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392화 (387/1,794)

템빨 27권 - 9화

요새도시 파트리안.

퍼펑!

퍼퍼퍼퍼퍼펑!!

밤이 사라졌다.

쉴 새 없이 쏟아지며 폭발하는 불화살이 일대를 온통 화마로 뒤덮을지니, 어둠이 자리를 잡을 틈이 없다.

“제길…! 말도 안 돼!!”

제4차 파트리안 탈환군에 소속 된 플레이어들.

1~3차 탈환군이 템빨단의 전력을 극감시켜놓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기세가 승천하였던 그들이 전쟁터에 도착하고 불과 반나절 만에 절망한다.

그리드의 여인 지슈카.

주작궁을 손에 쥔 그녀는 이제 진정한 신궁이 되어있었다. 플레이어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하는 강함을 발휘했다.

강력한 화력을 무한히, 그것도 원거리에서부터 쏟아낼 수 있는 존재라니!

그녀는 지상 최악의 살상병기였고, 그녀 앞에 에트날군은 한 줌 재였다.

“저걸 어떻게 뚫지?”

에트날군이 패닉에 빠졌다.

한 번에 여러 발 쏘아지면서 아군을 백 단위로 해치는 불화살의 포화를 돌파한다는 것, 쉽게 엄두가 안 나고 두려운 일이었다.

“우리 편 궁수들이랑 마법사들은 뭐하고 있는 거야? 지슈카한테 일점사해! 애초에 그녀에게 공격할 틈을 안 주면 되잖아!”

얼음처럼 굳어버린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돌아오는 반응은 냉소였다.

“지슈카가 괜히 신궁인 줄 알아?”

“그녀의 궁술 관련 패시브 스킬 레벨은 독보적이야. 사정거리와 명중률이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고.”

“우리가 지슈카를 공격하려면 여기서 200미터 더 접근해야해. 하지만 거기까지 접근하는 걸 지슈카가 허용해줄 리 없지.”

“…”

파트리안은 에트날 왕국 최대의 요새인 바.

지슈카가 올라있는 성벽은 견고할 뿐만 아니라 무척 높았다. 지슈카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주고 있었다. 그녀는 매의 눈으로 전장 전체를 관조하며 위험요소들을 우선적으로 격살하는 중이다.

에트날군 입장에서는 점차 승산이 적어졌다.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됩니다!]

[병사들의 모든 능력치가 대폭 하락합니다!]

“이런 미친…”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알림창과 동시에 약화되는 병사들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이 이를 갈았다.

파트리안 탈환은 사실상 포기해야하는 상황임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그렇기에 납득할 수 없었다.

고작 한 명의 플레이어가 수만의 대군을 막아낸다는 것, 터무니없는 파워 밸런스 아닌가?

“개인이 국가와 군대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게 말이 되냐?”

“지슈카 저거 너프해야 돼. 혼자서 2만 대군을 막아낼 정도로 강한 건 완전히 오버 파워라고.”

약이 바짝 올라서 투덜거리는 플레이어들.

그들을 일부 플레이어들이 비난했다.

“지랄하고 있네. 지슈카는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은 사람이다. 기껏 공들여 쌓은 힘을, 그녀만큼 노력도 하지 않은 네놈들 비위에 거슬린답시고 너프시킨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

플레이어들이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우리도 그녀와 똑같은 플레이어야. 우리도 노력하면 언젠가 그녀처럼 강해질 수 있다고. 우리는 지금의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할 입장이 아니라 동경하는 게 옳은 거야.”

플레이어의 잠재력은 NPC와 달리 무한하다.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지슈카를 보면서, 에트날군 플레이어들은 언젠가 자신들도 랭커가 되고야 말겠다는 꿈을 품었다.

***

“당최 왜 말이 없는 거야?”

15분 전.

그리드가 길드 채팅창에 질문을 던졌었다.

바이란을 지키던 인원들은 다 어디로 갔냐는 내용의 질문이었다.

그 후로 내내 감감무소식이다.

폰과 유라를 비롯한 템빨단원들은 그리드가 걱정이었다.

“말투를 봐서는 바이란인 것 같던데…”

“설마, 10만 대군에게 고립 된 상황은 아니겠지?”

“…왠지 그럴 것 같은데.”

“…”

그리드가 길드 채팅창에 아무런 말이 없는 이유, 적들의 공세를 견디느라 채팅할 시간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제가 가볼게요.”

최악의 사태를 염려하며 걱정하는 템빨단원들.

