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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99화 (394/1,794)

템빨 27권 - 15화

일개 플레이어 집단이 일국의 왕성을 위기에 빠뜨리다니?

템빨단이 라인하르트를 침략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마치 그들이 Satisfy의 주인공 같았다.

자신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시청자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템빨단의 행보는 경쟁자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한편 대중에게 커다란 희망과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것이다.

『국가를 세우는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S.A그룹이 Satisfy 오픈 당시 공개했던 콘텐츠 정보 중 하나죠.』

첫째, 최소 3개의 대도시 보유.

둘째, 최소 10만 명의 백성 확보.

셋째, 건국비 6천만 골드.

『템빨단은 사실상 2개의 대도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레이단과 윈스톤이죠. 오늘 템빨단이 라인하르트 정복에 성공할 경우, 국가를 세우기 위한 자격 대부분을 충족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윈스톤은 스테임 후작의 영토 아닌가요?』

『엄밀히 따지면 스테임 후작의 영애인 아이린의 땅이죠. 아이린은 그리드의 부인이고요. 만약, 그리드가 아이린과의 호감도를 최대치로 올릴 수만 있다면 윈스톤은 쉽게 양도받을 겁니다.』

『드디어 플레이어가 주인인 나라가 탄생하는 거군요!』

『허허… 쉽게 말할 일이 아니죠. 이성 NPC의 호감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특정 NPC와 90 이상의 호감도를 올려본 플레이어는 흔치 않을 겁니다. 특히 그리드와 아이린의 관계는 부부입니다, 부부. 부부가 함께 생활하다보면 서로의 흠을 발견하게 되고 사소한 감정들이 쌓여서 도리어 호감도가 떨어지게 마련이죠. 심지어 그들은 정략 결혼한 것으로 추측되는 커플 아닙니까.』

『뭐, 설령 그리드가 아이린과의 호감도 쌓기에 실패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죠. 왕성을 점령하는 순간 에트날 왕국은 대혼란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나라가 수십 개로 분열되고 혼란이 가증되는 그때 템빨단이 대도시 하나쯤 더 꿀꺽하는 것이 크게 어렵겠습니까?』

플레이어가 세우는 나라는 어떨까?

최소한 기존의 왕국들보다는 나을 거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였다.

봉건사상을 지닌 서대륙의 그 여느 왕족이나 귀족들과 달리 플레이어의 사상은 현대적이고 진취적이었으니까!

플레이어가 세우는 국가는 플레이어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공산이 무척 높았다.

『템빨단의 건국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현재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NPC세력들은 차츰 플레이어 세력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이며, 언젠가 대륙 모든 국가의 주인은 플레이어들이 되어 있을 겁니다.』

『대륙의 패권을 두고 다투게 될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끊임없는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무수한 영웅이 등장하겠군요.』

『지금 방송을 시청 중인 여러분 중에도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있겠죠.』

각국 방송사의 해설진은 템빨단의 승전을 거의 확실시하고 있었다.

대마법사와 교황 등이 포진해있는 현재 템빨단의 전력은 역대 최강급인 바, 텅텅 빈 라인하르트 따위 가뿐히 점령하고 나라를 세우리라 보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가 발생했다.

아스란 국왕이 9,999명의 처녀를 제물로 바쳐서 대악마를 소환한 것이다.

대악마는 여섯 마리의 켈베로스가 이끄는 전차 위에 올라탄 반나신의 미녀였다.

머리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털이 있어야할 부위마다 은은한 불꽃을 일렁이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벨리알. 서열 32위의 대악마다.

요염한 눈빛으로 좌중을 훑은 그녀가 탐스러운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웃는다.

“인간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정말이지 흥분되고 기쁘구나.”

“……!”

벨리알과 눈이 마주친 템빨단이 일제히 위축되었고, 해설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 대악마라니!!』

『아니 어찌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가…! 템빨단의 건국은 물 건너가고 말았군요!』

Satisfy의 보스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필드 보스, 던전 보스, 네임드 보스.

이중 단연코 네임드 보스가 가장 강하다.

