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414화 (409/1,794)

템빨 28권 - 5화

템빨.

영어단어 ‘아이템’과 ‘빨’이라는 접미사의 합성어. 21세기 초반에 등장한 신조어이다.

실력보다는 아이템의 능력치에 의존하는 유저들을 표현하는 용어로써, 대체적으로 조롱의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템빨 또한 실력으로 인정받는 시대다.

Satisfy의 거두 그리드가 밟아온 행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버린 결과다.

이제 그 누구도 템빨을 비하하지 않았다.

『템빨국이라! 아주 멋진 국명이로군요!!』

『의미가 명확한 점이 특히 좋습니다. 그리드와 템빨단을 상징하기에 템빨만큼 좋은 것도 없죠.』

『이름부터 강인하게 느껴지는군요. 템빨국의 백성과 병사들은 모두 굉장한 템빨로 무장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허허, 모든 백성과 병사들이 템빨로 무장하는 국가라… Satisfy 최강의 국가가 되겠군요.』

『동네 꼬마들이 가지고 노는 연습용 목궁이 작은 주작을 소환한다거나….』

『…템빨국으로 이주해야겠네요.』

외국 방송 해설진의 반응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템빨이 외래어였기 때문에 템빨국이라는 어감을 딱히 이상하게 여기지 못했다.

반면 한국인 해설자들과 시청자들은 무척 당혹스러웠다.

『아니, 국명이 템빨이라니…?』

『명확한 의미가 담겼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지만 어감은 썩 별로군요.』

『…..』

-뭔 템빨국이여;; 진짜 촌스럽다.;;

-이름 맛있어 보임. 밥 말아 먹고 싶은 이름.

-듣다보면 적응되지 않을까요? 템빨단도 처음에 들었을 때만 웃겼지 지금은 이상하지도 않고 입에 착착 붙잖아요.

-심지어 템빨왕은 멋있음.ㅋㅋㅋㅋ

-맞음.ㅋㅋㅋ 템빨왕 그리드는 진짜 잘 지은 듯.ㅋㅋ

-해외 커뮤니티 보니까 외국인들 반응이 폭발적이네요. 템빨이라는 국명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지나 봅니다.

-템빨하면 떠오르는 게 그리드일 테니까 당연히 강하게 느껴지겠지.

-근데 라우엘은 갑자기 왜 움?

-본인이 섬기는 군주가 왕이 되게 생겼으니까 감동했나보죠.

-크… 감격의 눈물이라, 멋지다.

-군주와 충신의 아름다운 모습. 한 편의 사극을 보는 느낌.

템빨국이라는 국명을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던 한국인 시청자들이 라우엘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화면 속 라우엘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시청자들의 생각처럼 감격의 눈물일까?

공교롭게도 그건 아니다.

***

“템빨국…? 지금 템빨국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리드의 선포를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은 라우엘이 재차 되물었다.

귀를 의심하는 그에게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고심 끝에 지은 국명이다. 멋지지?”

“…”

과거, 길드 이름을 템빨단으로 짓는 그리드를 보면서 라우엘은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언젠가 나라를 세우게 된다면, 설마 나라 이름은 템빨국이 되는 게 아닐까 우려했었다.

한데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멋지긴 개뿔…! 아니, 템빨국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너무 구리잖아요!!”

급기야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는 라우엘에게 그리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템빨이 왜 멋이 없어?”

한때 최악의 삶을 살았던 그리드는 템빨을 통해서 바로 설 수 있었다.

템빨 덕분에 강해졌고, 자존감과 인연을 쌓았으며, 재력과 입지를 다졌다.

“템빨은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인생 그 자체야.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템빨 덕분이고. 너무 멋지고 좋지 않아? 템빨국.”

스윽.

좌중을 훑어 본 그리드가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템빨단원들이 하나둘씩 동의하기 시작했다.

“맞아. 템빨이 진리지.”

“템빨단이 세운 나라 이름이 템빨국인 건 당연한 거 아니야?”

“템빨 외의 국명은 생각할 수 없어.”

“…”

예상치 못한 반응의 향연!

꿈인가, 현실인가.

어버버, 입을 벌린 채 혼란스러워하던 라우엘의 마음이 빠르게 진정되어갔다.

‘템빨… 하긴, 각별하긴 하지.’

그리드의 말이 맞다.

템빨단원들에게 있어서 템빨의 의미는 뜻 깊다.

