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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11화 (406/1,794)

템빨 28권 - 2화

라인하르트 궁전 정원.

새카만 구체가 자리를 잡고 있다.

마기를 풀풀 내뿜는 불길한 구체.

바라보고 있노라면 몸과 영혼이 빨려들어 가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 기이하고 불길한 구체의 정체?

놀랍게도 벨리알이 소환한 32지옥이었다.

겉에서 봤을 때는 사람 3명 들어갈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우주가 담겨있는 것이다.

“흐음…”

벨리알의 약점을 찾고자 구체 외곽을 수색하던 하오가 문득, 시선을 궁전 안쪽으로 돌렸다.

‘소환자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대악마를 소환하기 위해서 9,999명의 처녀를 제물로 바쳤던 아스란 국왕.

그자를 만나면 대악마의 약점을 엿볼 수도 있다.

‘서두르자.’

크라우젤이 32지옥에 입장하고 벌써 4 시간 이상이 지났다.

그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한 하오는 초조했다. 한시라도 빨리 대악마의 약점을 찾아 크라우젤을 도와야한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때였다.

쩌적!

쩌저저저적!!

고요하게 존재하던 검은 구체에 균열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콰르르르르르르륵!!

검은 구체 내부로부터 회오리치는 검기가 폭발하였다.

이어서…

쩌저저저저정!!!

검은 구체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설마…!”

천외천.

내 유일한 동경의 대상인 그가 대악마 레이드에 성공한 것인가!

추측하며, 환희에 휩싸인 하오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사태를 지켜보았다.

팟!

파파파파파파팟!!

산산이 조각난 구체로부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성 크라우젤과 템빨단원들이었다.

하나 같이 쟁쟁한 거물들이 모두 중상을 입은 채 피투성이다.

“크라우젤…!”

하오가 깜짝 놀랐다.

크라우젤이 완전히 넝마였던 까닭이다.

국가대항전 당시, 그리드와 싸운 직후의 모습 같다.

승자의 모습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처절한.

“괜찮은 겁니까!”

허겁지겁.

크라우젤에게 달려가 각종 포션을 건네주는 하오의 피부 위로 문득 소름이 돋았다.

크라우젤의 시선을 따라서 시선을 옮긴 하오는 목격한 것이다.

무너진 32지옥의 잔해 속.

처참히 상처 입은 채 무릎 꿇고 있는 대악마와, 그를 내려 보는 그리드의 모습을.

하오가 두 눈을 의심했다.

지옥의 절대군주를 내려 보는 그리드의 광오한 모습이 마치 타고난 것처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저게 그리드…’

하오는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크라우젤이 아닌 그리드를 먼저 알게 되었더라면.

‘나는 그를 동경하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현재의 하오에게는 크라우젤이 최고였지만 말이다.

***

<신이 주시하는 자>

당신이 제작한 주작궁은 신계의 보구들과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것입니다.

역사를 넘어서 전설이 되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신화에 이르게 될 무구를 제작한 당신을 신들이 눈여겨봅니다.

주작궁을 제작한 대가로 얻은 칭호 <신이 주시하는 자>의 설명이다.

딱히 특별한 기능은 표기되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리드는 무척 실망했었다.

플레이어 최초로 신화급 무구를 제작하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건만, 기껏 얻은 칭호라는 것이 뭐? 신이 날 눈여겨보는 거로 끝이라고?

그리드는 허탈하고 황당했다.

Satisfy제작진이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구 제작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무성의하게 만든 칭호라고 여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리드는 신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레베카 여신의 축복으로 새로운 융합 스킬 연살파극(聯殺派極)을 습득하였습니다!]

<연살파극(聯殺派極)>

네 종류의 검무를 연계합니다.

대상에게 공격력의 1,500퍼센트 피해를 주는 연살(聯殺)을 7회 꽂습니다.

대상에게 연살(聯殺)을 4회 이상 적중시킬 경우, 연살(聯殺)의 회당 데미지가 200퍼센트씩 상승 적용되며 파(派)의 검기가 소환됩니다.

파(派)의 검기는 대상의 반경 5미터에 광역 피해를 입힙니다. 데미지는 공격력의 500퍼센트이며, 적중당한 대상은 30초 동안 모든 속도가 60퍼센트 하락합니다. 또한, 이후 연계되는 극(極)의 검기에 확정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극(極)의 검기는 대상의 방어력을 80퍼센트 무시하고 물리공격력의 1,800퍼센트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힙니다.

*이 스킬은 연(聯), 살(殺), 파(派), 극(極), 연살(聯殺)과 재사용 대기 시간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스킬 자원 소모:최대 마나의 절반.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3시간.

“……!”

새로운 궁극기!

