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384화 (27권) (379/1,794)

템빨 27권

=======================================

템빨 27권 - 1화

쿠콰콰콰콰콰콰콰콰쾅!!

하늘 위 그리드의 주변을 맴돌고 있던 수십 개의 백색 구체들.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일제히 광선으로 전개되어 전장 전역을 뒤덮는다.

“저게 뭐지?”

듣도 보도 못한 형태의 광범위 대마법.

혼란스러워하는 에트날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이다!!”

매직 미사일은 최하급 마법이다. 재사용 대기 시간과 발동 시간이 무척 짧고 마나 소모까지 적다는 장점을 지녔지만, 그 위력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리드의 매직 미사일은 다르다는 사실이 국가대항전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그리드의 매직 미사일은 하이랭커들조차도 아파했었다!

“우리가 맞았다가는 골로 갈거다!”

“피, 피해!”

폭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에트날 플레이어들이 사력을 다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천, 수만 명이 밀집해있는 전쟁터에서 운신이 자유로울 리 만무하다.

서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면서 우왕좌왕하기 바빴고 누군가는 그대로 넘어져서 잿빛으로 산화했다. 아군의 발에 짓밟혀서 죽는 플레이어가 속출하는 것이다.

퍼엉-!

퍼퍼퍼퍼퍼펑!!

혼비백산하는 에트날군 진형으로부터 자멸한 플레이어 일부가 잿빛으로 산화하였고,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지상에 도달한 그리드의 매직 미사일 폭격은 광란을 일으켰다.

맹렬한 백색 섬광들, 에트날 병사들의 심장을 꿰뚫는가?

아니다.

지형지물을 노렸다.

밀집해있는 방패병들이 딛고 있는 지면.

공병들이 등지고 있는 공성병기.

궁병대가 올라있는 언덕.

마법사 군단의 마나 회복 속도를 높여 주는 마력구 등.

그리드의 매직 미사일에 연속적으로 피격 당하자 버티지 못하고 흔들리거나 붕괴된다.

그에 휩쓸린 에트날군 플레이어와 병사들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부바트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저 새끼 뭐야?”

매직 미사일을 발동 전 단계에 멈춰놓았다가 한꺼번에 방출하다니?

“진짜 말도 안 되는 템빨이군!”

그렇다.

대장장이인 그리드가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이유, 부바트는 아티팩트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해석이었다.

이를 가는 그의 귓가로 야크 길드원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의도적으로 마력구를 겨냥해서 폭발을 일으키는 거 봤어?”

“공성병기를 부셔서 병사들을 깔려죽게 만드는 건 또 어떻고.”

“그리드 저 녀석, 언제부터 저렇게 영리하게 싸웠지?”

본래 매직 미사일이란 단일 대상에게 피해를 입히는 마법이다. 폭발하지 않고, 대상에게 적중 시 소멸하거나 관통하는 형태의 마법이기 때문에 스플래쉬 데미지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시설이나 폭발물을 가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감탄하는 야크 길드원들에게 제프가 콧방귀 뀌었다.

“영리하기는 무슨. 중학생도 저 정돈 기본으로 하겠다.”

그리드가 강한 존재임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무력의 기반은 템빨임을 잊어선 안 된다.

“괜히 과대평가하면서 위축되지 말라고.”

쯧, 혀를 찬 제프가 부바트에게 눈짓했다.

“뭐해? 어서 그놈부터 마무리 지어.”

땅에 처박혀있는 레가스를 말하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넋 놓고 있다가 회복할 기회를 주어선 안 됐다.

고개를 끄덕인 부바트가 레가스에게 한손 망치를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잉-!!

알 수 없는 기성이 귓가에 들려오는가 싶더니 일대에 열기가 들끓었다.

“뭣이…!”

땀으로 범벅이 된 부바트와 제랄프 형제의 안색이 굳어버렸다.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새가 투영되고 있었다.

***

“진짜 템빨러가 된 것을 축하해, 지슈카.”

[<주작궁>의 소유권을 양도받았습니다.]

“진짜 템빨러?”

템빨러면 템빨러지, 진짜 템빨러는 또 뭐람?

의아해하던 지슈카의 피부 위로 문득 소름이 돋았다.

‘설마.’

여태까지 위시해왔던 템빨은 템빨 축에도 못 꼈다는 뜻?

마치 화염을 각인해놓은 것처럼 강렬한 색을 지닌 만궁.

그리드로부터 건네받은 그것의 정체를, 지슈카가 조심스레 추측해보았다.

“설마, 이거 레전드리 활이야?”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는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 네임드 보스가 레전드리 아이템을 드롭하는 확률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여, 템빨단 내에서도 레전드리 아이템을 사용해본 사람은 드물었고 지슈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눈을 반짝이면서 기대하는 지슈카에게 그리드가 빙그레 웃어주었다.

