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381화 (376/1,794)

템빨 26권 - 20화

보르네오.

가우스군 진형의 플레이어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뭐…? 단지 상처만 입혀도 9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죽이면 9억 달러…!’

소위 말하는 인생대역전의 기회가 평범한 사람에게 찾아올 확률, 과연 몇이나 될까? 일생동안 경험하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낮을 것이다.

카츠의 제안은 가우스군 플레이어들의 이성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돈…!’

‘나도 한 번 부자가 돼보자!’

돈! 돈!! 돈!!!

자본주의로 물든 사회가 새로운 괴물들을 양산하기 시작한다. 카츠가 봤을 때는 무척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수에론, 한 대만 맞아주라.”

“아니야, 그냥 죽어줘. 응? 제발.”

가우스군 플레이어들의 눈이 뒤집혔다.

평소라면 감히 말도 못 붙여볼 하이랭커에게 살의를 드러냈다. 수에론을 완전한 사냥감으로 인식하고, 그를 마치 양계장에 갇힌 닭 보듯이 보았다.

돈빨의 망령이 된 가우스군 플레이어들에게 포위당한 수에론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저런 허황된 말을 믿어? 바보들만 모인 거냐?”

가우스군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은 고작 100초중반에 불과하다. 이렇다할 랭커도 없다.

만약, 수에론 또한 카츠처럼 방패로 삼을만한 병력과 요새가 있었다면 이들이 숫자가 몇이나 되든지 신경 안 쓰고 콧방귀 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에론은 카츠와 달리 혼자였고 적진 한가운데에 있었다.

만 단위의 적에게 고립 된다는 것은, 천하의 영혼 약탈자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반드시 모면해야한다고 판단한 수에론이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놈은 9만 달러, 90만 달러도 아니고 900만 달러, 9억 달러를 입에 담는 허풍쟁이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저놈이 약속을 지킬 것 같아?”

한화로 따지면 억 단위를 넘어서 조 단위다.

아무리 돈이 썩어나는 부자일지라도, 고작 게임 속에서 사람 하나 해치는데 그만한 현상금을 내걸 수 있을까?

어떻게 봐도 허세다.

확신하는 수에론이었고 사람들 또한 반신반의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까 말이 안 되는 액수긴 하네. 카츠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그만한 돈을 융통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러게… 차라리 좀 현실성 있는 액수였다면 믿었을 텐데.”

수에론에게 상처 하나만 입혀도 인생역전 할 수 있는 돈을 주겠다!

이 엄청난 조건이 도리어 카츠의 발목을 붙잡게 되었다.

카츠의 말을 신뢰할 수 없게 된 가우스군 플레이어들이 수에론으로부터 적의를 거뒀고, 이에 여유를 되찾은 수에론이 안도하는 순간.

“큭큭! 크하하하핫!!”

성벽 위 카츠가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웃었다.

“서민들은 재밌어. 본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은 무조건 부정하고 본단 말이야? 보고, 겪은 것이 적어서 상상력도 미약한 주제에.”

기껏 인심 써서 통 크게 썼더니만 그게 문제라고?

그렇다면 수준에 맞춰주마.

“금액을 정정하지. 수에론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에게는 1억 엔, 목을 따는 사람에게는 100억 엔을 주겠다. 우리 JIN그룹의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이야. 어때? 이러면 믿을 수 있겠나?”

미친놈이 돈까지 많으면 얼마나 무서운지,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른다.

왜?

돈 많은 미친놈을 실제로 볼 기회가 흔치 않았으니까!

“뭣들 해? 돈 벌고 싶으면 그 거지새끼를 어서 밟아 죽여.”

서늘한 눈빛으로 재촉하는 카츠.

그게 도화선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가우스군 소속 플레이어들은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퀘스트 보상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카츠에게 호응해서 일제히 수에론을 덮쳤다.

주춤, 깜짝 놀라서 뒷걸음친 수에론이 포효했다.

“제길…! 제기랄!! 템빨다아아아안!!!”

수에론에게 있어서 템빨단이란 떨쳐내야 할 악몽이다.

레이단 침공전에서는 농부에게 맞아 죽고, 국가대항전에서는 그리드가 제작한 아이템을 사용하는 템빨러들에게 밀려서 활약하지 못하는 등.

수에론은 자신의 생에 오점을 남긴 템빨단이 끔찍이 싫었다. 반드시 놈들을 짓밟아 수치스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싶었다.

한데 이제 와서는 돈빨에 짓밟히게 생기다니?

