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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13화 (408/1,794)

템빨 28권 - 4화

“……!”

궁전에서 뛰쳐나온 아스란 국왕이 두 눈을 의심했다.

대악마 벨리알이 정말로 소멸해버린 것이다.

인류를 멸망시킬 힘을 지녔다는 지옥 최강의 군주가, 고작 수백의 인간에게 퇴치 당하다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아스란 국왕이 이내 그리드를 발견하고 노려보았다.

꽈드득, 이를 가는 그의 눈빛에 분노와 원망, 그리고 광기가 맴돈다.

“대악마조차도 멸하는 전설의 힘…! 귀공은 왜! 어찌하여 그 강대한 힘을 반란의 도구로 이용하는가!!”

아스란 국왕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이 순수하고 올곧은 대의를 방해받아야하는 이유,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귀공은 모르는가! 나는 늘 귀공과의 친목을 도모해왔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귀공을 대접했다! 한데 왜! 귀공은 어째서 끝까지 나를 외면하고 급기야 반기를 들었느냐 말이다!!”

진심이다. 그리드의 힘이 필요했던 아스란 국왕은 그리드와의 화평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국은 외면 당하여 이 꼴이다.

“왜 조국에 충성하지 않는가!!”

그리드를 원망하며 한탄하는 아스란.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그를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리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혹시 돌았냐?”

“……!”

“아니, 렌 왕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나한테 뒤집어 씌워 놓고서 그 후에 잘 지내보자고 알랑방귀를 뀌면 뭐 해? 네가 내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얼마나 황당하고 기분 뭣 같겠냐? 네가 줬던 선물들 모두 잘 받아먹기는 했다만, 단 한 번도 감사했던 적은 없어.”

“그건… 그건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겠지. 저는 왕이 되고 싶어서 친형을 죽인 개보다 못한 새끼입니다, 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수는 없었을 테니까 나한테 누명을 뒤집어씌울 수밖에 없었겠지, 이 쓰레기야. 이제 와서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거 극혐이네.”

“…무엄한!”

정도라는 것이 있다.

일국의 왕인 자신에게 개보다 못한 새끼라느니, 쓰레기라느니.

그리드의 욕설은 도가 너무 지나쳤다.

아스란 국왕은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다.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그리드에 대한 미련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

스멀스멀 살기를 피어 올리는 그에게 그리드가 쐐기를 박았다.

“다 떠나서 말이야. 애초에 너와 나는 한 배를 탈 수 없는 운명이었어.”

그리드가 템빨단을 세운 이유?

오직 하나다.

막대한 재력을 쌓는 것.

그의 무한한 탐욕을 에트날이라는 작은 나라는 감당할 수 없었다.

“렌 왕자와 네가 굳이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지금쯤 너희들은 내 앞에 무릎 꿇고 있었을 거다.”

에트날을 집어삼키는 것은 이미 진즉부터 결정 된 사안이다.

라인하르트 골렘 침공전 직후, 왕실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거부했던 그날부터 말이다.

스윽.

그리드의 칼끝이 아스란에게 겨눠진다. 그 행동에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다.

“이제 그만 끝내자.”

그리드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였다.

챙!

채채채채채채챙!!

템빨단원 전원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숙련 된 강자들답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이다.

그들 모두가 아스란 국왕에게 살의를 보냈고, 잠시 간의 적막 속에 배경음이 깔렸다.

궁전 너머 성벽에서부터 들려오는 곡소리.

백성들의 통곡이었다.

“내 딸을 살려내라!!”

“내 누이를 살려내라!!”

“왕은 죽었다!!”

“아스란은 왕이 아니다!!”

대악마 소환의 제물로 바쳐진 처녀들의 가족이자 친구였던 이들.

라인하르트의 모든 백성들이 벌써 반나절 내내 아스란을 비난하고, 저주하며 오열 중이다.

저들의 슬픔과 분노가 사그라질 리 없다.

마냥 착하기만 하던 우리의 딸이 아무런 죄도 없이 불에 타 죽은 것이다.

납득할 수도 없고, 납득해서도 안 되는 죄악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라인하르트의 백성들은 확신했다.

아스란에게는 국왕의 자격이 없음을.

만천하가 그 사실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 종을 목 놓아 외쳤다.

“에트날의 왕은 죽었다!!”

아스란이 외면해온 백성들의 목소리.

그리드가 대신해서 새겨 듣는다.

“아스란, 나는 너와 다를 거다.”

탐욕이 첫째라면, 둘째는 약자에 대한 배려다.

저벅.

다짐하며 아스란에게 한 걸음 다가서는 그리드.

그의 앞길을 척슬리가 막아섰다.

에트날 왕실의 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스란을 비호하는 그에게 그리드가 씁쓸한 미소를 피어 올렸다.

“아스란은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렌 왕자을 시해한 진범이며, 죄 없는 백성을 제물로 바쳐 대악마를 소환한 패륜아다. 그를 비호할 이유가 있는가?”

