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8권 - 19화
힘들다. 진심 토 나올 정도의 고역이다.
일주일?
‘개뿔!’
19종류의 금속을 매직 미사일로 단련하면서 소요한 기간, 어느덧 벌써 보름이 넘었다.
마법을 연속적으로 사용할 경우 발생하는 페널티가 그리드의 예상보다 훨씬 더 나쁘게 작용한 것이다.
‘때려 칠까?’
눈 뜨자마자 게임에 접속해서 잠들기 전까지 같은 짓만 반복하기를 보름 이상.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드는 작업 도중 몇 번이나 포기를 고민했다. 끈기 하나로 먹고 살아왔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천하의 그가 포기를 논할 정도로 매직 미사일을 19만 회 발사하는 작업은 미친 짓이었다.
‘어떻게 인간한테 이딴 미친 짓을 시킬 수 있는 거지?’
<파그마의 기서>를 찾아 북쪽 끝의 동굴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 떠오를 지경이다.
한계까지 내몰린 체력과 집중력이 그리드의 의욕을 꺾는 것으로 모자라 분노를 자극했다. 그리드는 이제라도 관두고 싶었다. 이건 도무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자꾸 약하게 만들었다.
‘아니… 아니다. 이제 와서 때려 칠 수는 없어.’
포기하는 순간 지난 며칠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셈이 된다. 그리드의 성격상 손해를 보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리드…”
“….”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사벨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아니던가.
‘포기할까보냐!’
꽈드득!
이를 악 문 그리드가 다시금 매직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100회, 200회, 500회, 1,000회, 5,000회, 10,000회….
어느 순간부터는 매직 미사일을 몇 발이나 쐈는지 세지도 못했다. 숫자나 세고 있을 만한 심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드! 이제 됐어요! 그만 하세요!!”
며칠이 더 지났을까?
품었던 독기마저 옅어지고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매직 미사일을 쏘고 있는 그리드에게 이사벨이 소리쳤다.
그녀는 그리드가 자신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는 눈치였다.
순간.
쩌어어엉-!
그리드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매직 미사일을 쏘았고,
[퀘스트 성공!]
[<마법 무구 제작법>을 습득하였습니다!]
고대하던 알림 창이 떠올랐다.
19만 회 째 매직 미사일이 아다만티움을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마법 무구 제작법>Lv.1
공격 마법으로 금속을 연마할 수 있습니다. 이 금속으로 아이템을 제작할 경우 일정 확률로 마법 옵션이 귀속됩니다.
*마법으로 단련하는 금속의 등급은 노말부터 레전드리까지 세분화됩니다. 등급에 따라서 귀속되는 마법 옵션이 더 강하고 다양해집니다.
*레벨 1의 제작법입니다. 금속 연마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매직 미사일로 한정됩니다.
*마법 무구 제작법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상위의 마법으로 금속을 연마하는 방법을 습득해야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노력 끝에 쟁취하는 보상이란 늘 막대한 희열을 선사하는 법이다.
다크서클이 길게 내려온 그리드의 얼굴 가득 환희에 찬 미소가 번졌다.
“이사벨, 행복을 만끽할 준비 됐어?”
“그, 그리드….”
이사벨이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레베카 여신에게조차 희생을 강요받고 살아왔던 내게 구원자가 나타날 줄이야.
이사벨에게 그리드라는 존재가 더욱 더 각별해졌다. 그녀가 그리드에게 보내는 감사와 존경, 신뢰의 마음은 레베카 여신을 섬기면서 품었던 마음보다 훨씬 더 강하고 절대적인 것이었다.
‘가만?’
기뻐하는 이사벨을 보고 뿌듯해하던 그리드가 문득 자신의 앞날을 걱정했다.
*마법 무구 제작법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상위의 마법으로 금속을 연마하는 방법을 습득해야합니다.
스킬 설명에 명시되어 있는 이 문구가 그리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봐, 브라함. 마법 무구 제작법의 레벨을 올리는 방법 말인데. 설마…’
‘네가 예상하는 그대로다. 나중에 새로운 마법을 익혀서 그걸로 또 모든 광물을 1만 회씩 때려야한다.’
