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8권 - 11화
‘세상에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로드는 다섯 살배기의 꼬마로 보였다.
하지만 언어 구사 능력은 그보다 족히 몇 살이나 위 같았기 때문에 꽤 총명한 아이구나 싶었다.
그래, 첫인상은 말이다.
한데 실체는?
총명함의 범주 따위에 집어넣을 수 없는 괴물이었다.
꼬맹이 주제에 위협적인 투척술을 구사할 뿐더러 그림자 술법과 신성 마법, 거기에 검술까지 쓴다.
검술도 보통 검술이 아니다. 최소 유니크 등급의 검술을 떠올리게 만드는 화려한 스킬이팩트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뭐 이딴 괴물이…!’
아장아장.
투다다다다닥!!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여서 거리를 좁혀온 로드.
녀석이 쏘아내는 검기의 폭풍이 백요와 흑요를 전방위로부터 압박해왔다. 마치 크라우젤의 검술을 보는 것 같다.
완벽하게 회피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한 백요 자매가 각기 다른 선택을 내렸다.
생명력과 방어력이 낮은 마법사 흑요는 실드를 사용, 방어력을 높이는 반면 백요는 도리어 맞공격을 펼쳤다.
‘꼬맹이가 세 봤자 얼마나 세겠어!’
애초에, 로드가 쥐고 있는 무기는 유아용 작은 검에 불과했다.
뽁뿡 검인지 뽁뽁 검인지 모를 괴상한 스킬, 화려한 이팩트와 달리 위력은 약할 거라는 것이 백요의 판단이었다. 정면으로 맞부딪치면 당연히 자신이 압도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쿠콰콰콰콰콰콰콰쾅!!
[날카로운 검기의 폭풍이 당신의 방어력을 하락시킵니다!]
[당신을 공격한 대상의 레벨이 터무니없이 낮습니다. 대부분의 피해를 감소시킵니다.]
[2,88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뭐?’
체지방의 변화를 토대로 능력치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백요.
그녀의 기본 방어력은 제법 준수한 편이다. 최상위 랭커답게 다양한 칭호를 보유했고 유니크 등급의 귀속 룬까지 지녔으므로 탱킹 능력이라면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다.
한데 고작 다섯 살배기 꼬맹이의 검에 베였답시고 3천에 육박하는 생명력을 손실한 것이다.
물론, 총 생명력이 6만을 넘는 백요의 입장에서 3천의 생명력을 잃은 것은 큰 타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알림창을 보면 로드와 백요의 레벨 차이는 최소 200 이상이었다. 레벨 차이만 놓고 보면 100단위 데미지만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뜻.
백요는 놀라운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괴물 꼬맹이, 레벨에 비해서 스킬 숙련도와 스탯이 터무니없이 높은 것 같은데?’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점은.
‘심지어 내 공격을 피했다고?’
찰나의 순간, 백요는 두 눈을 의심했다.
로드가 자신과 흑요를 공격함과 동시에 보법을 밟음으로써 아무런 딜레이 없이 자리를 이탈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것은 백광보와 닮아있었다.
백의검객 시절 크라우젤을 대표하던 보법 말이다.
허공을 가른 주먹을 거두어들인 백요가 꽈드득, 이를 갈았다.
“꼬마! 네놈의 정체가 대체 뭐냐!!”
불쏘시개처럼 하찮게 보이는 유아용 철검.
그 검의 위력이 겉보기와 다르게 강력한 이유쯤이야 뻔히 알 수 있다.
그리드가 제작해준 것이리라.
그래, 로드라는 이름의 저 애송이는 지 애비를 쏙 빼닮아서 템빨러다.
여기까지는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림자의 주인> 만이 습득할 수 있는 그림자술법은 어떻게 구사하는 것이며 신성 마법은 또 뭐란 말인가?
더군다나 크라우젤의 흔적이 엿보이는 검술과 보법은?
“아직 1차 전직도 못했을 꼬맹이 주제에 어찌 그런 화려한 기술들을 습득해서 사용할 수 있는…!”
따지듯이 소리치던 백요가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하나의 가정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이 꼬맹이 설마, 그리드가 의도적으로 육성 중인 비밀 병기인 건가?’
템빨단의 대악마 레이드 현장에 데미안과 크라우젤이 함께했다는 정보쯤이야 진즉에 입수했다.
이를 토대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데미안과 크라우젤이 그리드의 확실한 우군이라는 점.
만약 그들 셋이 합심해서 로드를 인간병기로 육성하고 있다면?
‘네임드 NPC의 잠재력은 무한… 갓난아기 시절부터 철저히 교육시킨다면 최상급 스킬들을 빠르게 습득시키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해.’
