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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407화 (402/1,794)

템빨 27권 - 20화

벨리알은 여유가 넘쳤다.

목덜미를 노리고 꽂혀오는 크라우젤의 검?

날카로운 궤도이기는 하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

크라우젤이라는 인간 놈, 기술적인 능력은 탁월한 반면에 육체 능력은 수준 이하였다. 놈의 검이 내 목에 닿기 전, 불꽃 창을 발사하여 놈을 소멸시킬 자신이 있었다.

검성 뮐러의 계승자로 추정되는 호미 쓰는 놈?

메테오로 소환한 운석에 연달아 얻어맞고 빈사상태다. 두 다리가 부러져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언제라도 해치울 수 있었다.

그 외 잡것들?

입김만 불어도 모조리 불태워 죽일 수 있다.

이렇듯 벨리알은 전투에서의 승리를 장담했다.

하지만 삶이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라 대악마에게도 이 섭리는 적용됐다.

“지옥 규제.”

“뭣…!”

잔잔한 미소를 그리고 있던 벨리알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굳었다.

몸속에 무한하던 마력 중 절반이 불시에 빠져나감과 동시에 32지옥의 마기가 옅어지는 게 아닌가?

메테오의 발동도 멈춰버리고 말았다.

“이, 이 힘은…!”

벨리알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악마의 유전자에 ‘천적’으로 각인 되어있는 어떤 존재의 출현을 말이다.

그건 바로…

“데빌 슬레이어!!”

지옥 멸절의 뜻을 품은 존재.

검성 뮐러가 ‘인계에 강림한 대악마’들을 퇴치했던 것과 달리, 역대 데빌 슬레이어들은 본인이 직접 지옥을 찾아와 대악마들을 ‘사냥’했었다.

데빌 슬레이어에게 초토화 당한 지옥이 무려 5개다.

벨리알의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뮐러의 후예와 데빌 슬레이어가 동시대에 존재한다고?’

푸욱!!

“……!”

약화 된 채 혼란스러워하는 벨리알의 미간에 불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불꽃의 여왕에게 불화살을 쏘다니?

평소라면 어리석다고 비웃으며 불꽃을 흡수, 도리어 회복의 양분으로 삼았을 벨리알이었으나.

“윽…?!”

벨리알은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놀랍게도, 미간에 박힌 화살에 깃든 불꽃이 벨리알에게 상극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신수 주작의 불?’

어째서 서대륙에 주작의 불 사용자가?

연속되는 혼란 속에서도 벨리알은 냉정하고자 노력했다. 주작의 불이 폭발하려는 것을 억누르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아름다운 두 명의 여성이 보였다.

곱고 흰 피부와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성.

탄력이 넘치는 구릿빛 피부를 지닌 적발의 여성.

상반되는 매력을 지닌 그녀들이 각자 쥔 총과 활로 벨리알을 겨냥한다.

‘알렉스의 총!’

위험하다.

데빌 슬레이어의 정화탄에 맞았다가는 마기가 소모되고 차츰 약화되고 만다.

찰나지간에 판단한 벨리알이 회피를 시도해보지만, 이미 그녀의 목덜미를 크라우젤의 검이 꿰뚫고 있었다.

“크…! 크아아아아아악!!”

벨리알의 혼란이 심화됐다.

그녀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스탯이 형편없게 낮은 크라우젤의 공격, 매번 어째서 이리도 아픈 걸까?

푸욱!

콰콰쾅!!

푸푸푹!!

연달아 검을 찔러오는 크라우젤을 불꽃으로 날려버리고, 이때 유라의 총과 지슈카의 활에 가슴을 관통당한 벨리알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노려보는 대상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크라우젤이었다.

“그렇구나…! 뮐러의 계승자는 저 농부가 아니라 바로 네놈이었느냐!!”

“아니, 나는 뮐러의 기술을 계승하지 않았다. 그를 뛰어넘을 새로운 검성이지.”

“말도 안 되는…!”

검성과 데빌 슬레이어, 그리고 그들과 비견되는 잠재력을 지닌 농부에다가 주작의 불꽃을 다루는 궁사가 동시대에 있다고?