“……”
그리드가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매직 미사일을 19만 회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나마 매직 미사일의 자원 소모량이 적고 사용하는데 필요한 시간도 적다는 점에 있었다.
매직 미사일보다 상위에 있는 마법을 19만 회 사용하는 일은 매직 미사일을 19만 회 사용하는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들 것이 뻔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리드의 표정이 마치 나라를 잃은 사람 같다.
***
최근 브라질의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었다.
지슈카.
Satisfy의 랭커가 되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그녀가 자신 명의의 땅과 건물을 모조리 처분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심지어 급매였다. 그녀는 자신의 부동산을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판매하고 재산의 현금화를 서둘렀다.
뭐가 그리 급할까?
많은 추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슈카가 브라질 부동산 시장이 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리 재산을 처분하는 거다.
지슈카가 마약에 중독 되서 약값을 마련하느라 재산을 처분하는 거다.
지슈카는 그리드가 있는 한국으로 이민가려고 준비하는 거다. 그리드와의 결혼이 가까워진 것이 분명하다.
등등.
사람들의 추측은 허황된 것부터 시작해서 지슈카의 바람을 담은 것까지 다양했다.
이슈가 되자 각종 언론 매체가 나섰다. 브라질의 모든 언론이 지슈카에게 취재를 요청했다.
그들에게 돈을 받는 대가로 인터뷰에 응한 지슈카가 브라질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선사했다.
“최근 지슈카씨의 행적이 브라질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리 서둘러서 부동산을 처분하시는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아이템 값 마련하느라고요.”
“네?”
“아이템…? Satisfy 아이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
지슈카가 처분한 부동산 추정 액은 어림잡아도 6천만 달러가 넘었다.
어지간한 회사 설립 자본금으로 삼아도 충분할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그 막대한 자본을 고작 아이템 값 지불하는데 쓸 거라고?
가출하려는 정신 줄을 간신히 붙잡은 기자들이 지슈카에게 재차 질문했다.
“그리드에게 세트 아이템 제작 의뢰라도 맡기신 건가요?”
그래, 그리드는 전설의 대장장이인 바.
그가 제작하는 아이템의 가치는 일반적인 아이템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높다.
그리드가 제작한 ‘세트 아이템’ 을 전신에 도배할 수만 있다면, 설사 천문학적인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설급 아이템으로 도배한다고 생각해보라. 강력한 몬스터들을 빠르게 때려잡고 각종 콘텐츠를 선점함으로써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납득하는 기자들에게 지슈카가 고개를 저었다.
“활 한 자루 값인데요.”
“……..”
그리드가 제작하는 아이템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와 같은 내용의 기사가 세계 각국 해외 토픽으로 뜨자 인터넷이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이러다가 그리드가 세계 1위 재벌 되는 거 아님?
-그리드 당신은 대체…
***
야탄교.
레베카교의 영원한 숙적.
대악마를 인계에 강림 시킬 목적으로 활동하는 그들에게는 최악의 난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레베카의 딸을 해치워야한다는 것.
레베카교 최강의 무력인 그녀들이 건재한 이상 야탄교의 활동엔 너무 많은 제약이 생겼고, 필연적으로 야탄교는 그녀들의 목숨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야탄교 소속 플레이어들의 퀘스트 목록에 <레베카의 딸 처단(SSS)>퀘스트가 항시 생성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레베카의 딸을 해치는 일이 과연 쉽겠는가?
그녀들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애초에 신성력의 화신인 그녀들은 흑기사와 흑마법사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존재인 바, 상성부터가 상극인 그녀들을 야탄교가 해치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한데 이 순간 기회가 찾아왔다.
당대 레베카의 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손꼽히는 이사벨.
그 빌어먹을 계집이 대악마 벨리알과의 전투에서 백화를 남발하고 약화되었다는 정보가 야탄교에게 입수됐다.
“위대하신 지옥의 군주 벨리알께서 스스로를 희생하여 주신 기회다.”
