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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18화 (413/1,794)

템빨 28권 - 9화

“뭣이! 국왕전하께서 승하하셨다고?!”

[아스란 국왕의 부고를 접한 에트날 해군이 혼란에 빠집니다!]

[에트날 해군 전원의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스킬과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에트날 해군이 퇴각을 개시합니다!!]

“허억… 헉…”

코크로 섬.

광부 활동 도중에 만나 동료가 된 ‘솔져’의 도움으로 에트날 해군 본대를 대파한 극검.

본대가 궤멸한 후에도 쉬지 않고 몰려오는 에트날 해군에 의해서 섬의 절반가량을 장악당하는 등 큰 위기에 몰렸던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라우엘… 갓리드. 너희가 해냈구나.”

예정보다 훨씬 더 빠른 전쟁의 종결.

덕분에 덩달아 코크로 섬까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지키지 못하리라 보았던 코크로 섬을 우리들 위대한 한국인 유저들의 손으로 지켜낸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은기사 출신 템빨단원들과 코크로 섬 병사들이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며칠 동안 계속 된 전쟁 탓에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지만 이 순간의 기쁨을 만끽했다.

극검이 그들을 치하했다.

“모두들 고생이 많았다. 갓리드의 부하답게 다들 잘 싸워주었어.”

이제 그리드의 곁으로 돌아갈 때다.

“갓리드에게 가자. 곧 왕위에 오르게 될 우리의 대장을 모두 함께 축복해주자.”

누구도 넘보지 못할 대기록을 또 한 번 갱신하며 대한민국의 명예를 드높여줄 그리드.

대한애국협회장 극검에게 있어서 그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갓리드 너를 섬길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극검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더 없이 인자하다. 보는 이의 기분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푸근한 미소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미소는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극검의 등 뒤로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 때문이었다.

땅속에서부터 솟구치듯이 나타난 그림자 위에 떠오른 아이디는 타르마.

다크 게이머 집단 <블러드 카니발> 소속의 어쌔신이다.

국가대항전과 세이렌 침공전에서 그리드에게 패배, 끔찍한 수모를 겪었던 그가 악의로 똘똘 뭉친 음성으로 속삭였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마냥 기세등등한 꼴이 우습군. Satisfy가 템빨단 너희들만을 위한 세상 같나?”

“놈…!”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린 극검이 칼집 위로 손을 얹는 순간.

푸욱--!!

“……!”

타르마의 황색 단도 두 자루가 극검의 심장을 찔렀다.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타르마는 강하다.

그를 쉽게 이겼던 그리드조차도 마음속으로는 실력을 인정했을 정도였다. 만약 타르마가 <암살>이나 <기습>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을 노리면 위험하리라 생각했었다.

그 강력한 살수의 은밀하면서도 치명적인 일격을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서 피폐해진 극검이 감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특히 지금의 극검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커다란 빈틈을 드러낸 상태.

“크윽…!”

푸욱!! 푹!! 푹푹!!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경험치 33.1퍼센트를 손실하였습니다.]

[레벨이 하락합니다.]

[가장 최근에 투자한 능력치 포인트 10개가 소멸합니다.]

[아이템 <극검꺼>를 드롭합니다.]

황색 단도에 연달아 급소를 꿰뚫린 극검이 서서히 잿빛으로 산화한다.

그야말로 찰나지간에 발생한 일.

“극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템빨단원들이 급격한 혼란에 빠졌고, 타르마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코크로 섬을 초토화시켜라. 모조리 짓밟고 빼앗아 템빨단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거다!”

너희가 힘들게 쌓아왔을 모든 것을 부정하리라!

강력한 의지가 실린 타르마의 명령과 동시에,

팟!

파파파파파파파팟!!

