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7권 - 8화
<아이템 변신>
전설의 광물 <파브라늄>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발동시킬 수 있는 기술입니다.
<파브라늄>의 형태와 성능을 특정 아이템으로 변신시킵니다.
*제작법을 습득하고 있는 아이템으로만 변신시킬 수 있습니다.
*변신 지속 시간은 3분입니다. 변신 해제 후 파브라늄은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갑니다.
스킬 마나 소모:없음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6시간
그리드가 15번째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한 대가로 얻은 힘이다. 직업 전용 아이템 <파브라늄>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스킬이라고 볼 수 있다.
여태까지는 신화급 모작 아이템인 <리파엘의 창>을 재현하는데 써왔던 그 스킬을, 그리드가 이번에는 주작궁을 재현하는데 사용했다.
전투 직업군과 비교하면 광역기가 부족하다는 단점을 지닌 파그마의 후예.
그 단점을 극복하기에 좋은 것으로 주작궁만한 아이템이 없었으니까.
물론, 신화급 주작궁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신화급 주작궁의 탄생 전제 조건은 <주작의 숨결>이었고, ‘신의 일부’인 이것은 파브라늄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하여 그리드가 재현한 주작궁은 <한속봉 배 대회>에서 제작했던 레전드리 등급의 주작궁이었다.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는 주작의 분신을 소환합니다.
주작의 분신은 소환 된 지점 반경 300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게 화염 속성 피해를 입힙니다. 피해량은 소환자의 총 공격력의 600퍼센트입니다.
마나 소모:3,000
재사용 대기 시간:24시간
신화급 주작궁에 귀속되어있는 <날아오르라!>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효과이다.
일단 공격 범위가 아쉽다.
신화급 주작궁은 발동자의 시야 범위에 있는 모든 적들을 공격하는 반면, 전설급 주작궁은 공격범위가 300미터로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반경 300미터라는 것은 결코 작은 범위가 아니다. 이 정도의 공격범위를 갖춘 광역 스킬이나 마법은 실제로 무척 드물었다.
비교대상을 신화급 주작궁의 날아오르라! 로 삼지 않는 이상, 전설급 주작궁의 날아오르라! 는 필시 최상급 광역 스킬인 것이다.
또한 애초에, 신화급 주작궁의 날아오르라! 는 사용자의 시야에 제약이 생길 경우 온전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안정성 면에서는 전설급 주작궁의 날아오르라! 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다만, 공격범위의 ‘모든 대상’을 공격대상으로 삼는다는 단점. 즉, 피아를 구분하지 못한단 치명적인 단점을 지녔지만 지금 이곳에는 적밖에 없다. 포로로 붙잡혀있는 바이란의 주민들을 제외하면 모든 존재가 그리드의 적이었다.
“날아오르라!”
끼이이이이이이!!
그리드와 갓 핸드가 동시에 발사한 <백린목 화살>이 주작궁의 시위를 떠나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동시에 새의 울음소리가 바이란 전역에 울려 퍼졌고 주작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새. 몸집이 집채만큼 크다.
태양을 사이에 둔 채 지상을 굽어보는 그 거대한 괴조들을 보고 에트날군 병사들이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피닉스…!”
“그리드가 소환했다!!”
그리드의 능력에 한계란 없단 말인가!
펄럭!
하늘 위 불새들이 날갯짓하자 지상으로 불꽃이 떨어진다.
이에 위험을 감지한 루실리브 공작이 병사들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산개하라!”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병력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독으로 작용했다.
바이란 곳곳을 가득 매우고 있는 에트날군 병사들.
자리를 이탈하고자 움직여봤자 장소가 너무 협소하다. 몇 걸음 채 옮기기도 전에 서로의 몸이 부딪치고 발이 얽혀서 쓰러지거나 얼싸안고 난리가 났다.
시가지에 갇혀서 무방비해진 그들의 머리 위로 불덩이 폭격이 개시됐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우아아아아악!!”
이 비명은 생존자들의 외침이다.
정작 불덩이에 맞은 병사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잿빛으로 산화해버렸다.
낙하한 불덩이의 표적이 된 수천 명의 병사가 일거에 타들어가는 광경… 목격자들을 압도시키는 것을 넘어 경외에 적신다.
“대마법사라도 되는가…!”
성벽 위 루실리브 공작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드 앞에서는 병력의 숫자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토화 된 전장.
대량의 병사들. 특히 마법사군단을 눈 깜짝할 사이에 잃은 그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
“기사단을 투입하라! 장기전으로 가봤자 이쪽의 손실만 커진다!!”
