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24화 (419/1,794)

템빨 28권 - 15화

<이사벨을 위하여>

★히든 퀘스트★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레베카교를 수호해야하는 어린 양 이사벨의 사명은 가혹한 것입니다.

이는 한낱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인 바, 교황 데미안조차도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다릅니다.

리파엘의 창을 완벽하게 개조하고 증명하십시오.

당신의 대장장이 기술은 숙명조차도 부숴버릴 수 있는 강대한 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술임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전설을 넘어서 신화가 될 자격을 갖춰나가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리파엘의 창에 깃든 신성력을 약화시키고 이사벨의 안전을 도모한다. 단, 리파엘의 창의 위력은 기존보다 강해져야함.

퀘스트 클리어 보상:신위 스탯 +1.

‘신위를 쌓는 건 장기적으로 봐야겠군.’

히든 퀘스트는 무조건 옳다.

일반적인 퀘스트로는 얻기 힘든 보상을 획득하기 때문에 특별함이 있었다.

히든 퀘스트의 보상이 신위 스탯이라는 말은 즉, 평범한 방법으론 신위 스탯을 올릴 수 없다는 뜻과 같았다. 행운 스탯처럼 말이다.

실제로 모든 스탯을 올려주는 <구국의 영웅>칭호와 <세상의 구원자> 칭호가 신위 스탯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거겠지.’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10개가 오를 때마다 권능을 얻을 수 있다는 신화급 스탯을 쉽게 올릴 수 있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어찌됐든.’

골치 아프게 됐다.

리파엘의 창의 신성력을 억제하되 성능은 전보다 강력하게 만들라고?

진짜 염치도 없는 퀘스트다.

생각해보라.

리파엘의 창이 강력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강대한 신성력에 있다.

한데 신성력을 약화시키면서 위력은 증대시키라니,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지.’

늘 그랬듯이, 그리드는 투덜거리면서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안 했다.

애초에 퀘스트 기간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위 스탯을 반드시 획득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드는 이사벨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싶었다.

‘데미안과 이사벨 두 사람의 미래가 걸린 일이야.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신중하게 궁리해보자.’

“……”

용광로 앞에 선 채 골똘히 생각해보는 그리드.

고뇌하는 그의 모습에서 깊이가 느껴진다.

만족하지 못하는 예술가, 고집 있는 장인 같다.

소위 말하는 연륜을 갖춰가는 것이다.

‘단지 서있기만 할뿐인데도 멋지군.’

‘풍기는 분위기가 장난 아니야.’

‘나도 언젠가는 저분처럼 되고 싶다.’

라인하르트의 대장장이들이 그리드를 선망하기 시작했다. 전설의 대장장이를 대장장이들이 존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흐음.”

그리드의 궁리가 거듭됐다.

‘창 자체의 성능을 전보다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상 힘들 것 같고, 이사벨이 구사하는 창술에 특화되는 형태로 창의 구조를 변화시키면 어떨까?’

그럼 리파엘의 창에 이사벨 전용의 옵션이 귀속 되서 전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래도 명색이 교단의 3대 신기인데 한 사람의 전용 무기로 만들어버리는 건 아닌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드는 우선 평범하게 접근해나갔다. 창의 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본 방법들을 최대한 고려해본 후, 이를 종합하여 창의 개조를 시도할 계획을 짰다.

하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신의 솜털에 깃든 신성력을 억제한 상태로 리파엘의 창을 본래보다 더 강하게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가만.’

해가 지고 달이 뜰 무렵.

불 꺼진 용광로를 응시하고 있던 그리드의 두 눈이 번뜩 커졌다.

‘재질에 변화를 주면?’

아다만티움은 최고의 광물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드는 리파엘의 창의 재질을 완벽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아다만티움만으로 구성 된 리파엘의 창에 또 다른 제작 재료를 첨가할 생각은 굳이 하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 자신에게는 아다만티움 이상 가는 제작 재료가 있지 않던가?

‘대악마 벨리알의 뼈와 뿔!’