“이유는 없소. 이는 내 숙명이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척슬리는 오로지 에트날 왕실을 위해서 살아왔다. 그렇게 교육 받았다. 이 외의 다른 길은 생각할 수 없었다.

‘설령 그릇 된 왕이라 할지라도…’

외면해선 안 된다.

꾸욱.

검을 뽑아 쥐는 척슬리의 표정이 비장하다. 하지만 눈빛만은 슬프다.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을 원망하는 것이리라.

그를 바라보는 그리드의 탐욕이 끓어올랐다.

‘갖고 싶다.’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네임드 NPC.

심지어 에트날 최초의 검호이다.

그리드가 척슬리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척슬리는 피아로와 아스모펠, 그리고 스틱세이와 라빗처럼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인재임을, 그리드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직접 상대해주지. 그대의 숙명을 베어주마.”

촤르르르르륵.

성스러운 빛의 갑옷 대신 삼겹갑을 무장하는 그리드의 전신을 묵색의 비늘이 휘감는다.

이어서.

터엉-!

템빨단원들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그리드의 신형이 쏘아졌다.

직면해오는 그를 보면서 척슬리가 소리쳤다.

“예전과는 다를 것이오!!”

네임드 NPC의 성장속도는 플레이어의 성장속도를 가볍게 상회하는 바.

렌 왕자의 에트날 침공 당시와 비교하면 몇 배나 강력해진 척슬리가 그리드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아냈다.

쩌저정!!

+9실패작의 압도적인 공격력을 어렵지 않게 흘려보내고,

츠칵!!

그대로 호선을 그려서 그리드의 가슴을 베어버린다.

“오빠!”

그리드로부터 솟구치는 선혈을 목격한 루비가 화들짝 놀랐다. 황급히 힐을 사용하려는 그녀를 피아로가 말렸다.

“주군의 싸움입니다.”

용을 품기 위해서는 하늘이 되어야하는 법.

“인간은 하늘을 도울 수 없지요. 단지 우러러 볼 수밖에.”

“…?”

피아로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루비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루비는 눈치가 빠르다. 생명력 게이지가 빠르게 손실되는 오빠를 보면서도 섣불리 나서지 않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런 그녀를 피아로가 기특하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

“연살파(聯殺派)!!”

쿠콰콰콰콰콰쾅!!

삼겹갑의 옵션효과 덕분에 척슬리의 공격력을 상당량 무력화시킨 그리드.

검무의 동작을 이용해서 척슬리와의 거리를 벌리더니 검기의 폭풍을 소환한다.

척슬리가 응수했다.

“절개의 검!”

척슬리의 근본은 근위기사.

그의 검술 특성은 뛰어난 방어력에 있다.

파아앗-!!

척슬리가 검을 세우자 이를 중심으로 몇 겹의 오러가 생성되었고, 이는 놀랍게도 연살파(聯殺派)의 폭격 대부분을 방어해냈다.

“호오!”

궁극기 중 하나가 무력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드는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즐거워했다.

‘점점 더 탐나는군!’

촤르륵!!

척슬리가 연살파(聯殺派)를 방어하는 사이, 새로운 춤사위를 펼치기 시작한 그리드의 손끝으로부터 은빛의 실이 날아갔다.

수십 가닥의 은사였다.

밤하늘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은하수처럼, 아름다운 빛의 수를 놓으며 호선을 그린 은사들이 척슬리의 몸을 휘감았다.

아니, 휘감고자 시도했다.

‘사라졌다?’

은사가 척슬리에게 도달하기 전.

파앗!!

제자리에서 사라졌던 척슬리가 그리드의 후방에서부터 나타났다.

묵직한 검술을 구사하던 그가 마치 어쌔신처럼 신속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피아로가 감탄했다.

‘허, 움직이는 태산이라.’

정말로 보기 드문 유형이다.

쾌를 구사하는 자들이 일반적으로 날카로운 반면, 척슬리는 빠르면서도 단단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왕의 곁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단련했기 때문일 것이다.

쩌어엉-!!

“큭…!”

뒤에서부터 나타난 척슬리가 휘두르는 방패에 등짝을 강타당한 그리드의 검무가 도중 캔슬됐다.

검무의 한계다.

검무를 펼치는 도중에 밟아야하는 보법, 회피의 동작으로 응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사실 그건 장점으로 보기 어렵다.

단점을 메우기 위한 수단일 뿐, 애초에 보법을 밟아야할 필요가 없는 검술을 그리드가 구사할 수 있었다면 빈틈을 드러내는 일 자체가 적었을 것이다.

파그마의 검무는 강력한 스킬이되 비전투 클래스의 태생적 한계를 증명하는 스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한계, 그리드는 이미 진즉에 극복하지 않았던가.

쩌엉!

쩌정! 쩌저정!!

연속적으로 신속을 발휘, 그리드의 전후좌우로 순간이동 하면서 방패를 휘두르는 척슬리의 연타를 허용하던 그리드가 무기를 스왑했다.

