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33화 (428/1,794)

템빨 29권 - 2화

“제국을 제외한 15개 왕국 전부가 사절단을 파견했다고?”

건국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사절단을 보내다니?

소식을 접한 템빨단원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왜 지들 멋대로야? 우리가 만만하니까 지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거야, 뭐야?”

“불쾌하기는 하지만 뭐, 딱히 나쁠 건 없지 않아? 놈들이 사절단을 보냈다는 말은 즉, 우리를 국가 대 국가로 상대한다는 뜻이잖아?”

“오호,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군? 짜~식들, 우리 템빨국을 국가로 인정해준다 이거구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입장을 바꾼 거지?”

“나중에는 템빨국이 제국만큼 커질 거란 걸 예상하고 미리 잘 보이려는 수작이겠지! 푸흐흐!!”

“갓리드의 위엄을 이제 와서야 깨달은 건가! 푸하하하핫!!!”

대화가 진행될수록 분위기가 들떴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극검과 반트너가 발생시키는 긍정 에너지의 힘이었다.

한숨 쉰 라우엘이 찬물을 끼얹었다.

“그럴 리가요. 저들은 최후의 최후까지 우리를 부정해야하는 입장입니다.”

“엉…? 그럼 사절단을 왜 보낸 건데?”

“훗, 그야 뻔하지 않습니까? 저의 윤회안은 그들의 시커먼 속셈을 이미 100퍼센트 간파하고 있습니다. 뭐, 그들이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우리가 처신만 잘하면 되는 거니까 너무 심려치들 마십시오. 후후훗, 이건 도리어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

라우엘은 무척 즐거워보였다. 15개국에서 보낸 사절단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먹이를 눈앞에 둔 뱀의 그것이나 진배없었다.

***

가우스 왕국의 사절단이 도착하고 1시간이 지났을 무렵.

나머지 14개국 사절단이 모두 라인하르트에 집결했다.

머레이 왕국 사절단 대표 큐단 남작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모였군?”

건국식의 무대가 될 라인하르트 궁전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시선을 어디로 돌려봐도 사람밖에 안 보였다.

근본도 없는 자가 세우는 왕국의 건국식 따위에 이토록 많은 인파가 몰릴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황하는 큐단 남작에게 울타나 왕국 사절단 대표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그저 허울만 갖췄을 뿐이지 않소이까? 저들의 면면을 잘 살펴보시오. 유명 인사라고는 단 한 명도 없소.”

“확실히…”

행사장에 모인 사람 중 태반이 플레이어였다. 또한 그들 중 대다수가 각국 방송사의 앵커와 스탭들이었다. 중저레벨 유저에 불과한 그들의 명성은 턱없이 낮은 것이었고, NPC 귀족들의 눈에는 그들이 날파리로밖에 안 보였다.

“앞서 도착했다는 가우스 왕국의 콩스 남작은 어디에 있는 거지?”

두리번거리는 사절단 대표들에게 검은 갑주 차림의 기사가 다가와 설명해주었다.

“갑자기 속이 안 좋다며 휴게실로 이동하셨습니다. 안내해드릴까요?”

“음…? 아니, 괜찮소.”

기사의 무장 상태가 범상치 않다. 갑옷이며 무기며 모두 특등품이다.

“건국비로 많은 돈을 투자하여 땡전 한 푼 없을 줄 알았더니…”

“템빨국… 의외로 상당한 자본력을 갖춘 건가?”

“그럴 리가 있겠소? 저거 다 허세요, 허세. 손님들 앞에 서는 기사들에게만 무리해서 좋은 무구를 무장시켜놓은 걸 테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방금 전 기사와 똑같은 차림을 한 기사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만…”

“……”

사절단 대표들의 시선이 바삐 움직였다. 행사장 곳곳에 배치 된 검은 갑주의 기사들, 그 숫자가 족히 1천은 되어 보였다.

사절단 대표들이 아찔해졌다.

‘뭐지…? 제국도 아니고 뭐 저리 많은 숫자의 기사를 보유한 거지?’

술렁이는 사절단 대표들.

그들 사이에 잠자코 있던 아크 왕국의 브리튼 남작이 치를 떨었다.

“그리드… 더 없이 악독한 자로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생각해보시오. 신생 국가가 저토록 많은 수의 기사를 거느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백성을 착취하였겠소? 저 1천 명의 기사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육성한 것일 터. 그리드라는 인물이 백성들을 가축보다 못한 존재로 다루고 있다는 반증이오.”

“흐으으음….”