“우와아아아아아!!”
드디어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레벨이 무려 200 중반 대에 이르는 5천 명의 기사들이 오로지 그리드를 노리고 돌격했다.
루실리브 공작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들은 병사들과 차원이 다를 것이다!”
기사단에 손실을 입는 것은 뼈아픈 일이나, 이번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드의 처단이다.
그리드를 해치우는데 자원을 아낄 필요 따위 처음부터 없었다.
‘네놈이 신의 저주를 받아 죽지 않는 존재일지언정 상관없다!’
이쪽에서도 저주를 준비했다.
불사의 존재들에게만 작용하는 저주.
플레이어의 사망 페널티를 최대 3배까지 높이는 극악의 저주이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으리라!
자신하며 희열하는 루실리브 공작을 바라보면서, 그리드가 주작궁의 변신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아직 변신을 사용하지 않은 다른 두 개의 갓 핸드를 주작궁으로 변신시켰다.
“두 발 더 남았는데, 몰랐구나? 날아오르라!”
끼이이이이이이!
그리드가 활시위를 당기자 하늘 위에 또 다시 두 마리 불새가 떠올랐다.
“헉!”
“말도 안 되는!”
밀집한 채 그리드에게 접근해오던 5천 명의 기사단이 황급히 자리에 멈췄다.
저런 강력한 스킬을 두 번 연속으로 사용할 줄이야, 그들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피, 피해라!”
사색이 된 기사단이 병사들의 틈새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병사들을 방패삼아 목숨을 지킬 요량이었다.
하지만 날아오르라! 는 범위 내의 모든 대상을 공격하는 바.
사람 많은 곳에 숨어들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비처럼 쏟아지는 불덩이!
“크아아아악!!”
작열하는 불덩이에 얻어맞은 기사들이 불길에 휩싸이며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역시 기사는 기사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날아오르라!를 맞고도 일격에 사망하지 않았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자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히든 패시브 스킬 <신장(神將)>의 효과로 <날아오르라!>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3초 내에 재사용할 경우 자원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아직 한 발 더 남았네.”
끼이이이이이이!!
한 번 더 떠오르는 주작!
납득하지 못한 기사들이 소리쳤다.
“이건 조작이다!!”
억울함이 가득 실린 외침이었으나 부질없다.
그들은 다시금 빗발치는 불덩이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에트날 왕국이 자랑하는 정예기사단들이 한낱 한시에 소멸하는 순간이었다.
전력을 허무하게 잃은 루실리브 공작이 아찔해졌다.
“저, 저게 말이 되는가…!”
대마법사조차도 광역 마법을 저토록 연속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드의 힘은 무한한가?
의문과 공포에 휩싸이는 루실리브 공작.
아주 어쩌면, 그리드 일인에게 10만 대군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한다.
‘안 돼! 그래선 안 된다!’
루실리브 공작, 10만 대군을 통솔하였으나 단 한 명의 적에게 궤멸당하다.
서대륙 역사상 최고로 무능한 인물이라고, 죽어서도 영원토록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수가 있다.
그와 같은 사태만은 피해야한다고 판단한 루실리브 공작이 최정예 집단을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두가 남작! 카리온 백작! 라트 백작! 베라 후작! 귀공들이 나설 차례요!”
전원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검호, 혹은 마법사인 그들이다.
또한 그들이 직접 육성한 기사와 병사들은 에트날 왕실군과 비할 바 없이 뛰어났다.
그들이라면 다소 피해를 입을지언정 반드시 그리드를 처단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루실리브 공작의 마지막 믿음이었다.
한데…
“다들 어디 갔지?”
죄다 보이질 않는다?
혼란에 빠진 루실리브 공작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
『지금 저희가 뭘 본 거죠…?』
지슈카가 파트리안에서 피닉스를 소환했을 당시.
세계 각지의 전문가들은 <퀘스트적 능력>이라고 평가했었다.
플레이어의 순수한 능력이라기에는 그 힘이 워낙에 막강했기 때문에, 지슈카가 에트날 왕국 전쟁 퀘스트를 수행하는 동안에만 한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힘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닉스를 소환하는 활.
그리드는 몇 자루나 지니고 있었으니까.
-지슈카가 소환한 피닉스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그리드는 피닉스를 다섯 번 연속으로 소환하는 게 가능하군요. 아무리 약한 피닉스라고 해도 다섯 번 연속으로 소환하는 걸 보면, 결과적으로 지슈카보다 그리드가 소환하는 피닉스 스킬이 훨씬 더 강한 거 아닐까요?