템빨단이 에트날 해군과의 전쟁에 집중하는 동안 잠입해있던 어쌔신들이 일제히 산개, 섬 중앙에 위치한 도시를 향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템빨단원들이 그들을 저지하고자 시도하려했지만 타르마가 모조리 제압해버렸다. 은기사 출신의 템빨단원들은 아직 하이랭커를 상대할 수준의 실력을 갖추지 못한 바, 타르마에게 완벽하게 농락당했다.

“템빨단…! 앞으로 평생 동안 괴롭혀주마!!”

Satisfy의 유저는 무려 20억 명.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난무하는 인과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얻는 것이 생기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필연적인 이치가 그리드와 템빨단을 압박한다.

***

“큭! 큭큭큭! 크하하하하하핫!!”

요새도시 보르네오.

성벽 위의 카츠가 광소를 터뜨렸다.

돈에 눈이 멀어서 본분을 망각한 가우스군 유저들과, 돈이 없기 때문에 비명횡사 할 수밖에 없었던 수에론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정말로 대단하단 말이지.”

그래, 돈의 위력은 언제 봐도 대단하다.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역시 세상은.

“돈 많은 게 최고야.”

오로지 재벌만이 입에 담을 수 있을 광오한 발언!

오만방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성벽 아래 모인 가우스군 유저들이 요구해왔다.

“수에론을 죽였어!”

“이제 약속한 보상을 달라고!”

“난 수에론 10대도 더 때렸다!”

“내가 수에론한테 막타 넣었어!!”

돈! 돈! 돈!!

지상 최고의 요물에게 눈이 먼 유저들이 카츠에게 손을 내민다.

혹시라도 카츠가 입을 싹 닦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빠른 보상을 원했다.

돈 앞에 꼭두각시가 된 그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살펴보던 카츠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약속했던 보상을 주마.”

“오오!”

역시 일본 최고의 재벌가 아들답게 명예를 지킬 줄 안다.

가우스군 유저들이 약속 된 보상을 기대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들에게 카츠가 한 통의 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내 비서의 메일 주소다. 그곳으로 수에론을 공격할 당시 녹화해놓은 영상이랑 계좌번호를 보내라. 확인 후 즉시 약속 된 금액을 이체시켜주마.”

“…?”

수백, 수천의 가우스군 유저들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카츠가 영상을 요구하자 당황한 것이다.

술렁이는 그들에게 카츠가 영문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반응들이 왜 그러지? 내 요구에 잘못 된 점이 있나?”

아니, 잘못 된 점은 없다.

카츠는 누가, 어떻게, 얼마나 수에론을 피격했는지 명확히 알아야할 의무가 있었고 녹화 된 영상은 확실한 증거물이었다. 유저들에게 약속한 보상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영상을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

가우스군 유저 대부분이 간과했던 부분이다.

누군가가 따지듯이 외쳤다.

“캡슐 메모리에 한도라는 게 있잖아…! 누가 미쳤다고 전쟁터에서의 영상을 녹화해놨겠어!”

“맞아! 무려 수천 명이 뒤엉켜서 싸우고 온갖 스킬 이팩트가 넘쳐나는 현장에서 영상을 녹화하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해? 영상 용량이 초과해서 캡슐에 저장되지도 않잖아!”

“하?”

카츠가 눈살을 찌푸렸다.

“말의 요지가 뭐지? 너희들 중 누가, 정확히 몇 대씩 수에론를 때렸고, 잡아 족쳤는지 내가 일일이 확인하고 기억해 놨어야한다는 뜻이냐?”

“그, 그건…!”

가우스군 유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깨달았다.

아레스를 해치우고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 일,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말이다.

“이…! 이 악독한 일본 놈 같으니라고!!”

“빌어먹을! 네놈 처음부터 이딴 식으로 나오려고…!”

“우리를 입맛대로 이용했을 뿐이냐!!”

가우스군 유저들이 따지고 들면서 일제히 적의를 드러냈다.

