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8권 - 17화
던전 제작자는 지하, 동굴, 건축물 내부 등에 던전을 건설할 수 있다.
건설되는 던전의 등급은 다양하며, 건설 장소와 구조 설계, 규모 등에 따라서 등급이 나뉜다. 높은 등급의 던전일수록 배치할 수 있는 함정과 몬스터의 숫자가 늘어나므로 던전의 등급은 난이도와 직결되는 요소였다.
[<개 조심>던전의 세 번째 구역 건설이 완료되었습니다.]
[세 번째 구역은 구조상 총 8개의 함정과 193마리의 몬스터를 배치할 수 있습니다. 단, 비행형 몬스터는 배치할 수 없습니다.]
[유니크 등급의 던전입니다. 구역 제작 보너스 효과로 경험치 10퍼센트를 획득하고 모든 능력치가 6 상승합니다.]
[던전 출입자가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함정을 돌파할 때마다 경험치 일부를 나눠 갖습니다. 던전 출입자가 아이템을 획득할 때마다 일정량의 골드와 건축 자재를 획득합니다. 던전 출입자가 던전 공략 도중 사망할 경우 다양한 특별 보상을 획득합니다.]
다크가 드라비앙 산맥에 건설 중인 던전 <개 조심>은 회심의 역작이었다.
언젠가 자신의 주인이 될 ‘그것’ 을 보호하기 위해서 침입자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구조였다.
물론, 다크가 건설하는 던전이 늘 이런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던전이란 활용도가 매우 높은 공간.
다크는 때때로 아군을 훈련시키거나 본인이 이득을 보기 위해서 공략하기 쉬운 구조의 던전도 제작했다. 종종 귀신의 집 등의 특색 있는 던전을 제작해서 입장료를 받고 장사하거나 그 지역의 관광지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어찌됐든 다크는 이 <개 조심>던전이 자신의 의도대로 완벽한 보호 기능을 발휘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직 완성까지는 한참 남았다. 던전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과 금액이 너무 컸다.
특히 돈. 많은 돈이 필요했다.
‘블러드 카니발에 들어오는 의뢰금을 상향 조정할까?’
아니, 너무 욕심내다가는 장사 말아먹을 수도 있다.
최근 동종 업계 경쟁자도 늘어나는 추세였기 때문에 긴장해야했다.
‘세상엔 나쁜 놈이 참 많단 말이지.’
뒷 세계에 있다 보니 정말 별에 별 놈들을 다 보게 된다.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는 녀석들, 별거 아닌 이유로 사람을 죽여 달라고 청부하는 놈들 등등.
까앙! 까앙!!
푸욱! 푹!!
슥삭슥삭!
곡괭이로 벽을 허물고, 삽으로 땅을 파고, 벽돌로 새로운 벽을 쌓아올리는 작업의 반복.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던전 제작에 열중하던 다크가 문득 회의감을 느꼈다.
‘기껏 히든 클래스로 전직해놓고 매일 막노동만 하는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뭐지…?’
현실에서는 단 한 번도 쥐어본 적이 없는 곡괭이질과 삽질의 달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후우… 그나마 노력하는 만큼의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라서 다행이야.”
깊은 한숨을 내쉬는 다크.
그는 누군가와 많이 닮아있었다.
그 누군가란 당연히…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아오! 야 이 [email protected]#~$%!!”
그리드다.
모루 위에 올려놓은 철광석을 노리고 몇 시간 째 매직 미사일을 사용 중인 그리드.
벌써 몇 병째 비우는 것인지 모를 마나 물약을 입속에 털어 넣은 그가 브라함에게 재차 확인을 요구했다.
“이거 진짜야? 진짜로 이 짓을 반복하다보면 마법 무구 제작법을 습득할 수 있는 거 맞아?”
제발 아니라고 말해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절망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그렇다. 철광석을 1만 회 때린 후에는 야파 원석을 1만 회 때리고, 다음은 미스릴과 오리하르콘을 1만 회씩…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다가 종국에는 아다만티움과 블러드 스톤을 1만 회씩 때리는 날이 온다면 너는 마법 무구 제작법을 습득할 자격을 얻게 된다.’
“엉…??”
철광석만 후려치면 되는 게 아니었다고?
귀를 의심하면서도 매직 미사일의 발동을 잊지 않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지력 스탯이 1 상승하였습니다.]