레베카 여신의 가호로 인해서 탄생한 연살파극(聯殺派極)의 위력은 연살파(聯殺波)를 거뜬히 상회, 아니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최초의 연살(聯殺)을 최소 4회 이상 적중시켜야지만 모든 콤보가 발동하는 구조였고, 이는 적이 연살(聯殺)을 회피할 경우 스킬이 무용지물 된다는 뜻과 같았지만.

‘맞추면 그만!’

그리드는 본인의 컨트롤 솜씨를 신뢰하고 있었다. 무수한 강자들과 싸우고 성장해온 그에게는 자부심을 품을 자격이 차고 넘쳤다.

푹-!

푸푸푹!!

쿠콰콰콰콰콰쾅!!

[크리티컬!]

[칭호, <한 방에 한 놈!> 효과로 크리티컬 데미지가 30퍼센트 추가됩니다!!]

[약점 공격이 발동하였습니다!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대상에게 25,008,51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히든 패시브 스킬 <신장(神將)>의 효과로 <연살파극(聯殺派極)>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

[크리티컬!]

[칭호, <한 방에 한 놈!> 효과…]

[약점 공격 발동…]

[대상에게 2,691,39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키… 키야아아아악!!”

검술스킬의 위력을 2배 상승시켜주는 <검성의 오러>버프를 받은 상태로 사용하는 연살파극(聯殺派極).

심지어 2연속 연살파극(聯殺派極)의 위력은 가히 초월적이었다.

레벨이 워낙 높은 까닭에 그리드의 공격력을 큰 폭으로 감소시키고 있던 벨리알조차도 비명을 내지를 정도.

마치 피아로의 필멸을 맞았을 때처럼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친다.

벨리알의 생명력 게이지가 4퍼센트 미만까지 떨어졌음을 확인한 그리드가 전율했다.

‘이거 개사기잖아!’

벨리알은 방어력과 레벨이 원체 높기 때문에 현재 그리드의 공격력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00만 이상의 데미지를 입힌 것이다.

검성의 오러 덕이 컸지만, 국가대항전에서 만났던 드레이크 정도 수준의 보스는 앞으로 순삭할 수 있지 않을까?

환희하며 부르르, 전율하는 그리드에게 벨리알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대악마의 집념이었다.

영혼이 타들어가는 상황.

진정한 죽음의 문턱에 서고서도 절망하기보다 분노한다. 자신이 설령 죽을지언정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적들을 말살하리라 각오한다.

“인간 따위가아!!”

쿠르르르르릉!!

그리드를 향해서 뻗어지는 벨리알의 손 끝.

불꽃과 마기가 드릴처럼 회전하며 융합됐다.

이펙트만 봐서는 드래곤의 심장이라도 꿰뚫을 것처럼 날카로웠고, 강력한 폭발력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빠르긴 더럽게 빨…!’

벨리알의 육체능력은 피아로조차 압도하는 수준.

기술은 부족할지언정 스피드는 가공할 정도였다. 그리드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심지어 갓 핸드의 속도로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날아온 벨리알의 공격과 대면한 그리드가 흠칫, 놀라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니야오옹!!”

소환 된 이후, 벨리알에게 소극적인 할퀴기만 시전하고 있던 노에가 몸을 날렸다.

수천 년 동안 대악마의 애완동물로 존재해온 지옥마수 멤피스.

노에의 유전자에 각인 된 대악마에 대한 복종욕구는 무척 강한 것이었으나, 노에는 본능을 이겨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그리드를 지키기 위해서!

푸욱-!!

“……!”

갓 핸드를 초월하는 순간 가속능력으로 그리드의 앞까지 이동한 노에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벨리알의 마법을 정면으로 얻어맞고 꿰뚫린 것이다.

“멤피스 네놈이…!”

도대체 얼마나 아픈 것일까.

배꼼, 붉은 혀를 내밀면서 눈을 X자로 만드는 노에를 마주한 벨리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드를 해치울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자 격분하는 것이다. 실로 악귀처럼 일그러지는 얼굴, 보는 이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벨리알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도 겁먹지 않았다.

애초에, 펫을 희생시키는 일 자체를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하는 입장이다.

벨리알의 표정보다 그리드의 표정이 훨씬 더 무서웠던 까닭이다.

-저게 사람이야…?

안 그래도 사나운 눈매와 날카로운 눈썹라인을 지닌 그리드가 분노하며 살기를 피어 올리는 모습, 과거의 그가 지녔던 이명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대로 위의 도살자.

사이코패스.

미친놈 등등.

일반인은 결코 품을 수 없는 광기가 그리드에게는 있었다.

“이 XXX이 내 귀여운 노에를…!”

본래 그리드는 펫을 자주 희생시켜왔다. 펫은 마치 플레이어 같아서 몇 번을 죽든지 부활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해서, 노에, 랜디와의 합의 하에 진행했던 일이다.

내 소중한 펫들이 의도치 않게 적에게 썰려나가는 것을 그리드는 원하지 않았다.

