 챙겨.”

“……”

왕 되도 별거 없구나.

최근 자주 느끼는 마이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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