“글쎄, 어떨까.”

의미심장한 대답!

두근두근!

그리드의 극적인 등장 이후부터 격렬해졌던 지슈카의 심장 고동 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기대감에 사로잡힌 그녀가 지체 않고 주작궁의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석상처럼 굳었다.

“어?”

활에 표기되어 있는 아이템 등급이 어째 이상하다?

“레전드리가… 아니야?”

<주작궁>

등급:신화

내구력:1,203/1,203 공격력:3,190

*명중률 60퍼센트 상승.

*연사속도 80퍼센트 상승.

*화염 속성 저항력 50퍼센트 상승.

*화염 속성 스킬 데미지 30퍼센트 상승.

*화염 속성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 10퍼센트 감소.

*공격 대상의 반경 1미터에 총 공격력의 12퍼센트에 해당하는 스플래쉬 데미지를 입힙니다. 같은 길드 소속 플레이어가 스플래쉬 데미지의 영향권 내에 있을 경우 치유 효과를 받습니다.

*시위에 먹이는 화살에 불꽃이 깃듭니다. 공격력에 4,000의 고정 데미지를 추가시키고 화상(大)를 유발하는 불꽃입니다. 스플래쉬 공격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치명타 발동 시에는 고정 데미지 수치가 2배로 상승합니다.

*시위를 3초 이상 당기고 있으면 상태이상에 1회 저항하는 보호막이 생성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2분. 이 보호막은 매우 낮은 확률로 파티원에게까지 적용됩니다.

*화살을 날릴 때마다 보통 확률로 생명력이 1,000 회복됩니다.

*스킬 <날아오르라!>가 생성됩니다.

*패시브 스킬 <불의 화신>이 생성됩니다.

전설을 넘어서 신화가 될 활입니다.

이 활의 주인은 무수한 업적을 남기게 될 것이며, 후대 사람들이 부르는 찬가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한계를 뛰어넘은 대장장이 그리드가 제작했습니다.

이상적인 만궁(彎弓)의 형태를 갖췄으므로 구조적으로 완벽합니다. 더 멀리, 강하게, 빠르게 쏠 수 있습니다.

강화 된 주작의 숨결이 착용자에게 신화적인 가호를 내립니다.

사용 조건:궁사 직업군 통합 랭킹 3위권.

무게:930

<날아오르라!>Lv.1

날아오르는 주작의 분신을 소환합니다.

주작의 분신은 소환자의 시야에 보이는 모든 적들에게 총 공격력의 800퍼센트에 해당하는 화염 속성 피해를 입힙니다.

*신화 등급 아이템에 귀속 된 스킬은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마나 소모:2,000

재사용 대기 시간:12시간

<불의 화신>Lv.1

지속형 패시브

주작의 가호로 인해서 불사에 가까운 몸을 갖습니다.

생명력 회복 속도와 스태미나 회복 속도가 90퍼센트 상승하고, 스태미나가 5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됩니다.

*신화 등급 아이템에 귀속 된 스킬은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어, 어라?”

지슈카는 의외로 교양 있는 여자다. 취미 중 하나가 독서였다. 그래서 속독이 가능했고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짧은 시간.

주작궁의 상세 정보를 몇 번이나 재확인한 그녀가 데헷, 혀를 내밀었다.

“지금 이거 꿈이지?”

“…”

실로 당황스러운 반응.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현존 최강’의 무기를 몇 개나 만들어온 그리드가 추측하기로 주작궁은 ‘궁극의 활’이었다.

그 압도적인 성능을 보고도 순순히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꿈 아니야.”

“꿈이… 아니야?”

그리드의 대답을 확인한 지슈카가 현실을 인지했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녀가 성큼, 그리드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동그랗고 예쁜 이마를 그리드의 가슴팍에 기대었다.

“노력했구나, 그리드.”

지슈카는 벌써 몇 년째 그리드의 곁을 지켜왔다. 그리드가 아이템을 하나 만들 때마다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그녀가 모를 리 없다.

“동대륙에서도 열심히 싸우고 연구했나보네.”

두근. 두근. 두근.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피어 올리는 지슈카의 심장 소리가 그리드의 귓전까지 들려왔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그리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세계 최고의 미녀. 그것도 자신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는 몸매의 미녀가 가슴에 얼굴을 묻어왔으니 긴장하는 것이다.

그리드는 이 기쁜 현실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시기적으로 무리였다.

“우선 레가스부터 구하자.”

끼릭-!

어느새 그리드의 가슴팍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슈카가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화르르륵!!