“죽여 버린다!”

콰작!

콰자자자작!!

합체 시간이 채 20초도 남지 않은 실패작+그리드의 대검이 연신 벨리알을 때렸다. 각자 묠니르를 거머쥔 갓 핸드들 또한 그리드에게 호응하여 벨리알의 사각을 노렸다.

하지만 벨리알에게 공격을 명중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불꽃과 마기의 실드를 몇 겹이나 전 방위에 펼쳐놓은 벨리알을 평타로 가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32지옥이 소멸하고 본인은 크게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대악마.

압도적인 레벨차이를 토대로 우위를 점한 그녀가 차츰 호흡이 가빠지는 그리드를 확인하고 웃었다.

“인간이여! 이게 바로 타고난 격의 차이라는 것이다! 전설? 가소롭다! 인간 따위가 노력해봤자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콰르르르르르!!

벨리알이 밟은 지면으로부터 용솟음친 불꽃이 그리드를 덮친다.

“큭…!”

하단에서부터 마법이 쏘아질 줄은 예상치 못했던 그리드가 황급히 방어를 시도하였지만 이미 늦었다.

불꽃이 그리드의 안면을 강타했다.

콰쾅!!

“쿨럭…!”

“그, 그리드!”

“영우씨!”

유라와 지슈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단 일격을 허용한 대가로 그리드의 생명력 게이지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1~2번의 공격만 허용해도 불사 상태에 돌입할 것 같았다.

“끝이다!”

기세를 올린 벨리알이 그리드를 덮친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드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쩌엉!

이야루그트가 지고의 검을 발현, 벨리알의 앞길을 차단한 까닭이다.

“나를 언제까지 무시할 심산이냐?”

이를 갈며 따지는 이야루그트에게 벨리알이 콧방귀 뀌었다.

“네놈의 현재 힘이 너무 저급하여 마치 벌레 같으니 굳이 관심이 가질 않는구나.”

처음 이야루그트가 등장했을 때는 위축되었던 벨리알이지만, 현재의 이야루그트는 과거와 달리 약화 된 상태다. 굳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이놈!”

옛날 같았으면 감히 자신과 눈도 못 마주쳤을 최하위 대악마 따위가 나를 무시하다니!

이를 간 이야루그트가 벨리알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모든 체력을 쏟아붓는 폭격이었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쩌정!

이야루그트를 손쉽게 날려버린 벨리알이 그대로 그리드를 덮쳤다.

“죽어라!”

사악한 미소를 피어 올리며 소리치는 벨리알.

그녀가 전개하는 화염의 난타가 가슴으로 직면해 옴을 보면서, 그리드가 피식 웃었다.

“너나 뒤져.”

동시에.

“필멸.”

포오오옥!!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린 호미가 벨리알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피아로의 재등장이었다.

32지옥이 무너진 후, 마나 물약을 복용할 수 있게 된 성녀 세희와 데미안이 힐을 집중사용하여 피아로를 회복시킨 것이다.

“커윽…!”

호미에 찍혀서 강력한 충격을 받고 눈을 뒤집는 벨리알.

그녀의 흐릿해지는 시야에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초대형 절구가 보였다.

대악마조차 피해갈 수 없는 대재앙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32위 대악마 벨리알 레이드에 성공하였습니다!]

[32위 대악마 벨리알의 영혼이 윤회에 실패하고 소멸합니다!]

[32지옥 군주의 자리가 일시적으로 공석이 됩니다.]

[벨리알 레이드에 참가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칭호 <세상의 구원자>가 주어집니다!]

[벨리알 레이드에 참가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활약도에 따른 차등 보상이 지급됩니다!]

[<피아로>가 레이드 1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유라>가 레이드 2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크라우젤>이 레이드 3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이벨린>이 레이드 4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리드>가 레이드 5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사벨>이 레이드 6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데미안>이 레이드 7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지슈카>가 레이드 8등 보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성녀 <루비>가 대악마의 영혼을 소멸시킨 대가로 특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그 외 인원에게 동등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와, 대박.”

레이드 막바지에 참가한 그리드 남매가 5등 보상과 특등 보상을 차지하다니?

템빨단원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드 남매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다.

정작 그리드는 불만족스러웠지만 말이다.

‘5등이라… 뭐, 나쁘진 않군.’

내가 못 받은 보상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아까워할 이유가 없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그리드에게 피아로가 다가왔다.

벨리알의 지팡이, 뿔, 뼈, 신비한 보석들을 품에 한 아름 안은 그가 그리드 앞에 무릎 꿇었다.

“대악마를 퇴치하고 얻은 전리품을 주군께 바치나이다.”

잘 키운 NPC 하나 열 자식 안 부럽다!

그리드의 만면에 미소가 번졌고, 이날 피아로가 보여준 모습은 세상 사람들의 NPC에 대한 인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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