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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17화 (412/1,794)

템빨 28권 - 8화

신화등급의 주작궁을 제작한 경험을 토대로 그리드는 한 가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신화급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신의 힘이 귀속 된 특수한 재료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주작의 숨결> 같은 재료 말이다.

‘리파엘의 창에도 레베카 여신과 관련 된 재료가 숨어있을 거다.’

과거의 자신은 그것을 엿보지 못했었지만, 당시와 비교해서 대장장이 기술이 부쩍 상승한 지금은 다르리라고 그리드는 믿었다.

‘그 재료가 뭔지 파악하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리파엘의 창을 이상적으로 개조할 수 있을 거야.’

확신한 그리드가 리파엘의 창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전면부 창날과 창대의 연결 부위에 매달려있는 장식용 솜털을 떼어낸 후, 창대 후면에 달린 보조 창날과 전면부 창날을 차례대로 분리했다.

연결 부위의 홈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 손놀림, 섬세하면서도 빠르다.

이를 본 라인하르트의 대장장이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여인의 살결을 어루만지는 듯한 손놀림이로군. 터무니없이 섬세해.’

‘그런데도 빠르고 실수가 없다.’

‘과연 파그마의 후예… 현존 최고의 대장장이 중 하나라는 소문이 과장이 아니었어.’

‘드워프 로드가 아닌 이상에야, 드워프 대장장이들도 저분 앞에서는 명함을 못 내밀게야.’

그리드를 지켜보는 대장장이들이 들뜨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새로운 왕이 같은 분야의 최고 권위자였으니만큼 여러 가지 기대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왕국은 필시 대장장이들의 세상이 되지 않을까, 대장장이들은 상상해보면서 기쁨에 심취했다.

‘언젠가는 저분께 직접 대장일을 배울 기회가 오지도 않을까?’

‘대장 기술을 겨루는 대회도 자주 개최해주시겠지?’

‘이곳 라인하르트는 대장장이들의 성지가 되겠군.’

대장장이들의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대장간의 분위기가 다소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리드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마치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갔다.

데미안과 이사벨은 그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레베카교의 신기.

본래라면 누구에게도 넘겨선 안 될 성스러운 물건을 그리드가 몇 개 단위로 분해하고 심지어 불에 녹이고 있었지만 그들은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리드를 믿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들의 믿음이 무색하게도 그리드의 표정이 점차 좋지 않게 변해갔다.

‘도저히 모르겠군.’

리파엘의 창을 완전히 분해한 후.

재료의 손실이 없는 선에서 창날과 창대의 일부를 녹이고 내부까지 속속들이 살펴 본 그리드가 골치 아프단 표정을 지었다.

레베카의 기운이 느껴지는 재료를 도통 찾아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예전에 봤을 때와 마찬가지다. 창날과 창대 전부 순수한 아다만티움으로 이루어져있어. 심지어 보조 창날까지도.’

아다만티움 자체에 신의 축복이 깃든 건 아닐까?

생각하며 분리 되어있는 창대 모든 부위에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을 사용해보지만…

‘그냥 평범한 아다만티움이야.’

리파엘의 창 어디에도 여신의 축복은 깃들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신의 기운이 깃든 재료가 사용되지 않은 신화급 무기가 존재할 수 있는 건가?’

혼란에 휩싸인 그리드.

당황한 채 생각해보던 그가 문득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이거… 설마 신이 직접 만든 무기인가?’

신의 힘이 깃든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리파엘의 창이 신화급 무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신이 직접 만든 무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대장장이 신이 존재한다면 신화급 무기를 만드는 일쯤이야 껌일 거 아니야?’

최악이다.

이 가설이 만약 사실일 경우, 그리드는 리파엘의 창을 함부로 개조할 수 없게 된다.

재료에 의지하지 않고 순수한 역량만으로 신화급 무기를 개조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작의 숨결 없이는 신화급 주작궁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제길.’

이사벨에게 자유를 주는 건 불가능하단 말인가?

부정하고 싶다.

이를 간 그리드가 데미안과 이사벨에게 질문했다.

“너희들, 혹시 이 창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있어?”

“모릅니다.”

“저도 몰라요.”

“창의 탄생비화 같은 것도 아예 몰라?”

“네. 그저 먼 옛날, 최초의 교황에게 레베카 여신께서 강림하여 삼신기를 하사하셨다는 전설만 있을 뿐입니다.”

“레베카 여신이 직접 말이지…”

전설이라고 해서 모두 허황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온전한 역사일 수도 있다.

파그마와 브라함 같은 전설들처럼 말이다.

‘레베카 여신이 직접 내려준 무기라는 건 이 삼신기의 태생이 신계라는 뜻이니까… 역시 신이 직접 제작한 물건이 맞다는 뜻이 되는군.’

신의 ‘기운’이 아니라 ‘기술’이 집약 된 아이템.

이건 자신의 선에서 완전하게 개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

그리드가 푹 고개를 숙였다.

이사벨과 데미안을 기껏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실망시키게 생겼으니 죄의식을 느꼈다. 스스로의 무능함에 화도 났다. 그냥 이대로 개조를 강행할까도 싶었다.

하지만 위험했다. 리파엘의 창의 기능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결국, 그리드는 어쩔 수 없이 포기를 선택했다. 리파엘의 창을 재조립해나갔다.

우선 창대의 모습을 온전하게 복구시킨 후 전면부 창날을 창대에 꽂기 전, 결합부 근처에 장식용 솜털을 매달았다.