아다만티움은 어디까지나 신계에서 자생하는 ‘광물’이다. 대악마의 신체와 놓고 비교하면 하급 재료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드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번졌다.

‘창날을 벨리알의 뼈로 만든다면 창의 위력이 극대화될 거다.’

이 간단한 생각을 왜 진즉 떠올리지 못했을까?

불끈, 주먹을 말아 쥐며 환호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찬물을 끼얹었다.

‘더러운 레베카교의 신기에 더 더러운 대악마의 뼈를 섞겠다고? 큭큭, 재미는 있겠다만 레베카 교단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은데?’

“…아.”

가장 성스러워야할 무기에 가장 타락한 존재의 신체를 사용하는 것은 용납 받지 못할 행위일 수도 있겠다.

뒤늦게 깨달은 그리드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구나.’

실망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제안했다.

‘그러지 말고 마법을 귀속시키면 어떻겠느냐?’

‘…?’

‘리파엘의 창에 마법을 귀속시키란 말이다. 단순히 창의 위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면, 마법을 귀속시키는 것만큼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도 없을 텐데?’

실로 간단한 해답.

하지만 실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무슨 수로?”

마법 무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무구가 자력으로 마력을 생산할 수 있게끔 마력 회복 수식을 각인시킨다.

둘째, 마법의 주문을 각인시킨다.

셋째, 각인한 주문에 마법의 발동 주문을 추가 삽입한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무척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

소위 말하는 대마법사들조차도 마법 무구는 쉽게 만들지 못할 정도.

애초에 대장장이인 그리드의 영역이 아니다.

어처구니없어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당당하게 말했다.

‘마법 무구를 만드는 방법을 내가 가르쳐주겠다.’

“아!!”

그리드가 떠올렸다.

자아를 지닌 최강의 광물 파브라늄을 누가 만들었던가?

바로 브라함과 파그마다.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은 마법 무구 제작에도 일가견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드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정말로 가르쳐줄 거야? 그럼 진짜로 나도 마법 무구를 제작할 수 있는 거야?”

마법 무구를 제작하는 능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앞으로 그리드가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의 종류는 대폭 늘어나게 된다.

천문학적인 가치라고 표현해도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기대감에 차올라서 질문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긍정했다.

‘마법 무구의 제작은 파그마도 할 수 있었던 일이다. 놈의 기술을 이은 네가 못할 리 없지.’

“그, 그래? 그럼 좀 진작 알려주지 그랬어?”

‘네가 이번에 대악마 벨리알을 소멸시키고 보상으로 지력이 올랐기 때문에 마법 무구를 제작할 잠재력이 생긴 거다. 그전까지만 해도 너무 무식해서 가망이 없었어.’

“…..”

세상의 구원자 칭호 만세다.

빌어먹을, 속으로 한 바가지 욕을 퍼붓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파그마의 후예>의 히든 피스, <봉인된 능력> 중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퀘스트 클리어를 통해서 <마법 무구 제작법>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제작법 수련>

난이도:SSS

마법 무구의 제작은 본래 일부 마법사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는 브라함의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독자적인 마법 무구 제작법을 창조했습니다.

당신 또한 브라함에게 도움을 받아 마법 무구 제작법을 습득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브라함이 요구하는 바를 달성.

퀘스트 클리어 보상:마법 무구 제작법Lv.1 습득.

“브라함 너…”

나중에는 버려질 것도 모르고 파그마에게 정녕 많은 것을 베풀었었구나.

동정심을 느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그리드의 뇌리로 브라함의 속내가 들려왔다.

‘너만은 나를 배신하지 마라.’

“……”

단지 마족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밖에 없던 친구에게 배신당했던 브라함의 충격은 무척 컸을 것이다. 만약 그리드가 브라함의 입장이었다면, 두 번 다시는 인간을 믿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함은 그리드에게 꾸준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의문을 느낀 그리드가 대놓고 물어봤다.

“브라함, 너 왜 나를 좋아하는 거야?”

브라함이 버럭 성을 냈다.

‘뭐, 뭣…! 누, 누가 너 따위를 좋아한단 말이냐!!’