[마법 명중률이 0.01퍼센트 상승하였습니다.]
“오오…!”
그나마 스탯 노가다라도 돼서 다행이다. 안 그래도 부족한 지력 스탯이 오르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울상을 지은 채 욕설을 지껄이던 그리드가 바로 어린애처럼 기뻐하자 브라함은 황당했다.
‘세상에 뭐 이런 단순한 놈이 다 있지?’
그 단순함을 그릇되었다고 비하할 생각은 없다.
브라함이 봤을 때 그리드의 노력하는 재능은 단순함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반복 작업에 잘 집중하는 걸 보면 단순한 성격이 크게 한몫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싱글벙글.
상승하는 지력 스탯을 보고 좋답시고 웃으며 매직 미사일을 연발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속삭였다.
‘참고로 네 지력이 조금만 더 오르면 새로운 마법을 습득할 수도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그, 그래? 좋아!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터엉! 터엉!!
[지력 스탯이 1 올랐습니다.]
[마법 명중률이 0.1퍼센트 상승하였습니다.]
[<매직 마스터리>의 스킬 레벨이 하급 5에서 6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이 보상을 보라.
역시 노가다는 언제나 옳다.
힘들어서 문제지.
“헥헥! 매직 미사일! 헉헉!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그리드의 작업 만족도가 수직 상승하고 있었다. 늘어나는 스탯을 보고 의욕을 불사르면서 계속, 계속 철광석을 매직 미사일로 때렸다.
최초에는 그리드의 매직 미사일을 맞고 부서지거나 구멍이 꿰뚫리던 철광석들이 이제는 매직 미사일을 맞을 때마다 도리어 단단해졌다.
마법으로 이행하는 단련 과정이다.
***
마이너.
13살 소년 시절부터 그리드를 섬겼던… 아니, 반 강제적으로 그리드의 부하가 되었던 바이란 출신의 인재가 어느덧 18세를 넘겼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그가 지난 5년 동안 해온 일?
서대륙 곳곳을 탐방하면서 보다 새롭고 좋은 재질의 광물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무척 고되고 어려운 일이었다. 레이단에 머무는 동안은 아예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정도로 새로운 광물을 찾아내는 일이란 어려웠다.
하지만 교육의 힘이란 무서운 법!
그리드 때문에 억지로 광물에 대해서 공부해온 그의 자질은 확실하게 개화되었고, 덕분에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광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장소는 드라비앙 산맥.
광룡 레바스탄의 둥지였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건 진짜다…! 여태껏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광물의 기운이 느껴져!’
이제 이 기쁜 소식을 그리드 공작각하께 전해드릴 일만 남았다.
‘아니, 이제는 공작각하가 아니라 국왕전하가 되실 분이지.’
마이너는 본래 그리드를 싫어했었다.
고작 공작 나부랭이 주제에 자신 같은 희대의 천재를 부려먹다니,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마이너의 입장에서는 실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마이너가 봤을 때 자신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사하란 제국의 황제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과 같은 평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대귀족이 되고 급기야 일국의 왕이 될 자격까지 갖춘 존재.
그리드를 바라보는 마이너의 시각이 많이 변했다.
‘본받고 섬겨도 될 만한 사람.’
마이너는 앞으로도 쭉 그리드를 섬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의 밑에서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흐흐흐… 그러다보면 언젠간 나도 귀족이 되고 왕까지 될 수 있겠지.’
이제부터 내 목표는 제2의 그리드가 되는 것.
결심한 마이너가 가방에서 곡괭이를 꺼냈다.
새롭게 발견한 광물을 직접 캐서 갖고 가 자신의 공적을 극대화시킬 계획이었다.
그리드에게는 광물 탐지기로 활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광부로써의 재능이 훨씬 더 뛰어난 마이너.
그리드처럼 욕심이 많고 라우엘처럼 자의식이 강한 그가 드라비앙 산맥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지난 수년 동안 대륙 각지를 탐방하면서 습득한 각종 이동 스킬들과 성장한 근력, 체력, 끈기 스탯 덕분에 산 타기쯤이야 그에겐 우스웠다.
***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3레벨 기준 <매직 미사일(강화)>를 1회 사용하는데 소요하는 시간은 평균 1.5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은 채 1초가 안 됐지만 발동에 필요한 아주 찰나의 시간 때문에 반복적으로 사용할 경우 이런 계산이 나온다.