-동의함. 저 정도면 소문으로만 나도는 최상급 광역 마법 메테오와 비견될 듯.
-국가대항전 이후에 그리드는 대체 뭘 하고 다녔던 거지? 무슨 수로 단기간 내에 저토록 강해진 거야?
-그를 이해하려들지 마. 그는 뱀파이어를 때려잡은 다음에 참 쉽죠? 라는 개소리나 지껄였던 킹갓엠퍼러라고.
-지금 생각난 건데, 제3회 국가대항전에서 요새전 우승국 후보는 한국이랑 브라질이네. 둘이서 피닉스만 소환하면 전쟁 끝날 듯;;
-지금 닥치고 있는 사람들 특징. 그리드 허접이라고 욕했었음.
전 세계 시청자들이 내내 감탄만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리드가 주작을 다섯 번 연속으로 소환하면서 적을 족히 1만 이상 궤멸시킨 까닭이었다.
단신으로 1만의 군대를 ‘눈 깜짝할 사이에’ 궤멸시킬 수 있는 플레이어가 과연 세상에 그 말고 또 존재할까?
사람들이 감히 추측해보기 시작했다.
이제 지존은 크라우젤이 아니라 그리드가 아닐까, 라고.
그 추측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시청자 여러분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지 마셔야합니다. 그리드는 국가대항전 당시에 사용했던 스킬들을 아직 대부분 선보이지 않고 있단 사실 말이죠.』
『그리드는 아직까지도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단 뜻입니다.』
***
액카루 요새.
사하란 제국의 변방에 위치한 곳이다.
지리적으로 레이단과 맞대고 있는 이 요새의 존재 이유는 에트날 왕국의 감시와 견제.
중립국임을 자처하고는 있으나 결국 다른 왕국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에 공물을 바치는 에트날 왕국 따위, 사실 크게 견제할 필요가 없기는 하다.
하여, 본래 액카루 요새에는 병력 배치가 적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류가 바뀌었다.
에트날 왕국에서 그리드라는 귀족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서 에트날 왕국은 정세가 혼란한 상태.
사하란 제국은 이 틈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특히 사하란 제국은 과거부터 레이단을 탐내고 있었다. 에트날 왕국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지금, 그들은 기회만 온다면 레이단을 침공하여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무려 2만의 정예병이 액카루 요새에 배치된 상태였고, 이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에트날 왕국이 10만의 대군을 움직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함인지 레이단에서부터 일단의 군대가 출정하였습니다.”
“지금 레이단은 텅텅 비었다 이거군.”
지금이야말로 적기다.
레이단에 무혈 입성하여 제국의 깃발을 세울 때가 왔다.
이에 대해서 에트날 왕국이 따지고 든다면?
제국은 반란군의 궐기로 인하여 고생하고 있을 귀국을 위해 힘을 보태주었을 뿐이다, 귀국이 안정을 회복하는 동안 레이단은 우리가 보호해주겠다.
이렇게 말한 뒤 자연스럽게 눌러앉으면 된다.
영토의 탈취는 강국의 권리이니까!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며, 액카루 요새의 사령관 투리츠 백작은 출정했다.
텅텅 비었을 레이단까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진격했다.
하지만 그는 도중에 군대의 행군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럴 수가?’
레이단과 액카루 요새 사이에 솟아있는 에트날 산맥.
그 산맥을 넘어가자 보이는 것은, 광활한 사막 위에 도열하고 있는 레이단의 수만 대군이었다.
이쪽보다도 숫자가 많아 보이는 대군이 일치단결하여 똑같은 동작으로 창술을 훈련하고 있었다.
제국군 병사들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수만 명이 똑같이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정말로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레이단의 수만 병력은 창을 내지르고, 회수하는 동작을 완전히 똑같이 수행하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정예 중의 정예였다.
“…물러나야겠군.”
판단한 투리츠 백작이 군에 회군명령을 내렸다.
그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저 멀리 사막 위에 도열하고 있는 레이단 병사들의 숫자, 고작 1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한데 수만 명으로 보이는 이유?
1천 병사가 햇볕 아래 만들어낸 그림자 때문이었다.
“나의 그림자 병사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다니… 라우엘 백작은 과연 대단한 인물이구나.”
산맥 너머로 물러나는 제국군을 확인한 카심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강력한 무력과 인재들을 동반하고 있는 그리드라면 필시 제국에 단죄를 내릴 수 있으리라, 그는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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