대악마의 입장에서는 실로.

‘최악의 시대!!’

대악마를 위협하는 전설의 경지.

이 높은 경지를 이룩하는 인간의 출현 빈도는 역사적으로 무척 낮았다. 시대별로 1명이 등장할까 말까였다. 한데 이번 시대에는 무려 4명이나 나타난 것이다.

벨리알은 억울할 지경이었다.

‘왜 하필 내가 인계에 강림했을 때 이런?’

레베카 그 빌어먹을 년이 나를 저주라도 한 걸까?

퍼펑!

퍼퍼퍼퍼퍼펑!!

질끈, 입술을 깨무는 벨리알에게 정화탄과 불화살이 쉬지 않고 쇄도하는 중이다.

온전한 능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마법으로 소멸시키고 역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 좋았겠지만, 벨리알은 크게 약화 된 상태.

자존심을 버리고 피해 다녔다.

하지만 회피하는 경로를 모조리 크라우젤에게 읽히고 차단당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왼쪽으로 피하면 어떻게 알고 나타나서 칼을 찔러오고, 오른쪽으로 피하면 이미 가로막고 서있고, 도약해서 피하면 등을 찔러오는 놈.

마치 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기분이다. 지독히도 불쾌하다.

푸우우욱-!!

“……!”

치를 떨고 있는 벨리알의 심장을 창 한 자루가 관통했다.

폰이 집어던진 <레일 스피어>였다.

폰 외에도, 파트리안에서부터 도착한 템빨단원들이 각자의 궁극기를 사용해서 벨리알을 폭격 중이었다.

지옥 규제의 영향으로 인해서 약화 된 서큐버스들은 템빨단을 크게 위협하지 못했다.

이는 대마법사 아슈르 백작의 덕분이기도 했다.

대악마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

아슈르 백작은 자신의 마력을 벨리알이 아니라 서큐버스 퇴치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템빨단원들은 아슈르 백작과 그의 아들 블란드 덕분에 서큐버스 떼로부터 안전했다.

“윽…! 이젠 별 잡것들까지!”

어느덧 총 생명력이 3분의 2까지 떨어진 벨리알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내 이딴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이 모습을 드러내겠다!!”

벨리알은 불꽃의 여왕이자 암흑의 여왕이었지만 그 이전에 거짓의 왕이다.

인간들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아름답게 치장했던 거짓 외견을 버리고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쩌적!

쩌저저저저적!!

벨리알의 피부 곳곳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피부 틈새로부터 끓어오르는 용암과 마기가 분출되는 모습은 지독히도 끔찍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

벨리알이 인간의 모습을 탈피한다.

둥그렇게 뭉친 용암을 몸체로 삼고, 근육처럼 꿈틀거리는 마기를 4개의 다리로 삼아서 지면을 밟는 그녀.

몸체에 박혀있는 핏발 선 외눈으로 사방을 훑는다.

“킥! 키키킥…!! 나의 이 모습을 보게 된 이상 네놈들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노라!”

당대의 전설들, 아직 온전한 성장을 이루지 못한 상태임이 확실했다.

숫자가 많다고 해봤자 아직 노란 싹에 불과한 것이다. 두려워할 것 없이 짓밟으면 그만이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마기가 깃든 화염의 폭풍이 일대를 뒤덮었다.

이에 벨리알과 비교적 가까이 위치해있던 크라우젤과 피아로, 그리고 데미안과 이사벨이 중상을 입고 말았다.

“큭…!”

큰일이다.

물약을 복용할 수 없는 상태로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다.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다.

‘나 혼자 힐을 써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지독한 무력감이 데미안을 엄습했다.

여신의 대행자이자 레베카교의 교황인 자신이 대악마를 상대로 별 활약을 할 수 없다니?

데미안은 충격이 컸다.

‘차라리 내가 사제였다면 더 큰 도움이 됐을 텐데.’

그래, 힐이라도 팍팍 쓰면서 동료들의 전투지속력을 높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버프에 특화 된 존재. 문제는 버프의 지속 시간이 썩 길지 않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규정하며 어두운 표정을 짓는 데미안의 귓가로 피아로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네는 최선을 다했네. 자네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까지 싸우지도 못했을 게야.”