솔직하지 못하여 부정하기는 하지만, 브라함은 이미 진즉부터 그리드에게 호감을 품어왔고 그로 인해 많은 도움을 줘왔다.

왜?

그리드의 성격이 파그마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친구조차도 배신했던 파그마와 달리 그리드는 단 한 명의 동료조차도 소중하게 여기는 인물이지 않은가.

뱀파이어의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수백 년 동안 인계에 머물면서 차츰 성격이 변화해온 브라함.

그 또한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칫.’

왜 점점 마음이 나약해지는 거지?

무무드를 제자로 들였던 시기부터 이랬다.

녀석의 재능을 질투하여 업적을 가로 채고 세상에서 지워버릴 각오까지 다져놓고 결국 난 녀석을 죽이지 못했다. 나중에는 오히려 놈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었다.

‘……’

무무드.

누구보다도 미웠고, 또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웠던 녀석의 순진무구한 미소가 떠오르는 날이다.

감상에 젖어있는 브라함에게 그리드가 재촉했다.

“뭘 멍하니 있어? 빨리 마법 무구 제작법을 가르쳐줘.”

‘그러지. 일단 매직 미사일로 금속을 단조하는 방법부터 익혀라.’

“…?”

‘우선 1만 회. 네가 매직 미사일로 강철을 두드려야하는 횟수다.’

“?????”

좀 쉽게 가면 안 되나?

왜 매번 개고생을 해야 하는 건지, 그리드는 이해가 안 됐다.

***

전신 거울 앞에 선 라우엘이 자기 자신과 대면했다.

“라우엘, 스스로 알다시피 너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존재다.”

인간의 영역은 이미 진즉에 초월했고, 그 재능은 신의 질투를 살 정도이다.

아아, 그래서일까?

“…지독한 저주를 받고야 말았구나.”

군사적 재능만큼은 범인의 수준에 불과하다는 저주 말이다.

“라우엘, 공교롭게도 네게는 군사를 이끌만한 자격이 없다.”

라우엘은 라인하르트의 허점을 노리고 공략하여 전쟁을 빠르게 종결시키는 전략을 구사한 바 있다.

템빨단원 모두가 그의 최고라고 추켜세울 정도로 대단한 전략이었지만, 정작 라우엘 본인은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꼈다.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내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전쟁을 총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언젠간 큰 우를 범하고 군대를 위기에 빠뜨리고 말 거다.’

전쟁에서 내게 어울리는 역할은 딱 참모에 불과하다.

나처럼 뛰어난 지략과 카리스마를 겸비했으면서도 보다 냉철하고 순발력이 뛰어난 인재가 필요했다.

피아로나 아스모펠?

그들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하나의 ‘전장’에서 승리를 쟁취할만한 역량을 지닌 장수일 뿐, ‘전쟁’ 전체를 이끌어나가기에는 지력이 많이 낮았다.

‘물론 아스모펠님께서 더 성장하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만.’

아스모펠의 총사령관으로써의 재능이 만개하기 전까지 그 역할을 대신해줄만한 인재가 없을까?

한참을 궁리해보던 라우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어, 없어?”

템빨단.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인재들의 재능이라는 것이 대부분 무력에 편향되어 있었다. 라우엘의 입장에서는 절망적인 사실이었다.

“큭큭…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새로운 인재는 외부에서부터 확보하겠다.”

어떻게?

방법이야 간단하다.

최근 템빨단의 명예와 권세는 실로 엄청난 것.

지금 이 순간에도 템빨단에 들어오고 싶어서 노력 중인 사람이 많다.

라우엘은 이점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토반, 템빨단 입단 테스트를 대규모로 개최하도록 하지요. 지금 당장 전 세계에 나의 의지를 전파하도록 하세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이 라우엘과 지략을 논하고 데스티니를 공유하는 영광을 누릴 자, 과연 누구인지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아… 음, 쉽게 말해서 전 세계에다가 구인 공고를 내라 이거지?”

“……”

우리 템빨단에 낭만은 없는가.

라우엘은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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