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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23화 (418/1,794)

템빨 28권 - 14화

‘예상보다 더 강한 상대였다.’

백요를 해치운 이후.

한숨 돌리는 카심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백요가 탐(貪)에 구속 당한 상태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솔직히 놀란 것이다.

카심은 걱정이었다.

그리드님께서 성장하실수록 그리드님의 적들 또한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으므로 언젠간 큰 화가 닥쳐오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특히 제국의 솔로 넘버 나이트들이 걱정이군.’

사하란 제국의 적기사단은 단연코 대륙 최강의 무력집단이다.

특히 솔로 넘버 나이트들의 무력은 단신으로 성 한 채를 박살낼 수준이라고 평가 받았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잘못 된 것이다.

아직 그리드를 만나기 전, 제국에 복수할 기회만을 노리며 제국을 염탐하던 카심은 진실을 알게 됐다.

솔로 넘버 나이트.

그중에서도 특히 1~7번대 기사의 무력은 하나의 성이 아니라 국가를 전복시킬 수준으로 강력하다.

애초에 그들은 <피아로>의 대체자로 선택 된 인물들.

타고난 재능과 교육 받은 환경부터가 일반적인 기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 전원 피아로급의 강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림자의 왕 카심조차도 그들 앞에서는 미약한 존재로 전락해버릴 정도.

‘제국에는 나로서도 넘을 수 없는 산이 즐비하다.’

그리드님께서는 더욱 더 빠르고 강하게 성장하실 필요가 있다.

카심은 믿었다.

그리드라면 언젠가 기필코 제국의 모든 산을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아니, 완전히 부숴버릴 수 있을 거라고.

이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그리드의 잠재력을 고려한 확신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카심의 역할은 그리드의 모든 것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 그리드가 마음 놓고 성장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또한 더 강해져야한다.’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미뤄뒀던 4차 전직에 도전해야하는 시기가 다가온 듯하다.

“웅? 이건 뭐에요?”

카심이 생각에 잠긴 사이.

소멸한 백요가 떨어뜨린 목걸이에 로드가 흥미를 보였다.

허허 웃은 카심이 설명했다.

“적이나 몬스터를 해치우면 가끔씩 이렇듯 전리품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승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 보상인 것이죠.”

“헤에…”

로드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백요가 떨어뜨린 목걸이가 아무래도 욕심나는 눈치였던지라 카심이 그것을 선뜻 로드에게 건넸다.

“스킬의 전개 속도를 단축시켜주는 아티펙트로군요. 제국의 보고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진귀한 보물입니다. 부디 소중하게 간직하시며 유용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로드가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아까 그 나쁜 누나는 싸부님이 해치운 거잖아요! 이건 로드의 것이 아니라 싸부님 거예요!”

“어린아이가 사양하는 것은 썩 귀엽지 않습니다.”

또래보다 훨씬 더 빨리 철이 든 로드가 카심은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자, 받으십시오. 평소 열심히 공부해주신 공자님께 드리는 상입니다.”

“웃…! 너무 기뻐요.”

이 어찌나 순수한 아이란 말인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하는 로드를 보자 카심은 죄의식마저 느꼈다.

‘선물 받는 일에 익숙해지시게끔 내 평소에 자주 선물을 해드려야겠군.’

하긴, 돌이켜보면 로드 공자는 생일상조차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그리드님께서 매번 자리를 비우고 계셨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딱하게 여기며 자신이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스승이 되리라고 다짐하던 카심이 문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목걸이를 아바마마께 선물로 드릴 거예요. 싸부님의 가호가 담긴 이 목걸이가 늘 아바마마를 지켜주었으면 좋겠어요.”

“아주… 아주 기특하십니다.”

우리 네로족이 제국에게 멸망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평범한 삶을 살고 아버지가 되었더라면, 우리 공자님 같은 아들을 낳을 수 있었을까?

‘이제와 그런 생각을 해봤자…’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혔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준 내게는 행복을 꿈꿔볼 자격조차도 없다.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카심.