그것은 검이 아닌 지팡이.

벨리알의 지팡이었다.

“매직 미사일!”

퍼어어어어어엉!!

초당 1회 꼴로 사용할 수 있는 매직 미사일이 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방출, 척슬리를 관통한다.

그 위력은 종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

세상의 구원자 칭호덕분에 지력이 200 상승한 상태에서 마법 공격력을 증폭시켜주는 벨리알의 지팡이까지 무장하여 전개한 마법이니만큼 위력이 전보다 배는 강력했다.

“쿨럭…!”

가슴이 꿰뚫리고 신형이 무너진 척슬리가 방패를 고쳐 쥐기도 전.

펑!

퍼퍼퍼퍼퍼펑!!

매직 미사일의 폭격이 연달아 쏟아졌다.

지켜보는 대마법사 아슈르 백작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대장장이가 아니라 마법사라고 해도 믿겠군.’

매직 미사일 하나만으로도 정점에 오를 듯한 기세다.

“크윽…! 왕의 방패!!”

연속적으로 마법을 허용하고 큰 상처를 입은 척슬리가 다급히 방어 스킬을 전개했다.

그러자 떠오른 수호의 빛이 그리드의 매직 미사일 폭격을 모조리 막아냈다.

이를 보고 지팡이를 거둔 그리드가 이번엔 검은 귀신을 착용했다.

‘지금!’

아이템 스왑 동작 도중에 드러난 빈틈.

이를 포착한 척슬리가 신속히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반격은 성립되지 못했다.

그리드가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뒤.”

직면해오는 척슬리를 향한 그리드의 의미심장한 발언과 동시에.

퍼퍼퍼퍼퍼퍼퍼펑!!

척슬리의 등 뒤에 자리를 잡고 있던 백색의 구체들이 일제히 방출, 척슬리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알람 마법의 묘리가 담긴 매직 미사일의 시간 차 공격이었다.

설마 자신의 등 뒤에 매직 미사일이 대기하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척슬리가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치명상을 입었다.

쐐애애애액!!

갸우뚱,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척슬리의 미간을 노리고 검은 귀신이 쇄도했다.

“흐읍…!”

이를 악 문 척슬리가 방패를 들어서 방어를 시도했다. 완전치 못한 자세에서 행하는 움직임은 그의 무릎과 허리에 커다란 무리를 안겼다.

하지만 공격을 고스란히 허용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척슬리는 그리드의 공격을 일단 막아내는 것에 집중했지만.

스팟-!

척슬리에게 꽂히던 검은 귀신이 도중에 두 자루로 분리되면서 궤도를 2개로 만들어버렸다.

챙!

기존의 궤도로 이동하던 검은 귀신의 반쪽은 방패에 가로막히는 반면,

서걱!

나머지 반쪽의 검은 귀신은 척슬리의 가슴을 벤다.

“컥…!”

승부가 결정 나는 순간이었다.

척슬리의 생명력은 아직 절반 이상이나 남았고, 반면 그리드의 생명력은 3분의 1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척슬리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리드는 황금 손 아티팩트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순수한 기술만으로 자신을 압도했다.

척슬리는 완전한 패배를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스란 국왕을 지켜야한다는 집념만큼은 여전하다.

이는 임무와 운명을 넘어선 절대적인 숙명.

불안전한 자세 속에서, 척슬리는 그리드를 노리고 궁극기를 전개했다. 동귀어진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콰르르르르르릉!!

저 멀리 대기하고 있던 갓 핸드들이 궁전의 높은 성벽을 무너뜨렸다.

순간, 척슬리의 시야에 울부짖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을 등지고 선 그리드가 단언한다.

“왕이 존경 받는 이유는 백성을 지키기 때문이다. 척슬리 그대가 왕을 지켜야하는 이유 또한 결국 백성을 위함일 텐데?”

“……!”

숙명이 베어진다.

슬피 우는 백성들을 보면서, 척슬리는 본질을 파악했다.

자신이 왕을 지켜야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챙강.

검이 무겁다.

손에서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대로 무릎 꿇은 척슬리가 고개를 숙인다.

그를 확인한 그리드가 템빨단원들에게 명령했다.

“아스란을 포박해라. 지금 이 시간부터 에트날의 왕좌는 내가 차지한다.”

『…!!!』

대악마 벨리알 퇴치 후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런 이슈를 만드는가!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이 바빠졌다. 노골적으로 왕좌를 노리는 그리드의 태도를 속보로 내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과열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리드는 선언한다.

“나 그리드, 상처 입은 라인하르트의 백성 모두를 끌어안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

플레이어 최초의 건국 선언!!

템빨단원들의 심장이 격렬히 뛰기 시작하였고, 세계인들의 관심은 모조리 그리드에게 집중되었다.

기대와 염려 속에서, 그리드가 힘들게 생각해놨던 국호를 만천하에 공개한다.

“국호는 템빨! 나는 템빨왕 그리드다!!”

“…?”

『……』

-실화임?

새로운 전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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