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9권 - 9화
-레이도른을 감옥에 가뒀다.
-수고했어, 페이커. 놈이 누구의 사주를 받고 왔는지, 도대체 뭐하는 놈인지 꼭 불게 만들어. 절대로 죽이지는 말고.
-알았다.
그리드는 레이도른을 무척 경계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레이도른의 발도술 일격에 생명력을 절반 이상 손실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삼겹갑>을 무장한 상태에서 말이다.
‘생명력이나 방어력 비례 공격력 계수가 적용 된 건가?’
밸런스가 너무 공격력쪽으로만 치중되어 있어서 문제 같았지만, 어찌됐든 이토록 압도적인 공격력을 발휘하는 NPC는 피아로 이후 처음 봤다.
처음에는 단순한 미친놈인 줄 알았으나 필시 거물급 네임드 NPC였던 것이다.
‘나를 노리고 있는 세력이 한두 개가 아닐 테니 어디서 보낸 자객인지 섣불리 예상하기도 어렵고…’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큰 위험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자 솔직히 두렵다.
템빨단 전원이 모여 있는 건국식 현장에서 암살(?)의 위협을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린과 로드의 호위도 늘려야겠어.’
경각심을 품게 된 그리드가 가이 남작을 돌아보았다.
다른 사절단 대표들은 모두 화를 내면서 자리를 떠난 이때, 가이 남작만큼은 템빨국을 섬기겠다고 자리에 남아있었다.
‘고작 1개국…’
마법 무구의 위력까지 선보이며 미래를 논하였건만 고작 이건가.
실망하는 그리드에게 라우엘이 귓속말을 보내왔다.
-1개국이라도 섬기겠다고 남은 게 어딥니까? 템빨국은 고작 오늘 건국한 나라임을 잊지 마셔야죠. 사실 저는 모든 사절단 대표들이 거절하고 떠날 줄 알았다고요.
-……
-어찌됐든 폴드 왕국은 토지가 황폐하고 바다와 자원이 적어서 가난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출몰하는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단련 된 30만 장병을 보유하고 있지요. 우리가 식량과 무구를 보급해준다면 필시 든든한 우방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토지가 황폐하고 자원이 적다고? 우리가 앞으로 영원히 식량을 조달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미래가 어두운 나라라는 거잖아? 섣불리 투자했다가 손해만 보는 거 아니야?
-아니죠. 나머지 14개국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데다가 우리에게는 피아로 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아.
사막도시 레이단과 바다 왕국 세이렌에서조차도 논밭을 일군 피아로다.
폴드 왕국의 황폐한 토지를 비옥한 토지로 탈바꿈시키는 것 또한 그에겐 어렵지 않은 일일 터였다.
‘그러고 보니.’
피아로의 천문학적인 가치를 새삼 깨닫고 전율하던 그리드가 문득 황금 호두와 백린목을 떠올렸다.
동대륙의 특산물들.
전설의 농부 피아로라면 그것들을 서대륙에서도 재배할 수 있지 않을까?
‘소량만 재배할 수 있어도 초대박인데.’
확률적 엘릭서인 황금 호두와 최상급 제작 재료인 백린목의 가치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굉장한 것이다.
이를 자급할 수 있게 된다면 템빨국의 국력은 비약적인 성장을 보장 받게 된다.
‘좋아.’
갑작스러운 적의 난입으로 인해서 소란스러워진 건국식 현장.
혹 백성들이 불안해할까, 가슴의 상처를 망토로 가리고 포션 복용조차 삼간 그리드가 입을 열었다.
이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가이 남작, 그대의 왕에게 가서 전해라. 템빨국은 폴드 왕국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아까 농부 봤지?”
“헉… 설마 무구뿐만이 아니고 식량까지 원조해주시겠다는 겁니까?”
“당연하다. 그리고 폴드 왕국의 척박한 대지를 비옥하게 일궈주겠다. 아까 농부 봤지?”
“오오…! 오오오!! 감사합니다!! 그저 감격할 따름이옵니다!! 당장 돌아가서 그리드 국왕전하의 뜻과 아까 그 농부의… 아니, 농부 후작님에 대해서 저의 왕께 낱낱이 고하겠나이다!!”
“그래, 어서 가봐.”
넙죽 절을 올린 가이 남작이 헐레벌떡 자리를 떠났다. 제국의 속국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본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시청자들은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거 실화임? 건국 1일차 나라가 속국을 둠?
-이러다가 템빨 제국 되는 건가…;;
-충분히 가능할지도.ㄷㄷ
-제국은 오바다. 내가 폴드 왕국 소속인데 여기 답도 없음. 완전 촌구석에다가 국력도 약한데 이런 나라 하나가 템빨국 섬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음?
-맞아요. 솔직히 템빨국은 너무 위태위태합니다. 방금 전만 해도 봐요. 기사가 천 명도 넘게 있었는데 암살자 한 명 못 막고 그리드가 공격당했잖아요. 템빨국 상태가 겉으로 보여 지는 것보다는 썩 별로인 듯.
-흠…. 나도 그리드 암살 한 번 시도해볼까. 그럼 명성 확 오를 것 같은데.
-아마 오늘 사건 때문에 그리드 암살 위협 자주 당할 듯.
번쩍하고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제압당한 레이도른의 진가를 시청자들이 알아볼 리 만무했다.
시청자들이 템빨국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하는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