어째서 템빨단하고만 엮이면 이딴 꼴을 당하는가!

수에론은 정말이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네놈들 따위가 내 몸에 생채기라도 하나 남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죽여! 수에론을 죽여라!!”

“다굴에는 장사 없어! 동시에 쳐! 한 대만 때려도 떼돈이 굴러 들어온다고!”

“막타는 내꺼야!!”

분노의 괴성을 토해내는 수에론과 돈에 눈 먼 가우스군 플레이어들의 대격돌!

그 치열한 광경을 성벽 위 카츠는 느긋하게 감상했다.

오로지 돈의 힘으로 적군을 아군으로 만들어버리는 희대의 돈빨러가 세상을 전율시킨다.

***

바이란의 공성전은 특수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공성측과 수성측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전대미문의 공성전이었다.

끼이이이익-

굳게 닫혀있던 바이란의 성문이 개방되는 순간.

“히익! 또 나온다!”

“이, 일단 피해! 병사들을 방패로 삼아라!!”

에트날 소속 플레이어들이 질색하며 후퇴를 시작했다.

대열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요란법석을 떠는 플레이어들 탓에 에트날군 진형이 붕괴했고, 사령부의 지휘계통이 일시적으로 마비됐다. 전장이 순식간에 혼란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이때.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볼까.”

개방 된 성문을 통해서 백마를 타고 등장한 폰이 있는 힘껏 창을 집어던졌다.

레일 스피어였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전격을 머금고 빛살처럼 쏘아진 창이 에트날군 진형을 관통한다.

이에 휩쓸린 병사와 플레이어 수십이 잿빛으로 산화하였고,

“이럇!!”

새로운 창을 꺼내 무장한 폰이 말을 내달렸다. 그리고 붕괴 된 에트날 진형에 난입하여 호쾌하게 창을 휘둘렀다. 이에 휩쓸린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압도적인 전투력 차이를 이용한 일방적인 학살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그 학살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딱 100명.

100명의 적군을 해치운 폰이 떨어진 창을 회수한 다음 곧장 성으로 귀환했기 때문이다.

“멍청한 놈들! 대열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고 누누이 이야기했거늘!!”

“어서 대열을 갖춰라! 적의 다음 공격에 대비해라!!”

사라진 폰을 확인한 사령부가 급히 병사들을 수습했다. 뒤늦게 도착한 공성병기들을 호위하기에 용이한 대오를 갖추게끔 유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또한 플레이어들이 문제였다.

바이란전에 참전한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은 고작 140.

몇 명의 고레벨을 제외하면 저레벨 플레이어가 대다수였고, 심지어 이들은 군사훈련도 받지 않았다.

지휘관들이 최선을 다해서 통솔해봤자 대열을 맞추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 사이, 폰이 들어간 성문에서부터 이번엔 유라가 등장하고 있었다.

“공성병기를 사용하게 놔둘 순 없죠.”

퍼엉-!

데빌 슬레이어는 마족을 해치울 때마다 그들로부터 흑마력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 흑마력을 자원으로 삼아서 특수한 스킬을 발동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흑마법.

흑마법사 랭킹 1위 출신인 유라의 주특기다.

칠흑의 구체를 소환, 공성병기를 호위하고 있는 적병들에게 폭격을 가한 그녀가 그대로 적진에 난입하더니 미친 듯이 도를 휘둘러댔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공성병기였고, 에트날군은 그녀를 저지할 수가 없었다.

에트날 정예라는 병사들조차 레벨은 180에 불과한 바.

그들의 능력으로는 유라의 민첩성과 공격력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져나갔다.

쿠르르르르르릉!!

“제길! 언제까지 날뛰게 둘까보냐!”

무너지는 공성병기를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에트날 플레이어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유라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퀘스트 클리어를 열망하며 창칼을 휘두르고 활과 마법을 쏘았다.

그들의 평균 레벨은 병사보다 한창 낮았지만 유라는 5일째 계속 된 전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

퍼퍼퍼퍼퍼펑!!

“윽.”

공격을 허용하기 시작한다.

전쟁 내내 성 밖으로 출진하여 싸워온 그녀였기 때문에 이미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에트날 플레이어들이 약하다는 점.

워낙 레벨과 아이템 차이가 심해서 유라는 중상을 입지는 않았다.

쏟아지는 적의 공격을 간신히 견뎌내고 할당량 100명을 해치운 후에야 성으로 귀환했다.

쿠웅!