모두가 템빨을 원해서 뭉쳤고, 신뢰하게 되었으며, 서로를 응원하고, 경쟁하며, 성장하여 이제는 나라를 세우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템빨로 시작하였으니 끝 또한 템빨이여라.

‘템빨단, 템빨왕국.’

그리고 템빨제국.

계속 되뇌다보니 어감도 썩 나쁘지 않다.

템빨국.

썩 괜찮은 국명이다.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라우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럴 수가. 내 작명센스가 주군께 동화되어가기 시작하는 건가?’

자신이 몇 달 동안 고심한 끝에 탄생시킨 국명 ‘다크니스 오브 인피니티 데스티니 킹덤’이 템빨국 앞에서는 초라하고 조잡하다 느껴지다니?

‘최악이다.’

그리드를 섬기다보니 영향을 받아 결국 저급한 작명 센스를 갖게 되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실한 기분이다.

“크윽…!”

템빨국의 멋짐을 부정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충격 받은 라우엘이 털썩! 무릎을 꿇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괴감에 휩싸여서 슬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오해했다.

‘녀석… 얼마나 감격했으면 울기까지. 하긴, 지금 이 순간 네가 느끼고 있을 기쁨은 내가 느끼는 기쁨을 가뿐히 초월할 테지.’

그리드에게 나라를 세우라고 종용하고 일선에서 도와온 사람이 바로 라우엘이다.

라우엘은 그리드 이상으로 건국을 바라고 노력해왔다.

만약 라우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리드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꿈조차 품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강한 일개 유저로 남아있었을 수도 있다.

라우엘은 그리드에게 각별한 존재였다.

“우리들의 나라다. 함께, 영원히 잘 이끌어가도록 하자.”

“……!”

함께, 영원히.

그리드의 그 말이 라우엘의 심장을, 영혼을 일깨운다.

저급해진 작명 센스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님을 상기한 라우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진정어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

“이 몸이 진토되는 그날까지 나의 쏘울과 하트는 당신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맹세는 다음 생에서도, 그 다음 생에서도 재차 반복될 것입니다!”

“…어? 으, 응, 그래.”

오글오글!

라우엘과 대화하다보면 가끔씩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리드였다.

팔에 솟아난 닭살을 훔쳐내는 그에게 피아로가 다가왔다.

“아스란을 데려왔습니다.”

“음.”

그리드와 라우엘의 시선이 동시에 한쪽으로 향했다.

포승줄에 묶인 아스란 국왕이 그리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살기와 광기, 그리고 원망으로 점철 된 눈빛.

“마치 광견병에 걸린 개 같군.”

짧은 감상을 읊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에트날의 국왕 아스란은 개인의 야망을 이루고자 무수한 인명을 희생하였습니다.]

[아스란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용서받기 힘든 죄악을 수 없이 저질렀습니다. 또한 당신은 아스란을 적대하는 입장이며 아스란의 포박에 성공하였습니다. 아스란을 처벌할 권한이 있습니다.]

[아스란이 국왕 NPC에게 적용되는 <절대가호>패시브를 상실합니다.]

[아스란을 처벌하시겠습니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주십시오. 아스란은 일국의 왕인 바, 강도 높은 처벌은 온갖 반발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의! 아스란을 폐위하거나 처형할 경우 에트날 왕실의 적통이 사라집니다. 에트날 왕국이 공중분해 될 것이며 이는 대륙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당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숙명이 다가올 것입니다.]

온갖 경고문이 그리드의 경각심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리드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아스란을 처단하고 에트날을 멸하리라, 이미 진즉부터 결정하고 시작한 전쟁이아니던가.

후폭풍이 두렵답시고 이제와 일을 그르칠 리 없다. 끝은 확실히 맺는다.

“아스란을 백성들에게 넘겨라.”

아스란으로 인해서 슬픔과 분노, 절망을 맛보게 된 백성들.

아직까지도 울부짖고 있는 그들에게 아스란을 던져준다는 뜻은 즉 아스란을 죽이겠다는 이야기다.

사색이 된 아스란이 으름장을 놓았다.

“네놈…! 내 뒤에는 사하란 제국이 있다! 나를 해쳤다가는 네놈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

템빨단 소속 병사들이 움찔했다.

사하란 제국과 적대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를 비롯한 템빨단원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표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스란 국왕에게 한 걸음 다가간 그리드가 빙그레 웃어주었다.

“네가 뭘 모르나본데, 사하란도 결국에는 우리가 먹을 거야. 놈들과 적대하게 되는 건 당연히 밟아야할 수순이라고.”