로드가 그의 거칠거칠한 손을 붙잡더니 자신의 뺨 위에 얹었다.

“따뜻해요.”

“…..”

***

[대악마 벨리알의 영혼을 영원히 소멸시킨 대가로 특별 보상을 획득합니다.]

[<성녀>클래스의 등급이 유니크로 성장합니다. 모든 스킬의 레벨 최대치가 2 상승합니다. 300레벨을 달성할 경우 2개의 새로운 스킬을 획득합니다.]

[성녀의 전용 무기 <나무 지팡이>의 등급이 유니크로 성장합니다. 강화수치가 초기화됩니다.]

[칭호 <부정하는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부정하는 자>

당신의 신성력은 신을 믿는 대가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고 숭배 받으며 직접 쌓아올린 독보적인 권능입니다.

신이 만든 이 세상에서 오로지 당신만이 신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신의 피조물(대악마, 신수, 반신, 각종 신기 등)과 적대하고 전투할 경우 모든 능력치가 상승하고 스킬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힐이 다른 교단 사제들의 힐과 중첩되지 않습니다. 같은 대상에게 힐을 사용 시, 당신의 힐만 적용됩니다.

성녀 루비가 대악마 레이드에 성공한 후 획득한 특별 보상의 내용이다.

클래스 등급이 성장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칭호 효과에 대해서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게임 이해도가 낮은 루비가 오빠 그리드에게 질문했다.

“이 칭호 좋은 거 맞아?”

“으음…. 공격 스킬이라고는 거의 없는 성녀의 능력치가 높아져봤자… 하지만 뭐, 없는 것보단 낫지. 특정 레이드에 한해서는 생존력과 힐량이 조금씩 늘어날 테니까.”

무려 대악마를 해치우고 얻은 특별 보상치고는 부족한 느낌이다.

특히 페널티가 거슬렸다.

다른 사제들의 힐과 루비의 힐이 중첩되지 않게 됐다는 점.

훗날 대규모의 레베카교 사제를 운용할 예정인 템빨국의 입장에선 이게 썩 아쉬운 부분이었다.

‘힐러 군단의 단장을 세희로 삼겠다던 계획은 버려야겠군.’

여기까지가 바로 몇 시간 전의 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리드는 <부정하는 자> 칭호의 진짜 가치를 엿볼 수 없었다.

하지만 리파엘의 창 개조를 앞두고 궁리해본 지금, 발상이 전환되어 깨달았다.

‘여신의 솜털에 깃든 레베카 여신의 신성력을 세희의 능력으로 억제한다면?’

여신의 솜털에 깃든 레베카 여신의 신성력은 너무 강한 게 문제였다. 신기 사용자의 생명력을 갉아먹을 정도로 말이다.

그 강력한 신성력을 세희의 힘으로 부정할 수만 있다면 백화의 위력이 반감되고 사용자의 안전을 지켜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도해보자.’

결정한 그리드가 즉시 세희를 불러들였다.

***

“성공이야!”

“좋았어!”

그리드의 기대대로였다.

세희가 여신의 솜털을 정화하자 솜털에 깃들어있던 강력한 신성력이 대폭 약화됐다.

<약화 된 여신의 솜털 뭉치>

빛의 여신 레베카의 솜털 뭉치입니다.

인간조차 견딜 수 없는 강력한 신성력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성녀의 힘으로 위력이 반감됐습니다.

무게:0

‘신성력이 약화 된 만큼 리파엘의 창의 위력도 약화되겠지만.’

그 부분은 그리드가 기술로 극복해야할 문제다.

“후우.”

심호흡한 그리드가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이후 지금까지 제작해온 온갖 종류의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떠올려본다.

‘내가 축적한 경험과 기술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의 나라면 리파엘의 창을 보다 이상적이고 위력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거야.’

번쩍!

마치 잘 벼른 칼처럼 날카로운 집중력을 끌어올린 그리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사벨을 돕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서 백린목을 꺼내든다.

드디어 본격적인 제작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를 멀찍이 앉은 채 지켜보는 이사벨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화로 앞에 서있을 때가 특히 더 남자답고 멋져.’