백성들이 가축보다 못한 존재인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일부 사절단 대표들은 별로 공감을 못하는 반면 큐단 남작은 얼굴을 대춧빛으로 물들이며 격노했다.

“악마 같은 자로군…!”

과연 자신의 조국을 배반하고 왕을 시해한 인물답다. 도리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악랄한 인물이다. 그런 자가 나라를 세우고 다스린다고?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다.

큐단 남작이 허리춤의 칼집을 어루만졌다.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내 한 몸 바쳐 놈을 베어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풀풀.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기를 내뿜기 시작하는 큐단 남작의 기세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위축되어 주춤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사절단 대표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시무시한 검기다. 머레이의 사자라는 것이 허명은 아니었군.’

젊은 시절, 제국의 흑기사와 2대1로 싸워서 승리하였던 큐단 남작의 무용담은 유명하다.

워낙 강직한 인물인 탓에 수완이 부족하여 높은 작위는 얻지 못했지만, 큐단 남작의 검술 솜씨는 대륙 전체에서도 알아줄 정도였다. 괜히 머레이의 사자라고 불리는 게 아니랄까.

모두가 큐단 남작에게 감탄하는 그때였다.

“검기를 거두라.”

“…?”

웬 한 명의 병사가 다가오더니 큐단 남작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검기를 뿌리는가? 사절단이라면 사절단답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그대는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가?”

일침을 가하는 금발의 병사.

그는 실로 허름한 갑주를 무장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긁어내면 후두둑, 뜯어질 것 같은 낡은 가죽 갑옷 차림이었다.

템빨국.

거금을 쏟아 부어 대규모 정예기사단을 육성해놓고 정작 병사들은 이토록 하찮게 취급하는가?

‘정작 전장의 선두에 서는 것은 기사가 아니라 병사이거늘… 그리드라는 자는 역시 실속 없는 허세덩어리로군.’

사절단 대표들이 쯧쯧 혀를 차면서 그리드를 비웃었다.

반면 큐단 남작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이 병사는 뭐지?’

허름한 가죽 갑옷의 금발 병사.

요리 보고, 저리 봐도 행색이 말단 병사였다. 앞서 목격한 검은 갑주의 기사들과 비교하면 더없이 하찮은 존재 같았다.

한데 정작 마주하자 그 경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큐단 남작이 자랑하는 검기가 병사에게 위축되어 절로 사그라질 정도였다.

‘어… 어떻게 일개 병사 따위가 이토록 심오한 경지를?’

큐단 남작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일개 병사마저도 이토록 강할진데, 행사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1천 기사들은 당최 얼마나 강하다는 것일까?

꿀꺽!

석상처럼 굳은 큐단 남작이 마른 침을 삼키는 그때였다.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게냐!”

“우리 위대한 머레이 왕국의 귀족님께 근본도 없는 나라의 말단 병사 따위가…!”

큐단 남작의 기사들이 분노하여 칼을 뽑아들었다. 당장이라도 금발 병사의 목을 베어버릴 기세였다.

큐단 남작이 황급히 그들을 말렸다.

“그, 그만 둬라!”

여기서 칼부림이라도 부렸다간 우리 모두 개죽음밖에 안 당한다. 그것도 일개 병사에게!

라는 말을 간신히 삼킨 큐단 남작이 갑자기 자신의 배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으, 으윽? 아니? 어째서 갑자기 복통이 생기는 거지? 아이고? 너무 아파서 옴짝달싹 할 수가 없구나?”

“주, 주군?”

큐단 남작의 기사들이 무척 당황했다. 타고난 건강이 워낙 대단해서 고뿔 한 번 걸려본 적 없는 큐단 남작이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병사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못하고 어찌할 바 모르는 그들에게 큐단 남작이 재촉했다.

“와, 왕국으로 돌아가야겠다. 어서 돌아가자. 아이고, 이대로는 배가 아파 죽겠다. 오는 길에 먹은 육포가 상했던 게 분명하다.”

“하, 하지만 왕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아파 죽겠다니까! 일단 돌아가자고!!”

“헉! 예, 예!!”

급기야 호통치는 큐단 남작에게 위축 된 기사들이 황급히 그를 모셨다. 머레이 왕국 사절단이 라인하르트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이보시오! 큐단 남작!!”

“허… 이게 무슨…”

사절단 대표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큐단 남작이 사절단으로써 임무를 완수하지 않고 먼저 떠나버리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머레이 왕국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한지 잘 알겠군.’

부랴부랴 자리를 떠나는 큐단 남작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절단 대표들의 입가로 조소가 걸렸다.

