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7권 - 12화
아스란 국왕의 독백과 브누아 황자의 등장!
이 은밀한 에피소드를 흑마법사 플레이어 로제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퀘스트 수행자로서의 권한이다.
[브누아 황자가 소환 도구 전달에 성공했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레벨 1이 올랐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스탯 포인트 1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굴바스의 지팡이’를 획득하였습니다.]
[<대악마 소환(4)>퀘스트가 <대악마 소환(종장)>으로 연계됩니다.]
<대악마 소환(종장)>
난이도:SS
야탄의 충실한 종이여, 그대의 노고 덕분에 대악마의 지상 강림이 머지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뿐이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아스란 국왕이 대악마를 소환.
퀘스트 보상:소환되는 대악마에 따라서 다름.
갱신되는 퀘스트를 확인한 로제의 얼굴이 밝아졌다.
‘스토리가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거였구나. 템빨단이 전쟁을 일으켜준 덕분에 빠르게 진행된 거네? 고마워, 템빨단.’
유라가 히든 클래스로 전직한 이후, 흑마법사 랭킹 1위에 등극한 로제.
유라의 뒤를 이어서 <야탄의 종>이 된 그녀는 온갖 교단 활동을 일삼는 중이었다.
세상 곳곳을 공포와 혼란으로 잠식시켰고, 그 과정 속에서 SS난이도의 연계 퀘스트를 얻었다.
그리고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브누아 황자를 만나 함께한 것이 어느덧 3개월째다.
“제물은 충분해 보이던가?”
알현실에서 나온 브누아 황자가 묻는다.
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라인하르트는 과연 풍족하고 평화로운 도시답게 질 좋은 처녀들이 많았어요.”
“그거 잘 됐군.”
흡족한 표정을 짓는 브누아 황자에게 로제가 염려를 표했다.
“하지만 아스란 국왕이 대악마를 소환하지 않으면 어쩌죠?”
대악마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특정 매개체뿐만이 아니라 대량의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할 필요가 있었다.
일국의 왕, 그것도 야탄교를 적대하는 에트날의 왕이라는 작자가 과연 백성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대악마를 소환할까?
의문을 품는 로제에게 브누아 황자가 확신해보였다.
“아스란 국왕은 야망이 넘치는 자야.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을 터,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걸세.”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이제는 진짜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지개를 쭉 편 로제가 브누아 황자를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품어왔던 의문을 입 밖에 내었다.
“늘 궁금했던 게 있어요. 황자전하께서는 무슨 이유로 대악마를 소환하시려는 거죠?”
브누아 황자는 야탄교 신자가 아니다. 또한 곁에서 관찰한 결과,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고 싶어 할 정도로 비뚤어진 인간도 아니었다.
그가 대악마 소환에 집착하는 이유를 로제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호기심으로 물든 그녀의 눈동자를 지그시 응시하던 브누아 황자가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 저편을 쫓는 시선이 더 없이 쓸쓸하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게 누군데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만나려면 대악마가 필요한 거죠?”
로제는 NPC와 인간을 확실하게 구분 짓는다. NPC는 단순히 뛰어난 인공지능에 불과하다고 본다. NPC의 사정이나 기분 따위 살피지 않았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처럼 말이다.
그게 실수였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재차 묻는 그녀는 브누아 황자와의 호감도를 올릴 기회를 놓쳤다. 그녀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괜한 호기심을 품어서 명을 재촉하지 말게. 앞으로 몇 마리의 대악마를 더 소환해야할지도 모르는 내게 있어서 그대는 최대의 조력자야. 굳이 그대를 죽이고 싶지 않아.”
[브누아 황자가 살기를 발산합니다.]
[오랜 세월 대륙을 지배해온 사하란 황실의 핏줄은 우수함을 넘어서 위대합니다. ‘거부할 수 없는’ 공포에 빠집니다. 5초 동안 행동에 제약이 생깁니다. 방어력과 마법저항력이 23퍼센트 하락하고 일부 스킬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죄, 죄송해요.”
흑마법사 랭킹 1위이며 통합 랭킹 50위권에 들어가는 자신을 단지 살기만으로 무력화시키다니?