전쟁이 다시금 발발할 조짐을 보이자 템빨단 병사들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카츠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도리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왜 내 탓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군. 애초에 네놈들이 혜성그룹의 다이아몬드 캡슐을 이용했다면 영상 녹화 용량이 부족하다는 개소리를 지껄이진 못 했을 텐데?”

“…..?”

“너희가 싸구려 캡슐을 사용한 탓에 영상을 녹화하지 못했고, 그 탓에 내게 보상을 받을만한 증거를 제출할 수 없는 거 아니냐? 스스로의 저급한 재력을 한탄해야할 상황에서 왜 남 탓을 하는 거지?”

“…..”

그렇다.

카츠는 가우스군 유저들을 속일 생각이 없었다.

약속한 보상은 당연히 챙겨줄 계획이었다. 서민을 상대로 금전 사기를 치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무척 높았으니까.

카츠는 단지 서민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왜 다이아몬드 클래스 캡슐을 안 쓰는 거지?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가 몇 번이나 광고했잖아? 좋으니까 쓰라고.”

“……”

아니, 가격이 132만 달러가 넘는 초호화 캡슐을 서민인 우리가 어떻게 쓰냐고.

“빌어먹을 재벌 새끼…”

“더럽게 재수 없는 놈이네.”

가우스군 유저들은 더 이상 카츠에게 따질 마음도 들지 않았다.

전의를 상실해가는 그들에게 가우스군 총사령관이 소리쳤다.

“퇴각! 전군 퇴각하라!!”

아스란 국왕의 붕어 소식이 가우스 왕국까지 전달 된 여파다.

템빨단이 에트날의 왕성 라인하르트를 점령한 이상 언제 이곳으로 지원군을 보낼지 모를 일이었으므로, 가우스군은 일단 퇴각이라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허겁지겁 물러나는 가우스군 군대를 바라보면서 성벽 위 카츠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찌됐든 임무 완료군.”

보르네오를 지켰다.

고작 2천의 병력으로 말이다.

이는 라우엘조차 예상치 못한 카츠의 대활약이었고 돈의 힘이었다.

돈이 최고다.

다시금 깨닫는 카츠였다.

그렇기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템빨을 갖춘 그리드가 더욱 더 부럽고 대단해보였다.

***

레이단의 광활한 논밭.

오늘도 어김없이 농부들이 있었다.

피아로가 가르쳐준 자세를 철저히 지키면서 피아로에게 배운 농술로 밭일하는 농부들.

출신 성분은 다양하다.

레이단 원주민들, 피아로가 알테스 산맥에서 데려온 소수 민족들(사실은 렌 왕자의 사병 출신들), 레이단을 방문했다가 피아로에게 붙잡혀서 얼떨결에 농사일을 시작하게 된 중레벨 플레이어들.

하나 같이 평범한 농부라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단련 된 육체와 비범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음? 저게 뭐지?”

저마다의 위치에서 열심히 농기구를 휘두르던 농부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푸른 과수원 너머 사막으로부터 모래 폭풍이 다가오고 있음이 보인다.

인위적인 모래 폭풍.

마치 수백의 군마가 이동해오는 듯한 광경이다.

농부들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모두 경계하라.”

대부분의 병사들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상황.

우리의 논밭과 도시는 우리가 지켜야한다.

사명감을 불태운 농부들이 정체모를 존재들의 접근을 경계하였고, 머잖아 모래 폭풍은 지척까지 다가왔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시라고는 믿기지가 않네.”

“어떻게 이렇게 광활한 논밭이 있을 수 있는 거지?”

모래 폭풍을 일으킨 존재는 수백의 군마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단 두 명의 여인이었다.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백발의 여성과 비쩍 마르고 음침한 분위기를 지닌 흑발의 여성.

백요와 흑요 자매다.