그들 모두가 머레이 왕국은 본인들의 적수가 아니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 라인하르트를 떠나는 큐단 남작은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국왕전하께 말씀드려서 반드시 템빨국과 화친을 맺어야한다.’

그리드라는 자가 제아무리 악랄해봤자 제국의 황제보다 더 하겠는가?

비록 반역자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당장 가진 힘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으니 무시하고 부정할 수도 없다. 대세는 따르라고 있는 것이다.

***

“뭣이? 가우스 왕국의 사절단도 돌아갔다고?”

15개국 사절단 중 벌써 2개의 사절단이 도망치듯 귀국해버렸다.

남은 13개국 사절단 대표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에 어느 사절단이 임무도 완수하기 전에 귀국한단 말인가.”

“콩스 남작과 큐단 남작 모두 비상식적이고 무능한 자들이었군.”

“그들의 국왕에게 위엄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울타나 왕국 사절단 대표 베디가 남작.

자신의 영지에 출몰한 중급 뱀파이어를 사냥하고 흡혈 반지를 전리품으로 획득한 그의 별명은 ‘흡혈 남작’ 이었다.

적의 생명력을 갈취하여 자신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그의 전투 지속능력은 대단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거의 불사신 수준으로 끊임없이 싸울 수 있다는 소문이다.

용맹무쌍한 그는 도망치듯 사라진 콩스 남작과 큐단 남작을 개보다 못한 겁쟁이들로 치부했다.

‘놈들은 템빨국의 기사 숫자가 무려 1천 명이나 되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 도망친 거겠지.’

템빨국에 공물을 바치라고 선포하는 순간 기사들에게 개죽음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금이 저렸으리라.

‘참으로 한심하군. 무릇 조국을 대표하는 자라면 조국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두려움 따위 훌훌 털어버려야 하거늘. 쯧쯧쯧…’

솔직히 말해서 베디가 남작도 긴장되기는 했다.

사절단의 임무를 완수하는 순간, 명예는 챙길 수 있을지언정 1천 기사들에게 포위되어 그대로 처형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할만한 힘이 그에게는 있었다.

‘내게는 흡혈 반지가 있다.’

영지의 모든 기사들과 힘을 합쳐서 무려 중급 뱀파이어를 사냥하고 얻은 반지다.

이 흡혈 반지만 있으면 설령 1천대 1로 싸울지언정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것이 베디가 남작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후훗훗… 으응?”

흐뭇한 표정으로 손가락의 반지를 매만지던 베디가 남작이 갑자기 질색했다.

“건국식 끝나면 단체 활동이 있다며? 뭐 한다는데?”

“뱀파이어의 도시로 단체 사냥 간대요.”

“아, 뭐야. 뱀파이어는 이제 너무 약해서 재미도 없고 경험치도 별로 안 주는데.”

“하지만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 아닙니까? 2군에 속한 길드원들의 레벨을 올려줄 겸 오래간만에 나들이 간다고 생각하세요.”

“쩝… 그래, 어차피 가야되는 거면 기꺼운 마음으로 가야지.”

“아직 공략 못한 도시에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고.”

“……”

뱀파이어의 도시로 단체 사냥을 간다고?

뱀파이어가 너무 약하다고?

‘뭔 개소리들을…’

대머리가 선두에 있는 일단의 무리가 지나치며 떠드는 소리를 우연히 들은 베디가 남작은 웃음도 안 나왔다. 저들이 단체로 약을 잘못 먹어 미쳤거나 허풍을 치는 거라고 믿었다.

그들이 하나 같이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목격하기 전까진 말이다.

“헉… 허억?”

베디가 남작이 두 눈을 의심했다.

대머리를 포함한 수십 명의 무리가 저마다 모두 손가락에 뱀파이어의 반지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이 착용한 반지는 베디가 남작이 착용한 반지보다 더 뛰어난 마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단 표정을 짓고 있던 베디가 남작이 이내 용기 내어 대머리에게 다가갔다.

“결례가 안 된다면… 뭐하시는 분들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질문하는 베디가 남작에게 대머리 반트너가 대답해주었다.

“그리드 국왕전하의 부하들이다만.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우?”

“….아, 아윽? 갑자기 왜 빈혈이 나는 걸까? 그것 참 희한하구나?”

결국.

울티마 왕국의 사절단 또한 도망치듯 허겁지겁 라인하르트를 떠났다.

“…???”

여전히 사태 파악을 못한 12개국 사절단 대표들이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드디어 건국식이 시작됐다.

***

오로지 독자님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에 템빨이 600회까지 연재 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글을 쓰도록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독자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