‘혈통의 힘? 사하란 제국의 황족들은 죄다 이런 건가?’
로제는 소름이 돋았다. 야탄교를 서대륙의 지배 세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희미해질 정도로 제국이 두려워졌다.
***
흑화의 영향으로 강화 된 연살파(聯殺波) 2연타가 발생시킨 결과.
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미쳤다.
진짜로 미친 화력이다.
그리드에게 표적이 된 루실리브 공작을 보호하고자 몸을 날린 기사들?
한 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헤비아머와 대형방패가 무색하게도 잿빛으로 산화했다.
고위 마법사들의 방어마법?
쓴지도 몰랐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연살파(聯殺波)의 폭격 중 일부를 허용한 루실리브 공작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다.
고통에 젖어 몸부림치는 그에게 그리드가 접근하고 있었다.
근접 카메라들은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와… 그리드 예전보다 더 빨라진 듯?
-3차 전직 어쌔신급 같은데 민첩성이 얼마나 높은 거지 ㄷㄷ
-뭔 민첩성 타령이야. 이속 높여주는 아이템 착용하고 있나보지.
악마력이 1만을 돌파하면서 강화 된 <흑화>는 그리드의 공격력, 마력, 민첩성을 30퍼센트씩 상승시켜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높은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10퍼센트의 상승률은 엄청 크게 작용했다. 이동속도부터가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노오옴!!”
루실리브 공작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의 분노는 그리드에게만 집중된 것이 아니다. 그리드를 막아서지 못하는 무력한 기사들과 마법사들, 그리고 병사들에게까지 향하는 분노였다.
무능한 부하밖에 없다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루실리브 공작이 결국 직접 검을 뽑아 쥐었다.
창천의 태양처럼 독보적인 기세를 발휘하며 진형을 돌파해오고 있는 그리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단지 고위 귀족일 뿐, 무력으로는 유명세를 떨치지 못하는 그가 검을 뽑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청자들은 루실리브 공작이 그리드의 검에 그대로 베여 사망하리라 보았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방심하지 않았다.
‘연살파(聯殺波)를 맞고 산 놈이다.’
애초에 일국의 공작이다. 필시 네임드 NPC로 구분된다.
높은 체력과 방어력은 기본이고, 예상치 못한 전투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었다.
‘시험해볼까.’
큰 기술을 사용했다가는 자칫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그리드.
병사들의 방위선을 돌파하고 드디어 루실리브 공작에게 접근한 그가 우선 평타를 날렸다.
쐐액!
실패작과 비교하면 훨씬 더 빠른 공격속도를 발휘하는 검은 귀신!
날카로운 파공성을 토해내며 직선으로 쏘아진 그것이 루실리브 공작의 목젖에 닿기 직전이었다.
“저열한 놈들에게는 매가 약이라더니!!”
도끼눈을 뜨고 소리친 루실리브 공작이 검은 귀신을 자신의 검으로 막아냈다.
터엉!
묵직한 마찰음과 동시에,
끼리릭!
검을 회전시킨 루실리브 공작이 검은 귀신의 칼끝을 지면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노출 된 그리드의 가슴을 노리고 검을 꽂는다.
“에트날 왕가 검법의 위대함을 지옥에 전파하라!”
이 순간.
루실리브 공작은 환희하고 있었다.
본인의 손으로 그리드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루실리브 공작의 검술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뿐.
푸욱!!
[2,5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루실리브 공작의 능력치는 비교적 평범했다. 그리드의 삼겹갑을 꿰뚫을 정도의 공격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애초에 너한테 당할 거였으면, 여기까지 도달하지도 못했겠지?”
루실리브 공작의 귓가에 음침하게 속삭인 그리드가 검은 귀신을 휘둘렀다.
“히익!”
안색이 하얗게 질린 루실리브 공작이 뒷걸음치는 그때였다.
“공작각하는 우리가 지킨다!”
10명의 고위 마법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한 실드가 겹겹이 쌓이며 루실리브 공작을 보호했다.
쩌엉!