또한 네임드 보스의 정점이 바로 대악마였다.

Satisfy 설정 상 대악마는 악의 근원이며, 플레이어들은 대악마를 격퇴해야할 숙명을 타고난 존재들이었다.

-대악마 레이드 콘텐츠가 본격화 되는 것은 몇 년 후일 거라고 봤는데…

-대악마가 현재 시점에서 등장한 건 오바 아닌가? 누가 대악마를 레이드해?

-대악마가 미쳐 날뛰면 플레이 난이도가 너무 높아질 것 같은데;;

-XX 장난하냐. 나 캐릭터 라인하르트에 세워두고 접종했는데 로그인 못하겠네.

-ㅋㅋㅋ로그인하자마자 죽는 각.

Satisfy의 흐름은 플레이어가 만드는 것이다. 수십 억 플레이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교차하면서 새로운 스토리가 무수히 만들어진다.

대악마의 등장 또한 마찬가지다.

플레이어들의 행동과 선택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 이 순간 벨리알이 소환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리라.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과연 누굴까?

세계가 의문에 빠진 그때.

“위대하신 지옥의 군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흑마법사 랭킹 1위로 유명한 플레이어 로제가 불쑥 나타났다. 템빨단원들조차 석상처럼 굳게 만든 벨리알에게 겁도 없이 다가간 그녀가 무릎을 꿇고 인사한다.

“악신 야탄의 종, 로제이옵니다. 군주님의 지상생활이 보다 윤택해질 수 있도록 제가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세요.”

-저 여자가 범인이었네.

-아 빌어먹을 야탄교.

-하여튼 야탄교 새끼들은 다 죽여야 됨. 나 저렙때 야탄교한테 납치당해서 흑마법 제물 됐던 적 있음;;

-하아… 앞으로 대악마랑 야탄교가 여기저기 휩쓸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사냥터도 함부로 못 돌아다니겠네.

-왜들 그렇게 부정적이죠? 전 이 상황이 재밌는데? 꾸준한 자극이 있어야 게임이 더 재밌어지는 거 아닌가?

-나도 즐거움ㅋㅋㅋ 대악마랑 마족 퇴치 관련 퀘스트 엄청 많이 뜰 테니까 개이득인 듯.

-퇴치가 불가능한 존재를 퇴치하라는 퀘스트가 떠봤자 무슨 의미임?

시청자들이 요란법석을 떠는 그때 벨리알은 로제에게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당돌한 아이로구나. 마음에 든다. 내 너를 아껴줄 것이야.”

“감사합니다! 너무 기뻐요!”

긍정적인 대답을 확인한 로제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황홀한 표정으로 발을 구르는 그녀에게 이벨린이 소리쳤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납득이 가게끔 설명해주시죠?”

이벨린은 무척 화가 났다.

각지에 흩어져있는 템빨단원들이 희생해서 만든 기회가 대악마의 출현으로 인해서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냉정할 수가 없었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그에게 로제가 콧방귀 뀌었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그 과정에서 템빨단에게 피해를 입힌 것 같아 유감이지만 뭐, 어쩔 수 없잖아요? 누군가 이득을 취하려면 또 누군가는 손해를 입어야지. 애초에 모든 사람들이 같은 편일 수는 없는 거고. 쿡쿡, 그게 세상의 섭리 아닐까요?”

표정부터 말투까지 전부 얄밉다.

“그러니까 결론은, 당신 우리 템빨단과 적대하겠다는 말…!”

눈살을 더욱 더 찌푸린 이벨린이 로제에게 살기를 발산하는 순간이었다.

“무상농법 극의, 절구질.”

“…?”

로제가 귀를 의심했다.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전쟁터.

그것도 공포의 대악마가 출현한 이곳에서 농법 따위를 논하는 미치광이가 있다니?

‘심지어 절구질이라니?’

절구질.

절구에 곡식 따위를 넣고 찧거나 빻는 일을 뜻한다.

로제는 비현실적이었다.

‘웬 미친 농부가 전쟁터 한가운데서 절구질 타령을…? 헉?’