“피, 피아로님…!”

데미안이 질색했다.

곡괭이를 지팡이삼아서 몸을 일으킨 피아로가 벨리알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내가 시간을 벌겠네. 그 틈에 모두 퇴각하시게.”

피아로는 생각한다.

크라우젤, 데미안, 유라, 지슈카를 비롯한 템빨단원들.

이들은 아직 모두 젊다.

이들에게는 찬란한 미래가 보장되어야만 한다.

이들이 성장하고 또 성장하여 그 재능을 만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벨리알이 아니라 더 강력한 대악마조차도 감히 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리라.

“어서 피하지 않고 뭣들 하는가?”

도망칠 기색이 없는 크라우젤과 데미안, 그리고 템빨단원들을 재촉한 피아로가 어느덧 벨리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벨리알은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놈이.”

그래, 정 소원이라면.

“가장 먼저 죽여주마!”

애초에 피아로가 가장 강하고 위협적이다. 놈을 먼저 해치우는 것이 안전하다.

판단한 벨리알이 피아로를 표적으로 삼아서 마법을 전개하는 그때였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지슈카가 미쳤다.

더 이상 벨리알을 겨냥하지 않고 화살을 마구잡이로 사방에다가 날리기 시작했다.

지면에 처박힌 불화살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아군을 덮친다.

“핫…! 하하하하하핫!!”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던 벨리알이 이내 대소를 터뜨렸다.

“아군을 공격하다니? 나를 이길 수 없음에 절망하여 미쳐버린 게로구나!!”

역시 인간은 나약하고 저급한 존재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여러모로 재미있다.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벨리알에게 비룡에 올라타 있는 후로이가 소리쳤다.

“에라, 이 악마 같은 것아! 네 부모님 천사다!! 너도 천국에나 떨어져라!!!”

“…?!”

대악마인 이 몸을 악마 ‘같은 것’이라고 지칭하다니?

대악마인 이 몸의 부모가 천사라니?

대악마인 이 몸에게 천국으로 떨어지라니!!

“이, 이 놈이?”

수천 년을 존재하면서 이토록 치가 떨리는 모욕은 처음 듣는다.

피아로의 호미에 찍혔을 때보다, 크라우젤의 움직임에 농락당할 때보다, 유라에 의해서 힘을 봉인 당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화가 난다.

격분한 벨리알의 눈이 까뒤집어지는 그때였다.

“몸이 가볍군.”

“이거 신기하네요.”

지슈카가 쏜 불화살에 타들어가던 피아로와 크라우젤, 그리고 이사벨과 데미안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상태를 확인한 벨리알이 화들짝 놀랐다.

“회복됐다고?”

그렇다.

불꽃에 타들어가 죽을 줄로만 알았던 인간들이 도리어 멀끔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피아로는 부러졌던 다리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어때? 내가 바로 템빨단의 힐러야.”

엣헴, 코 아래를 슥 훑으며 가슴을 당당하게 펴는 지슈카.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각국의 남성 시청자들이 눈에 하트를 그렸다.

-섹시한 줄만 알았는데 귀엽다.

-나도 지슈카의 화살에 맞고 싶어.

-님이 맞으면 뒤짐.

-아… 템빨단에 가입하고 싶어 죽겠네.

-크라우젤처럼 강해지면 템빨단에서 가입 받아줌.

-크라우젤 템빨단 가입한 거 진짠가요?

-그러니까 같이 싸우겠죠.

벨리알 레이드 방송의 시청률이 정점을 찍고 있다.

그리드가 국가대항전에서 세웠던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갱신하기 직전이다.

과연 템빨단은 대악마를 퇴치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멸악의 빛.”

어째 잠잠하다 싶던 데빌 슬레이어 유라가 궁극의 스킬을 사용했다.

옥빛의 기둥이 벨리알을 관통한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 서울.

“내 몫은…?”

동료들을 걱정하며 초조해하던 영우가 이제는 다른 의미의 초조함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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