“…..”

그리드를 바라보는 이사벨의 모습이 수줍은 소녀 같았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데미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사벨의 지고지순한 마음이 사랑스러운 한편 씁쓸한 것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언제쯤이면 자신을 돌아봐줄까?

‘어쩌면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체념할 때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리던 데미안이 깜짝 놀랐다.

이사벨이 갑자기 손을 맞잡아온 까닭이었다.

“이, 이사벨쨩…?”

맞잡은 이사벨의 손에 깃든 떨림과 따스한 온기가 데미안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그에게, 뺨을 홍당무처럼 붉힌 이사벨이 조심히 말했다.

“만약… 만약 그리드님께서 저를 백화로부터 해방시켜주신다면.”

“…?”

“그때는 교황성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어요.”

“이사벨… 쨩…”

사실, 이사벨은 데미안을 지조 없고 배려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호감을 표현하며 들러붙는 그가 영 귀찮고 싫었었다.

어디까지나 옛날이야기다.

애정을 쉽게 표현한다고 해서 그 애정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 데미안과 함께하면서 이사벨은 알게 됐다.

데미안이 나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나를 생각하는 데미안의 마음이 얼마나 올곧고 당당한지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는가.

이사벨은 데미안에게 큰 호감을 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자신의 그리드에 대한 마음은 사랑을 넘어선 동경이었다는 사실을.

데미안에게 품게 된 감정이야말로 진짜 사랑임을 깨우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데미안의 마음을 외면해왔다.

왜?

백화 때문이다.

리파엘의 창을 사용하면서 소모되는 생명력이 늘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대로라면 머잖아 죽게 될 자신이 데미안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좋아, 그럼 어디 제작을 시작해볼까?”

따앙! 따앙!!

나를 위해서 땀을 흘려주는 이가 있다.

그리드.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몇 번이나 구원해주었던 분.

저분이라면 이번에 또 한 번 나를 구원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꾸욱.

데미안의 손을 붙잡고 있는 이사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두 번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깃든 힘이었다.

‘부디… 부디 저를 도와주세요.’

나 또한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복이라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이사벨의 간절한 기도가 그리드를 향하는 그 순간.

[레베카의 딸 이사벨이 당신을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당신을 향한 믿음은 레베카 여신을 향한 믿음보다 더욱 더 강력하고 절실한 것입니다. 이는 왜곡 된 신앙이 아닙니다. 레베카 여신조차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레베카 여신의 분노를 회피합니다.]

[신화급 아이템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당신에게는 신격화 될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칭호 <신화를 엿보는 자>의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신화를 엿보는 자>

당신의 클래스 등급을 <신화>로 상승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입니다.

*특수 스탯 <신위>가 개방됩니다.

<신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한 위엄입니다.

이 스탯이 10개가 될 때마다 새로운 권능을 얻습니다. 획득하는 권능은 당신의 성격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

이게 뭔 생뚱맞은 일이지?

당황하며 망치질을 멈춘 그리드가 이사벨 쪽을 바라보았다가 흐뭇한 미소를 그렸다.

손을 꼭 맞잡은 이사벨과 데미안이 서로의 머리를 기대고 앉은 모습, 마치 오래 된 연인처럼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건가.’

그리드는 데미안이 이사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리드는 아이린과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은 입장이다. NPC와 유저간의 우정이나 사랑을 단순한 욕구 배출구라고 평가하는 뭇 사람들과 사고관이 달랐다. 데미안과 이사벨의 사랑을 진정으로 응원해주었다.

‘나중에 딸 낳으면 우리 로드한테 시집보내라.’

Satisfy에 뿌리가 내린다.

그리드와 그 주변인들이 만들어내는 인연이라는 뿌리가 널리널리 퍼진다.

‘Satisfy가 단순한 게임이 아닌 또 하나의 세상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는 임철호 회장의 바람이 이뤄져가는 것이다.

[★히든 퀘스트★ <이사벨을 위하여>가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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