성문이 닫히자마자 털썩! 유라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에게 포션을 건넨 폰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급품이 다 떨어져가. 성벽 위 궁병들의 화살도, 우리가 먹을 포션도 이제 몇 개 안 남았어. 아마, 앞으로 길어봤자 이틀을 채 버티지 못할 거야.”

유라와 툰을 비롯한 템빨단의 실력자들이 대량으로 집중되어있는 바이란.

번갈아가면서 성 밖으로 출격, 적들을 습격함으로써 병력손실 없이 성을 지키고는 있다지만 언제까지고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까닭에 스태미나의 회복 속도가 점차 느려졌고 아이템의 내구력도 바닥을 기기 직전. 심지어 물약도 다 떨어져간다.

바이란은 실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라는 바이란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반드시… 반드시 지켜내야 해요. 여기가 무너지면 파트리안까지 위험해져요.”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유라, 폰, 툰을 비롯한 템빨단원들.

목숨을 걸고 싸울지언정 앞으로 이틀 이상을 버틸 자신은 없었다. 그 안에 지원군이 안 오면 바이란은 끝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

채챙! 채채채챙!!

“끼긱! 끼기기긱!!”

푹-!

“끼이이이익!!”

레드썬 숲.

한국인 플레이어들에게는 ‘최면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에서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드부릭 레이서.

종족 특성으로 <신속>을 보유한 까닭에 ‘사냥 불가능한 몬스터’로 분류되는 그 날쌘 놈들이 단 한 명의 검사에게 살육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서걱!

푸화하하하학!!

피할 수 없는 검로.

인간보다 3배 이상 빠르다는 드부릭 레이서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검술을 구사하는 이 흑발 검사의 정체, 다름 아닌 천외천 크라우젤이다.

자신보다 레벨이 60이나 높은 몬스터들을 모조리 잿빛으로 산화시킨 후.

여성처럼 희고 고운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낸 그가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순간 드러나는 날렵하면서도 높은 콧날과 깊은 눈동자.

뭇 여성들은 물론이고 사내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

“크라우젤님.”

주섬주섬 전리품을 챙기고 있는 크라우젤의 곁으로 하오가 다가왔다.

아레스의 부하들이 크라우젤을 노리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크라우젤의 호위를 자처해온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템빨단을 도우러 가지 않아도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크라우젤은 템빨단에게 큰 호감을 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템빨단의 전쟁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함이 그 증거다.

누가 봐도 템빨단을 도우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였다.

하지만 크라우젤은 끝끝내 에트날 왕국으로 향하지 않고 이렇듯 사냥 중이다.

“혹 어떤 방해요소가 있어서 도우러가지 못하시는 거라면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돕겠습니다.”

크라우젤의 마음을 헤아리고 말하는 하오.

이제는 그와 꽤나 친숙해진 크라우젤이 씁쓸한 미소를 피어 올렸다.

“그리드는 내 도움을 받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친구이기에 앞서서 라이벌이니까요.”

***

동대륙, 판게아.

“오늘로 벌써 3일 째야…”

따앙! 따앙! 따앙!!

하얀 망치의 대장장이들이 불안에 휩싸였다.

지난 3일 동안 그리드가 한시도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사람이 3일 동안 쉬지 않고 일만 해서 무사할 수 있겠는가?

특히 단조질은 체력과 심력 소모가 엄청 큰 작업이다.

대장장이들은 그리드의 건강이 걱정이었다.

“화이트 대장, 저러다가 귀인께서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제발 좀 쉬시라고 말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염려하는 부하들에게 화이트가 고개를 저었다.

화이트 또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3일 동안 자지 않고 그리드의 작업을 지켜본 여파였다.

“판덕공의 집중을 흐트러뜨리지 마라.”

본래 장인이란 저렇다.

물건 하나를 만들지라도 영혼을 불어넣었고 식음 따위 우습게 전폐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

아버지 더화이트를 지켜보며 자라온 화이트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는 결코 그리드를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리드가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다각도에서 지원해준 화이트 덕분에, 그리드는 예상했던 것보다 하루 더 빨리 <주작의 숨결>을 제련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이제부터 진짜다.”

화르륵!!

그리드가 용광로의 온도를 더욱 더 높였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인내심>스킬이 벌써 4번째 발동하면서 그의 피로감을 줄여주었다.

따앙! 따앙! 따앙!!

주작궁의 제작을 시작하는 그리드.

그는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이번 작품은 희대의 역작으로 탄생하게 될 거다.’

근거가 넘치는 자신감이다.

=======================================


7