논밭 곳곳의 농부들이 손에 농기구를 쥔 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들은 개의치 않았다.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농부들 따위, 그저 지나가는 마을주민 1쯤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만약 세이렌에 나타났던 미친 농부가 레이단에 있었다고 가정하면 경계했을 테지만, 그 미친 농부의 현재 위치는 라인하르트라는 정보를 이미 진즉에 입수한 상태.

백요와 흑요 자매는 여유가 넘쳤다.

“가자.”

농부들을 무시한 백요가 앞장서 걸었고 흑요가 그 뒤를 따른다.

저벅저벅.

논밭을 가로지르는 두 여인.

저 멀리 우뚝 선 레이단의 성벽을 유심히 관찰한다.

‘몇 명의 보초가 있을 뿐.’

‘쥐 죽은 듯이 조용하네.’

정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의 기습임을 자부할 수 있다.

텅텅 빈 템빨단의 본거지.

완전히 초토화시켜서 템빨단의 그간 노고를 수포로 되돌리고 그리드의 소중한 부인를 해치우는 것.

백요와 흑요 자매가 세운 완벽한 복수 계획이다.

“…?”

멈칫.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이동하던 백요와 흑요 자매가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이다.

스윽.

스스슥.

논밭 곳곳에 흩어져 있던 농부들.

저마다 흙투성이 천 옷을 입은 채 농기구를 손에 쥔 그들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누군가는 천옷을 벗고 갑옷을 무장하였으며, 또 누군가는 로브를 걸쳤다. 농기구를 버리고 창과 칼을 무장하는 것은 기본이다.

백요와 흑요가 치를 떨었다.

“함정이었나…!”

우리들의 기습을 예견하고 이런 함정을 미리 준비해놓은 건가?

그리드놈의 선견지명은 몇 수 앞까지 내다본단 말인가!

“과연 보통내기가 아니다 이거군…!”

그리드를 인정하면서 식은땀을 흘린 백요가 전투태세를 취했다.

같은 시각, 레이단 내성.

“로드 공자님, 밭일 하실 시간이에요.”

레베카의 딸 후보 출신들.

타고난 재능에 더불어서 엘리트 절차를 밟아온 2백 명의 미소녀가 로드를 보챈다.

“우우.”

로드의 뺨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카심 사부에게 배우는 어쌔신 놀이도 재밌고, 크라우젤 삼촌에게 배웠던 검술을 복기하는 것도 재밌고, 데미안 형 덕분에 일깨운 신성력을 단련하는 것도 재밌고, 스틱세와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어찌 된 게 밭일은 영 별로였다.

피아로가 요구하는 자세대로 호미질을 하노라면 온 몸의 근육이 너무 아팠다.

“나는 대장간에 가고 싶운데.”

대부분의 공부가 재미있다지만 그중 단연 으뜸은 대장기술의 숙련도를 올리는 일이다.

과연 그리드의 아들답게 로드는 대장일이 적성에 맞았다.

투정을 부리는 로드였지만 그의 애인들은 단호한 면이 있었다.

“안 돼요. 모든 공부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잖아요.”

“맞아요. 대현자 스틱세이님께서 짜주신 시간표대로 공부하셔야 더 큰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거라구요.”

“쳇.”

로드의 뺨이 더욱 더 부풀어 올랐다.

단단히 삐친 듯하다.

이럴 땐 품에 안아주거나 무릎베개를 해줘야 풀린다.

귀여운 로드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소녀들이 로드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이었다.

“공자님의 투정을 일일이 받아주어선 안 된다.”

어둠 속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왕자가 되실 분. 이제부터는 체통을 지키셔야한다. 어서 논밭으로 모시고 가라.”

그림자의 왕, 카심의 목소리였다.

결국.

“우아아아아아아아악~~!!”

소녀들에게 붙잡힌 로드가 비명을 지르며 논밭으로 이동했다.

조기 교육에 찌들어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린 아이.

어느덧 벌써 4살이 되어가는 <대륙 최고의 천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하고 있었다.

역대급 파장의 전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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