고개를 갸웃거리던 로제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땅에 그늘이 지고 주변이 어두워진다 싶어서 본능적으로 하늘을 올려봤더니, 거대한 무엇인가가 하늘 전체를 가득 매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절구.

초대형 절구였다!

“이, 이게 무슨?”

절구는 곡식을 찧거나 빻을 때 쓰는 기구다. 상식적으로 사람이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여야한다.

한데 하늘 위에 나타난 저 절구는 커도 너무 컸다. 지름이 족히 100미터는 넘어보였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

마치 수십 대의 전투기가 비행하며 발생시키는 굉음처럼 거대한 소리가 라인하르트 전역에 울려 퍼졌고,

“히, 히익…!”

로제는 생명에 위험을 느꼈다.

하늘 위 초대형 절구가 지상으로 추락하였으므로!!

“다, 다이아몬드 실드!”

상황 파악은 나중이다. 일단 살아야한다.

오직 그 일념만으로 로제는 움직였다.

흑마법사의 고질적인 단점인 취약한 방어력을 극복시켜주는 최상위 방어마법을 전개, 스스로의 몸을 지키고자 시도했다.

벨리알을 소환한 대가로 얻은 최강의 지팡이가 마력을 발산하며 그녀에게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쿠우우우우우우우웅-!!

절구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항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

로제는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거대한 절구에 육신과 정신이 통째로 짓눌려서 영겁 같은 공포와 고통에 사로잡혔다.

최악의 죽음 중 하나.

끔찍한 압살(壓殺)의 현장이다.

[방어가 무의미합니다.]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구룩의 마력 로브(레전드리)>의 내구력이 230 하락합니다. 파손의 위험이 있습니다. 아이템의 최대 내구력이 하락합니다.]

[<돌피나의 마력 신발(유니크)>의 내구력이 188 하락합니다. 파손의 위험이 있습니다. 아이템의 최대 내구력이 하락합니다.]

[<하모니의 장갑(유니크)>의 내구력이 193 하락합니다. 파손의 위험이 있습니다. 아이템의 최대 내구력이 하락합니다.]

[<벨리알의 지팡이(신화급 모작)>의 내구력이 91 하락합니다. 이 아이템은 아무나 수리할 수 없습니다. 사용에 신중해주십시오.]

[사망하였습니다.]

[32.8퍼센트의 경험치를 손실하였습니다.]

[<극상급 마나 물약(1,000개 꾸러미)>를 드롭하였습니다.]

‘XX…! XX!! XX!!!’

떠오르는 알림창들을 보고 분노하여 욕설을 지껄여보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로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흑백이 된 세상을 그저 관찰자의 시점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부활을 거부하셨습니다.]

[자동 부활까지 20초 남았습니다.]

‘어…?’

대체 어떤 빌어먹을 자식이 절구질을?

분노에 찬 눈으로, 시신이 된 상태 그대로 주변을 살피던 로제가 경악했다.

절구질의 범위에 함께 있던 템빨단과 그들의 병사들은 모두 무사한 게 아닌가?

그뿐이랴?

대악마 벨리알.

인류를 멸절시킨 힘을 지녔다고 알려진 그녀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이… 인간 따위가 어찌 내게 상처를?”

벨리알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하강해온 절구에 맞은 한쪽 팔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만약 피하지 못했다면 끔찍한 중상을 피해지 못했을 것이다.

고작 인간의 기술에 당해서 말이다!

납득하지 못하는 그녀가 타고 있던 전차는 이미 산산조각 난 상태다.

끼잉… 낑…

전차를 끌어주던 여섯 마리의 켈베로스가 모조리 곤죽이 되어 죽어가고 있다.

“감히…! 감히!!”

분노를 금치 못한 벨리알의 시선이 템빨단원들 사이에 서있는 중년인에게 꽂혔다.

한쪽 손에는 호미를, 또 다른 한쪽 손에는 낫을 들고 있는 사내.

허허 웃으며, 평소처럼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 그가 라우엘을 비롯한 템빨단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시간을 벌 테니 모두 퇴각하시게.”

모두 깨닫는다.

피아로, 죽음을 각오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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