“현재의 이사벨은 전과 비할 바 없이 약하다. 신도들만 보내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야탄의 신전은 대륙 각지에 숨겨져 있다. 이사벨이 어디에 있더라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원탁에 둘러앉은 야탄의 종들이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
야탄의 신도는 총 8등급으로 나뉜다.
8등급 신도들은 여느 왕국의 병사들처럼 나약한 존재였지만 야탄교 전체에 단 100명밖에 없는 1등급 신도들은 막강한 무력을 갖췄다. 전투 능력만 놓고 보면 야탄의 종들과 비견 될 정도다.
“여긴가.”
“전쟁 직후라더니 방비가 허술하군.”
1등급 신도 본과 아두스가 라인하르트 잠입에 성공했다.
전쟁 직후의 라인하르트는 아직 치안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벨의 위치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신성력을 탐색해서 가늠해야겠지.”
어둠 속.
그늘 진 성벽 아래 모습을 은폐한 본과 아두스가 나란히 암흑 마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고위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마력 탐지>의 전조였다.
흑마력으로 발휘되는 마력 탐지는 특히 신성력을 수색하는 기능이 발달되어 있었고 본과 아두스는 어렵지 않게 이사벨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과연 정보대로 약해졌군.”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해치울 수 있겠는데?”
“하지만 임무는 확실히 해결하는 게 좋다. 아랫놈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직접 나서도록 하지.”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현재 이사벨의 신성력은 꺼져가는 촛불 같았다. 생명력이 희미해졌다는 뜻이다. 백화를 발동하는 즉시 죽어버릴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었으므로 백화를 경계할 필요도 없다.
스으윽-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본과 아두스가 어둠에 동화되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목적지는 라인하르트 북쪽 대장간 거리에 있는 대장간 중 한 곳이었다.
“보인다.”
대장간 앞에 도착한 본과 아두스가 안을 염탐했다.
야심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환한 불이 밝혀져 있는 대장간 안에서 한 명의 대장장이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고 이사벨은 가만히 앉은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하는 거지?”
다 죽어가는 송장이 되었다지만 명색이 레베카의 딸인 이사벨이 대장간에 멍하니 앉아있다니, 본과 아두스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의아해하던 본이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리파엘의 창이 망가진 거 아닐까?”
“레베카의 신기가 망가졌다고? 레베카의 신성력이 깃든 보구가 망가질 리가 있나?”
“위대하신 지옥군주 벨리알께서 신기에 큰 타격을 입혔을 수도 있지.”
“아…!”
이제야 상황이 납득이 된다.
상처 입은 이사벨이 교황청에 귀환하지 않고 타지에 남아있는 이유.
“리파엘의 창이 너무 크게 훼손되어서 그것을 수리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인가 보군.”
“이건 정말 지옥이 내린 기회다.”
안 그래도 약화 된 이사벨이 신기까지 잃은 상태.
지금의 그녀를 처리하는 일은 파리채로 파리를 때려잡는 것처럼 간단하고 쉬운 일이리라.
판단한 본과 아두스가 눈빛을 교환한 후 몸을 날렸다.
쿠콰콰콰콰콰쾅!!
암흑 마법으로 대장간 벽면을 부숴버린 후,
“크하하핫!! 레베카의 개를 오늘에서야 잡아 족치는구나!!”
얼굴에 생기라고는 하나 없는 이사벨에게 암흑 마력을 두른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의 칼은 이사벨에게 닿지 못했다.
“뭐야, 이 잡것들은?”
용광로 앞에서 망치질 중이던 대장장이.
그래, 대장장이.
본과 아두스가 굳이 신경 쓰지 않고 있던 그 하찮은 존재가 망치로 때리고 있던 금빛 창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파지지직!!
창이 그린 금빛 호선을 따라서 수십 발의 매직 미사일이 전개되더니 폭죽처럼 만개했다.
“뭣이…!”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당황하는 본과 아두스에게 매직 미사일의 폭격이 쏟아졌다. 다크 실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신성력이 깃든 매직 미사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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