그들 중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유라였다.

바이란으로 되돌아가려는 그녀를 템빨단원들이 말렸다.

“조급해하지마. 아직 확실한 일도 아니잖아.”

기껏 바이란으로 되돌아가봤자, 그리드가 없다면?

10만 대군에게 무의미한 개죽음을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드의 채팅이 다시 뜨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

“애초에, 진짜로 그리드가 위험했다면 기사 소환 스킬을 사용했을 거야.”

“…”

기사 소환 이야기까지 듣자 유라도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우씨, 무사하리라 믿어요.’

왔던 길을 뒤돌아보는 유라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강한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

[악마력이 1만이 되었습니다!!]

[암흑 마력과의 동조율이 상승합니다!!]

[암흑 마법에 대한 내성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신성 마법에 대한 내성이 10퍼센트 하락합니다!!]

[스킬 <흑화>의 기능이 상향됩니다!!]

[지옥제일마수 멤피스의 진화 조건 하나가 충족되었습니다!!]

대량학살을 벌이면서 자연히 상승하게 된 악마력.

이를 불안해하던 그리드가 알림창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아직까진 긍정적이군.’

악마력은 지옥제일마수 멤피스 즉, 노에를 펫으로 거느리게 된 이후부터 개방 된 스탯이다.

높아질 경우 지옥으로의 출입이 가능해진다고 해서 그리드는 늘 불안했었다.

악마력이 높아지면 혹시 종족이 마족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종족이 변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종족이라는 게 쉽게 바뀔 리 없지.’

또한, 악마력이 높아질 경우 지옥으로의 출입이 ‘자유’로워진다고 했지 ‘강제’된다고는 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악마력에 대해서 별다른 근거도 없이 지레 겁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

‘흑화와 노에를 가지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악마력이 올라가는 게 좋을 수도…’

노에가 강해지고 흑화가 강해짐으로써 무력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신성 저항력이 떨어진다는 페널티?

충분히 감수할만하다.

그리드는 레베카교를 비롯한 각 종교들과 높은 친분을 쌓고 있다.

반면 대악마나 야탄교와는 완전한 적이다.

그리드의 적은 신성력이 아니라 암흑마력의 귀재들이라는 뜻.

악마력이 오르면서 발생한 효과들은 어떻게 봐도 현재의 그리드에게 적합한 것들이었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팟!!

생각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수백 발의 화살이 쇄도했다.

5연속 주작 소환에 휩쓸려 궤멸한 마법사군단 대신 궁병대가 그리드의 기세를 늦추고자 애쓰는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이를 피하려던 그리드가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하고 관뒀다.

[25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90의 피해를…]

..

삼겹갑을 무장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일개 병사들의 화살 폭격 따위 조금도 위협적이지 못했다.

무시하고 맞아주면서 물약을 먹고, 대검을 들고 풍차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주변의 보병 백여 명을 휩쓸어버렸다.

“허…”

루실리브 공작은 연신 감탄과 경악만을 거듭하고 있다.

단신으로 아군 진형을 휩쓸고 있는 그리드를 어떻게 저지해야할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가장 큰 문제는 그리드의 강인한 체력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지치고 제풀에 지쳐 쓰러질 줄 알았던 놈이 여전히 멀쩡하다.

‘이대로는 피해가 끝이 없다. 정병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군.’

꾸욱!

이를 악 문 루실리브 공작이 결단을 내렸다.

“나의 용맹한 병사들이여! 반란군 수괴의 목을 베어라!!”

명령과 동시였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성벽 위에 포진하고 있던 루실리브 공작의 병사들.

하나 같이 황금의 갑옷을 무장하고 있는 그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아군 병사들을 해치고 있는 그리드에게 돌진했다.

달빛을 머금고 은은하게 빛나는 황금 갑주들이 어둠속에 물결치며 그리드를 덮치는 광경, 장관이었다.

-드디어 정예병 투입!

-이제부터 본격적이네.

황금 갑옷을 무장한 병사들은 포스부터가 남달랐다.

일반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발휘할 것 같았고, 실제로 선보이는 움직임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진로를 방해하는 아군 병사들의 틈새를 민첩하게 해치고 나아가 순식간에 그리드에게 도달한다.

“루실리브 공작각하의 영광을 위해!”

“죽어라!!”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이는 대사를 읊으며 그리드에게 창칼을 내지르는 황금 병사들!

에트날군에 소속 된 플레이어들이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 적기야!”

“우리도 출진하자!”