지상 최강의 인간 병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드 이 무시무시한 놈!’
제아무리 게임 속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혈육을 병기로 육성하다니, 실로 냉혹한 인물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아름다운 모성 본능을 타고나는 여성과 비교해봤을 때 남성이란 존재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래… 너도 참 불행한 아이로구나. 부모를 잘못 만나 철이 들기도 전부터 병기로 키워지다니 말이야.”
로드를 바라보는 백요의 눈빛에 측은지심이 실렸다.
늘 예쁨과 선망만 받고 자라온 로드의 입장에서는 생소한 눈빛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로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변기?”
“……”
말귀조차 제대로 못 알아먹는 꼬맹이.
이 순수한 아이에게 최상급 스킬들을 숙련시킨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능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혐오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드와 크라우젤을 증오하며 치를 떤 백요가 로드에게 주먹을 겨눴다.
“어차피 평생토록 이용만 당하다가 불행하게 죽어갈 운명. 차라리 내가 깔끔하게 죽여주마.”
꾸득!
꽈드드드득!!
로드에게 겨눠진 백요의 주먹에 두꺼운 핏줄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가녀린 팔뚝에는 어느새 근육이 불끈 거린다.
지방을 근육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역발산기개세!!”
퍼엉!
힘은 산을 뽑을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뒤덮을만하다.
백요의 진정한 힘이 개방되는 순간이었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역발산기개세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하고 추가 공격력을 얻은 백요가 내지르는 주먹의 기파는 굉장했다.
흑요가 망상으로 구현해놓은 일대의 불바다를 모조리 흩어버렸고, 이어서 드러나는 논밭을 두 갈래로 쪼개버린다.
쿠르르르르르릉!!
“아쿠.”
귀를 찢는 폭음에 아찔해진 로드가 갸우뚱, 엉덩방아를 찧었다. 애초에 스킬을 연발하느라 스태미나와 마나가 한계치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자원 소모가 큰 최상급 스킬들이 아직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로드에게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상대할게요!”
“로드 공자님은 쉬고 계세요!”
로드와 백요의 싸움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200여 명의 미소녀들이 드디어 전투에 참전했다.
각자 창이나 칼, 혹은 방패를 거머쥐고 로드를 보호하였다.
백요는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애송이들이 단체로 덤벼봤자다!”
나의 주먹 한 방에 너희들 모조리 나가떨어지리라!
장담하는 백요였으나.
“모두 힘을 합치자!”
“응!”
까앙!!
평소 매일 훈련이라도 해온 걸까?
능숙하게 방진을 짠 200명의 미소녀들이 백요의 공격을 막아냈다.
방패를 무장한 선두의 50명 소녀가 백요의 주먹을 봉쇄하고 움직임을 차단하였고, 창칼을 무장한 나머지 소녀들은 자유를 빼앗긴 백요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내 공격을 막다니?’
아직 10대에 불과한 소녀들이 어찌 이리도 체계적이며 단단하단 말인가?
백요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다섯 살배기 어린 아이한테 당할 때와 비교하면 냉정할 수밖에 없다.
틈을 드러내지 않고 신속하게 움직인 백요가 방패 소녀들을 뿌리친 후 창칼을 찔러오는 소녀들의 공격을 회피, 반격했다.
콰작!
쩌정! 쩌저저정!!
“꺄악!”
레베카의 딸 후보들.
레베카교의 비밀 신전에서 고된 훈련을 받고 이후 레이단에서 피아로에게 교육 받은 그녀들은 무척 강했다.
준네임드 NPC로 높은 성장률을 발휘하여 이미 평균 레벨이 200을 가뿐히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백요는 플레이어 최강자 중 한 명인 바.
레베카의 딸 후보들은 아직 백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숫적 우위도 부질없다.
“누나들을…!”
소녀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로드가 흥분했다.
어머니로부터 여자는 소중히 대해야하는 존재라고 배웠다.
아버지로부터 소중한 존재는 기필코 지키라고 배웠다.
“누나들을 괴롭히지 맛!!”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지탱해서 일어선 로드가 외친다.
소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살의라는 것을 품고 있었다.
순간.
“어쌔신이 살기를 표출하다니요. 절망적인 상황일수록 평정심을 유지하셔야 한다고 제가 누차 이르지 않았습니까?”
로드의 그림자로부터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심의 목소리였다.
“싸부님!”
앞뒤 분간 못하고 백요에게 덤벼들려고 했던 로드가 순식간에 평정심을 되찾았다.
꾸욱, 입을 앙 다물고 인내하는 그에게 카심이 질문했다.
“소중한 이들을 잃게 생긴 지금, 공자께서 내리셔야할 선택은 뭡니까?”