민들레꽃을 연상하게 만드는 뽀송뽀송한 백색의 솜털 뭉치 말이다.

‘어?’

아무 생각 없이 솜털을 창대에 매달아놓던 그리드가 문득 행동을 멈췄다. 자신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이 솜털도 창의 일부로 봐야하는 거 아니야?’

과거, 리파엘의 창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 백색의 솜털은 존재하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이사벨이 취향껏 매달아놓은 단순한 장식품으로 취급했지만…

‘아닐 수도.’

레베카 여신이 직접 하사하였다는 신기에 이사벨이 개인의 장식품을 걸어놓았을 가능성?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척 희박하다.

이사벨에게 있어서 레베카 여신은 고귀하고 성스러운 존재.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존재다. 그만한 존재가 직접 하사하였다는 신기를 그녀가 함부로 더럽힐 리 없었다.

“이사벨, 이 솜털 네가 걸어놓은 거 아니지? 원래부터 창에 달려있던 거지?”

“네, 맞아요.”

대답을 확인하는 순간.

씨익!

얼굴에 드리웠던 암운을 날려버린 그리드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스킬을 전개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

대상은 솜털이다.

띠링~

[전설이 된 대장장이가 범인을 초월하는 뛰어난 안목으로 물품을 감정합니다. 대상 물품에 숨겨진 기능이 존재할 경우 숨겨진 기능을 발견합니다.]

<보송보송한 솜털 뭉치>

리파엘의 창에 달려있는 장식품입니다.

때 묻지 않고 새하얀 솜털이 예쁩니다.

무게:0

[!!!!!!!!!]

[아이템의 숨겨진 기능을 발견하였습니다!]

[대상 아이템의 정보가 갱신 됩니다!]

<여신의 솜털 뭉치>

빛의 여신 레베카의 솜털 뭉치입니다.

비록 오래 전에 여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털이라지만, 여전히 강력한 신성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악을 멸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조차 견딜 수 없는 신성력입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게:0

“헐…”

이 솜 같은 털 뭉치가 여신의 털이었다니?

‘이제 보니까 사람 털 같기도 하네.’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보자 아주 얇은 털들이 뭉쳐있는 형태였다. 얼마나 얇은지 한 가닥씩 놓고 보면 투명할 정도다.

그리드의 뇌리에 레베카 여신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동상이나 초상화로 보면 엄청난 미인이던데… 미인 중에 털보가 많다는 말이 진짜였나.’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다.

상념을 털어낸 그리드가 데미안과 이사벨에게 자신해보였다.

“나만 믿어.”

사용을 대가로 수명을 바쳐야하는 끔찍한 창.

빛의 여신의 가호를 받은 아이템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끔 이 악랄한 창을 그리드는 완전히 바꿔버릴 각오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바로 성녀, 루비다.

-세희야 뭐하냐?

-대악마 소환의 제물이 된 사람들의 유가족들을 위로해주고 있어.

성녀에게는 매일 선의를 베풀어야할 의무가 있다. 만약 그 행위를 하루라도 거른다면 성녀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게임에 접속하면 늘 자원봉사하고 다니는 세희였다.

-오빠 위치 공유해줄 테니까 일로 와서 좀 도와줘. 너의 힘이 필요해.

대악마의 영혼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레이드 특수보상을 획득한 루비.

그리드는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 컸다.

***

“여기가 레이단이구나.”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농업이 발전했는데? 도시 주변이 온통 파래.”

“흥, 그 미친 농부 자식 덕분이겠지.”

블러드 카니발.

최악의 PK집단으로 알려진 그곳은 그리드와 템빨단에게 큰 원한을 품고 있었다.

특히 백요와 흑요 자매의 그리드에 대한 증오는 굉장한 것이었다.

그리드 때문에 세이렌 침공전을 실패했을 뿐더러, 심지어 흑요는 최상급 액세사리 <부조리의 반지>를 그리드에게 빼앗기기까지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녀들은 그리드에게 복수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려왔고, 템빨단과 에트날 왕국의 전쟁을 당연히 주시했다.

그리고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템빨단의 빈틈을 노린 끝에 사막도시 레이단이 텅텅 빈 상태임을 알게 됐다.

레이단.

템빨단의 본거지이자 그리드의 부인 아이린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

그리드, 크라우젤과 동급으로 분류되는 태양급 강자 백요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드놈의 모든 걸 빼앗자.”

화려한 미모를 지닌 언니 백요와 달리 비쩍 마르고 어두침침한 인상을 지닌 흑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가 느낀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맛보게끔 만들어주자.”

블러드 카니발의 정보력은 가히 으뜸이다.

집단 특성상 발 빠른 정보력은 필수였기 문이다. 블러드 카니발은 매일 수많은 세력과 정보를 거래했다.

덕분에 백요와 흑요 자매는 레이단의 현재 전력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 미친 농부를 비롯한 템빨단의 최상위 전력들은 모두 각지의 전쟁터로 흩어진 상태.’

‘현재 레이단을 지키고 있는 병력은 100레벨 중반대의 병사 1천이 고작.’

우리 둘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예 없다.

백요와 흑요 자매는 본인들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세이렌 침공전에서도 자신들이 함께였다면 그리드와 템빨단에게 그토록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리드…! 피 눈물을 흘려라!!”

쿠콰콰콰콰콰쾅!!

조급한 마음에 달리기 시작하는 백요와 흑요로 인해서 사막이 들썩인다.

레이단, 정확히 말하면 아이린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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