무려 열 겹이나 되는 마력 실드다. 상식을 초월하는 방어력을 발휘하는 그것은 제아무리 검은 귀신이라도 벨 수가 없었다.
“이때다! 놈을 덮쳐라!!”
공격을 가로막히고 멈칫하는 그리드의 후방을 노리고 기사들과 병사들이 쇄도했다.
-틈 보이는 순간 끝인가.
-그리드 잘 싸웠는데 아쉽다.
-애초에 10만 대군을 돌파해서 적장한테 도달한 것만 해도 엄청난 거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시청자들이 그리드의 패배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극살(極殺).”
대상의 방어력을 100퍼센트 무시하는 최강의 단일 공격 스킬!
실드 방어력이 적용되어 있는 루실리브 공작을 실드 통째로 베고, 찌른다.
“크…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잿빛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루실리브 공작을 목도한 고위 마법사들이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기사들과 병사들은 이미 그리드를 덮치는 중이었다. 그리드에게도 창칼과 화살이 쇄도했다.
푹!
푸푸푸푸푸푸푸푹!!
“쿨럭!”
정예병들의 공격을 대량으로 허용하고 고슴도치가 된 그리드가 피를 토했다.
안면에 그리드의 붉은 피를 묻힌 루실리브 공작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큭큭큭…! 저승길 동무로 안성맞춤이로구나…!!”
물론 그리드는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일대에는 부활에 대한 저주가 걸려있다. 그리드가 얻게 될 사망 페널티는 엄청난 것.
루실리브 공작은 그리드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절망하리라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난… 멀쩡한데.”
씨익!
그리드는 죽지 않았다. 사악하게 웃으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루실리브 공작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이어서 자신을 급습한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파그마의 검무, 파(波)를 날려서 일대를 초토화시킨 그가 소리쳤다.
“적장, 그리드가 베었다!”
[루실리브 공작의 죽음을 확인한 적군이 전의를 상실합니다!]
[바이란 탈환에 성공하였습니다!]
[칭호 스킬 <10만 대적자>를 획득하였습니다!]
<10만 대적자>
종류:패시브
주변에 적이 많을수록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상승치에는 한도가 존재합니다.
“저, 저럴 수가…!”
혼자서 적진을 휩쓸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루실리브 공작의 목까지 베어버린 그리드.
초토화 된 전쟁에 우뚝 선 그를 6만 명의 비정규군 병사들이 우러러보았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백성을 아끼며, 백성을 지킬 수 있는 무력까지 갖춘 절대군주.
그를 섬기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이 피어오르는 비정규군 병사들의 귓가로 바이란 주민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드님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하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리드님은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들의 은인이며 우상입니다!!”
“대대손손 당신을 찬양할 것입니다!!”
“우와아아아아!! 그리드님 만세!!”
“레이단의 태양 만세!!”
그리드를 찬양하는 외침들.
이는 도화선이 되었다.
행복에 도취된 바이란 백성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매료된 비정규군 병사들이 그리드에게 투항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저, 저희들도 당신의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저희를 거두어주세요!”
백성을 가축 취급하는 국가에서 살아가는 것은 이제 제발 사양하고 싶다.
생각하며 간절히 부탁하는 비정규군 병사들.
사실, 그들은 그리드가 과연 자신들을 받아줄지 의문이었다.
그리드의 입장에서 자신들은 적병이 아니던가.
죽기 싫어서 구차하게 부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리드의 선택은 달랐다.
곁으로 달려와 속삭이는 아스모펠로부터 이야기를 전달 받은 그리드가 흑화를 해제한 뒤 왕관을 똑바로 고쳐 썼다. 이어서 병사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실망시키지 않겠다.”
“……!”
그리드의 미소는 태양처럼 밝고 따스했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공기를 더럽힌다며, 귀족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어왔던 우리 천민들에게 저토록 인자한 미소를 지어주시다니?
감격한 비정규군 병사들이 평생 그리드를 따르겠노라고 다짐했다.
[63,387명의 백성을 얻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을 섬기는 백성의 숫자가 10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국가를 세울 최소 자격을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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