플레이어들은 루실리브 공작의 사병들에게 높은 신뢰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드가 황금 병사들과 공방을 펼치는 과정에서 빈틈을 드러내리라 믿었다.

하여 황금 병사들과 동시에 그리드를 덮치는 것이었지만, 너무 섣불렀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키잉-!

그리드의 주변을 맴돌고 있던 113개의 백색 구체들.

기성을 토해내더니, 이어서 광선이 되어 사방팔방으로 전개된다.

알람 마법의 효력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크아아아아악!!”

“쿨럭!”

그리드에게 도달하고 있던 수천의 황금 병사들 중 선두에 섰던 이들이 비명을 토했고,

“파그마의 검무, 파(派).”

쿠르르르르르르릉!!

푸른 검기가 물결치며 그리드의 주변 일대를 집어삼켰다.

잿빛으로 산화하는 황금 병사들 사이에서 그리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실리브 공작령의 강병을 해치웠습니다.]

[날카로운 롱 소드를 획득하였습니다.]

[황금 덩어리를 획득하였습니다.]

[황금 덩어리를 획득하였습니다.]

[황금 덩어리를…]

..

“…헐.”

여태껏 그리드가 학살한 병사들은 낡은 무기나 가죽을 줬을 뿐이다.

하지만 루실리브 공작의 정병들은 무려 황금을 주었다.

병사들이 황금을 주다니?

그리드의 눈이 돌아가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일이다.

<황금 덩어리>

50골드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무게:5

한화로 환산하면 개당 6만원에 이르는 금덩어리들이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이다니!

그리드가 흥분했고, 이때 빈틈이 드러나고 말았다.

황금 군단에 섞인 채 그리드에게 쇄도하던 플레이어들.

그중에서도 3차 전직한 하이랭커들이 그리드에게 접근하는데 성공,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그리드 네게 악감정은 없다!”

“퀘스트 보상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들의 입장도 이해해줘!”

혹시 모를 후환이 두려워, 애써 변명을 읊으며 그리드에게 스킬을 꽂는 하이랭커들이었다.

콰르르르르릉!

폭풍과도 같이 강렬한 3차 직업군의 스킬 이팩트들 사이에서, 그리드가 이죽거렸다.

“나도 너희들에게 악감정은 없어. 하지만 되도록이면 죽을 때 아이템 떨궈라.”

“……!”

불시의 기습을 허용하고도 느긋하게 대사나 읊다니?

하이랭커들의 머리 위로 의문부호가 떠오르는 그때.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콰콰콰콰콰쾅!!

하이랭커들의 스킬 공격을 연달아 허용한 그리드의 생명력 게이지가 무려 3분의 1이나 떨어졌다.

그래, 3분의 1.

방어력과 생명력이 터무니없이 높은 그리드의 입장에서는 무척 경험하기 드문, ‘대량’의 생명력 손실이었다.

하지만 하이랭커들의 입장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방금의 공격으로 그리드를 최소 빈사 상태에 빠뜨릴 각오였다.

한데 고작 생명력이 3분의 1밖에 안 달다니?

‘아니, 무슨 방어력이?’

‘미친 템빨!’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하이랭커들!

다음 스킬을 연계하고자 모션을 변경하는 그들의 시야에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아주 얇은 실이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실.

‘이게 뭐지?’

의문을 품음과 동시였다.

“너희들은 내 방패가 되어줘야겠다.”

꽈악-!!

그리드의 음침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싶더니, 휘리릭 날아온 은빛의 실이 몸을 꽉 감싸고 구속시킨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몸이 구속당했습니다!]

[강력한 속박입니다!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대 5초 동안 유지됩니다!]

“뭐…!”

5초짜리 속박이라고?

경악하는 하이랭커들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마치 거미줄처럼 펼쳐진 은사의 장막에 꽁꽁 묶인 그들, 그리드의 후방을 노리고 찔러오는 황금 병사들의 창칼을 그리드 대신 얻어맞았다.

-헐…

-그리드 웃는 거 봐;;

현란한 손기술로 은사를 조정하는 그리드와, 그의 뒤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방벽이 되어주고 있는 다섯 명의 하이랭커들.

표정이 극심하게 상반된다.

그리드는 웃고 있는 반면 하이랭커들은 울기 직전이다.

이 광경은 농락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황금 병사들의 창칼에 꽂혀 고슴도치가 된 하이랭커 중 한 명이 피를 토하면서 질문했다.

“테… 템빨단 가입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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