소모하는 마나는 1회당 420.
각종 템빨과 칭호를 무장해서 지력 총량이 1,900을 넘어선 그리드의 마나량은 12,000 미만.
단순히 계산해 봤을 때, 매직 미사일을 40초가량 쉬지 않고 사용할 경우 그리드의 마나는 고갈 됐다.
마나 물약을 복용한다고 해도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물약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리드가 매직 미사일을 수십 분 동안 연발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
한데 그리드는 벌써 네 시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매직 미사일을 사용하고 있었다.
스킬과 마법의 자원 소모량을 무려 50퍼센트나 줄여주는 <부조리의 반지> 덕분이었다.
‘역시 템빨이 짱이야.’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새삼 다시 깨달으며 환희에 찬 미소를 짓는 그리드.
그의 손끝을 타고 발사 된 1만회 째 매직 미사일이 철광석을 강타하는 순간.
[철광석 마법 단련법을 습득하였습니다.]
[앞으로 각종 공격 마법을 사용하여 철광석을 단련하실 수 있습니다.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과 숙련도에 따라서 철광석 단련 속도가 결정 됩니다.]
[마법으로 단련한 광물은 평범한 대장일로 단련한 광물에 비해서 내구력이 낮지만 특수한 마법 옵션이 귀속 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귀속되는 옵션의 종류는 단련에 사용한 마법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오…! 오오오!!”
장장 4시간 10분 동안 같은 짓을 반복한 끝에 드디어 성과를 거둔 그리드의 기쁨이 하늘을 찌른다.
보상을 확인하며 만세를 외치는 그에게 브라함이 재촉했다.
‘환호할 시간에 매직 미사일 1발이라도 더 쓰는 게 낫지 않나? 다음은 야파 원석이다.’
자신 또한 격양되어 있다는 사실을 브라함은 모르는 걸까?
브라함의 음성 또한 들떠있음을 느낀 그리드가 피식 웃었다.
‘내가 제작하는 마법 무구를 너도 어서 빨리 보고 싶은 거구나.’
철광석, 야파원석, 미스릴원석, 오리하르콘원석처럼 평범한 금속부터 시작해서 흑철광석, 푸른오리하르콘원석 등의 특수 금속들, 종국에 이르러서는 신계와 마계를 대표하는 아다만티움원석과 블러드스톤원석에 이르기까지.
총 19종류의 금속을 1만회씩 때리기 위해서 그리드에게 필요한 시간은 최소 일주일이었다. 물론 스태미나 회복 시간과 Satisfy 접속 제한 시간까지 전부 다 감안해서 계산한 기간이다.
똑같은 작업을 무려 일주일 이상 반복해야한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지독히도 끔찍하고 싫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드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재능이 아니라 단순히 끈기만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그리드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그리드 최대의 특기였으니까.
[장시간 마법 사용으로 인해서 마나 회복 속도와 마법 전개 속도가 느려집니다.]
[지쳐갑니다. 스태미나 소모 속도가 빨라집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일주일이 아니라 열흘은 더 걸릴 수도 있겠군.’
시스템이 방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리드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느덧 그는 이 노가다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있었다.
‘이사벨, 조금만 더 기다려줘. 네게 반드시 최고의 창을 선물해주마.’
초조함은 없다.
이번에는 야파 원석을 매직 미사일로 때리기 시작하는 그리드의 표정은 침착했다.
곁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만 환장할 노릇이었다.
‘똑같은 짓을 대체 언제까지 반복하실 작정인 거지?’
‘지루하지도 않으신가… 나는 보고만 있어도 지루해 죽을 것 같은데…’
‘으으, 옆에서 보고 있으니까 자꾸 몸이 배배 꼬인다. 좀이 쑤셔.’
‘누가 가서 제발 좀 쉬시라고 해라…’
라인하르트의 대장장이들이 그리드의 지긋지긋한 집념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반면 데미안과 이사벨은 그리드를 귀감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드의 근성을 본받을 수만 있다면 세상에 힘든 일이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직 미사이이일!!”
쩌어엉!!
대장간에서 쉬지 않고 번쩍이는 백색의 섬광이 깊은 밤 라인하르트를 환희 밝힌다.
멀찍이 떨어진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라우엘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그 빛은 그리드님 당신께서 이끌어갈 템빨국의 찬란한 미래를 예견하는 빛인 겁니까? 훗…!”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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