“뭣…!”

대륙을 지배하는 최강의 국가를 집어삼키겠다고?

누군가는 터무니없는 헛소리라며 콧방귀 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스란 국왕은 비웃지 못했다. 번뜩 정신을 차리더니 눈동자에 실렸던 광기를 한 순간에 지워버린다.

“…나 또한 당당했더라면.”

사하란을 잡겠답시고 사하란의 힘을 빌렸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사하란에게 휘둘렸던 아스란.

어리석은 스스로를 책망하고, 후회하며 눈을 감는다.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육신이 백성들에게 찢겨지고, 도려지고 결국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게 될지라도 그는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버님, 그리고 형님. 죄송할 따름입니다.’

에트날의 마지막 국왕 아스란이 죽은 이날.

[라인하르트 점령에 성공하였습니다!]

[라인하르트의 백성 중 356,931명의 백성이 당신을 섬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스란이 사망하였습니다!]

[구심점을 잃은 에트날 왕국이 뿔뿔이 흩어집니다!]

[에트날 왕국의 생존한 귀족들이 당신을 증오합니다!]

그리드의 이름이 대륙 역사에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

“…사위의 말이 맞았는가.”

스테임 후작.

그리드의 장인이자 북부의 패자인 그는 템빨단과 아스란 국왕의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하였다.

모든 전쟁터에 눈과 귀를 심어놓고 추이를 관찰했다.

진실을 알기 위함이었다.

아스란 국왕이 렌 왕자를 시해한 진범이 맞는지.

단지 권력에 눈이 먼 사위가 거짓을 고한 것은 아닌지.

에트날의 신하로써, 또한 아이린의 아버지로써 당당하기 위해서 스테임 후작은 확인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사위의 말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아스란 국왕이 렌 왕자를 시해한 진범이었다. 자격이 없는 자가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

스테임 후작은 심경이 복잡했다.

사위에게 한 치 거짓이 없었음을 알게 되어 기쁘면서도, 지하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선왕을 떠올리면 슬펐다.

뭐, 이런 감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말이다.

이제는 선택만이 남았다.

뿔뿔이 흩어진 에트날 왕국.

각지의 제후들로부터 위협받게 될 그리드를 돕느냐, 마느냐.

고민은 없다.

선택이야 뻔하다.

“북부를 사위에게 바친다.”

나와 내 선조들이 평생을 일궈온 세력을 제공함으로써 그리드를 보호하고 이어서 왕으로 옹립한다.

망설임 없이 결정하는 스테임 후작에게 북부 최강의 기사 라덴이 경의를 표했다.

***

“뭐? 6천만 골드?”

국가를 세우는 최소 조건은 첫째 3개의 대도시를 보유할 것, 둘째 10만의 백성을 거느릴 것, 셋째 건국비 6천만 골드를 확보하는 것이다.

6천만 골드.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720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대한민국의 젊은 자산가로 대두되기 시작한 그리드일지라도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다.

“아니 미친… 이거 순전히 날강도들 아니야?”

빌어먹을 S.A그룹 같으니!

경제 원리를 운운하며 유저의 골드 소모를 강요하는 놈들이 지독히도 싫다.

바득바득, 이를 가는 그리드에게 토반이 말했다.

“크게 부담스러운 액수는 아니야. 길드원들이 사비를 보태면 6천만 골드를 마련하는 것쯤이야 뭐…”

Satisfy의 상위 랭커들은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고 특히 템빨단에는 최상위 랭커들이 포진해있었다.

그들의 사비를 모은다면 건국비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토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우엘은 부정했다.

“그리드님, 건국비는 당신께서 혼자 감당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6천만 골드를 나 혼자 감당하라고?”

예상치 못한 말에 그리드가 당황했다.

720억을 혼자서 감당하라니?

국가대항전과 각종 방송, 그리고 광고로 상당한 자산을 쌓은 그리드라고 해도 그런 거액을 마련할 정도의 여력은 없었다.

“야, 나한테 그런 큰돈이 어디 있어?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조금씩만 보태주면 어디가 덧나냐? 엉? 일단 좀 보태줘 봐. 세금 걷을 때마다 이자까지 더해서 갚아나갈 테니까.”

“바로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끔 당신 혼자서 건국비를 마련하라고 권유하는 겁니다.”

“…?”

“국가 지분을 여럿이 나누지 말고 당신 혼자 독식하시라고요.”

단지 그리드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템빨단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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