시위에 먹인 야파 화살이 불타오른다. 불빛을 투영하는 지슈카의 눈동자에 전장 전체가 담겼다.

“날아오르라!!”

성벽 위 지슈카의 외침과 동시에,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주작의 울음소리가 전장에 울렸고,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하늘에서부터 수백, 수천 개의 불덩어리가 검은 연기를 펄럭이며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재앙 그 자체.

주작궁의 제작자인 그리드조차도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압도적인 힘이었다.

***

쿠르르르르르르르릉!!

“허억…”

“저게 무슨…”

부바트와 제랄프 형제, 그리고 그들이 이끌어온 수백 길드원들이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늘 위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불새가 크게 날갯짓하자 생성되는 수천 개의 불덩이.

이게 헛것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된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하지만 헛것이 아니라 현실이다.

불새가 쏟아낸 수천 개의 불덩어리가 지금 이 순간 실시간으로 전장을 초토화시키고 있었으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마법이야…?”

부바트 일당의 혼란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혼란한 와중에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 방어 스킬과 회피 스킬을 전개하여 불덩어들을 차단했다.

“이 불덩어리들, 하나당 한 명의 대상만 노리고 있다! 한 번씩만 막으면 돼!”

콰쾅!

퍼펑!

쿠르르르릉!!

온갖 마법과 스킬 이팩트가 곳곳에서 연출되며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만든다.

정작 부바트 일당은 죽을 맛이었지만, 어찌됐든 간신히 위기는 넘겼다.

“허억, 허억… 헉?”

불덩어리 폭격을 간신히 막아낸 후.

거친 호흡을 토하면서 주변을 살피던 부바트 일당의 얼굴이 또 하얗게 질렸다.

에트날군 소속 플레이어와 병사들.

숫자가 한때는 2만에 육박했던 그들 중 대다수가 불에 타 잿빛으로 산화하고 있었으므로.

평균 레벨이 100 중반대에 불과한 그들에게 있어서 불덩어리 폭격은 극복하기 힘든 재앙이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대체 누가 이런 무식한 마법을… 서, 설마!!”

비록 저레벨 플레이어와 병사들이라고는 하나, 수천 명에 이르는 숫자를 ‘일거’에 소탕한다는 것은 플레이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크라우젤, 아그너스, 그리드 같은 괴물들도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바트는 확신했다.

대마법사 아슈르 백작.

그리드의 편에 붙은 그놈이 드디어 이 전장에 나타난 것이라고!

“제기랄! 퇴각이다!! 모두 마법저항력을 높여라!!”

신속히 판단한 부바트가 명령하자 야크 길드원들이 일제히 방어구와 악세사리를 스왑하기 시작했고, 제랄프 길드원들 또한 눈치껏 그들을 따라했다.

그리고 이는 명백한 실수였다.

피잉-!!

파트리안 성벽 위로부터 불화살 한 발이 쏘아졌다.

“지슈카!”

날아오는 화살을 뒤늦게 포착한 부바트가 이를 갈았다.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고 미련한 곰처럼 멍청한 계집이다.

고작 이까짓 화살 한 발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그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같잖게 굴지 말고 제발 좀 찌그러져 있어라!!”

부바트는 그리드와 아슈르 백작이 두려워 초조한 상태였다. 레가스를 죽일 기회를 놓쳐서 화도 났다. 이때 쏘아진 지슈카의 화살 한 발은 그를 굉장히 자극시켰다.

퍼엉-!!

“너 따위는 잠시도 내 발을 묶어놓지 못한다고!”

소리친 부바트가 어느새 지척까지 날아온 불화살을 손목에 매단 소형 방패로 막아냈다.

방어력을 높여주는 철벽 스킬을 굳이 쓰지도 않았다.

크래셔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탱커다. 높은 생명력과 방어력, 그리고 저항력을 보유했다.

심지어 부바트는 무패왕의 보구세트까지 무장하고 있는 바.

고작 화살 한 발 따위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 리 없다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슈카의 화살 따위 가볍게 떨쳐내고 비웃어줄 심산이었다.

하지만 웃는 게 불가능했다.

[7,3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화살에 맞은 부위가 타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초당 2,500의 생명력을 손실하는 화상 데미지를 12초 동안 입습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예상치 못하게 막대한 피해를 입은 부바트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방패와 충돌한 순간 폭발한 불화살이 그의 몸을 불태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계집! 스킬을 사용할 만큼의 스태미나를 그새 회복해놨던 건가!’

황급히 화상약을 꺼내 먹으면서 생각하는 부바트에게, 성벽 위 지슈카가 싱그러운 미소를 보냈다.

“그거 평타야.”

“뭣!!!”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