로드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싸부님의 도움을 받는 거예요!”
“정답입니다.”
어리석은 고집은 필요 없다.
선택은 합리적인 것이 좋다.
특히 로드는 권력자의 입장.
그가 휘두를 수 있는 힘의 형태는 개인의 무력뿐만이 아닌 것이다.
로드의 대답에 만족한 카심이 그림자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로브 아래 날카로운 눈동자가 백요를 쏘아본다.
***
“꺄아아악!!”
퍼펑!
퍼퍼퍼퍼퍼펑!!
백요의 압도적인 공격력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소녀들 위로 흑요의 마법 폭격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무력화 된 그녀들에게 백요가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역발산기개세의 유지 시간 동안 생성되는 <내장지방> 게이지를 일정량 소모하는 대가로 사용할 수 있는 광범위 살상 기술을 발현하려는 것이었다.
“그리드의 미래가 될 너희들을 살려둘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씨익!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백요가 하늘 높이 도약한 후 뱃살을 비대하게 부풀렸다.
살육이야 이미 익숙한 바.
지정한 범위에 널브러져 있는 소녀들 전원을 모조리 뱃살로 짓뭉갤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실현 될 수 없었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촥!!
“뭣이!!”
한껏 부풀어 오른 뱃살을 앞세워서 지상으로 추락하던 백요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지상 곳곳에 존재하는 그림자로부터 시커먼 표창 수백 개가 생성되더니, 이내 역행하는 폭우처럼 자신을 노리고 쇄도해오는 게 아닌가?
“크윽…!”
로드가 구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그림자 술법이다.
당황한 백요가 황급히 뱃살을 원래대로 되돌린 후 표창들을 회피했다.
표창의 개수가 워낙에 많은 탓에 모조리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흑요가 펼쳐준 실드 마법 덕분에 비교적 무사할 수 있었다.
“웬 놈이…!”
그림자 표창의 시전자를 찾아내고자 지상을 탐색하기 시작하는 공중의 백요에게 흑요가 다급히 외쳤다.
“언니! 위!”
“…!!!”
흑요의 외침을 듣고 황급히 시선을 위로 올린 백요가 헛숨을 들이켰다.
자신이 피하고, 막아냈던 그림자 표창들.
허공에서 창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더니 다시금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닌가!
‘말도 안 돼!’
한 번에 수백 개의 그림자 표창을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표창의 형태를 실시간으로 변형시키기까지 하다니? 심지어 공격 궤도도 도중에 재설정해서 말이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백요가 알고 있는 그림자술과는 차원이 다른 유틸성.
이건 거의 사기 수준이다.
‘버그 사용자라도 되는 건가?’
혼란에 휩싸인 백요가 황급히 지상으로 낙하, 레베카의 딸 후보들을 방패삼아 자신의 몸을 지키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그림자 창은 마치 유도탄 같았다. 소녀들의 뒤로 몸을 숨긴 백요만을 집요하게 노리며 덤벼들었다.
“언니!”
빨리 술자를 찾아야한다.
그림자 창에 고립 된 백요를 구원하고자 흑요가 망상을 재구현했다.
전투의 여파로 엉망진창이 된 논밭을 완전한 평야로 바꿔버림으로써 그림자 술사가 몸을 숨길만한 엄폐물이 존재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러자 여태껏 보이지 않던 사내의 모습이 백요와 흑요 자매의 시야에 들어왔다.
로브를 깊이 눌러 쓴 장신의 사내였다.
“놈!”
표적을 찾아낸 백요와 흑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림자 창의 폭격을 무시하고 로브의 사내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공격은 사내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사내가 소환한 그림자 병사들이 사내를 완벽히 보호한 까닭이다.
“어떻게 저런…!”
그림자 제어 능력이 너무 빠르고 완벽하다.
이상하다.
백요 자매가 알기로 그림자술을 완전하게 다루는 인물은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어?”
백요 자매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로브 사내의 정체를 유추해버린 탓이다.
“서, 설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그림자를 수족처럼 부리는 어쌔신.
너무나도 위대한 권능을 지닌 탓에 ‘왕’ 이라는 이명을 얻은 존재.
그는 바로.
“그림자의 왕…!”
“카심!!”
왜?
두문불출하기로 유명한 그림자의 왕이 어째서 레이단에 있는 거지?
혼란에 휩싸인 백요 자매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고,
스윽.
어느새 카심은 흑요의 등 뒤로 나타나 있었다.
그림자와 그림자를 넘나들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것이다.
푸욱-!!
카심의 칼이 흑요의 심장을 찔렀다.
“쿨럭!”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흑요가 피와 눈물을 쏟았으나 백요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동생 흑요의 본체는 이미 무사히 레이단에 잠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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